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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선
  • 박제후 편집국장
  • 승인 2020.11.29 22:30
  • 호수 1864
  • 댓글 6
편집국장 박제후
(독문·17)

‘선 넘는다’는 말, 최근 들어 많이 보인다. 인터넷 댓글을 넘어 드라마 대사, 기사 제목까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밈(meme)은 사회를 보여주고, 동시에 만든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집단으로 선택되고 실천되는 선호를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렇게 선택된 언어는 반대로 그것을 선택한 발화자에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어법이 강요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게 된다. 에크리튀르에는 사회 집단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이데올로기가 녹아 있는 셈이다. 여기서 에크리튀르는 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 등장하는 밈은 모방으로 복제되고 전수되는 모든 것을 뜻한다. 집단이 어떤 것을 선택해 모방하는지, 즉 어떤 것이 ‘밈’으로 채택되는지에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다.

선, 선이 뭐길래. ‘선을 넘었다’는 지적은 공포스럽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다는 착각, 무언가 규칙을 어겼다는 감각, 누군가에 비난받고 혼날 것이라는 생각. ‘선’은 긋는 사람에 권위를 부여한다. 정의되지 않았던 관계는 선이 등장하는 순간 마치 선생과 학생, 부모와 자식, 신과 인간처럼 위계 관계로 설정된다. 선을 긋는 사람은 객관적인 절대자다. 타인은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선 안쪽에 머무르도록 주의해야 한다. 스펙트럼을 허용하지 않고 흑백 규칙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폭력적인 이 언어가 밈으로 사용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연세 사회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연세에서 봐 온 것,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선 긋기’다. 시간을 거슬러 1학년 시절로 가 본다. 첫 합동응원전에 들떠서 동기들과 함께 파란 티셔츠를 입고 서울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파란 티셔츠를 입은 선배들은 아직 서투른 우리에게 응원가를 알려줬다. 2017년 초, 응원곡 ‘woo’ 가사가 논란 속에 수정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이대한테 차이고, 숙대한테 차이고’라는 가사가 다른 가사로 대체됐었다. 그런데 노래가 나오자 한 학번 위 남자 선배가 그 부분에서 일부러 원래 가사를 크게 소리쳐 불렀다. 그러고는 자랑스럽다는 듯 웃었다. ‘나는 가사를 바꾸라고 유난인 이들을 비정상이라 간주한다, 너희는 선 넘었다’는 당당한 외침이었다. 그 선배는 외침 한 번으로 주위에 있던 몇몇 동기들, 후배들에게 선을 그은 셈이다. 모두가 같은 파란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그 순간 선의 안팎이 나뉘었다.

이런 현상을 수도 없이 봤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선은 더욱 많아지고 선명해졌다. 캠퍼스 통합, 총여학생회 폐지, 인권강의 필수 지정…. 굵직한 이슈일수록 선은 덩달아 두껍고 높은 벽이 됐다. 선도 아니고 벽 바깥에 있는 인간이라면 거세게 응징돼야 마땅했다. 게다가 익명 공간에서는 응징도 더 손쉽다. 이 과정이 대립, 토론, 갈등과 다른 점은 ‘선’을 통해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규정했다는 점이다. 선은 위계로부터 나오고, 동시에 그 위계를 공고히 한다. 연세 사회는 그렇게 같은 파란 티셔츠를 입고도 선을 그어왔다. 파란 티셔츠 바깥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연세에서 배운 것,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선 지우기’다. 누군가 그어 둔 선을 계속 넘나들어 조금씩 희미하게 만들고 결국엔 지워내는 것. 인문학을 4년간 공부하며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났다.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이 아니라 지식 자랑은 못 하지만 배움은 태도로 남았다. 프레임에 갇히지 말 것, 세상을 둘로 나누지 말 것, 다양성을 존중할 것. 그리고 이 가치를 기자로서도 추구하려 했다. 연세에 살던 4년 동안 강의실에서도 편집국에서도 선을 지우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고 실천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동료들이 있었다. 우리의 노력이 큰 변화를 이루진 못했다. 두렵고 지쳐 주저앉은 적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작은 돌은 던졌으리라 믿는다. 이곳에서 배우고 갈고 닦은 태도. 그것들이 모인다면 연세에서도, 그 너머 세상에서도 ‘선 넘었다’는 말이 조심스러워지지 않을까.

박제후 편집국장  bodo_hooy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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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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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글 2020-12-05 21:40:21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세상에 작은 돌을 던지며 살아가요.   삭제

    • 애독자 2020-12-05 14:44:07

      춘추 열심히 구독하는데 여러 값진 십계명 글 보았지만 이번 칼럼은 특히 의미가 깊네요. 잘 읽고 갑니다. 늘 행복하세요!   삭제

      • 국장님짱 2020-12-04 11:57:33

        국장님 최고였어요
        많이 보고싶을것같아유ㅠㅠ   삭제

        • 보는 2020-11-30 22:56:51

          "하지만 적어도 작은 돌은 던졌으리라 믿는다." 저도 그렇게 믿어도 되는거겠죠? 좋은 글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삭제

          • 2020-11-30 16:37:05

            글 잘 읽었습니다. 선이 뭐길래 타인은 선을 강요하는 걸까요.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정한다고 해서 과연 이것이 정해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그럼에도 선명한 선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익명이 위계가 되는 사회, 무섭습니다.
            국장님은 연세 사회에 크고 작은 돌을 던졌고, 수많은 물결을 만들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삭제

            • 제후사랑해 2020-11-30 12:36:10

              그동안 고생 많았어용 사랑해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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