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아래 자사고)에 대한 지정취소 처분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월 18일 서울행정법원은 배재고와 세화고 학교법인이 서울특별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020년 12월에는 부산 해운대고가 법원 판결을 통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 바 있다. 

이 소송은 지난 2019년 교육청이 서울 지역 8개 자사고를 운영성과 평가점수 미달을 이유로 지정취소 결정하고 교육부가 승인하면서 제기됐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중대하게 변경된 평가기준을 평가 대상 기간에 소급 적용해 평가를 진행’한 걸 문제 삼았다. 교육청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공정한 심사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면서 학교 현장이 혼란에 빠질까 우려된다. 자사고에 재학하거나 입학을 준비 중인 학생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전제로 오는 2025년부터 전면 시행하려는 고교학점제 도입까지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한목소리로 교원 수급, 대입제도, 학교 시설, 학교 간 격차 등 현장 여건을 무시하고 정부가 이 정책을 졸속으로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사고는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아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교육부가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이유는 이 학교들이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보다는 ‘수능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입시에 치중하며 고교서열화에 일조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완전히 없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한편 고교학점제를 통해 새로운 교육 체제를 설계하고 있다. 

미래지향적 고교 체제를 만들려는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이 옳더라도 성급한 밀어붙이기는 교육 현장의 혼란만 가중한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일괄 폐지 조치도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이 제기됐을 정도로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이제라도 교육 당국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장기적 안목을 갖고 현장에 적합한 교육정책을 차분히 펼쳐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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