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지키는 학생들을 만나다

대학원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도의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이곳에서 대학원생들은 학문의 장으로서의 대학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교육기본통계 주요내용」에 따르면 대학원 재학생 수는 지난 2015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이다. 오늘날의 대학원은 사회의 흐름에 어떻게 적응하고 본연의 가치를 보존해가고 있을까. 『The Y』가 현장에 있는 원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업과의 활발한 협력 가운데서도

사회적 책임을 찾다

 

오늘날 대학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큰 변화 중 하나는 ‘기업과의 활발한 협력’이다. 정부는 대학의 산학협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질 ‘산업교육 및 산학연협력 기본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업체의 지원을 받고 업체와 연계한 커리큘럼 속에서 학생들은 실무를 경험한다. 하지만 산업과 밀접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곧 경제적 이익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사회적 기업과 협력하기도 하고 학생이자 사회인으로서 자신이 가진 사회적 책임에 대해 알아간다.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규선(시각디자인·박사4학기)씨를 만나봤다.

 

Q. 대학원 과정에 진학한 동기가 궁금하다.

이: 본래 학부를 미국에서 나와 뉴욕 광고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한국에 왔다. 평소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아 서체 디자인을 하고 싶었는데 취업을 준비하며 영문 서체와 한글 서체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한글 서체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됐다.

지금은 한글과 한자 서체를 디지털 폰트로 상용화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한국 문화유산 발굴을 거쳐 이뤄지는 작업이기에 한국의 고유문화에 관심이 많다. 지난 2020년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라는 학교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석·박사 졸업 이후에도 학생들이 연구소에서 함께 작업하고 연구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했다. 앞으로도 연구소의 일원으로 남고 싶다.

 

Q. 대학원에서의 디자인 연구는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이: 우리 학교는 전문대학원이다 보니 실무 중심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 창출보다는 연구를 목적으로 이뤄진다. 예컨대 한글 폰트 제작은 각각 2천350자의 글자를 디자인해야 하므로 업체에서는 대개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들어 직접 연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학에서 연구기능을 수행하고 학생들이 이를 주도하도록 커리큘럼이 운영된다.

 

Q. 디자인 대학원에서는 산학협력이 활발히 이뤄질 것 같다. 어떤 방면으로 기업과 연계가 이뤄지는가.

이: 실무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산학공동 프로젝트가 활발히 이뤄진다. 특히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어 사회적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들이 많다. 이번 학기는 4개 업체와 협력을 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과 지역 소상공인을 지원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Q. 디자인계에서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작업 태도를 추구하는가.

이: 최근 사회적 책임을 많이 강조한다. 이를테면 사회적 기업을 돕거나 국가 구성원으로서 전통문화를 발굴하거나 친환경 산업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또한 과거보다 디자이너의 주체성도 강화되고 있다. 본래는 기업의 요구에 맞춰 디자인의 방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Q. 오늘날 대학원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리고 대학원에서의 연구가 어떻게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우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확립해낼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교수가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찾아나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대학원은 학술 연구와 실무교육을 병행하여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 예컨대 나는 현재 동료들과 디지털 아카이빙 서비스를 연구하고 있다. 문화유산을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문화유산을 세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전공분야 너머의 사회적 주제들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최근 트렌드에 맞춰 테크놀로지와 디자인 재산권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대학원생은 전공과 연계해 습득한 지식과 실무능력을 바탕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로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

 

기초학문 대학원생

미래 불안 해소가 우선

 

‘기업 연계’라는 변화의 바람이 일부 대학원에 활기를 불어넣는 가운데 다른 방향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도 있다. 기초학문은 각종 분야의 밑바탕이 되지만 높은 난이도와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피된다. 또 낮은 수요로 인해 학과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기초학문의 입지를 줄이는 동시에 석·박사 과정 진학의 진입장벽을 높인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과마저 줄어들면 졸업 이후 교수나 강사로 일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기초학문 분야의 학문후속세대 양성은 악순환에 빠져있다.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은 멸종 위기종’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기초학문 대학원생은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것일까. 서울시립대 송기영(철학·석사3학기)씨와 연세대 전세영(천문우주·석박사통합3학기)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기초학문의 어려운 현실에도 대학원 진학을 한 이유가 궁금하다.

송: 학부 수업에 부족함을 느꼈다. 원서도 보고 비판적 함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고자 했다. 현재 서양철학, 윤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구체적으론 존 롤즈(John Rawls)의 자존감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원서를 읽고 토론하고 비판하고 피드백 받는 과정을 반복하며 이론의 의미와 한계를 찾아간다.

전: 천문우주학과 학부를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어릴 적부터 우주를 동경하고 입학 때부터 대학원을 계획한다. 일부는 막상 전공 수업을 듣고 생각했던 것과 달라 다른 진로를 찾기도 한다. 나는 전공 수업을 들으며 더 흥미가 생긴 경우다. 학부에서 연구를 ‘맛보기’ 정도로 해보는 수업이 많았는데, 그 이상으로 연구를 하고 싶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현재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이용해 은하 생성과 진화 과정을 연구 중이다. 은하 안에 수많은 별이 있고 은하마다 탄생 과정과 역할이 다르다. 이를 중점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Q. 기초학문 대학원생으로서 고충이 있다면 무엇인가.

송: 철학을 전공한다 하면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취업에 관련된 걱정이거나 왜 철학 대학원에 진학했는지 묻는다. 가끔 어르신들이 ‘이름 지을 줄 아냐’고 여쭤보시기도 한다. 이런 게 소소한 고충이다. 전반적으로 석·박사 이후의 상황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직장이나 받아주는 단체가 있어야 연구가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혼자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 석사 이상의 학위가 투자한 비용에 비해 높은 연봉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남들은 취업해서 돈 버는데, 등록금 내고 대학원을 가는 것을 자기만족을 위한 사치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가장 큰 고충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순수과학은 기업보다 국가 주도로 양성이 필요한데 국내는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다. 졸업 이후 국내에서 계속 연구를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지금 당장 석·박사 과정을 밟는 것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미래에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확실치 않은 것이 고충이다.

 

Q. 연구하는 분야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송: 경제성을 창출하는 측면에서 철학은 실용성이 낮다. 대학원이 만약 경제적 성과만을 목적으로 운영된다면 철학은 도태될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다른 의미로 실용적이다. 철학적 논의가 배제된 채 사회가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을 만들 때, 그 정책의 정당화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철학이 필요하다. 사회의 방향성을 철학을 통해 정해가는 것이다.

전: 천문학은 인간의 근원적 질문에 답을 찾는다.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고 세상은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라는 질문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천문학 연구가 오랜 세월 진행되고 있으며 생명체, 지구, 별, 우주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다.

 

Q. 기초학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대학원에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송: 철학뿐만 아니라 기초학문의 생태계가 보전되려면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해야 한다. 더불어 경제적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기초학문에서 자유로운 연구,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전: 주위 실무 관련해 경험해보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부 과제와 산업 선정 과정이 질보다 양으로 결정되는 측면이 있다. 많은 논문을 요구하고 획일화된 형식이 장려된다. 이는 좋은 연구를 하기 힘들게 한다.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경쟁력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대학원생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학의 역할인 진리 탐구와 사회 공헌을 이어가고 있다.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웃픈’ 농담이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에게 필요한 것은 자조적인 유머가 아닌 든든한 응원과 연구를 이어갈 기반이다. 학문후속세대로서 꿈을 이뤄가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타이포그래피: 편집 디자인에서, 활자의 서체나 글자 배치 따위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일.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사진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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