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차별의 현주소, 통계로 톺아보기

여성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타자’로 분류됐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은 느리게 다가왔다. 지난 2015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명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불리는 여성운동 붐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기류가 가시화됐다. 지금 우리 사회는 평등을 향한 과도기에 서 있다. 이 과도기에서 과연 2천583만 5천여 명의 한국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살펴봤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
구시대적 인식은 사라져

 

지난 2020년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성불평등지수*는 0.058점이었다. 성불평등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성평등한 사회임을 뜻한다. 이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총 189개국 중 11번째로 성평등한 국가다. 이는 20위를 기록했던 2010년에 비해 9계단 상승한 기록이다. 몇 번의 오르내림이 있었지만 10년간 우리나라의 성불평등지수는 대체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듯 우리 사회의 구시대적인 성 역할 인식은 많이 개선됐다. 특히 가정에서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지난 2005년 호주제(戶主制)**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것이 기점이었다. 호주제 폐지 이후 여성 가구주 비율이 꾸준히 상승하는 것은 성 역할 고정관념 해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호주제 폐지 이전인 지난 2005년 21.9%였던 우리나라 여성 가구주 비율은 2020년 31.9%를 기록했다. 특히 여성 가구주 중 배우자가 있는 가구주의 비율이 늘어났는데 이혼, 미혼, 사별 등의 사유 없이도 여성이 가구주를 맡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이는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졌다. 먼저 직장이 우선이었던 전통적인 남성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 통계청이 실시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일과 가정생활 우선도에 있어 ‘둘 다 비슷’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 41.2%, 남성 29.3%로 상당한 인식 차이가 있었지만, 2019년에는 여성 49.5%, 남성 40.3%로 여성과 남성 모두 일과 가정생활이 비슷한 정도로 중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에서 ‘함께하는 일’로 점차 변하고 있다. ‘사회조사’에 따르면 ‘가사는 여성책임’이라는 20대 남성의 답변율은 2008년 55.6%로 절반 이상이었으나 2018년에는 18.5%로 떨어졌다. 30대 남성의 답변율 또한 2008년 무려 73.9%에서 2018년 33.2%로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약 6천여 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 ‘2030 청년층 생애전망 인식조사’ 역시 이러한 의식 변화를 잘 보여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이 부양하고 여성이 돌보는 정책’보다 ‘남녀 모두 일하고 돌보는 정책’의 동의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남녀 모두 일하고 돌보는 정책’의 경우 ‘매우 필요하다’ 혹은 ‘필요하다’고 답변한 여성은 87.2%, 남성은 72.3%인 반면 ‘남성부양 여성돌봄 정책’은 여성의 40.2%, 남성의 43.8%만이 동의했다. 최근 남녀 모두 가정생활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방증이다.

 

공기처럼 떠도는 일상 속 차별

 

그러나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변화와는 달리 이를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더딘 상태다. 지난 2019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 시간은 남성보다 2시간 13분 더 많았다. 심지어 아내 홑벌이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평균 1시간 59분, 여성은 2시간 36분 동안 가사노동에 참여하고 있다. 가사가 더는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인식 변화와 상충하는 것이다.

인식의 변화와 실제 행동의 괴리는 폭력으로 비화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발표한 ‘2019년 가정폭력행위자 상담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행위자 중 남성의 비율이 75.8%,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부부인 경우는 88.4%를 차지하는 성별화 된 폭력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폭력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통계연보’(아래 경찰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5만 2백여 건에 달했다. 또한, 2019년 한 해 동안 여성긴급전화1336(아래 1336) 상담 건수 약 35만 4천 건 중 가정폭력이 약 20만 7천 건으로 58.5%를 차지했다. 이는 2014년과 비교했을 때 50.4%가량 급증한 수치다.

‘사랑’이란 명분으로 묵인돼온 폭력도 존재한다. 지난 2020년 통계청 ‘통계플러스(KOSTAT)’ 가을호에 실린 ‘데이트폭력의 현실, 새롭게 읽기’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청 전국 자료에 집계된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9년 1만 9940건, 2017년 1만 4136건이었다. 2년 사이 41.1% 증가한 셈이다. 이와 더불어 2019년 신고된 데이트폭력 중 ▲폭행·상해 ▲감금·협박 ▲성폭력 ▲경범 등으로 형사 입건 된 피의자는 9천858명에 달했다. 이에 1336 데이트폭력 상담 건수는 2015년 2천96건, 2017년 8천291건, 2019년 1만 293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폭력은 가정과 연인 사이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발견된다. 실제 지난 2019년 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전체 형사사건 피해자 중 남성은 56만 541명, 여성은 35만 7천487명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약 1.57배가량 많았다. 그러나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을 포함한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약 8.3배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4대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자는 80% 이상”이라며 “범죄 피해에 내몰리는 여성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세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성폭력 범죄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기고 있다. 경찰통계에 따르면 2019년 불법 촬영 피해자는 총 5천 762명이었다. 특히 검거 인원 5천 556명 중 남성은 94.9%, 전체 피해자 중 여성이 81.2% 차지한다. 성폭력 발생 건수는 지난 2018년 3만 1396건에 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박아름 활동가는 “사회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은 여성의 인권이 취약한 부분이 있다”며 “성범죄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비유되는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신고 사실을 알리기 어려워하는 ‘암수범죄’에 해당 하기에 더욱 심각하다. 박 활동가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 경험 자체가 문제라는 교육을 받아 신고를 꺼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회에서 갖가지 폭력에 노출되다 보니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지난 2020년 ‘사회조사’에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의 비율은 45.7%로 남성보다 11.9%p 높았다. 반대로 스스로 안전하다고 답변한 남성은 32.1%, 여성은 21.6%에 불과했다.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범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박 활동가는 “여성은 어려서부터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성범죄 등에 대한 위험을 사회적으로 학습한다”고 설명했다. 

 

 

‘당연한’ 차별되지 않으려면
사회 구조적 변화 필요해

 

일상적인 차별과 더불어 사회 구조적 차별 역시 제자리걸음 중이다. 앞선 성불평등지수는 ▲생식 건강 ▲여성 권한 ▲노동 참여 세 부문만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성 사망비 및 청소년 출산율을 포함한 생식 건강 부문이 뛰어난 것에 비해 노동 참여와 여성 권한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노동 시장에서 여성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 지난 2019년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32.5%로 1위를 차지했다. 2000년 40.4%에 비해 감소한 수치이나 36개 회원국 중 33개국의 임금 격차가 20% 미만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전체근로자 중 여성의 월급여액은 142만 2천 원, 남성은 228만 4천 원으로 약 1.6배 차이 났지만, 2019년에도 여성의 월급여액은 219만 7천 원인데 비해 남성은 324만 1천 원으로 약 1.4배가량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무, 서비스, 판매를 포함한 전직종과 정규, 비정규, 특수형태 근로자 등 모든 고용형태에서 공통적으로 성별 임금격차가 발견됐다.

 

 

임금뿐 아니라 여성들은 임신·출산으로 노동 참여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경력단절여성의 수는 지난 2014년 216만 4천 명에서 2019년 169만 9천 명으로 21.4%가량 감소했다. 이에 따라 ▲결혼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30대의 고용률 하락 역시 완화됐다. 그러나 경제조사에 따르면 2009년 20대 후반과 40대 초반의 고용률은 60%대인 것에 비해 30대 초반 여성의 고용률은 50.3%, 30대 후반 여성은 54.9%로 낮았다. 30대에 일시적으로 고용률이 낮아지는 ‘M’자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반면 2019년 30대 초반 64.6%, 후반 59.9%로 상승해 비교적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M’자 형태 그래프 모양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정성미 부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임신·출산으로 인해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주로 30대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 시장에서의 차별은 노후 빈곤과도 연결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2020년 EU 집행위원회는 "평생에 걸쳐 누적된 성별 고용 격차와 임금 격차는 더 큰 연금 격차를 낳고, 그 결과 나이가 들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빈곤에 처할 위험이 더 커진다"고 분석한 바 있다. 2019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남성 70.7%, 여성 48.8%가 ‘노후 준비방법’으로 국민연금을 선택했다. 그러나 같은 해 국민연금공단에서 발표한 ‘국민연금통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급여액 중 남성이 받는 급여액은 65%를 차지하는 반면 여성은 18.8%에 불과했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60세까지 보험료를 최소 10년 이상 내야 평생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으나 2017년 기준 남성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평균 15년 7개월이지만, 여성은 8년 1개월에 그쳤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인식’과 ‘현실’ 간의 괴리가 발생하는 기저에는 여성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고 현실 제도를 뜯어고칠 여성의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여성의원 비율은 13.4%에서 시작해 2020년 17.3%에 그쳤다. 15년째 ‘여성의원 비율 20%’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성불평등지수 1위인 스웨덴은 여성의원이 전체 의원 중 4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여성의원의 수만 늘리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하다. 멕시코의 경우 여성의원 비율은 스웨덴보다 높은 48.7%이지만 모성 사망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아 성불평등지수 71위를 기록했다. 서울특별시의회 조규영 전 부의장은 2017년 ‘여성의 지방정치 참여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여성의 정치 대표성 확대는 사회의 성 평등 실현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관문”이라며 “우리 사회의 성 평등과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여성 정치인의 양적·질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여성 차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차별이 남아 있다. 성별을 막론하고 여성과 남성이 같은 대우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방향을 함께 모색해나가야 한다.

 

 

*성불평등지수: UNDP가 ▲생식 건강 ▲여성 권한 ▲노동 참여 부문을 ▲모성사망비 ▲청소년 출산율 ▲여성의원 비율 ▲중등 이상 교육받은 여성 ▲여성경제활동 참가율 지표로 측정해 산출한 지수.

**호주제(戶主制): 남성인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제도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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