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찬 사회부장 (언홍영·16)

시간은 상대적이다.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의 흐름은 중력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지구에서는 높이에 따라 중력이 달라지므로 매우 높은 곳에서는 낮은 곳에 비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이론의 영역에 머물렀던 이것은 최근 실험을 통해 사실임이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높이에 따른 시간의 차이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실생활에서 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과학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160억 년에 1초밖에 차이 나지 않는 ‘광격자시계’라는 것을 실험에 이용해야만 할 정도다. 하지만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사회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사람들 사이에는 지위나 상황에 따른 급격한 시간 흐름의 차이가 존재한다.

지난 2월 10일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선 급격한 시간 흐름의 차이가 평균 깊이 15m인 지하철역에 공존했다. 무려 150분과 20년이라는 차이였다. 우리 사회 깊숙이 숨겨져 있던 이 간극은 장애인들의 ‘승하차 투쟁’을 통해 드러났다. 

이들은 이날 휠체어를 타고 서울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서부터 서울역까지 내렸다 타기를 반복했다. 열차는 가다 서기를 되풀이했고, 150분가량 지연됐다. 열차에 함께 탄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바쁘디 바쁜 자신들의 150분이 이들의 투쟁 때문에 멈췄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날 장애인 활동가들은 “우리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을 20년이나 참아왔다”며 “우리의 권리를 알리려고 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애인들의 시간은 20년째 멈춰있는 상태다. 한 장애인 부부가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크게 다친 지난 2001년 이후 이들은 서울시에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사실 이날 투쟁도 지금까지 이어온 수십 차례의 투쟁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 지하철 23개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고, 저상버스 도입률은 49.8%에 그쳤다. 장애인들의 시계는 여전히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아직도 2001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날도 장애인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지난 2015년 서울시가 스스로 발표한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오는 2022년까지 서울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 100% 설치와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을 약속했지만, 아직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부진한 상황이다.

장애인 이동권은 지난 2009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발효된 ‘유엔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명시된 권리다. 그러나 중앙·지방 가릴 것 없이 이를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은 잠잠하기만 하다. 장애인들의 시계가 멈춰버린 이유는 우리가 이들을 사회 저 밑바닥에 내버려 둔 채 느리게 흘러만 가는 시간을 강요했기 때문은 아닐는지.

이동권 문제 외에도 노동권, 건강권 등 다양한 권리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현실은 엄존한다. 이들도 같은 높이에서,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갈 순 없을까. ‘공정’과 ‘정의’가 지상과제라고 하지만, 정작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한 지금, 우리는 어디를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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