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잡지 『계간 홀로』의 이진송 편집장을 만나다

왜 솔로를 ‘탈출’해야 할까. 왜 드라마는 기승전 사랑을 얘기하면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동성 간 키스신은 송출되지 못할까. 독립잡지 『계간 홀로』는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연애 담론’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다. 그러나 잔잔해 보이는 이 호수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품고 있다. 『계간 홀로』의 편집장 이진송 씨를 만나 소용돌이 같은 연애 담론을 이야기했다.

Q. 『계간 홀로』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A. 『계간 홀로』는 우리 사회의 연애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얘기하는 독립잡지다. 동시에 사회에서 어떤 형태의 관계를 연애라 규정하고 어떤 형태의 연애를 부정하는지 논의한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외치는 동시에, 누구든 자유롭게 연애할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잡지를 창간할 때만 해도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이야기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비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는 연애하는 방법을 전수하는 내용으로만 채워졌다. 누구나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쓰고 읽을 수 있도록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Q. 잡지는 현 사회를 ‘연애 과잉 시대’라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연애 과잉 시대라고 진단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A. 더 정확하게는 이성애 연애를 강권하는 사회다. 솔로 ‘탈출’을 덕담처럼 주고받고 연애하는 사람은 연애하지 않는 사람의 염장을 지른다. 얼마 전 생방송 라디오에 나간 적이 있었다. 댓글 창에 익명의 누군가가 ‘자동차 좋은지 모르고 달구지 좋다고 얘기한다’고 썼다. 연애하는 삶을 자동차에, 연애하지 않는 삶을 달구지에 비유한 것이다. 현 사회에서 비연애 상태는 미완과 결핍으로 인식됨을 시사한다. 미디어도 이성애 연애와 연애의 ‘예쁜’ 부분만을 부각하며 연애 과잉을 부추긴다. 그러나 당연히 연애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모두 이성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다.

 

Q. 잡지는 ‘연애하지 않을 자유와 연애할 자유가 궁극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고 말한다. 상반돼 보이는 두 자유가 어떻게 같은 방향으로 통하는가.

A.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정상으로 규정되는 연애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다. 이는 모두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자유로 이어진다. 일부 사람들은 퀴어 퍼레이드에 대해 ‘너희끼리 조용히 연애하면 되지 왜 바깥에서 애정행각을 하느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디어에 나오는 이성애 커플의 애정신은 문제 삼지 않는다. 이처럼 정상으로 규정된 연애는 권장되지만, 이에 벗어난 관계는 억제된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 이성애 연애를 벗어난 다양한 관계를 수용할 수 있고 비로소 모든 사람의 연애할 자유도 가능하다.

 

Q. ‘25살까지 연애를 못하면 학이 된다’, ‘2말3초’*라는 말들을 보면 20대에게 연애는 일종의 과제가 된 듯하다.

A. 연애는 청년에게 결혼 전 과제로 주어진다. 우리나라는 생애주기별 과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기에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연애가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역할로 부상한 측면도 있다. 과거에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강력한 공동체가 존재했다. 개인이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체성이 형성됐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공동체가 약해지면서 개인은 스스로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연애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방법으로 변화했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통해 내 존재를 증명하고 독자적인 연애 서사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연애에는 로맨틱한 감정을 넘어 다양한 욕구가 중첩돼있다. 자아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욕구, 또래의 집단적 경험에서 소외되지 않고자 하는 욕구, 정상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Q. 연애의 정상성은 대개 두 남녀 간의 관계로 묘사된다. 예컨대 최근 다자 연애**를 다룬 책이 발간되자 많은 독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특정한 연애의 형태가 수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특정한 연애의 형태가 수용되지 않을 때, 규범화된 연애 하나를 정해 놓고 거기서 벗어난 것들은 문제시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상연애’의 문제점은 은폐된다. 두 남녀가 만나는 관계에서도 상대의 옷차림이나 인간관계를 단속하는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로맨틱하게 소비하고 있다.

최근 홍승은 작가의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에서 말하는 다자 연애도 셋이 사귄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다. 내가 상대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낯선 형태의 연애를 비정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두 남녀가 만나는 관계는 문제가 없는가’, ‘이 연애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등을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즉, 연애의 형태를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눔으로써 정작 중요한 태도의 문제를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Q. 스타트업을 하다 사랑에 빠지고, 나 혼자 살다가 썸으로 엮인다. 요즘의 미디어는 연애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나.

A. 요즘은 미디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 한꺼번에 ‘어떻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최근 미디어에서 무성애나 바이섹슈얼***과 같이 다양화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 여전히 드러난다.

또한 미디어에서는 연애가 낭만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다른 부분을 맞춰 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에서는 대개 보기 좋은 부분만 편집해서 보여준다. 가령 셀럽 커플이 호캉스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다이아 반지를 보면 결혼을 연상하게 한다. 연애의 로맨틱한 감정을 외적으로 풍족한 생활과 엮어 마치 연애만이 독점적인 행복을 주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낭만적인 묘사는 웹드라마나 1인 브이로그에서도 자주 포착된다.

 

Q. 사랑에 있어 자유로워지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A. 사회가 입혀주는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동성을 사랑하는데 사회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없다. 회사에서 결혼 계획을 물어보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을 부정하고 미워하게 된다.

나도 잡지를 만들기 전, 연애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에게는 다양한 행복의 카테고리가 있었고 연애는 그 중 하나였을 뿐이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와 자유롭게 연애할 자유는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젠더 관점에서 비연애를 탐구하다

 

‘4B’(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 운동, 정상연애를 탈피하고 생애주기 각본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외친 ‘프로젝트팀 탈연애’의 주체는 모두 여성이었다. 지난 2019년 중앙일보에서 2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50%가 탈연애를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남성의 경우 8%에 불과했다. 비연애와 관련해 나타나는 젠더 차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논문 「‘비연애’ 담론이 드러내는 여성 개인되기의 열망과 불안」을 쓴 젠더교육연구소 '이제' 임국희 연구원을 만났다.

 

Q. 여성 중심으로 비연애 담론이 전개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A. 전통적 가족규범은 여성의 불안정성을 기반으로 유지된다. 표준화된 가족 그림을 생각해 보면 남성은 생계부양자이며 여성은 돌봄 노동을 전담한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부터 여성 또한 노동시장에 진출해야 했다. 이에 ‘여성=돌봄 노동 전담’이라는 도식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은 노동시장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불안정성을 인식하며 여성이 연애, 결혼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고민하게 됐다.

또 연애-결혼 각본에서 여전히 전통적 성 역할이 권장된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2019년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삶에서 노동을 중시하는 경향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성애 연애 관계와 가족규범에서는 기존의 여성성이 요구된다. 여전히 연애-결혼 각본에서 여성의 노동중심 생애과정은 관철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많은 여성이 연애, 결혼을 자신의 커리어에서 걸림돌로 간주한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열망하는 여성과 기존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연애 각본이 불화를 일으키며 비연애 담론이 전개되는 것이다.

 

Q. 비연애 담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A. 논문을 쓸 때 비연애 담론을 이끌어나가는 여성들의 등장을 환영하는 시각으로만 분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연애를 욕망하는 사람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또한 표준적인 생애주기를 따르지 않을 때는 긍정적인 결과뿐 아니라 위험도 발생한다. 사회적으로 ‘정상’이라 여겨지는 규범에서 벗어나면 문화적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고, 같은 자원이라도 차별적으로 분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연애란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을 거야’가 아니라 표준화되지 않은 다양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젊은 주체들의 새로운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규범에 안착한 삶은 표준화된 연애 형태에 의문을 던지고 관계를 성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규범으로부터 비켜나 있는 선택을 한 사람들은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다. 비연애 담론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관계의 가능성이 확장됐으면 한다.

 

 

*2말3초: ‘대학교 2학년 말, 3학년 초’를 줄인 말로 이 시기까지 연애를 하지 못하면 남은 대학생활 동안 연애를 하기 어렵다는 속설

**다자 연애: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을 뜻하는 말

***바이섹슈얼: 일반적으로 이성애의 욕망과 동성애의 욕망을 함께 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자료사진 이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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