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로 변한 보호자, 친족 성폭력

지난 2018년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미투’ 운동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침묵을 지키도록 강요받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러나 폭로의 장에서도 여전히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피해자가 있었다. 바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악랄한’ 범죄

 

 

친족 성폭력은 4촌 이내의 혈족·인척 및 동거하는 친족에 의해 벌어지는 성폭력이다. 가족 관계는 성범죄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친족 성폭력 가해자는 매년 700명 이상으로 집계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성범죄 가해자 중 동거 친족 및 기타 친족은 지난 2016년 725명, 2017년 776명, 2018년 858명, 2019년 775명이었다. 이는 가족의 근간을 흔들 뿐만 아니라 보호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성폭력피해자 쉼터 ‘열림터’ 조은희 원장은 “친족 성폭력의 가해자는 유명인이 아니어서 ‘미투’ 운동에서도 별 파급력이 없다”며 “가장 신뢰하고 있던 가족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고 말했다.

친족 성폭력이 문제시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992년 일어난 한 사건은 친족 성폭력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9살 때부터 의붓아버지에 의해 약 12년간 성폭력을 당한 한 여성이 그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딸보다, 딸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파렴치한 의붓아버지에 주목했다. 법원 역시 최초로 살인죄에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할 가족이 가해자가 된 친족성폭력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지난 2010년 친족 성폭력 문제가 지속되자 이러한 인면수심의 범죄자에 엄벌을 내리는 법이 제정됐다. 친족 성폭력을 따로 규율하는 조항이 마련된 것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조에 따르면 친족 관계인 사람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 7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제 추행한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297조가 강간 및 강제 추행한 가해자에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데 비해 높은 처벌 수위다.

이처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5년에 내려진 헌법재판소 결정이 이를 보여준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친족 성폭력 가중처벌에 대해 ‘친족 관계라는 특별한 신뢰 관계를 해치는 것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고 피해자와 친족 구성원에게 매우 큰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을 남기는 반인륜적인 범죄’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진희 변호사는 “다른 성폭력 사건과 비교해봤을 때 친족 성폭력이 3~4배 정도 형이 높은 건 사실”이라며 “최소 10년 정도의 형이 내려진다”고 말했다.

 

가장 익숙했던 ‘내 집’과 ‘우리 가족’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돼

 

 

처벌이 강화됐음에도 친족 성폭력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범죄의 특수성에 있다. 친족 성폭력의 특성상 범행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피해자는 신고조차 하기 어렵다. 가해자가 마음 놓고 오랜 기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이유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어린 나이부터 범죄에 노출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9년 상담 통계 현황’(아래 상담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상담자 중 33.3%가 7~13세에 피해를 경험했다.

문제는 어린 피해자들은 사랑과 폭력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고발 이후 가정의 울타리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 변호사는 “어린아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해 가족에 대한 소문이 안 좋게 날 것을 걱정한다”며 “가해자의 행동이 자신을 사랑하고 예뻐서 하는 행동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피해자들이 범죄 사실을 고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제 상담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 중 55.2%가 피해 상담을 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면 안 된다’는 가족들의 암묵적 합의 때문에 피해자는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신고를 포기하기도 한다. 상담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상담 사례 총 87건 모두에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렸을 때 주변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 변호사는 “그래도 ‘우리 가족’이니 고발하기보다 용서를 해주는 게 맞지 않냐고 말하는 가족들이 많다”며 “가해자가 처벌받을 경우 발생할 생활고를 우려해 피해자가 고소하지 못하도록 회유하거나 처벌불원서를 작성하게 하는 가족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접수되지 않은 건수를 합치면 친족 성폭력 피해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조 원장은 “폭행을 거부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인식 때문에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기 어렵다”며 “친족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고발로 한 가정이 문제 가정으로 낙인찍혀 다른 성폭력에 비해 더욱 고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신고를 하더라도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친족 성폭력이 ‘집’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신고 후에도 가해자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신 변호사는 “신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집을 들락날락하는 가해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인 아이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음에도 가해자로부터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는 말할 수 있고
가해자는 끝까지 처벌받을 수 있도록

 

이에 친족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선 단순히 가해자에 엄벌을 가하는 것을 넘어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우선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에게 심리치료 및 경제적 지원을 제공함과 동시에 장기적인 쉼터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해자가 피해 고발 후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가해자로부터 분리함으로써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재 마련돼있는 쉼터는 양적·질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미성년자인 피해자들이 갈 수 있는 쉼터는 전국에 4곳밖에 없으며, 서울 시내에 장기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쉼터는 2곳밖에 없다. 이마저도 공적으로 지원받는 예산이 없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 원장은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가 충분하지 않으며 지원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발생하는 친족 성폭력의 폐쇄성으로 인해 범죄가 발생해도 주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 변호사는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폭력 및 학대 의심이 있는 경우 학교 선생님은 신고 의무자로서 피해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며 “주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 가져준다면 집안 내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범죄라고 할지라도 피해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적 관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는 피해자가 만 13세 미만인 성폭력 범죄에 한해 공소시효가 없으며 만 13세 이상일 때는 공소시효가 최대 10년, DNA 등 별도의 증거가 있을 때는 2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피해자인 어린아이가 어른이 돼 피해를 고발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고 지적한다. 범죄 특성상 피해 사실을 밝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13세 이상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도 공소시효가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12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 푸른나비씨는 “죄는 죄라고 얘기해야 되는 게 공정당당한 사회”라며 “공소시효가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족 성폭력은 면식범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다. 이 면식범이 우리 가장 가까이서 우리를 보호해야 하는 가족이기에 고통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상처는 아물 수 있다. 피해자들을 그저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열린’ 귀로 듣는 태도가 필요하다.

 

글 정효원 기자
remiwon@yonsei.ac.kr

그림 박소연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