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석누리 (문정·20)

지난 1월 27일, KBS 이사회에서 수신료를 월 2천500원에서 3천84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상정했다. KBS는 이번 요금 인상을 통해 공익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빛은 곱지 않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세금으로 인식되는 수신료를 올린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커지는 판국이다. 관리비 고지서 구석에 조용히 웅크려 부지불식간에 통장에서 빠져나가던 TV 수신료가 이번 인상 논의를 계기로 국민 앞에 다시 섰다.

권력 향방에 따라 평가가 흔들리는 정치적 편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수신료 인상안에 반대할만한 합당한 이유가 많다. 시청료를 올리면서 중간 광고 등을 통해 광고 수입도 확대하려는 모순적인 태도,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과도한 인건비, 경쟁사 콘텐츠 대비 낮은 품질의 프로그램, 불분명한 수신료 사용 명세가 그것이다. 최근 설문조사들에서 국민 대부분이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결과는 이러한 문제점이 잘 인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공영방송의 현상 유지가 아닌 개선을 원한다면 보완책이 마련된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지, 여론의 의견대로 요금을 동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전과는 달리 공영방송이 방송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자생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등장하며 기존 방송국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그 결과 KBS의 광고비 매출은 지난 2015년 5천25억 원에서 2019년 2천548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수신료 매출은 같은 기간 약 500억 원가량 늘었지만, 광고 부문의 수입 감소분을 상쇄하기에 역부족이다. 2015년 기준 광고비가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던 KBS로서는 큰 타격이다. 물론 반대 측에서 주장하듯 인건비 지출은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 기간 5천337억 원에서 5천296억 원으로 큰 변화가 없었기에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이 필수 불가결하다. 그러나 연 수입 감소분 2천억여 원을 임금 삭감과 내부 개혁만으로 메꾸는 것은 지출 규모를 고려했을 때 비현실적이다.

현 수신료는 시청자가 기대하는 수준의 콘텐츠를 제공하기에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고품질 콘텐츠란 남극을 누비는 펭귄을 담은 다큐멘터리나 흥미진진한 수사 드라마 따위의 프로그램인데, 이를 만들려면 제작자들의 노력뿐 아니라 충분한 금전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수신료 인상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BBC와 NHK가 KBS와 대조되는 예시로 소개되곤 한다. 그런데 지난 2020년도 기준 신청 가구당 연간 수신료 부담액을 살펴보면 NHK가 있는 일본이 약 14만 원, BBC가 있는 영국이 약 25만 원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3만 원으로 시청자 부담이 적은 편이다. KBS가 보인 행태에서 기인한 악감정을 잠시 접어둔다면 두 방송국에 비해 적게 쓰며 대등한 수준의 결과를 내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공영방송 개선에 대해 사회의 관심이 단발성에 그쳤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KBS가 수신료 인상을 시도한 것이 지난 2007년 이래로 벌써 네 번째다. 그때마다 개혁방안들이 제시됐지만, 정치인의 씹을 거리 또는 국민의 일시적 분노 표출 대상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평소에는 다른 사회 이슈에 밀려 관심 받지 못했던 공공방송의 문제점에 대해 사회가 그나마 주목하게 한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신료 인상 추진은 다른 쟁점들에 못지않게 공영방송 개혁을 중요 문제로 만들고, 시민들이 지속해서 논의에 참여하게 해 쇄신에 대한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공영방송이 앞으로도 존재해야 함을 전제한다면, 수신료 인상을 통해 공영방송 재정을 튼튼히 함과 동시에 국민의 관심을 끌어내 시청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신료를 내왔지만 공영방송이 국민에게 만족감을 주었던지는 의문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낼 돈이 아깝지 않으려면 시민에 의한 감시가 수반된 수신료 인상을 연료로, 근본적인 변화의 원동력을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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