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의 가치를 지켜온 사람들을 만나다

학내외로 새로운 의제들이 등장하고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학판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학판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The Y』 Y,人의 새로운 시리즈는 ‘대학판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대학판을 지켜온 학생자치기구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학생자치의 변화를 살펴봤다.

 

 

 

민주화 물결 속 꽃피운 학생자치

 

1980년대 초반 대학가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학교 내에 경찰병력이 상주했고, 집회와 시위는 엄격하게 탄압됐다. 지난 1983학년도 2학기부터 1984학년도 1학기까지 연세대 총학생회장직을 수행한 국민의힘 서대문갑 이성헌 위원장은 “학생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면 경찰들이 즉각 구속해 잡아가거나 강제로 군대에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묘사했다.

학생자치도 암흑기를 맞았다. 총학생회(아래 총학)가 폐지되고 독재정권이 임명한 학생들로 구성된 학도호국단이 만들어졌다. 이 위원장은 “학도호국단은 강제로 만들어진 자치기구이기 때문에 형식적인 존재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당시 학도호국단 학생들은 스스로 ‘총학생회’라 지칭하고 활발한 자치 활동을 벌였지만, 문교부*는 이들을 거세게 탄압했다. 이에 학생들은 독재정권 타도와 학생자치 실현을 위해 투쟁했다. 총학의 탄생이 민주화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이유다.

이 위원장은 “당시 학생운동의 핵심 목표는 반독재 민주화였다”며 “학내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요구를 꾸준히 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총학생회장 시절 여야 정치인들을 학교에 초청해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주제로 광주항쟁 4주년 기념식을 진행하려는 등 학생이 주체가 된 민주화 운동을 시도했다. 그는 “모두 불발됐지만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통해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하려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이들의 행보는 정치투쟁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학생들의 복지와 학습여건 향상을 위한 일종의 생활 투쟁도 벌였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그는 생활협동조합의 시초격인 학생소비조합을 대학 최초로 구성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서점과 자판기를 운영함으로써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공급하고, 학생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또한 해당 수익은 장학금 및 학교 발전 기금으로 쓰였다. 이 위원장은 “정치투쟁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며 “학생들의 실질적 이익을 위한 자치 활동을 확대해 내부 발전을 도모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투쟁은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1983학년도 2학기에 학도호국단 구성 방식이 임명제에서 간선제로 바뀌었으며, 1985년에는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각 대학에 총학이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학생회는 꾸준히 대학판을 지켜 오며 학생자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총학의 변화, 학생자치의 변화

 

학생회는 독재 타도라는 거대한 의제 속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공동의 목표를 잃은 학생자치는 변화를 맞이했다. 오늘날의 총학은 기숙사, 등록금 등 대학생이 직면한 실질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들은 학내 구성원의 권리를 보호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주력한다. 한국외대 제54대 총학 ‘새벽으로부터’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문제에 발 빠르게 대처해 호평을 받은 총학 사례다. 전면 원격수업 전환 후 학교 측에 비대면·절대평가 시험을 요구했고, 실제로 해당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한국외대 54대 총학생회장 김나현(프랑스어·15)씨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면 사각지대에 놓이는 학생이 있을 것”이라며 “분명한 논거를 통해 학교 당국을 설득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학생들과의 소통 사업도 눈에 띈다. 과거와 달리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해짐에 따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는 대학이 늘었다. 이에 양방향 소통을 통해 학생자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학생과의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한국외대 총학은 공식 홈페이지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한 소통에 주력했다. 김씨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영상 대신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고자 했다”며 “학생자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학생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향상시키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변화의 밑바탕에는 학생자치에 대한 인식 변화가 깔려 있다. 학생자치 활성화라는 궁극적 목표는 변하지 않았지만, ‘학생자치’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며 총학의 모습이 변한 것이다. 과거 총학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목소리 내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현재 총학은 학생들의 피해나 고충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다. 실제로 학생자치의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 이 위원장과 김씨는 서로 다른 답을 내놨다. 이 위원장은 “학생들이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바꿔 나가려 하는 것이 학생자치”라며 “오늘날 학생들은 학업이나 취업 준비 등에만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반면 김씨는 “학생들이 대학 내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학내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학생자치”라고 강조했다. 이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학생자치의 지향점도 달라짐을 시사한다.

 

다양해진 학생사회, 새로운 학생자치

 

최근 들어 학생사회가 다원화되면서 하나의 공통된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총학 중심 학생회가 이러한 다양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기존의 학생자치 패러다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여러 학생자치 활동이 생겨났다. 중앙대의 장애인권위원회(아래 중대 장인위)와 이화여대의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아래 이대 학소위)가 대표적인 예시다.

새로운 학생자치는 기존의 총학 중심 학생자치가 포괄하지 못했던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은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주력한다. 일례로 이대 학소위는 N번방 연서명, 낙태죄 폐지 집회부터 장애인차별철폐행진까지 학내를 넘어 사회적 문제와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다방면으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대 장인위 또한 자막 시스템 도입 등 장애 인권을 위해 학내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중대 장인위 위원장 정승원씨는 “장인위는 장애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수면 아래 존재했던 문제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구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학생자치를 두고 기존의 총학과는 다른 인식을 보인다. 이대 학소위의 허윤영씨는 “총학 활동을 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피해와 고충을 해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총학 중심의 학생자치가 다양한 개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대 학소위의 이채린씨는 “새로운 학생자치 기구는 총학이 집중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의제를 더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다양성을 포괄하려는 노력이 생겨난 것 같다”고 전했다.

새로운 학생자치의 등장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인식하는 학생자치가 갖는 의미가 변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대 학소위의 나소영씨는 “학생자치를 함으로써 시민적 의무감에 대해 사유하고 ‘책임감’이라는 시민의 역량을 함께 키워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학생자치가 단순한 학내 문제해결을 넘어 학외의 다양한 의제 해결에도 참여함으로써 한 시민으로서의 발전의 계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 위원장은 “학우분들이 학생자치를 너무 어렵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학생자치는 단순 의제 관철보다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아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생사회는 대학 내의 작은 사회다. 그리고 학생자치는 그 사회를 지지하는 기반이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 총학 선거가 무산되는 등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자치의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잦아졌다. 그러나 학생자치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 가치로써 대학판을 지켜왔다. 학생사회의 위기가 도래한 지금, 학생자치를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이끌어나갈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문교부: 교육·과학에 관한 업무 및 교과용 도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과거의 중앙행정기관.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사진 윤수민 기자
suminyoon1222@yonsei.ac.kr

<사진제공 한국외대 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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