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으로 살펴보는 사유 불능과 악의 평범성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범행 동기나 범죄자 개인의 사정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은 사회 통념에 반하는 노선을 택했다. 성매매 알선이라는 비인권적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의 시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주인공의 자기변명이 그럴싸해질수록, 시청자들은 혼란을 거듭한다. 주인공의 ‘죄’는 무엇이고, 왜 나쁜 것일까. 『인간수업』은 우리에게 악의 본질에 관한 물음을 던졌다.

 

‘모범생’이자 ‘범죄자’,

아슬아슬한 이중생활

 

"성실한 학생입니다.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 성취도가 높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행실이 타의 귀감이 되며,

웬만해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적인 학생입니다"

 

주인공 오지수는 교내에서 모범생으로 통한다. 등하교 시간 지하철에서 문제집을 펴놓고 공부할 만큼 부지런하다. 명문대를 목표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왔으며, 벌점 및 경고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학생들과의 대결 구도에서 소심한 피해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 밖의 지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삼촌’으로 통한다. 성매매 알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조건만남을 주선하고, 성매매 여성을 경호하는 포주로 활동하며 돈을 번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조폭과 손을 잡고 사업을 키워가기에 이른다.

지수의 범죄에는 그럴싸한 자기변명이 존재한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은 지수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간간이 연락이 닿는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지수가 모아둔 돈을 훔쳐 가기 바빴다. 그렇기에 지수는 그저 “학교도 가고, 대학도 다니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려고” 범죄를 저지른다. 실제로 지수는 성매매 알선을 통해 번 돈으로 월세를 충당하고, 학원비를 내고, 문제집을 샀다. “꿈은 비싸다. 부모 없는 애한테는 더 비싸진다”고 말하는 지수에게 성매매 알선은 생존의 문제다.

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윤리적 딜레마에 놓이게 한다. 지수는 분명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은 사회 통념상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그러나 “나쁜 생각은 없었어”라고 외치며 자신의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피력하는 지수의 모습은 일말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악인을 이해하려는 순간, 우리는 도덕적인 딜레마를 마주한다. 지수를 완전한 악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본질로 돌아가 지수의 죄는 무엇이고, 그것은 왜 나쁜가.

 

사유를 멈출 때, 악이 시작된다

 

자신의 범죄를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합리화하는 지수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60년 전,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도 예루살렘 재판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의 친위대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체포하고 강제 이주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네 의지의 원칙이 보편적 입법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근거로 본인의 행위가 정당함을 주장했다. 자신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역할을 수행했으며, 전체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국가 이념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악이란 사유의 불능에서 나오는 것이며,
동시에 남의 입장에 서는 능력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에게 사유하지 않은 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확히는 ‘사유 불능성’, 그 가운데서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무능함이다. 그녀가 말하는 ‘사유’는 행위의 의미와 결과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직결되며, 인간의 본성이 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다. 권위자의 명령에 순종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한 아이히만은 사유 불능으로 인해 유대인 600만 명의 죽음을 초래했다.

자기연민에 빠져 본인의 범죄를 정당화한 지수도 ‘사유하지 않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불우한 환경에 놓였다는 이유로 스스럼없이 범죄를 저질렀다. 자신의 행위가 초래할 결과, 특히 타인에게 끼칠 피해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성매매 여성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도 그들은 그 상황을 그저 ‘사업적 리스크’ 혹은 ‘해당 여성의 선택에 따른 책임’ 쯤으로 여긴다. 타인의 존엄을 존중하지 않는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은 것이다.

결말에서 지수는 자신의 알선 행위로 피해를 입은 같은 반 친구 서민희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지수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데 급급하다. “나쁜 생각은 없었다”며 “그냥 다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지수의 모습에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민희가 자신의 말을 녹음했다는 사실을 안 뒤 그녀를 쫓아가 폭력을 행사하고, 몸싸움을 벌이다 계단에서 떨어져 죽은 민희를 보고도 핸드폰만 챙겨 도망간다. 본인의 불행한 처지를 원망하면서도 타인의 불행에는 무감각한 지수의 모습은 유대인 학살을 방관했던 아이히만을 연상케 한다. 지수의 죄 또한 사유하지 않은 죄이며, 악은 사유의 부재로부터 시작됐다.

 

‘악의 평범성’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사람들은 종종 사유 불능에서 비롯된 악을 ‘대단히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 짓을 해?’라고 외치며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악을 특수한 영역으로 규정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나는 절대 악인이 될 수도, 피해자가 될 리도 없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렌트는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된 악이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다고 이야기한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 장애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됐음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악을 범하는 사람은 태초부터 이상하고 괴이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한 보통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녀는 모두의 마음속에 ‘악’이 존재하며, 비판적 사고 없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어느 누구라도 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수도 학교에서는 반듯한 모범생이자 좋아하는 여학생 앞에서 부끄럼타는 10대 소년이었다. 아이히만도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자 칸트의 도덕률을 실천했다고 자부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오늘날의 21세기 사회에도 수많은 ‘오지수’와 ‘아이히만’이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의 사유 불능은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져 왔다. 학내 봉사동아리 단원으로 활동하고, 학보사 편집장까지 맡은 대학생이 실은 디지털 성 착취 사건의 주범이었다. 과거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떨쳤던 고위공직자와 성평등을 외치던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성을 성추행했다.

어디에나 악이 있고,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비판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는 순간 악이 시작된다. 본인의 입장만을 고려한 자기변명과 정당화는 악을 부추길 뿐이다. 악을 우리와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영역에서 우리와 맞닿은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악의 평범성을 인지해야 한다. 나아가 끊임없는 성찰과 사유를 통해 악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사유가 멈추는 순간, 악은 평범한 일상이 될 것이다.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스승이 부재한 ‘인간수업’에서 지수와 그의 조력자들은 본인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마주하고 죗값을 혹독하게 치른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이 되기 위한 수업을 해나간다. 우리 또한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비판적 사유를 통해 스스로만의 ‘인간수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자료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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