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한 백인 남성이 난사한 총격에 8명의 아시안계 여성이 사망한 끔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중 4명의 여성이 한국계로 밝혀져 우리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인종차별의 혐오범죄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이러한 범죄행각들이 아시안계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데서 우리의 촉각을 더욱 곤두세우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사태가 아시아인들을 바이러스의 보균자 내지는 전파자로 보고 이들을 멀리하려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력을 촉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범죄자들은 자신들의 불만과 분노를 표출할 특정한 희생 집단을 ‘만들어 낸다’. 이들은 특정한 소수자들을 자기들의 안녕과 번영을 해치는 벌레나 해충들로 부르며 이들을 소멸시키는 것을 삶의 신조로 삼고 온갖 폭력을 행사한다. 또 희생 집단의 사람들을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 폄하하고, 죽여도 면책이 가능한 ‘호모사케르’ 같은 존재로 간주한다. 코로나19의 형국에서 아시아인들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쥐와 같은 유기체, 즉 ‘호모사케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혐오범죄가 증대하고 있는 것은 인류사회가 병리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심상치 않은 증거다.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신나치주의자들과 우파정당,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미국에서는 얼마 전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 상징공간인 국회의사당을 기습적으로 점거하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자신들과 다른 세계관이나 가치관, 생활양식 등의 이질성을 포용하지 못하고 타자의 악마화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혐오 병리는 비단 물리적 폭력을 일삼는 일부 혐오범죄자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오늘날 혐오감정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 세계에 널리 퍼져있다. 혐오는 연대와 신뢰, 관용과 용서의 덕목 대신 무한경쟁과 각자도생, 단죄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곳에서 피어나는 적대와 증오의 감정이다. 또한 성공을 거머쥔 소수 능력주의자들의 오만과 뒤처진 자들의 굴욕, 사회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회의가 가득 찬 곳에서도 피어나는 병리적 감정이기도 하다. 게다가 불안과 우울 증상을 나타내는 ‘코로나 블루’는 혐오가 더욱 증폭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병리적 혐오가 유령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지구 저편에서 발생하고 있는 혐오범죄의 메시지를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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