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보도부장 (경영·15)

“기권, 기권, 기권”

우리신문사 보도1부 기자들은 매주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 출석해 회의를 참관한다. 언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된 것인지 몰라도, 학생 사회의 의제를 가장 빨리 포착하기 위한 목적이다. 중운위에는 으레 다루는 인준 안건뿐만이 아니라 학내 단체로부터의 연서 요청도 상정된다. 그러나 지난 2020학년도 중운위에는 기권이 참 많았다. 사유는 정치적이거나, 총학생회(아래 총학)의 역할이 아니거나,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연대해 달라는 요청, 3구역 청소용역업체 코비를 규탄해 달라는 요청, 등록금 반환을 위해 대학들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진행하자는 요청 등이 기권표를 받고 중운위장에서 물러났다.

당시 이 ‘기권’을 두고도 비겁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기권을 존중한다. 모든 대표자는 소신과 신념에 따라 기권표를 던질 수 있다. 또 나름대로 이해는 된다. 선출직 대표자로서, 모두의(최소한 다수의) 뜻인지 확실하지 않은 의제에 표를 던지기에 부담도 있을 것이다. 또 섣부른 시도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겠지. 그 자체를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총학과 학생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하는 고민은 지울 수 없다.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비정규 공대위)는 여러 번 중운위에 코비 퇴출을 위해 힘을 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중운위는 지난 2020년 6월 ‘책임있는 행동을 한다’는 안건에만 동의를 했을 뿐, 비정규 공대위가 원하던 규탄문에는 끝내 손을 내밀지 않았다. 당시 회의장에서 총학생회장이 한 말을 기억한다. “총학의 정치적 자산을 소모할 수 없다” 그러나 ‘기권’을 받고 회의장을 물러난 이들은 생각할 것이다. 총학은 겁쟁이라고.

결국 코비 문제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분회, 비정규 공대위, ‘연세대학교 코비 문제 해결에 연대하는 언론모임, 아코디언’ 등을 중심으로 다뤄졌다. 어찌어찌 그들은 코비 퇴출에는 성공했다. 그건 다행인 일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총학의 존재감은 완전히 지워졌다는 것이다. 총학의 도움 없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경험을 얻은 사람들이, 총학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본 사람들이 다른 문제가 있다고 한들 다시 총학을 찾을까.

이 일은 총학이 다룰 수 있는 의제의 폭을 스스로 제한해버린 사건 중 하나다. 지금의 총학은 예전의 총학처럼 ‘민주화’, ‘학원 개혁’ 등의 뚜렷한 시대정신을 독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의제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스스로 의제를 제한하는 행동은 총학의 역할과 영향력을 제한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스스로의 의제를 지워나가면 마지막 순간에 총학이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은 1년에 네 번, 시험 기간에 나눠주는 간식이 전부일 것이다. 총학의 정치적 자산은 은행 적금이 아니다. 쌓아둔다고 이자가 붙어 늘어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마일리지 같은 것이다. 정치적 자산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늘어나고, 총학의 이름은 뚜렷해져 갈 것이다. 정치적 자산을 남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쓸 땐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지난 2020년의 여름이 기억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교육권 침해에 총학과 중운위는 무더위의 시험 기간에도 천막을 쳤고 본관과 학생회관 앞에 모였다. 그때의 총학은 빛이 났다. 당시 총학을 향한 학생들의 응원과 격려는 총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정치적 자산인 것을 확인했다. 학생사회가 뚜렷하게 의제를 선정하고 실행에 옮길 때, 학생들은 그들의 존재감을 느낄 것이다. “아, 총학이 뭔가를 하는구나”, “총학이 우리에게 필요할 수 있구나”

56대 총학은 선본 시절 ‘먼저 의제를 설정하는’ 총학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먼저 설정하기’ 전에 선행돼야 할 일은 들어온 의제부터 잡는 것이다. 들어온 의제도 내쫓는 총학은 절대 먼저 의제를 설정할 수 없다. 현 총학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내 나름의 응원의 메시지다.

열심히 안 하는 총학생회(장)는 본 적 없다. <Flow>도, <Mate>도, <Switch>도. 내가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나마 바라봤던 총학생회장단은 참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겁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건, 그들 자신에게도 안 좋을 일이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조금 씁쓸해지는 일이다.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말은 언제나 있었다.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학생사회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무관심은 언제든 돌려 잡을 수 있다. 진짜 위기는 학생들이 총학이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잊는 순간 찾아온다. 총학과 학생사회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비대면 학사 운영으로 학생사회의 맥박마저 희미해지는 때다. 잊히기 전에 행동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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