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남겨진 퍼즐 조각, ‘장애인’

 

4.7 재보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누가 서울시장이 되느냐입니다. 1천만 서울시민의 미래를 결정하는 책임자를 뽑는 선거일뿐더러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거이기 때문입니다.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초접전’, ‘합당’, ‘단일화’는 선거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들에게 ‘부동산’ 공약은 주요 쟁점입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 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 모두 여기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특히 최근 LH 사태는 더더욱 그 중요성을 키웠습니다. 이에 후보들은 연일 ‘공공주택 36만 호 공급’, ‘5년 내 74만 6천 호 공급’ 등 누가 더 많이 그리고 빨리 주택 공급을 하느냐를 두고 경쟁을 벌입니다.

부동산 정책 이외에도 후보들은 서울시민들의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혁신’, ‘성장’ 등의 수사는 희망적입니다.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장애인입니다. 현재 주요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들 속에서 장애인 관련 공약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장애인에게 이동권과 탈시설을 보장해준다고 말한 후보들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마련되지 않아 비판받는 상황입니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된 서울시 거주 장애인은 지난 2019년 기준 39만 4천843명에 이르는데, 이들의 미래에 대해 말하는 후보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탈시설장애인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노동권 ▲장애인 탈시설 권리 ▲장애인 교육권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건강권 ▲장애 여성 권리와 같은 공약을 내세우는 11명의 서울시장 후보를 출마시켰습니다. 정치인들에게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하는 방식이 아닌 직접 목소리를 내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물론 이 정당이 진짜 정당은 아닙니다. ‘탈시설장애인당’ 홈페이지에 따르면 ‘탈시설장애인당(當)은 정당(政黨)이 아니며, 21년 보궐선거 기간 장애인 정책의제들을 선전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들을 소개합니다. 즉, 실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정당이 아닌 장애인의 권리 실현을 위한 일종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죠.

‘탈시설장애인당’은 비록 가짜정당이지만, 그동안 논의된 장애인 의제를 집대성해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소기의 성과도 거뒀습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의 요청으로 일부 후보자들과는 간담회를 진행하고 정책협약도 체결했습니다. ‘정당 창당’이라는 참신한 활동 방식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난관은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지난 2월 19일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가 ‘탈시설장애인당’이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하고 있으니 당장 활동을 중지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입니다. 선관위는 ‘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과 정당 및 후보의 이름이 명시된 현수막을 설치한 것이 위법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활동을 계속할 경우 「정당법」에 의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 그리고 「공직선거법」에 의해 2년 이하의 징역과 4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선관위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는 정당한 행정절차에 해당합니다. 전장연 역시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탈시설장애인당’은 가짜정당임을 명확히 밝히고 공식 선거기간 전 자진해산을 약속했습니다. 애초에 이들의 목표는 정치적 행위가 아닌 ‘장애인 권리 실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불법 여부를 넘어, 이러한 상황 맥락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런 난관은 그동안 전장연과 장애인들이 벌여온 투쟁들을 연상시킵니다. 이들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월 10일 전장연은 ‘지하철 타기 직접행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50여 명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서 서울역까지 내렸다 탔다를 반복한 것입니다. 장애인들은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참사’ 20주기를 맞아 20년 전과 변함없는 현실에 분노했습니다. 이들이 요구한 건 딱 한 가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건 ‘경고장’이나 다름없는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였습니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쥐고 있는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은 걸림돌에 불과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하철을 타려던 직장인들은 설 연휴 전 시위로 인해 일찍 퇴근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귀성길 KTX를 예매한 시민들은 시위 때문에 기차를 놓치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왜 굳이 오늘 해야 했냐”며 비판을 가했죠.

정당을 만들든, 길거리에서 투쟁하든 계속해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을 불편하게 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들이 수년간 투쟁 끝에 부양의무제 기준이 폐지됐고, 저상버스가 일부 도입됐지만, 총 4천440만 원의 벌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농성과정에서 부과된 벌금이었습니다. 이에 지난 19일 전장연 대표단은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을 택해 노역장에 들어갔습니다. 누군가는 불편한 이 목소리에 장애인들의 생존이 달려있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사회 퍼즐판에는 ‘장애인’이라는 조각 하나가 비어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몸부림칩니다.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선 남은 하나의 조각을 ‘부동산’이 아닌 ‘장애인’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는 서울시장 후보들만의 몫은 아닙니다. 많은 시민의 노력이 더해졌을 때 퍼즐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비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당연히 누려온 권리,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 ‘특권’을 인식하고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요?

 

글 정효원 기자
remiwon@yonsei.ac.kr

<자료사진 탈시설장애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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