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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그리고 남은 과제들
  • 정효원 윤수민 기자
  • 승인 2021.03.07 13:23
  • 호수 1866
  • 댓글 1

지난 2020년 12월 31일 대한민국에서 ‘낙태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법재판소(아래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임신중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입법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현장을 살펴봤다.

66년 만에 폐지된 ‘낙태죄’, 그러나...

지난 1953년 국가는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를 통해 낙태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함으로써 낙태를 ‘범죄’로 규정했다. 그 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의 예외 조건들*을 제외하고 모든 임신중지는 처벌 대상이 됐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는 우리신문사와 인터뷰에서 “국가가 낙태를 범죄행위로 여기면서 행위의 주체를 여성으로 한정 짓고 범죄자로 규정했다”며 “여성만이 처벌받기 때문에 사회적 낙인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여성들을 억압하던 ‘낙태죄’ 조항에도 균열이 생겼다. 지난 2017년 2월 산부인과 의사 A씨가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게 요지였다. 이에 헌재는 약 2년여의 심사 끝에 2019년 4월 11일 ‘낙태죄’는 “입법목적을 넘어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2012년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중하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지 5년 만이고, 「형법」 제정 이후 66년 만이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문설희 공동집행위원장은 “여성들 스스로 임신중지는 범죄가 아니라 여성의 고유한 권리라는 사실,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가 함께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 이한본 변호사는 “낙태죄의 폐지로 인해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인식하는 가부장제의 상징이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헌재는 ‘낙태죄’에 사망 선고를 내리며 입법 공백을 우려해 즉시 법률의 효력이 상실되는 단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공은 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헌재가 지정한 2020년 12월 31일까지 이 공백을 채우지 못했다. 정부에서도 대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임신 주수로 임신중지를 제한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더 이상의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아래 젠더와건강연구센터)는 “소수의 국회의원만 법안을 제출하고 정부에서는 일방적인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이 문제”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낙태죄’는 지난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대체법안이 제정되지 않아 입법 공백 상태에 있다. 산부인과마다 임신 중지 시술 가능 여부가 다르고 시술비용에 대한 기준이 부재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시술과 미프진
현장으로 가봤더니...

결국, 정부와 국회 모두 손을 놓은 사이 여성들은 시민사회계가 우려했던 대로 입법 공백에 따른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문 위원장은 “국회와 관련 부처의 무책임함 때문에 여전히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들여다본 현장에선 당사자와 의료진 모두 혼란을 겪고 있었다.

먼저 가장 안전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의료 현장의 혼란이 심각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한편 여성들은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산부인과를 찾기 어려운 데다 그 비용도 자세히 안내받지 못하고 있었다. 기자가 서울 시내 산부인과 20여 곳에 임신중지에 대해 유선 문의 해본 결과, 병원 대부분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시술 가능 여부에 확실하게 답변하지 않고 “전화 상담은 불가능하니 오셔서 상담받으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아직 사회적 낙인을 이유로 병원을 꺼리는 여성들 입장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해 방문을 미루는 동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소수의 병원은 시술이 가능하다고 확답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시술 비용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ㄱ’ 산부인과는 “비용을 알려드릴 수 없다”며 “임신 주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답변만 남겼다. 한편 ‘ㄴ’ 산부인과는 아예 “시술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나영 대표는 “비용이 150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비용이 중요한 저소득층, 청소년 등의 여성들이 적절한 선택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중절 시술의 불법 여부와 비용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말한다. 현재 ‘낙태죄’는 대체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머물러있는 상태다. 즉 임신중지 시술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유선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체계적인 정보 제공과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시술과 관련해 병원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여성들이 적정 시기에 경제적 여건에 맞는 병원이나 상담 기관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선별적 낙태 거부안’을 제시했다. ▲10주 미만 산모에게는 조건 없이 ▲10~22주 산모에게는 충분한 숙려의 기간을 전제로 시술하되 ▲22주 이상의 산모는 시술을 거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임신 10주까지는 비교적 시술 후 후유증이 적어 10주를 기준으로 정했다”며 “태아의 건강뿐만 아니라 산모의 건강을 고려한 지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2주 이상이 되면 태아가 살아서 나올 가능성이 농후해 22주 이상은 시술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것은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의사들이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여전히 일정 조건에 따라서 임신중지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의료계 밖에서는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산유도제로 잘 알려진 미프진이 아무런 규제 없이 유통돼 여성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위원장은 “적절한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운 여성들은 여전히 인터넷상의 유통업체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유통되는 미프진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프진은 임신을 유지하게 하는 호르몬의 작동을 방해해 임신중지를 유도하는 합성 스테로이드로, 초기 임산부들이 선호한다. 간편하게 약만 먹어도 시술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동근 사무국장은 “시술과는 다르게 임신 확인 후에 바로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낙태죄’가 존재했기에 미프진은 정식수입을 통한 유통이 불가했다. 따라서 약의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최근엔 인터넷 곳곳에서 쉽게 판매 광고를 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기자가 인터넷을 통해 ‘미프진 구매’, ‘중절유도제 구매’을 검색하자 수십 개의 미프진 판매처를 찾을 수 있었다. 그중 한 곳에 구매를 문의해본 결과 판매처는 “임신 초기에 많이 복용한다”며 “세계보건기구 필수의약품으로 등록된 상품이라 부작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제 구매 과정에 들어가자 ▲마지막 생리일을 통한 임신 주차 확인 ▲신체적 특성 ▲약물 복용 여부 ▲낙태에 대한 본인 의사 등만 확인한 후 거래를 진행했다.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여성들이 머뭇거림 없이 해당 약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프진이 알려진 것처럼 ‘훌륭한 약’은 아니라며 지금같이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고 약을 사용하는 상황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프진은 비공식적 경로로만 유통되고 있어 여성들은 부작용이나 약효와 관련하여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실제로 임신 10주 이상의 여성이 미프진을 복용했을 때 과다 출혈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약을 먹어도 임신중지에 실패할 위험이 있다. 김 회장은 “흔한 인식과는 달리 100% 안전한 약은 아니다”라며 “미프진으로 인한 출혈량은 평균적으로 시술 후 출혈량의 5배 이상인 150cc를 넘어가는 데다 계속되는 자궁 수축으로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설상가상 미프진이 제대로 된 품질 관리를 받고 판매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 회장은 “교과서상으로는 200mL를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며 “불법적으로 판매되는 약들의 경우 200mL가 채 되지 않는 약들이 많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입법 공백의 나날들
더 늦기 전에 메워야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속하면서도 합의된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젠더와건강연구센터는 “입법 공백은 정보 부족과 선입견을 야기한다”며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 어느 곳에서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얽힌 복잡한 문제기 때문이다. 문 위원장은 “‘낙태죄’가 뜨거운 불씨에 해당하는 문제라 입법부와 행정부가 사법부에 책임을 떠넘긴다”며 “이것이 대체 입법 마련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임신중지 관련 ▲의료인 인식 제고 ▲교육 및 지원 체계 마련 등 현장 혼란을 막을 최소한의 지침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 위원장은 “당장은 법안 마련이 어렵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다”며 “변화된 상황 속 최소한의 지침 없이 여성과 의료인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들은 입법 공백을 메울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정보제공체계 마련 ▲미프진 사용 허가 ▲중지 시술 건강보험 급여화 등이 그 해결책이다. 이 변호사는 “국회와 정부는 낙태죄 폐지 상황을 받아들이고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임신중지과 관련된 정보가 체계적으로 전달돼야 한다. 여성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음으로써 임신의 확인부터 종결 과정까지 여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젠더와건강연구센터는 “임신중지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교육·상담·진료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확대하기 위해 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사무국장은 “미프진은 임신 초기에 확실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이라며 “미프진의 접근성이 높아지면 피임약과 더불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젠더와건강연구센터 역시 “이미 해외에서 안전과 유효성이 확인된 약물”이라며 “미프진을 도입했을 때 여성들은 약물과 시술 중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약의 오·남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막기 위해 철저한 관리와 통제 방안이 함께 도입돼야 한다. 김 회장은 “반드시 임신 확인 후 10주 내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서만 약이 처방돼야 한다”며 “제한 없이 공급했을 경우 부작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프진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2일 현대약품은 “영국 제약사와 미프진의 국내 판권 및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며 허가신청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식약처 관계자는 “약품이 허가되기 전에는 공개할 수 없다”며 도입설에 대한 확답을 피했다.

임신중지 시술에 건강보험 적용이 제한 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모자보건법」에 명시된 조건에서만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나영 대표는 “32개 국가에서 전액 혹은 일부 임신중지에 보험 적용을 해준다”며 “우리나라도 모든 임신중지에 보험 적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 역시 “건강보험 적용 등의 실질적 조치를 통해 임신중지가 공적 의료서비스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개인정보보호와 맞물리는 첨예한 사안이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회장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시술에 대한 모든 기록이 남는다”며 “사생활 보호와 대립하는 문제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낙태죄 폐지에서 나아가 애초에 임신중지를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복지 관련법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 이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현장에서는 합법인지 불법인지 모르는 시술이 이뤄지고 있으며 불법적인 약이 오간다. 오랫동안 풀지 못한 난제이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면서도 언제까지나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낙태죄’가 폐지된 현재 이를 논의하기 위한 공론장이 시급한 시점이다.

*「모자보건법」 제14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모체의 건강을 해치는 임신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 등에 한하여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글 정효원 기자
remiwon@yonsei.ac.kr
사진 윤수민 기자
suminyoon1222@yonsei.ac.kr

정효원 윤수민 기자  remiwo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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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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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러아몬드 2021-03-08 23:45:19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취재원을 통해 임신중지라는 사회적 현안을 들여다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무엇보다 막연하게 임신중지 약과 시술의 존재에 대해, 그 접근성에 대해 괴담처럼 떠돌던 인터넷 글만 읽다가 정확한 취재를 거친 글을 읽으면서 현실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열심히 취재하신 기자분의 노고가 느껴지는 기사였습니다. 앞으로도 흥미롭고 탄탄한 기사 기대할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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