희귀질환자와 가족을 위한 ‘유전상담 서비스’ 활성화돼야...

나는 내게 몸이 있단 사실을 깨닫는 데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혓바늘이 돋은 순간만큼 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때도 없는 것처럼,
각 기관을 아주 세부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의식하며 살아야 했다.
나는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이 부러웠다.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조로증* 환자 아름을 담아낸 소설이다. ‘아름은 멀고 낯설게 느껴지지만, 사회에 살아 숨 쉬며 질병과 사투하는 희귀질환자는 책 너머 현실에도 존재한다. 희귀질환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유전상담을 원하는 목소리가 무색하게 유전상담은 여전히 제도권 밖에 있다.

 

희귀질환자와 가족의 상처
반창고는 유전상담 서비스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희귀질환이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환자가 2만 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有病)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을 뜻한다. 전문가가 부족해 진단, 원인분석, 치료가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은 지난 2018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희귀질환은 극히 드문 발생률과 유병률로 인해 치료 서비스나 의약품 개발을 위한 연구투자(R&D)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조로증, 듀시엔형 근이영양증**, 샤르코 마리 투스병*** 8천 종에 이르는 희귀질환의 약 80%는 유전질환이다. 샤르코 마리 투스병을 앓고 있는 최명화(39)씨는 희귀질환의 특성상 한 가정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진단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희귀질환자 수는 적지 않다. 질병관리청 의뢰로 가천대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국내 희귀질환 현황 분석 및 지원 개선방안 도출 보고서’(아래 희귀질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희귀질환자는 지난 2018년 기준 501320명이었다. 의료기술의 한계로 미진단 환자가 존재하기에 실제 희귀질환자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대한의학유전학회 관계자 A씨는 희귀질환 대부분이 유전질환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 약 60여만 명으로 추정된다면서도 희귀질환자 수를 파악할 수 있는 정확한 통계는 없으며 미진단 희귀질환자 수는 더욱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환자와 가족은 진단을 위해 병원을 전전한다. 희귀질환 보고서에 따르면 증상 자각부터 진단까지 10년 이상 소요된 희귀질환자는 6.1%, 최종 진단을 위해 4곳 이상의 기관을 방문한 환자들은 16.36%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진단을 받더라도 오진과 질병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환자와 가족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증대된다. 지난 20159월에 열린 진단받지 못한 의료 난민,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국회정책토론회’(아래 토론회)에서 듀시엔형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엄춘화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엄씨는 셋째 임신 중에 한국장애인부모회, 서울대,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아들의 경우 50% 확률로 듀시엔형 근이영양증이 발병할 수 있으며, 딸의 경우 50%의 보인자**** 확률이 있다는 설명을 듣고 임신 중절을 선택했다. 그러나 유전상담 결과 엄씨는 정상으로, 유전 확률이 없었다. 앞선 설명은 유전형을 감안하지 않은 오류였다.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도 문제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희귀질환자 중 70.7%가 희귀질환에 대한 정보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치료 방법 및 기술이해 부족이 65.7%, 검사 결과에 대한 충분한 해석과 설명 부족이 59.3%로 그 뒤를 이었다. 최씨는 희귀질환자가 소수이기에 정보량 자체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유전상담 서비스는 오진과 질병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비극을 예방한다. 유전자 검사 전후 진행되는 상담을 통해 환자와 가족은 검사의 필요성, 과정, 질환 정보를 제공받고 치료 의사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환자와 가족의 만족도 역시 높다. 엄씨는 토론회에서 자세한 유전상담이 일찍 정착됐다면 건강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며 유전상담 서비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0년간 제도 바깥에서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한 한국희귀질환재단이 2013, 2018, 2019년에 걸쳐 조사한 통계를 합산한 결과 희귀질환자와 가족 384명 중 95%가 유전상담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답했고, 그중 97%는 지속적인 유전상담 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유전상담 빠진 정책·제도

 

희귀질환자를 위한 지원책은 꾸준히 마련돼왔다. 국회는 지난 2015희귀질환관리법을 제정했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201612희귀질환관리법 시행령희귀질환관리법 시행규칙을 마련했다. 저소득층 희귀질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비 지원사업은 2001년 고셔병, 혈우병, 근육병, 말기신부전증 4종 선정 지원으로 시작했다. 정부의 지원 확대로 올해는 총 1110종의 희귀질환 의료비가 지원된다. 이에 따라 진료의 요양급여비용 중 10%만 본인이 부담하면 되는 산정특례 대상자가 늘어나 환자들의 부담이 일부 경감됐다. 전문진료실 운영 등 희귀질환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희귀질환 거점센터도 중앙지원센터 1개소, 권역별 거점센터 11개소로 전국 12개소가 운영 중이다.

이어지는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유전상담은 여전히 제도 바깥에 있다.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은 희귀질환관리법이 통과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유전상담 서비스는 제도에 포함돼 있지 않다희귀질환관리법3조 제1*****에 따라 정부는 적정한 의료 서비스로 희귀질환자와 고위험군 가족에게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전상담 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아 환자와 가족, 병원 모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현재 희귀질환자는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으로 유전자 진단지원사업과 미진단 질환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에는 환자를 위한 상담 시간이 충분히 확보돼 있지 않다. 현행 유전자 진단지원사업은 진단의뢰 기관, 유전자 진단지원 기관, 질병관리청 세 축으로 이뤄진다. 진단의뢰 기관에서 임상 정보와 동의서, 환자 시료를 발송하면 유전자 진단지원 기관은 유전자 진단 결과를 진단의뢰 기관과 질병관리청에 보고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은 짧은 시간 내 진료와 상담을 마무리해야 하기에 환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순천향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정호 교수는 현재 진료 시간이 짧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유전상담 서비스에 대한 수가가 책정되지 않아 병원도 자체적으로 유전상담을 제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전상담은 최소 30분이 소요되며, 초진일 경우 1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평균 3~5분이 소요되는 다른 진료에 비해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셈이다. 계명대 동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유전상담센터 김도훈 교수는 수가가 책정되지 않으면 기본 진찰료를 받게 된다현재 의료 봉사에 가까울 정도로 힘겹게 유전상담을 유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대한진단유전학회 조사 결과 학회 회원이 속한 52개 기관 중 유전상담 클리닉을 운영하는 곳은 진단검사의학과 12, 혈액종양내과 2, 유전학 클리닉 1, 암병원 1곳으로, 16곳에 불과했다. 한국희귀질환재단에서도 2012년 가천대길병원을 시작으로 전국 4곳에 유전상담 클리닉을 열었지만, 현재 3곳이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김 이사장은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대학병원은 유전상담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전상담 서비스
환자와 가족 곁으로

 

전문가들은 유전상담 서비스에 대한 수가 책정 유전자 진단제도 개정 유전상담 전문인력 확충 환자·가족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유전상담 서비스에 대한 수가를 책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씨는 희귀질환의 진단과 관리, 예방을 위해 유전상담에 건강보험 수가가 책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유전상담에 대한 수가가 책정돼 있지 않다는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한다수가 신설을 위해 대한진단유전학회에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A씨도 수가 책정 시 의료 현장에서 상담이 활발히 운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수가가 책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전자 진단제도 개정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검사 전후 환자와 고위험군 가족을 위한 유전상담 서비스가 제도권 안으로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이사장은 유전자 검사 전후에 환자들이 유전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진단지원사업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유전상담 전문인력 양성 제도 마련에도 입을 모았다. A씨는 의료 현장에서 임상유전학 전문의와 유전상담사가 함께 유전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 일본 등에서는 전문인력 양성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유전상담사 양성이 제도화돼 지난 2020년 기준 5172명의 인증 유전상담사가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대한의학유전학회에서 유전상담사 인증제를 시행했으나, 이는 국가가 인정하는 공인 자격이 아니다. 이 교수는 전문 유전상담을 위해 유전상담사가 필요하지만, 의사와 간호사처럼 국가공인자격증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급여 등이 제한된다미국, 일본처럼 각 학회 시험에 합격하면 국가가 인정해주는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다름을 수용하고 소통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최씨는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우리들의 목소리는 정부에 온전히 닿지 않고 있다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희귀질환자가 소수이기에 희귀질환의 임상이 부족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씨는 희귀질환자의 다름을 포용하는 인식이 제도와 정책에 전제돼야 한다희귀질환자와 가족이 사회와 단절되지 않도록 유전상담을 비롯한 적절한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희귀질환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희귀하기에 사회에서 소외된다. 수많은 모습을 가진 희귀질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환자와 그 가족이 질환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일상을 살 수 있도록 유전상담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조로증: 어린아이들에게 조기 노화 현상이 나타나는, 치명적이고 희귀한 유전질환

**듀시엔형 근이영양증: 진행성 근이영양증 중 가장 빈도가 높고 인구 10만 명당 약 4명의 유병률을 보이는 유전질환

***샤르코 마리 투스병: 특정한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운동신경 및 감각신경이 손상되는 질환

****보인자: 유전병이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고 있지만 그 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

*****희귀질환관리법3조 제1: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희귀질환 관리에 관한 사업을 시행하고 지원하여 희귀질환을 예방하고 희귀질환자에 대한 적정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글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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