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회
‘낙태죄’ 폐지, 끝에서 시작을 고민하다.‘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나영 대표를 만나다
  • 김예서 노민지 기자
  • 승인 2021.03.07 13:24
  • 호수 1866
  • 댓글 0

2021년 1월 1일 0시 0분, ‘낙태죄’가 폐지됐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자동으로 ‘낙태죄’가 효력을 잃은 후 처벌은 사라졌지만 이를 보완할 어떠한 입법도 이뤄지지 않았다. 거대한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안전하고 평등한 임신중지를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위해 힘써온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아래 셰어)의 나영 대표를 만나 여성의 임신중지가 걸어온 길,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Q. 셰어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A.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지금까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 2명, 산부인과 전문의 2명,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활동가 등이 모여 낙태죄 폐지 이후를 설계하고 있다.

Q. 셰어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기존 낙태죄 논쟁에서 벗어나 ‘성적권리와 재생산 정의’에 대한 담론까지 논의하고자 셰어를 설립하게 됐다. 낙태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지난 2010년엔 주로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대립으로 논쟁이 이뤄졌다. 그러던 중 그 속에 장애인 여성 등 ‘생명권 vs 선택권’의 프레임으로 논의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유전학적 장애나 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의식을 이어나가기 위해 ‘성과 재생산 포럼’으로 활동을 계속했고, 지금의 셰어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Q. 지금까지 ‘낙태죄’는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A. 그동안 낙태죄는 여성을 억압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기제로 작용해왔다. 국가는 인구계획 목적에 따라 임신중지를 묵인하기도, 사문화된 낙태죄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장애인의 경우엔 국가에 의해 생명을 선별 당하기도 했다. ‘낙태’라는 용어에서부터 그렇다. ‘낙태(落胎)’는 ‘태아를 떨어트린다’는 뜻으로 행위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 여성만 처벌받기에 사회적 낙인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었다. 실제로 이를 이용해 폭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남성들이 보복성으로 상대 여성을 고소하거나, 주취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이 자신의 동의 없이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아내를 고발해 아내만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또한, 여성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임신중지 과정에서 온갖 우회와 편법을 이용해야 했다. 이는 시술 후유증 등을 관리하기 어렵게 만들어 여성들의 건강에도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Q. 조건 없는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A. 국가가 허용과 처벌의 기준을 나누는 순간 여성들은 계속해서 임신중지를 승인받아야 하고, 그 기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경제적 사유를 임신중지 허용의 기준으로 삼으면 허용 가능한 사회경제적 사유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우생학적·유전적 이유로 임신중지가 허용됐던 것처럼 특정 사회경제적 요건을 갖춘 이들의 임신중지가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임신중지 허용 여부를 임신 주수에 따라 차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임신 주수에 따른 제한을 둔다고 임신중지가 불가피한 상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처벌이 존재하는 이상 이를 회피하기 위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경우 착상 12주 이내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있는데, 연간 5천여 명의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위해 해외로 나간다는 보고가 계속된다.

Q. 아직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특히 보수적인 정치인과 종교계는 ‘태아의 생명권’을 이유로 들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먼저, ‘태아도 생명이다’라는 주장은 태어나는 행위만을 중시하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지배적일 때 태어난 이후 삶의 과정에 대한 쟁점은 논의되지 못한다. 처벌과 허용이라는 기준이 유지되는 이상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기존의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결정권’의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생명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위해선 우리 사회가 어떤 생명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Q. ‘낙태죄’ 폐지로 임신중지가 오남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A. 그런 우려는 추정에 불과하다. 이는 임신중지에 관한 여성의 결정과 판단력을 무시하는 언사다. 지난 1988년부터 캐나다는 임신중지 비범죄화 상태를 유지 중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임신중지율은 11~12% 선을 유지 중이다.* 임신 후기** 임신중지율도 0.7%로 높지 않다.

따라서 낙태죄의 실효성에 반문할 수밖에 없다. ‘처벌이 있다고 임신중지를 안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벌은 사회적으로 어떠한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회로만 늘어나고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가 늘어날 뿐이다.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여성들이 병원을 찾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결국 태아와 여성 모두 안전하지 못한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Q. 의료계에서는 의사의 종교적 신념이나 트라우마를 이유로 ‘낙태 시술 거부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환자를 진료하고, 살리는 것은 의사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왜 임신중지만 거부권이 용인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지난 2012년 낙태죄가 존재했던 아일랜드에서 사비타 할라파나바르라는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뱃속 태아가 사산된 상태에서 임신중지를 요구했지만, 의사가 수술을 거부해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만약 거부권이 명시된다면 낙태죄가 폐지됐더라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종교적·정치적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거부권을 인정한 캐나다 등의 일부 국가조차도 ▲병원 자체 거부 불가 ▲국공립병원은 거부 불가 ▲거부 시 주변 병원 연계 등의 의무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의료인의 거부권 대신 1차~3차 진료 기관이 서로 원활히 연계될 수 있도록 해 한 병원에서 임신중지 시술이 어렵다면 다른 병원으로 연계하는 등 대체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의료 체계가 필요하다.

Q. ‘낙태죄’가 효력을 잃었으나 정치권은 아직 입법 공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A. 우선 임신중지 시술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수가 조정 ▲건강보험 문제가 가장 핵심이다. 현재 병원과 임신주수에 따라 임신중지 시술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150~200만 원에서 시작해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차이 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모든 임신중지 시술에 전면적인 보험 적용이 필요하다. 이미 세계 32개국에서 임신중지에 일부 혹은 전액 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미프진***과 같은 유산 유도제와 같은 임신중지를 위한 약품이 조금이라도 시기를 앞당겨서 도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검토 과정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통상 약품이 승인되기까지 2~3년 정도 걸린다. 우리는 관련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압축해서 지금 당장 약품이 필요한 여성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가 '상담자와 의료인을 위한 임신중지 가이드북 『곁에, 함께』'를 들고 있다. 셰어는 『곁에, 함께』를 통해 임신중지 상담 방향, 의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Q. 셰어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추가로 제시하는 해결방안들은 무엇인가.

A. 정보, 이동, 비용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누구나 안전한 임신중지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고, 무료 혹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더불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청소년, 이주민, 장애인, 학대 피해자 등이라면 추가적인 연계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그동안 처벌의 위협으로 의료인들이 위축돼 있다. 환자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다른 의료인과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다. 유산 유도제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생각하거나 환자에게 무엇을 안내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셰어는 ‘상담자와 의료인을 위한 임신중지 가이드북 『곁에, 함께』’를 통해 임신중지 상담 방향, 의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산부인과 의사, 간호사, 마취과 의사 등이 함께 상황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Q. 최근 ‘낙태죄’ 논쟁에 이어 ‘재생산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낙태죄’ 폐지를 넘어 재생산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재생산정의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정책과 의료환경, 교육, 노동 조건 등 대부분의 사회 구조가 ‘이성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늙으면 자식이 부양하는’ 특정한 생애 경로를 전제하고 있다. 재생산정의는 이러한 특정한 생애 경로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에서도 자신과 또 다른 생명에 관한 재생산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을 논의함으로써 노동, 주거, 교육, 의료 등에 걸쳐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A. 임신중지를 사적인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에 관한 문제는 곧 한 사람의 삶과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도 같다. 여러 가지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라는 점에 더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또, 개인적인 고민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앞으로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난 2015년부터 많은 여성이 용기 있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기에 낙태죄 폐지가 가능했다.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실질적인 낙인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을 국가에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혼자 고민하고, 감당해야 했다. ‘내 몸의 주인은 나’라고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자유로운 선택권도, 안전한 의료환경도 보장되지 않았다. 나영 대표는 “임신중지의 비범죄화는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말한다.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낙태죄’ 폐지 후 첫해인 2021년은 기반을 구축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해다. 모두의 성적권리와 재생산권이 보장되는 그 날까지,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추정 임신중지율은 15.8%다.

**임신 후기: 임신 이후 임신 29주 차부터 출산까지의 시기

***미프진: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로 이뤄진 경구용 임신중단 약물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사진 노민지 기자
roe0920@yonsei.ac.kr

김예서 노민지 기자  kimyeseo1@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