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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작은 사회, 드라마 <스위트홈>외면으로 상처받은 우리는 공생해야 한다
  • 노민지 기자
  • 승인 2021.02.27 20:39
  • 호수 1865
  • 댓글 1

지난 2020년 공개된 드라마 『스위트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비결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공감’이다. 『스위트홈』에 담긴 다양한 인간 군상에서 우리를, 아파트 ‘그린홈’에서 우리 사회 전체를 비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세계와 우리 사회의 유사성을 포착할 때, 시청자의 공감은 극대화된다.

열경쟁 속 상처투성이 사회

『스위트홈』에서 사람들은 강한 욕망으로 인해 괴물이 된다. 식탐을 억제해왔던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먹어버리는 식탐 괴물로, 탈모였던 인간은 털보 괴물로 변한다. 이처럼 괴물이 등장하는 세계관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사회에서도 이처럼 비틀린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경쟁에 매몰된 사람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흔히 현대사회는 ‘경쟁사회’라고 불린다. 사회 어느 곳에서든 경쟁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경쟁에 승리하는 데에만 목을 매며,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곤 한다. 억눌린 욕망은 결국 비틀린 형태로 표출되고 만다. 이것이 『스위트홈』에서는 ‘괴물’로 표현되는 것이다.


『스위트홈』에는 경쟁사회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상처 입은 인물 두 명이 나온다. 먼저 식탐 괴물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도 불사한다. 식탐 괴물은 본래 아이돌 지망생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과열된 아이돌 경쟁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아이돌 지망생은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이때, 대중들은 아이돌에게 더욱 마르고, 예쁜 모습을 기대한다. 따라서 식탐 괴물을 포함한 아이돌 혹은 지망생들은 혹독하게 체중을 관리한다. 심지어 하루에 사과 한 개로 버티다 과로로 쓰러지고, 신체 기능이 다 망가져도 체중 관리는 계속된다. 이처럼 아이돌의 겉은 아름답지만, 속으로는 썩고 있는 기형적인 모습은 식탐 괴물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애석하게도 현실에서도 이처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혹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한편 승완은 공시생으로, 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경쟁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왔다. 그러던 승완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이외의 가치를 잊었다. 급기야 승완은 사람들이 괴물로 변해 계엄령이 선포된 위기 상황에도 자신의 시험만을 걱정한다. 이는 드라마에서 괴물의 습격으로 위급한 상황에도 수시로 합격 문자를 확인하는 승완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사실, 목숨을 잃은 뒤에는 취업을 포함한 모든 가치가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승완이 시험 합격만을 염려하는 모습은 경쟁에 지나치게 몰입한 현실 세계 속 청년들의 모습과 같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과열 경쟁이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보여준다. 경쟁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식탐괴물처럼 스스로를 망치기도, 승완처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기도 한다. 이들의 모습은 그토록 많은 상처를 감내하고도 경쟁을 지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되돌아보게 한다.

무관심과 부정의가 만연한 사회

한편 『스위트홈』에는 부정의한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인물들도 등장한다. 주인공 현수는 학교 폭력을 당한 이후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사람들이 괴물로 바뀌는 재앙이 시작되기 전까지 방에만 틀어박혀 인터넷 세상에 빠져 살았다. 학교에서 현수를 괴롭힌 가해자는 누구에게나 폭력을 서슴없이 행사하는 악인이다. 그러나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현수를 구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모님조차 가해자의 부모가 직장상사라는 이유로 현수를 돕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수의 부모님은 학교 폭력을 당하는 현수를 돕기보다는, 현수가 참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자인 현수는 은둔형 외톨이의 길을 선택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현수를 도와주지 못한 사람들이, 현수를 방구석 외톨이로 몰아넣은 것이다.


또 다른 인물인 상욱은 어린 시절 일어난 화재 사고의 피해자이다. 끔찍한 화재로 상욱의 가족이 모두 죽고, 상욱도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다. 화재는 고작 누군가의 장난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내려진 처벌은 가벼웠으며,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도 않았다. 법의 도움조차 받지 못한 상욱은 결국 가해자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때까지도 상욱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욱을 돕는 사람들은 없었다.


『스위트홈』 속의 세상은 삭막한 현실세계와 닮아있다. 현실 사회에서도 이처럼 정의가 구현되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에게도, 법으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하고 철저히 외면당할 때, 정의는 무너진다. 그들의 결말은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하고 홀로 방에 숨은 현수, 끔찍한 복수를 자행할 수밖에 없었던 상욱의 모습처럼 비참할 수밖에 없다. 『스위트홈』에서 재난 초기 그린홈 주민들이 그들을 구하러 오지 않는 정부를 기다리는 모습은, 외면과 무관심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미래의 단면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생존을 위한 핵심 키워드 ‘공생’

한편, 우리는 삭막한 세상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스위트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공생이다.


사실, 『스위트홈』의 사람들도 처음부터 공생한 것은 아니다. 협동 체제가 그린홈에 자리잡지 못했을 때 갑작스럽게 괴물과 싸우게 된 주민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이후에 그들은 공생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은혁의 지휘 아래 협동하게 된다. 그 일환에서 두 사람씩 조로 다니면서 서로를 보호하고 괴물화 진행 여부를 감시한다. 또한 보초 담당, 전투 담당, 식사 담당 등 각자의 역할을 갖는다.


“모여 있는 게 생존 가능성이 높습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같이 있어야 됩니다.”


그린홈의 리더 은혁이 한 말이다. 은혁이 주도하는 그린홈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전까지 제작된 영화, 드라마 등에서는 주연에게만 역할이 있었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를 따르기만 했다. 그러나 그린홈의 사람들은 경중을 떠나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갖는다. 예를 들어 그린홈의 마트 주인은 사람들에게 가진 물품들을 나누어주어 주민들의 생존을 돕는다. 또한 『스위트홈』에서는 환자,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는 단순히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에게 특화된 역할이 있으며, 도움을 받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서로를 돕는 것. 이것이 『스위트홈』이 보여주는 상생이다.


『스위트홈』에서 드러났듯 우리 사회는 과열된 경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부정의함도 만연하다. 그렇기에 괴물이 공격하는 것만큼 우리 사회는 위태롭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과 타인의 아픔을 외면해왔다. 『스위트홈』에서 등장한 괴물들은, 바로 이처럼 외면된 욕망이 표출된 것이다. 실제 사회에서 우리도 언젠가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치료받지 못한 욕망에 잡아먹혀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 있을 수도 있다. 이때, 그린홈 주민들이 공생하는 모습은 각자도생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극복할 해결책이 공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각자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잘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게 차츰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협력하는 법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지난 2020년부터 우리는 팬데믹 위기를 겪고 있다. 이례적인 위기에 사람들은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상생’한다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노민지 기자
roe0920@yonsei.ac.kr

<사진제공 넷플릭스>

노민지 기자  roe092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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