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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연세문화상] 현자타임

[박영준 문학상(소설 분야) 가작]

현자타임

허재성(정외·15)

현자 타임: 어떤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 직후에 이전까지의 열정이나 흥분 따위가 사그라들고 평정심, 초탈, 무념무상, 허무함과 같은 감정이 찾아오는 시간을 이르는 말. 그러나 굳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오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줄여서 ‘현타’라고 부른다.

1. 도화선 p4

2. 이율배반 p13

3. 성자 p22

4. 사나운 이슬 p36

5. 대오각성 p63

6. 포스트 휴먼 p79

7. 이카로스 p88

에필로그 p99

1. 도화선

2월 초, 광화문 광장.

인적이 드문 오후 두시쯤 얼굴이 등산복 차림에, 노수 페이스 가방을 맨, 거무스름한 아저씨가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 있었다.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한 번의 중얼거림은 다들 무시하고 넘어가겠는데, 서른 일곱 번이나 씨이발을 하니 행인들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자연스럽게 씨이발 아저씨를 피해가는 도중, 아저씨는 가방에서 낫을 꺼냈다. 낫을 쳐들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이거 때문에! 내 인생이!”

아저씨의 낫은 사타구니 아래로 향했다. 몇 번이나 다짐한 듯한, 그리고 혼자 계획도 많이 세워 본 것이었겠지만 막상 흘러내리는 피를 보니 행동에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았나 보다.

“읍...으으.”

흘러내리는 피를 애써 모른척 한 채, 결국 일을 끝마쳤다.

툭. 그리고 툭.

아저씨의 생명체 연습생들은 더 이상 데뷔를 하지 못할 것이다.

꺄아악 소리치는 관중들을 보며 아저씨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허나,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고통에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두 불알은 그렇게 차디찬 광화문 바닥에 축 쳐져 있었다. 세종대왕님의 인자한 눈빛도 자기 고추를 자르는 어여쁜 아해(兒孩)를 보듬어 주지는 못했다.

/

“아... 씁.”

인기 급상승 동영상으로 떠서 봤는데, 뭐 이런 그지같은 영상이 다 있나. 입학식 가는 길에 기분을 잡쳤다.

“이호건. 뭐 보나?”

“아.. 아니에요. 그냥 공부 관련된 거. 얼마나 남았어요?”

“10분.”

아빠가 주차하고 있는 동안 하늘을 보았다. 참 맑다. 기나 긴 재수 생활의 결과다. 지망하는 대학보다 더 높은 학교에 가다니. 연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식을 굳이 갈 필요는 없다지만, 나로서는 당연히 가야 할 일이었다.

좀 있으면 사촌동생들도 온다고 그랬다. 예쁘다고 생각한 코트도 입고 갔다. 좋은 대학에 갔으니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무시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CC도 하고 학점도 잘 받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재수할 때 제일 이해가 안 되었던 부류는 ‘고통받는 대학생’이었다. 왜 대학생이 고통을 받지? 아무리 불행한 대학생도, 가장 행복한 재수생보다는 나을 것이다. 대학생이 아무리 힘들어봤자 대학생이지.

대학교 입학식은 스케일이 굉장히 컸다. 트럼펫도 울리고, 오케스트라도 있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점은 더럽게 지루하다는 점이었다. 중간에 빠져 나가도 되었지만, 부모님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여기가 내 학교라니. 물론, 신입생 때는 1년 동안 인천에 있는 숭도에서 단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상한 학교여서 당장은 못 다닌다. 그러나 내년이면 젊음의 상징인 산촌을 만끽할 수 있는 시절이 온다.

시간이 언제 가나 멍 때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 곳으로 시선이 쏠렸다. 오른쪽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는 여자애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볼살이 통통한 반달눈을 가진 친구였다. 저렇게 예쁜 사람도 연희 대학교를 오는구나.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고등학교 때 주변에서 가만 놔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항상 권력의 최상층에 있는 일진들이 집적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꾹 참고 공부를 한 것을 보면 정말 엄청난 인내력이 있는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뭐 그건 그렇고, 지루한 교가가 끝나고 백양로를 내려왔다. 여기가 내 대학교다.

하하.

/

약속 시간보다 세시간 일찍 나와 카페에 갔다. 호감가는 사람한테는 오분의 지각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찍 와서 책을 펼쳤다.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어쨌든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책을 보고 있는 남자이면, 마이너스는 아니겠지.

[강지현 - 정외 : 스벅에 있는거지? 나 조모임 끝나서 조금 늦을 것 같아...

[강지현 - 정외 : ㅠㅠ 미안해.... 좀만 기다려주세요.. ㅎㅎ...

어 괜찮아 천천히 와]

나도 과제하고 있으면 돼서]

여자랑 단 둘이 밥을 먹는 것이 처음이다. 초중고 모두 남녀 공학을 나왔지만, 여자랑 단 둘이 대화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해야 좋은 대학을 간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뭐, 돌같이 안하고 금같이 대했더라도 사귈 수 있지는 않았겠지만.

내 별명은 은하수였다. 목 언저리에 여드름이 일렬로 쫘라락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재수가 끝나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15kg 감량을 하고 렌즈를 껴 보았다. 옷 좀 입는다는 친구한테 조언을 받아 교복을 제외한 셔츠를 입어봤다. 츄리닝과 후드티에 감추어져 있던 본모습이 드러났다. 나... 못생기지는 않았구나. 1등은 아니어도 꽝이 나오는 복권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자한테 접근하는 것은 또 달랐다. 기술이 진보해도 그걸 따라가는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문화 지체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가. 외모가 나아지더라도 과거의 못난이 시절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지현이한테 번호를 물어본 것은, 못난이 정신을 탈피하려는 위대한 도약이었다. 반달 눈의 그 친구가 같은 과 동기라는 걸 알게 되자 심장이 뛰었다. OT때 수많은 승냥이들이 번호를 딸 때, 나도 껴 있었다. 별거 아닌 행동이었겠지만, 큰 의미가 있었다.

심지어 이제는 여자한테 먼저 밥을 먹자고 요청하였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호건아. 할 수 있어.

“어, 무슨 책 읽고 있어?”

지현이가 도착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읽고 있었어. 마이클 샌델이 쓴거. 그런데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철학은 너무 골치 아파..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라면집으로 갔다. 숭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맛집이었다. 정권 출범 이후 첫 경제 정책 입안하듯, 며칠 동안 조사해서 찾아낸 곳이었다. 맛이 있을 것이다. 아니, 맛이 있어야 한다. 혹시 몰라서 저번 주에 과 동기랑 먹어 보기도 했다.

“여기가 이 근방에서 진짜 맛있는 집이래.”

“응 맞아. 이거 우리 동네에도 있어.”

엥?

“그게..무슨 말이야?”

“아 이거 체인점이잖아. 몰랐어?”

허... 얼굴이 빨개졌다.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지현이가 웃으면서 놀렸다. 문찐이라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진짜 문찐 맞다고 했다. 문화 찐따라는 뜻이라나.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남들 다 가는 카페 ‘문벅스’도 곳을 재수 끝내고 처음 가봤다. 스마트폰도 대학 들어가서 처음 써봤다. 모든 게 새로웠다. 다행히 지현이는 귀엽게 봐주었던 것 같다.

3월 말이었지만, 날이 꽤나 추웠다. 그래서 가져왔던 핫팩을 꺼내 지현이한테 주었다.

“오.. 이호건 이거 뭐야... 고마워...”

“아이 뭘.”

막상 주고 나니 손이 시려웠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오빠 이거 같이 쓰자. 여기다 손 올려 놔.”

지현이가 손을 내밀었다. 핫팩이 올려져 있었다. 아...이거 진도 너무 빠른 거 아닌가? 벌써부터? 원래 사귀고 나서야 손을 잡는 거 아닌가? 그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올려 놓았다. 어색한 티 내면 안된다고 들었다. 물론 그럴수록 더 어색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어떤 소재로 대화를 했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밥을 먹고 영화를 봤는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스크린은 거들 뿐, 옆자리에 앉았던 지현이의 얼굴을 힐끔힐끔 보았을 뿐이다.

정신없이 행복했다. 기숙사 앞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올려다 보며 나에게 말했다.

“다음 주에 뭐해?”

다음날 1교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미세먼지가 엄청나게 많았던 4월 초였지만, 축제 때의 새내기들은 그렇게까지 미세하기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축제를 만끽하느라 몸이 삭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오늘은 내일로 넘어갔고, 뒷풀이 자리는 아직도 수십명이 앉아 있었다.

“형. 형. 오늘이 고백 각이라니까? 진짜야.”

옆자리에 앉은 황연성이 나를 부추겼다. 황연성, 민혁수, 변우상 그리고 나. 개강도 하기 전에 얼떨결에 나간 미팅에서 만난 사이다. 그러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나 빼고 다들 연애 경험이 있어서,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 주었다.

그 날도 그랬다.

“아. 뭐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일단 카톡 보내. 나가자고. 그리고 분위기 잡고 말하는거지.”

“아 아니야. 나중에 날 잡고 따로 하는게 낫지.”

“무슨 소리야. 지현이 가뜩이나 인기 엄청 많은데. 하루라도 빨리 고백해야 된다니까. 형 그러다 뺏긴다.”

듣고 보니 그랬다. 복학생 선배부터 해서 거슬리지 않는 놈들이 없다. 좋다. 잠시 고민하다 결국 핸드폰을 들었다.

지현아.... 잠시 할 말 있는데 나올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고백이라..고백이라... 고백을 한다라... 머리가 복잡해졌다.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강지현 – 정외: 어. 오빠 왜. 무슨 말 하려고 하는데? 그냥 톡으로 해! 지금 나가기 좀 그런데

답이 왔다. 아니다.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지현 – 정외 : 흠;; 알았어. 좀따 얘기해 그럼

새벽 세시가 되었다. 3차까지 갔다. 장소는 이미 옮긴 지 오래다. 남은 사람은 열명 남짓이다. 한 테이블로 다들 모였다. 안주가 왔지만, 다들 먹고 싶어 하지 않았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맥주만 홀짝홀짝 들이켜고 있었다. 지현이와 나는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았다.

“아 맞다. 오빠 나한테 할 말 있다며. 그거 이제 말해봐 뭔데.”.

“아? 그거?”

“아까 개인적으로 뭐 할 말 있다며. 그게 뭔데. 뭐 심각한 거야?”

순간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뭔데 뭔데. 선배들부터 해서 황연성을 비롯한 동기들까지.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말할게.”

오오오오.. 다들 집중하고 있다. 뭐냐 오늘부터 1일 뭐 그런거냐. 하면서 몰아가는 놈들부터 해서 순수하게 궁금한 녀석들까지. 지현이가 눈치가 없는 것이었는지, 내가 분위기 파악을 못했던 것인지. 아무튼 사람은 원래 알 듯 말 듯 하면 더 알고 싶어 했던가. 계속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에이. 뭔데 그냥 지금 말해. 나 아까부터 궁금했어.”

얼굴이 빨개졌다. 이미 술을 한 세병째 들이킨 상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 맨정신이었으면 대충 잘 둘러댔을 것이다. 조모임 관련된 것이나, 수업에 대한 것이나. 아니면 그냥 닥치고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술을 세병이나 먹었고, 숙취 해소 음료도 먹지 않았었다. 솔직히 말하기엔 깡이 없었고, 납득할 만한 핑계를 댈 정도로 영리하지도 않았다. 기껏 나온 말이.

“만 오천원 갚으라고.”

였다.

“어?”

“그.... 너 저번주에 영화 보러 갔을 때 나한테 빌려간 돈 아직도 안갚았잖아. 그거 잊지 말라고.”

“어?”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김 샜다는 주변의 반응. 뭐야 일수꾼임? 이야 수금을 뒷풀이에서 하네.

당황한 지현이의 표정. 당황하다 못해 창피하기까지 한 지현이의 표정.

“어.... 내가 계좌로 보내줄게. 내일까지. 꼭.”

어색한 침묵이 잠깐 흐른 뒤 의무적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그날 처음으로 술을 먹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먹을수록 속만 쓰렸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전날의 꼴불견을 자책할 새도 없이, 지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현아. 잘 들어갔어?]

오전 열한시에 보낸 카톡은, 오후 여덟시에 답장이 왔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카커오페이가 말해준

[15,000원을 받으세요.

가 전부였으니.

삼주가 흘렀지만 아무런 톡을 하지 않았다. 지현이와 밤늦도록 했던 전화나 카톡도 다 부질없게 되었다. 어쩌면 애초에 썸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손주 이름까지 생각해 놓은 내 잘못이었나. 수업도 겹치지 않아서 만날 구실은 더욱 없어졌다.

심심해서 친구들 프로필을 하나하나 보았다. 그러다 지현이의 프로필 사진도 있었는데

황연성이랑 같이 찍혀 있었다.

사진 어플로 고양이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상태 메시지는 ♡로 되어 있다.

내 고백이 망했다는 걸 알고, 금새 낚아챈 것이다. 어쩐지 3주 전부터 연락이 없더라니.

한참을 쳐다보고 쳐다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사진을 계속 쳐다 보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과잠을 입고 밖에 나가 계속 걸었다. 통금이 두시였지만, 오늘은 벌점을 먹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벌점을 먹어야 했다. 지금의 빡침을 벌점을 먹었기 때문이라 퉁치고 싶었다.

눈물이 흘렀고, 손이 부르르 떨렸는데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눈물이 났지만 룸메들한테는 울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그렇게 새내기의 봄은 펴 보지도 못하고 져 버렸다.

2. 이율배반

[기사]

최근 광화문에서 자해를 했던 한 남성이 화제를 끌고 있다.

박모씨는 지난 2월 광화문 광장에서 낫으로 음경을 잘랐다. 이를 본 시민들은 바로 경찰과 119에 연락을 하여 상황을 진정시켰다. 자해를 마치고 난 뒤 박모씨는 과다 출혈 및 쇼크로 인해 쓰러졌고, 세불암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잘린 음경을 접합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박모씨는 이에 달가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깨어난 뒤 주치의의 멱살을 잡고 폭언과 욕설을 날렸다.

“야이 XXX야. 왜 니가 뭔데 내 꼬추를 맘대로 붙여놔. 빨리 꼬추 떼. 내 꼬추 내가 떼겠다는데 왜 XX이야.”

...............

박모씨(34)는 강원도 인근에서 밭농사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최근 베트남 여성과 국제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막상 결혼 후 3개월이 지난 다음 집을 나갔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여성은 베트남 남성과 이미 혼인을 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박모씨와의 결혼으로 삼천만원을 받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최근 들어 많아진 국제결혼 ‘먹튀’의 전형적인 예이다.

박모씨는 충격과 배신감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술에 의지하는 날이 길어졌다. 그러던 중 다방에서 일했던 성모씨(29)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 박모씨가 성모씨와의 데이트에 쓴 돈은 2억 5천만원이다. 그는 성모씨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답을 팔고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뒤늦게 눈 뜬 성관계의 쾌락을 억제할 수 없어서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모씨 역시 일주일 전에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찾아오는 사채꾼들의 겁박. 박모씨는 뒤늦게 눈 뜬 자신의 성욕을 저주했다.

박모씨는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하고 싶었어요. 이이.. 이.. 망할 것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이젠 진짜 떼 버릴거에요. 내가 다시 사회로 나가면 또 아랫도리를 놀리고 살 거니까요.”

박모씨는 세불암스 병원 비뇨기과에 자발적 거세를 정식으로 건의했다. 여태까지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주로 이루어졌다. 자발적으로 거세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세불암스 측도 수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

박모씨의 기행은 한국 사회에 파장을 몰고 왔다. 일명 ‘꼬떼기’운동이다. ‘꼬추 떼기 운동’의 줄임말이다. 박모씨의 화학적 거세에 관한 언론 보도 이후, 많은 수의 남성이 자신들도 화학적 거세(세간에서는 꼬떼기 수술이라 불린다)를 받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대광대학교 사회학과 노성기 교수는 꼬떼기 운동이 벌어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 남성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군 가산점이 폐지되고 블라인드 채용이 심화됨에 따라 남성성이 가지고 있는 이점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꼬떼기를 원하는 대다수의 남성들이 20대 중반에서 후반, 취업을 준비하거나 큰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입니다. 가장 성욕이 왕성할 시기이지요. 이들은 연애를 하기에는 돈이 없고, 한 가지에 집중을 하기에는 성욕이 너무나 넘쳐납니다.

섹스는 하고 싶지만 만날 여자도, 만날 수 있는 여자도 없어 상실감에 가득합니다. 따라서 아예 느끼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죠.

이들은 꼬떼기를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향한 최후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꼬떼기 수술을 원하는 대다수의 남성은, 연애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 허탈함을 느낍니다.

젠더 갈등의 심화도 꼬떼기에 관한 사회적 인식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에 따른 갈등이 심화되면서, 타 성별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되는 것이죠. 어차피 여자와 사귀지도 않을 것이고, 사귈 수도 없는 상태라면 애초에 성욕을 말소시켜 버리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들은 성욕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꼬떼기 수술에 동의한다는 남성들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중 95%가 영구적인 성욕 상실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예전에 사법고시 본다고 절간에 들어가는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성성을 저주하는 동시에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중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과거로부터 축적된 남성들의 분노가 지금에 와서 과격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전국 꼬떼기 운동 본부 일명 ‘꼬운본’은 지난 달 18일 광화문 시위를 개최했다. 경찰 추산 15,000명 주최 측 추산 40,000명에 달하는 사람이 시위에 참여했다. 꼬운본 회장 고주남(26) 씨의 연설이다.

“박열사의 핏자국이 아직 남아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외친다. 정부는 꼬떼기 시술을 허가하라!”

“”허가하라! 허가하라!“”

“정부는 성적 자기 결정권 뿐만 아니라, 성기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정부는 남성성을 장애물로 만들어 버린 한국 사회에 대해 깊이 반성해라!”

“”반성해라! 반성해라!“”

의료계에서는 찬반이 극명하게 나뉜다. 시장 원리를 중시하며, 최대한 꼬떼기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보는 측과 어떤 부작용이 나올 지도 모르고 애초에 거세를 개인의 선택으로 맡기는 것이 맞냐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여태까지 개인의 자발적 거세와 관련한 의료 행위가 많이 없었기에 앞으로 계속 지켜보아야 할 사안이다.

/

뭔, 별 이상한 인간들이 다 있네. 딸딸이 한번 치면 말끔히 해결될 것을. 하여간 사람이란 존재는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산다.

헤어 스프레이가 제대로 뿌려졌는지 카메라로 한번 확인해 본다. 그래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다. 열두번째 소개팅이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

여름방학 동안 정말 많이도 만났다. 소개해 준 경위는 주로 같이 사회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었다. 아무래도 진보적 학내 월간지에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사회대 인문대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과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맥의 폭이 넓어지고 아무래도 새내기이다 보니 소개팅이 참 많이도 들어왔었다.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당연히 여자 때문이다. 여자를 사귀려면 페미니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얘기를 할 때 공감할 수 있고 인기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빻은 소리를 하면 안되지 않나. 애초에 운동권에 여자애들이 많기도 했고.

그러다 학회지에 글을 몇 편 기고하였다. 어디서 주워 들었던 말들을 대충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을 뿐인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마이크도 몇 번 잡아보고 집회도 꾸준히 나가 보니 어느 새 중심부에 가까워졌다.

아빠는 한심하다고 하루가 다르게 뭐라고 했다. 그런 거 다 대학 생활에 적응 못한 놈들이나 하는 거다. 요즘에 무슨 운동권이 있냐. 학점이나 따고 좋은 곳에 취직할 생각이나 해라. 이 아빠도 이제 나이가 육십을 바라본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미래의 사회적 지위보단, 당시의 열사로서의 내 모습이 훨씬 쿨해 보였으니까.

소개팅도 참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별로 안 예뻤기 때문이다. 그래도 꼬박꼬박 나갔다. 심한 경우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했다. 그러나 만나기 전의 설렘이 만나고 난 후 허탈감으로 변해가는 싸이클을 열한번이나 겪으니 시들시들해졌다.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해야 되나 보다.

그러던 중, 또 소개팅이 들어왔다. 이제 더 이상 안하겠다고 말했는데 한 마디 듣고 태세를 전환했다.

“로켓런쳐 멤버라고 해도 믿을 정도라니까.”

로켓런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그룹이다. 고등학교와 재수 때를 버티게 한 동력이었다. 사진이나 좀 보자고 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예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런 사람이 나를 왜 만나지?

내가 쓴 글을 보고 만나고 싶다고 했다. 와 마음씨도 좋아. 어떤 글이 유독 좋냐고 물었더니, 장애인에 대한 글이 감명 깊었다고 했다. 패럴림픽에 대한 글이었다. 사람들은 올림픽 이후에 열리는 패럴림픽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 점에 착안하여 글을 썼다.

내용은 패럴림픽 농구 선수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여태까지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적도 없으며 경기할 때 합도 잘 안 맞는다. 패럴림픽 선수들이 어떤 점이 부족하고 보완해야 하는지 스포츠레저학과 농구부 친구한테 자문을 구해서 글을 써봤다.

하지만 진짜 비판하는 대상은 바로 패럴림픽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시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패럴림픽 출전 선수들을 그저 ‘대단하다’고 밖에 말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졌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냐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이는 옳은 태도라고 볼 수 없다. 그들은 장애인이기에 앞서 한 명의 운동선수다. 운동선수는 물론 대회 참가 자체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실적을 평가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을 비판함으로써 ‘장애인’ 운동 선수가 아닌, 장애인 ‘운동’ 선수로서의 존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아무튼 이 글이 그분의 심금을 울렸다니 정말 다행이다. 이름은 강정아 였다. 정아..... 참으로 청아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강정아 : 저 먼저 와 있어요! 창가 쪽 이니까 보이면 말씀하세요.

먼저 와 계시다니. 정말로 감사하다. 심지어 장소도 당신께서 다 정해 주셨다. 준비성도 철저하고 얼굴도 예쁘시고. 이런 분이 나를 왜 만나자고 했는지 정말 가늠이 안된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카톡만 봐도 설레는데 실제로는 어떨까. 혹시 모르는 과호흡을 대비해 인공 호흡기라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일까.

도착했다. 책을 보고 계셨다. 긴 생머리와 사슴 같은 눈. 나풀나풀한 블라우스. 취향이 제대로 저격당했다. 눈을 의심했다. 현실일까.

넉놓고 보고만 있었는데, 나를 향해 친히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 여기에요~”

하. 일단 빨리 가서 앉았다.

“아.... .안녕하세요. 이호건이라고 합니다.”

은은한 향수 냄새. 옅은 화장이지만 누구보다 진한 생김새.

“아 네. 저는 강정아라고 해요. 뭐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무난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켰어요. 많이 더우시죠?”

정말 정말 정말 좋은 분이다. 단순 몇 마디 만으로도 이분이 좋은 분이라는 걸 알았다. 찢어지는 입꼬리를 어떻게든 틀어 막았다. 튀어나오는 본성과 자제하려는 이성 사이의 갈등.

소개팅은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연기해야 하는 연극 같은 것이다. 애초에 이런 만남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지만, 만나는 상황에서는 분위기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출해야 한다. 근데 이런 사람이 있으면 모든 계획이 다 수포로 돌아간다. 모르겠다. 최대한 열심히 집중하는 수밖에.

카페에서 30분 정도 얘기하고 이제 밥을 먹으러 갈 차례였다.

“아 제가 혹시 몰라서 장소를 예약해 두었거든요.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해야 했어서. 여기 바로 근처에 괜찮은 파스타집 있어요. 괜찮으신가요?”

“아 넵. 저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습니다.”

“네네. 그러면 이제 슬슬 이동할까요?”

말을 하고 먼저 일어서기까지 기다렸다.

“아 잠시만요?”

그러더니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셨다. 큰 막대기 였다.

“이게 뭐에요?”

“아, 이거 접이식 목발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럼 먼저 나가서 기다릴게요. 통로가 좀 좁아서.”

“네네 그게 편할 것 같네요.”

밖으로 먼저 나왔다. 혼란스러웠다. 목발? 목발이라니. 소개팅 상대가 목발을 짚고 있다. 최근에 사고가 나셨나.

식당은 2층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음식을 주문했다. 무엇을 주문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경은 온통 목발에 가 있었다. 목발에 가 있는 신경을 상대방에게 쏟아야 하니 진땀을 뺐다.

“최근에 사고 같은 거 나셨어요?”

물어봐야 했다.

“아.... 사실 제가 소아마비가 좀 있어서. 많이 나아졌기는 한데 그래도 목발이 필요하긴 하거든요.”

자세히 보니 오른쪽 손이 살짝 뒤틀려 있었다. 계속 해서 왼쪽 손으로만 식사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나의 반응을 눈치챘는지, 상대방도 어색한 침묵을 이어갔다.

“혹시.... 못 들으셨나요? 저 장애 있는거.”

“네..... 저는 몰랐습니다. 근데 뭐....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했다. 나는 모태솔로다. 연애를 한번도 안해봤다. 그런데 첫 연애 상대가 장애인이라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여태껏 사람들이 당연하게 하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하여야 함도 주장했다. 이걸 깰 수는 없다. 나는 인권 감수성이 넘치는 놈이니까.

“그런데, 먼저 소개해 달라고 하셨다고.”

“네! 그 글 진짜 감명깊게 잘 읽었어요. 패럴림픽에 대한 거.”

“아 그러시구나. 어떤 점에서요?”

“저도 사실 공부하면서 힘들었거든요.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도 그렇고. 장애인이라고 많이 차별받고. 전교권 성적 유지하는데도 항상 따라붙었죠.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애들한테 정아도 하는데 너네가 못할 리가 있냐고 말하기도 했어요.”

“헐.... 그러셨구나. 말도 안돼. 가능해요 그게?”

“그쵸. 아시잖아요. 인권조례니 이런거 저희 학교 다닐 때는 없었으니까.”

얘기를 나눴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지를 알았다. 장애를 비정상이라 생각하면 안되겠지만, 비장애가 표준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장애는 결국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힘들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시사IM기자이고, 현장 취재하러 나왔다면 참으로 좋은 인터뷰가 되었겠는데 이건 소개팅 자리다.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취득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는지, 성격은 괜찮은지 알아보는 자리이다.

맞았다. 보내 온 사진보다 실물이 더 예뻤고, 성격은 그보다 훨씬 괜찮은 분이었다.

그런데. 안된다. 안될 것 같다.

소개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상대방이 다음에 갈 카페도 생각해 놨는데, 아무래도 빨리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예의상 카톡을 하나 보냈다.

잘 들어가세요. 오늘 재밌었습니다.]

주선자한테 연락이 왔다. 어땠냐고. 괜찮았냐고. 얘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본 걸까. 아마 나를 정말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겠지. 어떠한 편견과 차별도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겠지. 하긴. 뱉어놓은 글과 말들이 그러했으니.

[강정아 :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강정아 : 얘기도 잘 들어 주시구..ㅎㅎ

[강정아 : 잘 들어 가셨어요?

읽고 씹었다.

뭐라고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보내봤자 어색하기 짝이 없는 대화가 이어질 것 같아서.

팔굽혀펴기를 했다. 밖에 나가서 구보도 하였다. 머리가 복잡해서 머리도 감고 샤워도 했다.

주말까지 제출해야 되는 기고문이 있다. 주제는 유엔 평화 유지군의 성폭행 관련이다. 구호하러 간 지역의 소녀들을 대상으로 저급한 욕망을 채웠다고 한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막상 자기가 당사자가 되었을 때는 가장 부정의하게 행동하는 인간들에 대한 얘기이다. 이율배반적인 기회주의자들. 퇴고만 남았다. 대충 맞춤법만 신경 쓰고 내면 되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못 냈다.

글을 쓸 때마다 속이 메스꺼웠기 때문이다.

편집장한테 한소리 들었다.

그렇게 그 한소리를 끝으로 열사를 꿈꾸던 소년은 소시민이 되었다.

3. 성자

[100분 토론 – 자발적 거세 : 허용해야 하는가.]

사회자 : 네 최근 남성의 자발적 거세, 굉장히 뜨거운 주제입니다. 지난 2월 광화문 광장의 헤프닝이 사회 전체의 움직임으로 불거졌습니다. 말씀드리기 민망한 단어이긴 하지만, 소위 ‘꼬떼기’운동이 일고 있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계 전문가를 모셔 놓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대한 비뇨기과 협회 김고주 협회장, 써울대 법대 조옥 교수, 바른사회실천연대 나배미 운동가, 고여대 철학과 정심오 교수. 나와주셨습니다.

정심오 : 거세를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는 행위입니다. 물론, 이건 낙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이지요. 뱃 속의 아기가 생명이냐 아니냐는 것은 확실히 생물학적 논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자는 생명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어쨌든 세포에 불과한 건 맞으니까요. 자위 행위를 하는 수많은 남성들을 살인마로 몰 순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과학적 논쟁과는 별개로, 거세를 마냥 선택으로 남겨둘 수는 없어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혼란을 초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보통 자발적 거세를 주장하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사회에 대한 막연한 반감 행위에 불과해요. 또한 그 수술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기도 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던 프랑스아주 사강의 말이 왜 틀렸는지 떠올려 보세요. 사회는 개인의 비합리적 선택을 합리적으로 통제해야 합니다. 이들의 단순한 치기가 사회 전체에 해악이 되기 때문에 자발적 거세는 허가할 수 없습니다.

나배미 : 저는 이러한 논쟁 자체가 부질없다고 생각해요. 일부 남성들, 그러니까 소위 ‘꼬떼기’, 어우 말하기도 민망하네. 아무튼 이게 결국 성욕을 없애자 대충 이런 취지 아니에요? 성욕이 자신들을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에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에 없애 버리겠다는 거죠.

근데 이 말은 정말... 어떻게 보면 논점을 잘못 잡았다고 해야 하나. 저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게, 과연 소위 말하는 거세 시술을 받으면 뭔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좀더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정규직 문제, 소수자 인권 이런 곳에 집중해야지. 쓸데없는 곳에 사회의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게, 자발적 거세를 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 같아요. 연애를 못하는 게 사회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자신들이 여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인데. 이걸 젠더 갈등 양상으로 끌어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못마땅합니다.

조옥 : 솧직히 상용화 될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입법여부도 마찬가지고요. 일단 더불어자유민주한국당 쪽에서 법안을 말의한다고는 하는데, 얽힌 논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쉽사리 풀어낼지 모르겠네요.

더군다나 그 수술 방식이라는 게 투명화되고 정말 몸에 안전한 지도 따져 봐야 되는 거니까요. 약물에 대한 규제를 하는 것도, 그 약물이 오남용 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들 때문이잖아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한 시험에서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합니다. 성욕을 감퇴시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스테로이드 약물 처방과 비슷한 성질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몸에 약물을 투여하여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자본을 투여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성격도 가지기 때문입니다.

김고주 : 저는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 이러한 내용이 아예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 여기서 ‘꼬떼기’라는 단어로 수술의 성격을 너무 단정 지으시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일시적이고 자발적인 거세’를 의미합니다. 화학 약물로 일정 기간동안만 성욕을 없애는 것이에요. 큰 시험을 치루거나 아니면 당장 성욕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미치는 정도인 사람들에 한해서 시술을 받게 한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미 많은 성범죄자들에 의해서 임상이 끝난 상태에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성욕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물론, 성범죄자들이 맞는 주사를 일반 시민이 맞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거리감이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쨌든 수요가 있지 않습니까.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고 이미 결과가 나온 상태에서 거부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나배미 님은 말을 좀 조심히 할 필요가 있어요. 누군가가 겪는 아픔을 그런 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아니었던가요?

애초에 왜 이걸 반대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 아닙니까? 개인이 내 돈 주고 내가 성욕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데. 그리고 이게 사회 전반적으로 해를 끼치지도 않는데 왜 틀어 막는다 이 말입니다.

또한, 조 교수님이 말씀하신 부분에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시험 볼 때 합격자들 대상으로 매번 도핑 테스트라도 해야 되나요? 자본이 만들어 낸 의료 및 건강과 관련된 제품들이 시험의 형평성에 해를 끼친다면, 애초에 영양 식품 자체도 다 불법으로 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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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100분 토론 클립 영상을 보았다. 한 남자의 뻘짓이 이렇게까지 파급될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나름 각 분야의 권위자라는 인간들이 나와서 뻘소리 하는 걸 보니 참 할말이 없어진다.

뭐 지금 내가 목적지로 가고 있는 이 상황도 어이 없긴 마찬가지다.

“여러분 일단 출발하기 전에 이번 수련회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무슨 생각을 과연 하고 있는가.

“주 하나님 아버지. 이번에 우리 소망사랑믿음 교회에서 네 번째로 수련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팍팍함과 현실의 먹먹함 속에 살고 있는 어린양들을 잘 보살펴 주시옵소서. 3박 4일의 일정을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끝마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길 오늘도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내가 이걸 외치고 있다니. 옆자리에 앉은 하은이를 보았다. 사슴같은 눈망울에 똑단발이다.

그치 얘 때문에 왔지. 얘한테 홀려서 왔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독교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기독교와 성경이라는 필수 과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태복음의 의미를 독해하는 시간이다. 내용은 잘 모르겠고, 교수님이 참 선하고 재미없는 분이셨다는 것만 기억난다.

2인 팀플로 조를 짜서 발표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하은이와 같은 조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집안은 모태 개신교 집안이다. 말투에서부터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그런 아이였다. 팀플을 빌미로 심심할 때마다 불러냈다.

성은 금씨였기에 더욱 신선했다. 금하은. 이름만 들어도 반짝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얘기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 개신교에 관심이 있는 척을 했다. 나는 사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관심은 많지만, 그분의 살아계심을 느끼지는 못하겠다고 말이다. 개똥같은 소리이지만 하은이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누구든 노력하면 주님을 믿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2학기가 끝나갈 무렵, 고백을 했다. 하은이는 망설였다.

“나는 결혼할 사람이랑만 연애할 거야. 그래서 여태까지 안했던 거고.”

“나랑 결혼하면 왜 안되는데?”

“오빠는 기독교인이 아니잖아. 주님께서 말씀하셨어. 이교도인과 피를 섞지 말라고.”

“저기요. 나는 이교도가 아니라 아예 종교가 없다니까.”

“아니, 어쨌든 주님을 섬기지 않잖아. 주님을 섬기지 않는 것 자체 또한 하나의 우상이니까. 나도 오빠가 너무 좋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안될 것 같다.”

소보루 빵을 우유 없이 두 개는 먹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하은이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새내기 동안 네 번의 조모임을 했다. 공유지의 비극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무임승차자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아주 좋은 현장 경험을 했다. 그 와중에 하은이는 최선을 다해 조모임에 임했다. 포화 속에 피는 꽃처럼, 시궁창 같은 대학교 과제 속에서 찾아 낸 보석 같은 아이다.

가끔 하은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쟤네들이 말하는 주님을 믿는다면 나도 저렇게 경건하고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전까지는 환심 사려고 주님의 이름을 팔아 약속을 잡았는데, 이제는 진심으로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딱 거기까지만 생각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그럼, 한번 믿어볼게.”

라고 질러 버렸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따라서 교회도 꾸준히 가보고, 믿어보려고 할게. 그러고 나서 정하면 안될까.”

하은이는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기쁨을 숨기지는 않았다.

“그러면 이번에 크리스마스 때 3박4일 수련회 있거든. 그때 올 수 있어? 그러고 나서 내 마음이 정리가 잘 될 것 같아.”

이호건의 종교적 똥꼬쇼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버스에서 한참을 달려서 어딘가에 내렸다. 대한민국은 산악 지형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도 굽이치는 길을 버스로 갔더니 속이 뒤집어 질 지경이었다. 하은이는 교회 사람들한테 인사를 하고 나를 소개해 주었다.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인솔을 담당하셨던 전도사님이 말씀하셨다.

“형제자매님들. 우리가 매번 하는 게 있죠. 바로 세상의 논리에 젖어들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핸드폰을 걷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서 수능 시험장에서나 볼 것 같은 가방에 넣었다.

“여러분. 우리를 현혹하는게 무엇입니까? 주님이 아닌 우상에 빠지게끔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무도 당연하지만, 바로 주님이 아닌 것들입니다. 주님이 아닌 타 종교, 정치인 그리고 자본 이러한 것들입니다. 우월한 것 같지만 결국 주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것들. 그리고 이걸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체가 바로 핸드폰입니다. 따라서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이 ‘디지털 금식’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수련회의 모든 과정은 결국 무의미해집니다.”

들었으면 알 것이다. 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수능때 핸드폰을 안 내고 시험을 치는 것과 같은 느낌인 것을. 뭔지 모를 알 수 없는 힘과 분위기 속에, 핸드폰을 냈다.

짐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남자 방 여자 방으로 분리되어 저녁 예배 대기를 하였다. 스윽 보니 다들 어느덧 아는 사이였다. 나만이 초면이었다. 조용히 있어서 그런지 말을 거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핸드폰도 뺏긴 터라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참 극과 극이었다. 엄청나게 반듯하고 잘생긴 청년도 있는가 하면, 굉장히 어두침침한 사람들까지. 사회에서라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밥을 먹고 예배를 보러 올라간다. 대학교 채플 외에는 처음으로 하는 종교 행사였다. 총 한시간 반 동안 계획되어 있었다. 처음에 찬양을 십오분 한 다음 목사님 설교 삼십분 그리고 나머지 사십 오분을 찬양을 한다고 했다. 처음 보는 예배였기에 살짝 기대도 되었다. 어떤 느낌일까.

예배당은 대학교 강의실 수준의 크기였다. 간이로 설치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저마다 기도를 올렸다. 예배 시간까지는 남녀 분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옆자리에 하은이가 앉아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눈물을 흘렸다. 종교인의 경건함.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찬송가를 불렀다. 음도 가사도 몰랐지만, 사람들이 읊조리는 대로 대충 따라 갔다. 세 곡 정도 부르고 나니 전도사님이 목사님을 모시고 오셨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이목구비가 굉장히 짙었다. 진한 쌍꺼풀과 높은 코. 옛날에 홍콩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잘생긴 비주얼이었다.

“첫 날이니, 우리 한번 창세기를 펼쳐 봅시다.”

다들 가져 온 성경 책을 펼쳤다. 하은이와 같이 보았다. 펜으로 밑줄이 안 그어진 곳이 없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나 보다.

“흑암이 가득하여 빛이 있으라 하시니 세상에 광명이 돋았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빛. 빛이야말로 세상의 시작을 의미하죠. 하지만 빛은 또한 어둠을 만들기도 합니다. 빛이 더욱 거대할수록, 악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죠. ‘악은 선의 결여이다.’라고 말입니다. 세상에는 악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왜 이렇게 악이 많을까. 위대한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왜 해결해 주지 않으실까.”

“하지만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악을 내버려 두신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악이 존재하기에! 선할 수 있습니다. 악에 물들지 않기에! 주님의 뜻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발성부터 외적 자세까지. 완벽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설교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주님의 뜻을 사칭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찌 보면 이교도인보다 더 못된 사악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악한 무리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주님의 거룩한 사명을 이어받은 저와 여러분들의 몫인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바로 연희대학교의 더러운 교리들과 가르침입니다.”

응?

“여기 연희대학교 학생들 두명이 나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번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상황 파악이 잘 안되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하은이한테 뭐라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미 눈물콧물범벅이 다 되어 일어나서 훌쩍대고 있다. 엉겁결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회 참가 신청란에 대학교를 적은 이유가 이 때문이었나.

“네, 자기소개 해주시기 바랍니다.”

“끄윽..끄윽... 저는 사탄들의 학교에...끄윽...다니고..끄윽...있는...끄윽...금하...... 금하은...끄윽...이라고 합니다. 문만식...꺽...목사님의...끄윽...가르침을...끄억...바앋..기...전..까악...지는...잘...몰랐...습니다...”

아?

“옆에 계신 형제님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하은이 따라 온 이호건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반갑습니다. 두 형제 자매님들. 금하은 자매와 저는 한 달 전에 교제를 했었고, 옆에 계신 형제님은 오늘 처음 뵙네요. 네, 자리에 앉아 주시고요. 오늘 저희가 나눌 대화는 사실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야 하는 얘기들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진실된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색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박차고 나갈 수 없었다. 예배실 안에서 목사의 말은, 황제의 명령보다 더 권위가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초능력이라도 쓰는 것 같았다.

“연희대학교가 얼마나 타락한지 일단 설립 과정부터 봅시다. 일단 설립자부터가 친일파들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운더아드 선교사가 전 재산을 털어 만든 학교를, 배남존 교장과 그 일파가 일제에 거의 팔아 넘기다시피 했으니까요. 또 그 세불암스 있죠? 그거 만들었던 얼렌이라는 선교사는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다가 조선인들을 팔아 치우곤 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취업 사기인거죠.”

대학교 오티 때 들었던 반가운 이름들이 처음 보는 목회자한테 난도질 당하고 있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연희대학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려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건국 초기 온갖 더러운 돈을 다 먹고 사실을 감추느라 애썼거든요.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있죠? 정학유착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정계와 학계의 유착관계. 이 안에서 한국 기독교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학교 욕을 한시간 내내 줄창 했다. 집중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된소리로 된 단어들만 없었을 뿐이지, 쌍욕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수업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랑 생판 다른 것들을 많이 알려 주었다. 하나님은 사실 여성성을 지니고 있다든지, 실제로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사악한 간교 때문에 다들 일요일로 교회를 간다든지. 크리스마스는 원래 없는 날인데, 로마의 태양절 축제를 기독교 국교화를 통해 교묘하게 바꿔치기 했다든지. 이건 다 처음 듣는 얘기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가장 이상했던 설교 내용은 이거였다.

“여러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 기억하십니까? 제가 거듭 주장했던 그 말. 동방의 끝에서 바로 선지자가 온다는 말. 기억하십니까? 그게 어디를 의미하는지. 그건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섬나라인 일본도 아닙니다. 바로 이 땅, 대한민국을 의미합니다!”

미친. 이건 제대로 돌았다.

“대한민국에서, 바로 이 땅에서! 주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바로 세계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기성 교회들이 과연 주님의 뜻을 잘 실천하고 있다고 봅니까?”

“”아니요!“”

“제가 맨 처음에 악은 선의 결여라고 말했던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를 언급했죠. 이제야 비로소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고, 누가 빛이고 누가 어둠인지 보이십니까?”

”“네!”“

”이제 타락한 저들과의 동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저들에게 계몽의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물리칩시다. 이겨냅시다. 주님의 거룩한 사명을 가지고 갑시다. 비록 저들이 골리앗이고 우리가 다윗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준비 되셨습니까?“

”“네!”“

다들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현재 우리들은 매우 빈약하고 못된 존재입니다. 지금 이 안에도 뱀의 꾀임에 빠진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청년이 있습니다. 이들을 구원하소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사회의 고지를 점령하고 주님의 뜻이 온 만방에 퍼질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하은이는 이미 땅바닥에 주저앉아 온 몸에서 액체를 내뿜고 있다. 입에서는 뭔가 중얼중얼 거리는데, 한국말인지 영어인지, 아니 애초에 저게 언어인지 싶다.

찬양이 시작되었다. 드럼치는 사람, 피아노 치는 사람, 노래 부르는 사람, 기타 치는 사람 전부다 울음 범벅이 되어 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까지 울음이 날 지경이었다. 아까까지는 감미롭고 경건했다고 생각했던 찬양가가 그토록 혼란스러운 노래인지 몰랐다.

그리고 애초에 좀 쪽팔렸다. 갑자기 일으켜 세워서 자기 소개를 시키고, 다니고 있는 학교 쪽을 주지 않냐. 애교심과 별개로 뭔가 기분이 나빴다. 하은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반민 특위에 잡힌 민족 반역자들 마냥 고개를 떨구고 있다.

한시간 반으로 예정된 예배가 세시간 반만에 끝났다. 고대 사람들의 날짜 개념이 현대와 다르듯, 예배 때의 시간 개념도 현대인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되는 것인가 보다. 아무튼 끝나고 벙 찐 상태에서 터덜터덜 방으로 올라왔다. 뭘 들은 걸까.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이호건 형제님? 목사님이 부르십니다.“

아까 버스에서 기도했던 전도사가 나를 불렀다. 새 신도라서 목사님 면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가재도구가 가득한 창고 방으로 갔다. 아까 핸드폰을 넣었던 가방도 구석에 놓여 있었다.

”반가워요. 이름이 이호건이라고 했나요?“

설교 중에는 잘생겼다가 험악하게 변했는데, 지금은 다시 부드러운 훈남이 되어 있다. 사람의 표정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지금, 저를 사이비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정곡을 찔렸다.

”아....아니에요. 물론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들이랑 좀 달라서 당황은 했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상식이라 배워왔던 것들. 예수님도 그런 상식을 진리로 여기는 자들한테 당했지요. 항상 세상은 그래. 기존에 존재했던 것들. 그러나 아시다시피 기존의 것일수록 솎아낼 필요가 있지요. 지금 한국 기독교계는 썩었어. 비리의 온상이야. 더러워서 같이 뭘 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신념이 투철한 혁명가이거나, 그걸 연기할 만큼 대단한 사업가이거나. 이 사람은 무엇일까. 아니면 사실 양자 간의 구분이란 무의미한 것일까.

똑똑

”네 들어와요.“

하은이가 들어왔다. 예배가 끝난 지 삼십 분이 넘었건만, 아직도 울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하은 자매님. 상담할 것이 있으시다고. 아, 그전에 호건 형제님도 같이 들어도 괜찮나요?“

”네. 호건 오빠랑도 꼭 하고 싶은 얘기였으니까요.“

”한번 말해보세요.“

”저...... 자퇴를 너무 하고 싶어요. 진짜 넌덜머리가 나요. 역겨운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자신들이 진실된 것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 자들. 그 아집과 편견이 머리를 꽉 채운 자들 밑에서 공부를 하고 소위 ‘가르침’을 받는다는게. 제가 신학과잖아요. 그러다 보니 더욱 역겹고 토악질이 날 것 같아요. 한번은 수업을 듣다가 헛구역질이 나서 밖으로 중간에 나온 적도 있어요. 하....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자퇴라니, 하은이와 가장 안 맞는 단어였다. 1교시임에도 누구보다 일찍 와서 수업 들을 준비도 하고, 과제도 가장 열심히 하고. 학점도 최고점을 놓치지 않는. 그런 아이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다니 참.

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겠다. 지금 여기는 누가 들어도 사이비다. 이건 미친 짓이다. 빨리 설득해야겠다.

”하은아. 잘 생각해 봐. 지금 너가...“

”잠깐만요.“

목사의 제지.

”말해봐요. 하은 자매.“

”그래서 제가.... 자퇴는 못하더라도 이름을 바꾸는 건 어떨까 해서요. 목사님의 이름에 있는 단어 하나를 제 이름에 넣으면 결의가 잘 다져질 것 같아요. 목사님 말대로 고지를 점령하여 주님의 말씀을 사회에 침투시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맞겠지만.... 맞겠지만! 너무 힘이 들어요. 그래서 결의를 다지고자 목사님 이름 중 하나를 제 이름으로 넣고 싶어요. 하은에서 하 자를 목사님 성함인 문만식 중의 식으로. 그래서 이름을 금식은. 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진짜 무슨 김일성 필라테스 하는 소리인가.

”하은아 그게 무슨 소리야.“

”들어봅시다. 호건 형제.“

”그래서...사실 개명 신청 직전까지 왔는데, 제가 너무 오버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목사님한테 마지막으로 여쭤 보고 싶어요. 할까요. 말까요.“

목사는 고민에 잠긴 듯 했다. 그렇다. ‘잠긴 듯’ 했다. 입가에 피어오르는 미소를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바보가 된 하은이는 그렇게 자기의 이름을 식은이로 바꾸고 싶어했나 보다.

”하은 자매. 아니 이제부터 식은 자매라고 불러야 하나요? 한 구절만 읊겠습니다. 열왕기상에 있는 말이지요. 나아가라, 주님은 너와 함께 할 터이니. 하십시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세상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목사님..... 목사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기가 생겼어요. 감사합니다. 수련회 끝나고 바로 개명 신청서 제출하러 갈게요.“

”좋은 생각이에요. 저는 내일 예배 마저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다들 푹 자고 내일 봐요.“

목사는 나갔다. 나랑 하은이만 방에 덩그러이 남아 있었다.

”하은아. 너 제정신이야?“

”오빠. 오늘부터 내 이름은 식은이야. 식은이로 불러줘.“

”아 그래. 식은아. 아니. 야 그게 아니라. 지금 말이 돼? 여기 교리도 그렇고 이상한 거 한두개가 아니야. 왜 그러는 거야. 너 원래 이런 애였어?“

”뭐가. 오빠야 말로 마귀의 부르짖음에 지금 넘어가고 있는거야. 그러면 안돼. 그리고 오빠가 뭘 아는데. 기껏해야 학교 채플이랑 교양 수업이 다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름을 바꾸는 게 말이 되겠냐.. 바꾼 이름이 괜찮으면 몰라. 식은이가 뭐야 식은이가. 성까지 붙이면 금식은 이잖아. 맨날 금식하는 인간 같다니까.“

”말 함부로 하지마. 나한테 제대로 된 삶의 가치를 부여해 주신 분의 이름을 따서 고심 끝에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을..“

”부모가 뭐!“

휘이잉. 열어놨던 창문에 바람이 들어왔다.

”부모라는 존재가 뭐! 혼란스러운 곳에 날 태어나게 해서! 그리고 죽도록 공부만 시키고! 신학과 간다고 하니 그렇게 무시해대고! 돈만 벌어야 한다고 말만 하고! 예전에 좋아했던 남자애들도 다 헤어지라고 그러고! 대학교 오니 전과 해라, 고시 공부 해라 말만 하고! 내 인생은? 그러면서 가짜로 된 주님의 뜻만을 설파하고! 부모라는 인간들이 지어준 하은이란 이름. 내가 얼마나 저주했는지 알기나 해? 거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야. 하나님이라 불리는 사이비의 화신, 사탄의 현신에 불과해.“

안쓰러웠다. 그 와중에 정상적인 상태라 할 수 없는 식은이가 될 하은이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예쁘게 정돈된 단발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산발이 되었다. 사슴같은 눈망울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따위로 말할 거면 그냥 나가. 나한테 접근하지마. 꺼져!“

쾅.

뭘까. 지금 이 상황은 뭘까. 아무리 반추해봐도 파악이 제대로 안 되었다. 하지만 해야 할 행위는 단 하나였다. 일단 지금 떠야 한다. 튀어야 한다.

구석탱이에 놓인 핸드폰 가방에서 내 걸 꺼냈다. 그리고 당장 숙소로 돌아가 배낭을 챙겼다. 자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살금 살금 걸어 나왔다. 문을 나와 뛰었다. 미친 듯이 뛰었다. 시간은 새벽 두시였다.

뛰었다. 냅다 뛰었다. 아까의 그 예배 분위기와 험악했던 목사의 표정. 광기에 어린, 식은이가 될 하은이. 모든 게 이상한 경험이었다. 여자 하나 사귀려고 이 짓까지 해야 하나. 후회는 지금에 와서야 하는 것이고, 당시에는 그냥 도망가야 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뛰고 또 뛰었지만 길이 나오지 않았다. 데이터도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겨울이라서 몹시 추웠다. 롱패딩으로 다리를 가렸지만 시린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시간을 계속 달렸을까. 간신히 편의점을 발견했다.

들어가서 몸을 좀 녹이고, 택시를 불렀다. 계속 잡히지 않다가 간신히 하나가 왔다. 지도를 포천 끝자락에 와 있었다. 경기도 어딘가 라고 공지된 곳이, 서울보다 개성이 더 가까운 곳이었다.

택시를 타고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덟시 반 첫차 표를 끊고 정류장에서 쪽잠을 잤다. 규모가 크지 않아서 정류장 내 난로에 의지해야 했다. 꾀죄죄한 차림의 아저씨 둘이 내 옆에서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같이 반쯤 누워 있었다.

버스에 올랐다. 졸려서 잠을 잤지만, 개운하지는 않았다. 집까지 네시간 반의 시간. 핸드폰을 켜서 아까 얼핏 들었던 목사의 이름을 검색했다.

문만식.

결과가 나왔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똑똑히 본 얼굴이었다. ‘그것이 알고싶냐’ 250회. 두 얼굴의 목사 문만식. 한국에서 사백명의 여신도를 강간했던 인간. 러시아로 도피. 포기를 모르는 자였기에 또 사이비 종교를 전파. 속칭 ‘코리안 라스푸틴’이라 불려 레드 마피아와 올리가르키들도 학을 뗄 정도. 인터폴 적색 수배로 인해 러시아 경찰에 의해 검거. 14년 옥살이를 마치고 다시 나와 활동중.

이름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그 전에 쌓아 놓았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서 였다. 신도들은 14년 문만식 목사님의 고행 동안 꿋꿋이 기다려서 그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감옥 안에서도 교도소장을 매수해 여자를 붙여주었다고 한다. 이번에 청년들을 모아 했던 수련회는, 나름 저 양반의 벤쳐 사업이었던 셈이었다.

이후, 식은이가 된 하은이를 학교에서 본 기억이 없다. 일부러 신학대 건물을 돌아서 간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회의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식은이가 된 하은이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하진 않았지만, 좋아했던 여자애라서 가끔 기억이 난다. 그나저나 15만원 짜리 수련회 비용은 더럽게 비쌌다.

그렇게 누구도 축복하지 않았던 새내기의 크리스마스는 끝났다.

4. 사나운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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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 배우 조장슥 등장)

야 너두 현자 될 수 있어.

/

피식.

얼탱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는 게 참 신기하다.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명상 음악을 틀었더니 저딴 광고가 나오지 않는가. 그래도 실소라도 하여 잠깐이라도 즐거웠으니, 좋은 건가.

손이 덜덜덜 떨렸다. 후련함과 두려움 그 사이의 감정이 왔다 갔다 했다. 부재중 전화 140통, 카카오톡 메시지 320통. 인싸가 되고 싶어 발악했던 때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갑자기 하루 아침에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제 나는 폭로를 했다.

그렇다고 뭐 교수들의 비위 행위나 누군가의 살인 계획을 제보한 것은 아니다. 지난 1년동안 나한테 닥쳤던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그걸 폭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글을 썼고, 사람들이 봤고, 어디인지 유추했고, 특정 집단이 드러났고, 그 놈들이 제 발 저려서 똥볼을 찼고, 사람들이 격분했고, 내 신상이 까발려졌고, 하루치의 안줏거리로 제격인. 그런 존재가 되었다.

대학 입학 후 1년이 지나고, 남들이 군대를 하나 둘 씩 갈 때, 댄스 동아리에 입부하였다. 동아리명은, ”매일 춤추는 아기들“이란 뜻의 ‘매추라기’였다. 사회에 들어가는 어른이 되기 전의 아기 로서 매일을 즐기자 뭐 대충 그런 뜻이었다고 한다.

동아리에 들어간 이유는, 결국 여자 때문이었다. 댄스 동아리에는 여자가 많잖아. ‘이전까지의 나를 바꿔 보고 싶었다’ 혹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는 거창한 목표는 집어 치우자.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애들 많으니까. 그냥 걔네들하고 어울려 놀다 보면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황연성 일당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걔네들이 어떤 존재인지 간단히 요약하면, 새내기 때 나와 썸 잘타던 여자애 뺏은 놈이 오피니언 리더로 있는 집단이다. 황연성, 민혁우, 변우상.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게임 잘하고 입 잘 터는 슈퍼 인싸로,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섹드립 잘치는 능글맞은 남자애로 기억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연락을 끊고 살았다. 운동권 활동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아무튼 동아리 OT에서 걔네들을 보니, 밥맛과 술맛이 확 떨어졌다. 그런 나를 보며 황연성은

”어! 형! 왔어? 내가 예전에는 많이 미안했다. 설마 그것 땜에 지금까지 화난 거야? 에이 설마 여자 때문에? 형 이런 사람이었어? 이제 다 풀자. 내가 예전에는 진짜 진짜 미안했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생각해 보니 별 일 아닌 것 같았다. 일단 과거는 과거에 맡기고 현재에 충실해야 되지 않겠는가. 동아리 적응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댄스 동아리의 분위기는 운동권과는 전혀 달랐다. 운동권 친구들은 어쨌든 거시 담론을 추구하는 존재다 보니 말에 조심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병신’같은 단어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니까 절대 쓰지 않았다. 뭐 내부가 곪아 있던, 그렇지 않던 대외적으로는 선(善)을 지향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댄스 동아리는 아예 다르다. 구성원도 공대쪽 계열부터 국제대까지 다양했다. 그러다 보니 인권감수성과는 아예 척을 졌다. 병신샷은 기본이요, 육두 문자는 술자리 분위기를 살리는 촉매제였다. PC성향이 있으면 진지충으로 몰아 가기도 했다.

운동권 모임에서 ”와 너 남자답다.“라는 표현을 하면 빻은 소리 한다고들 많이 한다. 반면, 댄스 동아리에서는 꼬추 떼라는 말을 서로에게 하곤 한다. 감수성을 빼고 보니, 나 스스로 굉장히 많은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의든 타의든, 의무적으로 쳤던 울타리를 걷어 내니, 뭔지 모르게 자유로웠다.

그렇게 동아리 모임에 꾸준히 나갔다. 성비가 여자 7 남자 3이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여자애들과 부대끼게 되었다. 매번 새로운 향수, 화장품, 샴푸 냄새를 맡았다. 매일 매일이 신선했다. 하나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예쁜 사람은 나한테만 예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디서 그렇게 잘들 사귀는지, 프로필 사진에는 남자애들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그러나, 얘네와 사귀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솔로로서의 허전함은, 동아리의 소속감으로 충분히 채웠으니까. 무대에 선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했을 내가, 무대 의상을 입고 적당한 메이크업을 한 채 무대에 서면 박수를 받는다.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서며 환호를 받는다.

비록, 조그마한 무대였지만 의미는 남달랐다. 비록 춤을 잘 추지는 못했지만, 선배와 동기들을 열심히 따라가며 최선을 다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뒷풀이 자리에서의 훈훈한 분위기로 무마되었다.

선배들을 따라 옆 학교로 공연도 가기도 하고, 고등학교에서 소정의 돈을 지급 받고 춤을 추기도 했다. 물론, 보통 잘 추는 부원들이 대표로 가서 하기에, 나는 짐꾼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무대에서 멋지고 아름답게 춤추는 저 사람들과 내가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있었으니까.

외모를 꾸미는 날이 많아지고, 옷차림에도 관심을 가지다 보니 번호를 물어보는 여자애들도 몇 명 있었다. 물론,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 쳐 내서 문제였지만. 내가 관심 있는 애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내가 관심이 없는 아이러니.

학점은 농부마냥 C를 뿌려 댔고, 결석은 밥먹듯이 했다. 그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대학생이잖아.“

취업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

”연희대잖아.“

그렇게 로스쿨, 대기업과 같은 선택지를 놓아 버리는 줄도 모르고, 아껴 써도 모자랄 시간을 펑펑 써댔다. 비둘기와 다를 바 없었다. 정신머리를 유흥에 처박아 두고, 다가 올 취업 시장을 애써 외면했다. 내가 그 쪽을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밤마다 산촌의 감성 주점에서 신나게 춤을 추다 보면, 내가 마치 실탄소년단이라도 된 것 같았다. 비록 그 춤사위는 허접했을지라도 열정 만큼은 누구 못지 않았다. 자기 비하가 주제 파악인 줄 알았던 소년은, 난생 처음 쏟아지는 조그마한 관심들에 목을 메었다.

그게 진짜 내 목을 비틀 줄은 상상도 못한 채.

공연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강도의 업무라고 볼 수 있다. 합이 맞아야 하고,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결국 잘하는 사람이 못하는 사람을 오더를 내릴 수 밖에 없다. 못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맞춰야만 한다. 수직적인 구조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춤을 춰 본 적이 없는 나는, 당연히 춤을 잘 추는 선배 및 동기들에게 맞출 수 밖에 없었다. 나 포함 남자는 6명이었기에, 당연히 황연성 일당과 함께 공연을 자주 하였다. 황연성은 고등학교 때도 춤 동아리 부장을 맡은 경력이 있는지라, 당연히 동아리에서도 팀장을 도맡아 했다. 민혁우 변우상도 작년 1년 동안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한 터라, 나보다는 훨씬 잘 추었다.

따라서 나는 황연성 일당의 지시에 묵묵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뭐라도 항변하면

”형, 춤도 못 추면, 그냥 우리 말 들어. 그게 맞아.“

라고 찍어 눌렀다.

표현 방식은 점차 과격해졌다.

”아 이호건 춤 존나 못추네. 혹시 의족임?“

”아 형! 솔직히 여자 만나러 왔잖아. 그럼 최소한의 실력은 갖추어야 애들이 좀 봐주지 않겠어?“

”아니, 진짜 무슨 목각 인형도 아니고 ㅋㅋㅋ. 형은 진짜 춤에 소질이 없다.“

”연습 한 거 맞아? 영상 보고 안무 따라니까? 아니 다른 애들 연습하는 거 안 보여?“

그러고 열심히 안무를 따면

”아, 형은 그냥 안무 따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고등학교 때부터 춤과 운동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이 일진들을 감쌀 때, 구석에서 버섯처럼 공부나 했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일진들이 공격수를 맡아 골을 넣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수비수를 떠맡겨 골이 먹혔을 때 욕받이 역할을 한 게 다였으니.

운동과 담을 쌓았던 지난 날들을 원망할 새도 없었다. 공연 준비는 숨가쁘게 진행되었고 따라기 바빴다. 그래서 황연성 일당의 ‘장난’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춤을 제외한 다른 영역까지, 황연성 일당의 명령이 시작되었다.

”형, 내가 물 가져 오라 그랬지. 왜 안 가져와? 제대로 하는게 뭐야?“

춤 실력은 동아리 내 암묵적 계급을 형성했다. 회의 때의 발언권, 곡 선택권 모두 넘어가는 상태. 정치학을 공부한다는 인간이 권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 슬슬 선을 넘을 때가 잦아졌다.

”이번에 조명 어따 설치하지? 아 이호건 거기에다 비추자. 여자애들 넘어가지 않을까?“

”형. 젖꼭지 좀 찔렀다고 삐지기야? 장난이야 장난.“

”형. 걔도 그냥 장난으로 퉁 친다니까. 갑자기 남사친이 ‘섹스하자’고 뜬금없이 보내면 당연히 장난인 줄 알지.“

”형, 왤케 소극적이야. 그러니까. 지현이도 나한테 뺏기지.“

이렇게까지 들었는데 반응을 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또 그런 건 아니다. 정색도 빨아보고 화도 냈다. ”하지말라고!“ 라고 하면

”해지뭴레고,“

라고 응수했다. 그러다 더 화내면

”아 형, 삐졌어? 왜 삐지고 그래. 진짜 알았어. 내가 진짜 안할게. 미안해. 진짜 미안해. 감수성 진짜 오지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형 사진 좀 제대로 찍어봐. 형 꼬추 크잖아. 자동 삼각대잖아.“

라는 말을 들었다. 반복.

선배들하고 상담도 해봤다. 나와 같이 동고동락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어 주었던 선배들은 다들

”황연성이랑 걔네들이 사실 나쁜 애들은 아닌데 장난이 좀 짓궂지. 근데 다 그거 너 좋아해서 하는 거야. 좀 더 마음을 열어봐.“

라고 조언했다. 굉장히 헷갈렸다. 내가 잘못하는 건가? 운동권 출신이라 예민보스로 반응하는 건가? 이정도면 쿨하게 넘어가는 건가? 나도 쟤네들처럼 섹드립을 쳐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까?

때로는 나의 말에 공감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부원들도 있었다.

”헐.... 힘들었겠다. 나 걔네들 그런 애들인지 몰랐어. 다시 보게 되네. 앞으로 주의를 줘야 겠다.“

라고 말하는 애들도 결국 걔네들과 셀카를 찍으며 인스타에 전시해 놓고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대학 생활을 했다.

알 수 없는 빡침과 분노, 그리고 걔네들 앞에서 아무 짓도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무기력감.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화를 내면 낼수록, 나만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이호건은 예민해.

이호건은 아직 어려.

술에 잔뜩 취하고, 뒷풀이 자리의 구석에서 잠깐 눈을 붙였을 때 들려온 말들이다. 그렇게 나를 바꾸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머릿속에는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 밀그램의 실험에서, 죄수의 역할을 자처한 결과였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회계부장이 되었다. 하고 싶어서 했다기 보다는, 할 사람이 없어서 억지로 떠맡았다. 그래도 이런 직책을 맡고 있으면 조금 덜 지랄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였다.

어림도 없지.

일적으로 얽히니 진정으로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가 되었다. 꼬투리 잡아서 시도때도 없이 털어댔다. 회계야 말로 털기 가장 좋은 직별 아니겠나. 돈 관리의 엄정함을 빌미로, 나를 향해 갈궈대는 그 모든 말들을 ‘필요악’으로 치부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뭘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사실, 나와 같이 들어온 대부분의 부원들이 동아리를 나간 상태였다. 당연하지. 자기들끼리 하는 친목질, 친목을 빌미로 하는 서열질, ‘공연’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위한 갑질. 버티는 게 용하다.

나로서 최선의 선택은 나간 사람들에 공감하여, 같이 동아리를 빠져 나왔어야 맞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나간 사람들을 욕하기 바빴다. 쟤네들은 인내심이 없다. 왜 냉정한 피드백을 견디질 못하고 나가느냐.

정치학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지점이 있다. 왜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이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는 최상층 구조에게 동조하냐 이 말이다. 참 어리석고 우둔한 집단이다. 자신의 이익이 어디 달려 있는 지를 모르는.

딱 내가 했던 짓이다. 매추라기의 최상층부와 어울려 동아리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을 욕하면, 내가 마치 최상층부와 같은 급의 사람이라고 착각하였다. 같이 신나게 뒷담을 까는 순간이 지나면, 황연성 일당이 마신 물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동아리는 내게 전부였다. 처음으로 나에게 소속감을 부여했던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행복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은 동아리가, 알고 보니 빌런들의 소굴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동아리를 한 것이 즐거웠다기 보다는, 즐거워야 했기에 즐거워했던 것 같다.

공연의 화려함과 갈굼의 어두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였다. 솔직히 좋았던 기억들도 물론 있다. 그걸로나마 힘들었던 순간을 덮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추악한 추억들은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했다. 잠이 안 왔다. 굉장히 억울했다. 그러나 막상 황연성 일당과 마주치면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오, 이제 좀 봐줄만 하네.“

이딴 칭찬같은 비아냥을 들으면 좋다고 허허실실 대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또 쒸익쒸익 분을 삭히겠지. 지들이 뭐라고.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동아리를 나갔다.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황연성 일당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진짜 힘들었다면 말을 했어야지. 일단, 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형은 회계를 담당하고 있어. 동아리의 큰 축을 담당하는 일원인데, 급작스럽게 나가는 것은 매추라기 전체한테 민폐 아니야? 나갈 때 사과문은 쓰고 나가야 되지 않을까?“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렇게 나는, 문화 혁명 때 홍위병들 앞에서 죄목을 읊조리던 ‘불순분자’처럼, 인스타그램 게시판에다가 나의 잘못을 하나하나 적어가며 사과문을 게시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게시물이었다. 물론, 받았던 성희롱과 갈굼은 싹 빼고.

동아리를 나갔다. 1년 가까이 있었는데, 나갔다.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1년을 열심히 했는데, 물을 흐린 부적응자가 되었다.

카카오톡 친구가 부쩍 늘었던 해였다. 156명인가. 생각해 보면, 요즘은 친구라는 단어를 너무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인스타건 페북이건, 관계를 맺으면 일단 친구로 분류된다. 그런데 친구(親舊)는 친할 친과 옛 구 자를 합친 것 아니겠나. 친하지 않은 친구들을 잔뜩 사귀었다.

그 결과, 친구라고 생각했던 인간들이 모두 지인으로 변했다. 지인으로 변하면 다행히겠지. 몇 명은 원수지간이 되었으니.

이후 하루하루 너절하게 보내기만 했다. 그러던 중 학교 정문에서 공연 홍보를 하는 매추라기 부원들을 보았다. 황연성 일당도 있었다.

마주쳤다. 인사는 해야지 하고 손을 들었는데, 쌩까고 피해갔다.

무시해. 무시해.

나지막이 들려오는 소리.

아?

”안녕하세요. 매추라기 공연 연희대 천주년 기념관에서 합니다!“

뭔가 이상한데.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잖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매추라기 공연 여섯시에 있습니다. 많은 관람 부탁 드려요!“

여름방학 여행도 다 버리고 주 3일 연습 다 나간 유일한 부원인데.

새벽 연습도 꼬박꼬박 나갔는데. 황연성 일당이 갈궈대는거 참아가며.

”여름방학 내내 열심히 했어요!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후배들 밥도 사주고, 다들 친하게 지냈잖아. 좋아요도 눌러주고.

야. 이러면 안 되잖아. 이러면. 이러면 안 되잖아. 그 연습 나도 했다고.

”관심 있으시면 인스타나 페북 계정 좋아요 부탁 드립니다!“

이러면 안 되잖아. 진짜로.

진정이 안 되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분명히 황연성 일당이 잘못했겠지. 아닌가. ‘남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나. 내가 민감한건가. 속이 좁은건가. 왜 이렇게 화가 나고 열불이 뻗치지. 다른 애들은 저 정도 강도의 갈굼은 다들 참고 사는 건가.

궁금했다. 어떤 걸까. 정말 내가 겪은 게 부당하고 빡치는 행위인가.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싶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에 와서 맥주를 들이켰다. 벌컥벌컥 마셔서 목젖이 아파왔다. 그러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걸 누구한테 물어 봐야 하나.

사람들한테 물어보자. 나를 아는 사람 말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알지 않을까.

노트북을 열었다.

게시일: 20XX년 11월 18일 10:00

대나무숲은 아무 얘기나 해도 되는 거죠? 국가 권력의 최고 통수권자인 임금님 귀를 가지고 당나귀 귀라고 놀려대도 허용했던 공론장이니까. 그러면 저도 뭔가를 나누고 싶어요.

고등학교 사회 문화 시간에 동아리는 비공식 조직이라고 배웠습니다. 비공식 조직은 구성원들 간의 위계가 없고 사회 심리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겪으니 조금 달랐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가 있는 걸까요. ‘위계 없는 위계’ 속에 하루하루 지냈던 날들을 말하고 싶네요.

달라지고 싶었던 올해 초, 춤을 추는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설렘과 긴장 속에서 선배들은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못추는 사람도 다 잘 출 수 있다. 노력하면 다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동아리다. 즐기러 오는 것이다.

물론 즐긴다고 해서 연습을 대충 해서는 안 되겠죠. 모든 연습에 참여하고, 안무도 열심히 숙지해 갔습니다. 잘 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해서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하고 말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다같이 뒷풀이를 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집단 의식을 느꼈습니다.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 공부에 파묻혔던 지난 날을 이제야 보상받는다는 쾌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에 취해, 제가 지속적으로 겪었던 폭력에 대해서 애써 부정하려 했나 봅니다.

처음은 가벼웠습니다.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장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춤 실력에 따라 위계는 암묵적으로 나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잘 추는 사람들이 못 추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를 하곤 했습니다.

이는 춤 외적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술자리에서나, 단체 채팅방에서나. 연습 때 놀림을 받던 저는, 거기서도 또 놀림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게 내 캐릭터겠지. 나를 좋아해서 하는 거겠지.

이상하다 느낄 때 쯤, ‘장난’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젖꼭지를 찌르거나, 엉덩이를 아무렇지 않게 발로 차거나. 제 핸드폰을 가지고 여사친한테 ‘섹스하자’고 보내거나. 심지어는 무대 조명을 제 성기에 비추라고 단체 채팅방에서 말했을 정도니까요. 그 당시 채팅방은 ㅋ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 말라고 기분 나쁘다고 해도, 화를 낸 제가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였습니다.

기발한 논리체계였습니다. 위와 같은 분위기에 잘 적응하여 승자의 위치에 오르면 동아리에 남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고 방출되면 그냥 겉돌다 빠진 부적응자. 적자 생존의 논리를 보아 하니,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을 적용할 수 있겠네요. 동아리 진화론이라고 합시다.

놀림 받을수록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할수록 놀림 받았습니다. 제가 겪은 아픔은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까요. 그 어떤 것도 보상할 수 없겠죠. 아니, 그 누구도 보상하지 ‘않겠죠’. 감수성 많은 단과대라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잘못이겠죠.

친한 사이니까, 네가 예민한 것이라고들 많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둔감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은 신체와는 다르게, 아무리 맞닥뜨려도 무뎌지지가 않더군요. 오히려 민감도는 더욱 증가할 뿐이었습니다. 선배들한테 아무리 말을 하더라도, 다들 그저 그렇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저에게 했던 가해들은, 그 어떤 사람도 기억하지 않고 잊혀지겠죠. 가해자들은 멋진 선배로 기억되겠죠. 국방의 의무마저 제대로 수행한다면, 거칠 것이 없겠죠. 아쉽네요. 저도 인싸이고 싶었는데. 각광을 받고 싶었는데.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는 존재하는 시스템을 탓해야지요. 선배들한테 말을 해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저에게 깊은 공감을 하며 가해자들 뒷담을 신나게 까지만, 뒤를 돌아보니 같이 셀카 찍고 인스타 피드에 전시하고 있네요.

그래요. 제 인생 살아야지요. 어차피 지나가는 젊음이라는데, 너무 붙잡아 두려 했나 봅니다. 좋은 추억이 될 순 없겠지만, 좋은 경험은 되겠지요.

말이 좀 횡설수설한 것 같네요. 그랬습니다. 좋은 기억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쁜 기억이 더욱 또렷히 있습니다. 좋은 기억으론 나쁜 기억을 덮기엔, 제 자신이 너무 쫌생인가 봅니다.

저는 이러한 행위를 ‘동아리 폭력’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친근함 속에 은밀히 감추어진, 하지만 그 위력은 대놓고 하는 것보다 더욱 더 끔찍한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너무 단순했는지도 모릅니다. 나한테 벌어진 나쁜 일을, 남들도 나쁘게 봐주길 바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너무 복잡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친구’ 사이에 벌어진 헤프닝을, 이렇게까지 가지고 가다니요.

동아리를 나가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느껴집니다.

망상에 빠졌던 시간을 지나, 잊고 있던 진짜 꿈을 이루도록 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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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진짜 화가 나고 어이가 없습니다. 글을 보는데도 이렇게 화가 나네요. 당사자는 어땠을까요. 어떤 동아리인지 공개하고 정의구현 해야 한다고 봅니다.

???: @??? 야 여기 거기 아니냐 ㅋㅋㅋ. 유명하잖아.

ㄴ???: 아....그..... 병아리 동아리?

(익명): 설마 제가 했던 동아리인가 싶은데..... 정황을 보니 대충 맞는 것 같아요. 친목 엄청 심하고 자기들끼리 성적인 농담 주고받고. 적응 못하면 나가고. 막상 다른 동아리 가니까 분위기가 완전 다르더라구요. 피해자분도 이번 동아리 하나로 일반화하지 말고, 용기 내어서 다른 곳에서 좋은 추억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경험만 쌓기에는 우리의 젊음이 너무 짧으니까요...ㅠ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황연성: 안녕하세요. 매추라기 팀장 황연성입니다. 연희대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도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이러한 일로 인사드리게 되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저희 동아리에서 이번 1년동안 활동했습니다. 나중에는 간부 일도 맡아서 했을 정도로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혼자만의 착각으로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점은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물론, 글쓴이는 동아리를 처음 들어올 당시 춤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아리원 모두 글쓴이의 춤 실력 향상을 위해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었을 비판도 있었겠지만, 공연 때까지 하나하나 지도해 주어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동아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을 고려하였을 때, 따끔한 지적은 불가피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동아리 외적으로 번져간 적은 절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실력에 의해 위계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공연 동아리 특성상, 춤 실력이 미진한 부원은 선배 및 동기들의 피드백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뿐만 아니라, 저 포함 다른 부원들도 이를 인식하고 열심히 공연 준비를 하였습니다.

특히, 사실로 확인되지 않고,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을 마치 사실인 양 부풀려 동아리의 명예를 실추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글쓴이가 동아리를 나간다고 했을 때, 많은 부원들이 이를 말리고 많은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동아리 차원의 노력을 모두 망각하고 혼자만의 왜곡된 기억으로 글을 작성하여 논란을 빚게 된 점은 동아리 차원에서 따로 대응을 할 것입니다.

ㄴ???: 누가 맞는거임?

ㄴ???: 일단 중립기어 박고 본다.

ㄴ???: 물론,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확인할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동아리 내부에서 폭력 사건이 벌어졌고 글에서도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건가요?

ㄴ???: 그나저나 진짜 웃기네 ㅋㅋㅋ. 큰 사건이 하나 터지면 작은 사건이 이미 수차례 반복되었다는 거고. 동아리 팀장이란 사람이 와서 글쓴이의 모든 기억은 왜곡되었다고만 주장하고. 심지어 익명 댓글에서도 피해를 당한 사례가 수차례 튀어나오는데 그건 아무 상관 없다? 양쪽 입장을 들어봐야겠지만, 양쪽 입장을 들어보니 누가 맞는 건지 명확하게 나오네요.

???: @??? ㄹㅇ 개꿀잼이다. 시험기간에는 이런것도 다 챙겨보게 되는 듯

ㄴ ???: 아 이것 때문에 시간 다 뺏겼잖아 ㅡㅡ 근데 개꿀잼은 맞는 듯.

(익명) : 그나저나 팀장 말마따나 동아리 차원에서 따로 대응을 한다는 건 무슨 얘기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일단 위에서 언급된 성희롱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는데. 같은 단과대로 추정되는 학생으로서, 굉장히 부끄럽네요.

(그 외 댓글 140개)

핸드폰을 켜니 참 별별 카톡이 다 와있다. 유형을 대충 나눠 보자.

1. 배은망덕형

[임경미 - 매추라기: 야. 솔직히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 우리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너 힘들 때, 연습하기 버거웠을 때 하나하나 도와줬던 거 기억 안나? 솔직히 네가 황연성 애들한테 그렇게 조리돌림당한거 몰랐어.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억 하나로 동아리 전체를 매도하는 건 잘못되지 않아?

2. 너도나도형

[우수연 - 매추라기: 오빠. 이번 일에 대해서는 진짜 유감이야. 오빠도 우리가 임경미한테 당하고 있을 때 아무 말도 없었잖아. 그래도 우리는 버티고 버텨서 간신히 동아리 유지했는데. 그냥 이렇게 말하고 떠나는게 말이나 되는거야? 지금 오빠는 동아리 전체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거 몰라? 우리와 함께하였던 지난 1년의 시간이 그렇게 가치 없는 시간들이었던 거야?

3. 나만빼줘형

[안유비 - 매추라기: 그동안 힘들었지..... 미안해. 그때 술자리에서 이런거 비슷한 얘기 했던 것 같은데. 그때 많이 못 들어줬던 것 같다. 그냥 잠깐 하는 푸념이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오빠한테 도움이나 될까 얘기를 들어 줬지만, 아마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아.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사과할게. 진짜로 미안해.

4. 잘살아라형

[현호성 - 매추라기: 호건. 형으로서 너무 미안하다. 네가 그동안 어떤 감정이었을지 감히 짐작도 안 될 정도이니까. 동아리를 이끌어야 할 선배로서, 너에 대한 관심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밥약을 했을 때 네가 무의식적으로 털어 놓던 말들. 그것에 좀 더 집중을 하여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난 결국 내가 편한 대로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게 이런 결과를 낳게 되었네. 서운하게 했던 것이 있다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번 일에 기죽지 말고 앞으로는 더 당당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5. 니잘못임형

[강영제 - 매추라기: 형. 솔직히 말할게. 엄청나게 큰 잘못을 하고 있는거야. 형은 지금 매추라기의 민주적 정당성을 짓밟고 인민 재판을 건 거지. 그동안 매추라기 부원들이 형의 말을 얼마나 열심히 들어줬는지 다 알고 하는 거잖아? 비록 동아리 차원에서의 노력은 없었지만, 개인적 차원에서의 노력은 다들 기울였단 것 알고 있지? 그런데 이걸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글을 올렸다는 것. 형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은 충분히 져야 한다고 생각해.

답장은 안하고 읽씹만 했다. 답장을 하는 순간, 대화를 시작할 것이고,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나의 약한 모습이 드러나고. 그러면 쟤네들은 그걸 빌미로 뭔가를 확대 재생산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카톡만 보면 그래도 좀 착한 척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 이번에는 동아리 내부에서 나를 지지하는 친구가 보내 온 내부고발 카톡이다. 한번 보자.

[민혁우 - 매추라기 : ㅅㅂ 와 진짜 좆됐네. 지금 이거 어떻게 되는거임? 아니 왜 혼자 난리치는 거지? 그때 충분히 얘기 끝냈잖아. 그러면 된 거 아닌가?

[황연성 – 매추라기 : 내말이 ㅋㅋㅋㅋ. 솔직히 동아리 활동하면서 개징징거릴 때 경미누나가 전담마크 해준것도 모르나?

[변우상 – 매추라기: 힘을 숨긴 찐따가 힘을 풀면 저렇게 되는구나..... 진짜 미친놈이었네

[임경미 – 매추라기 ; 그때 카톡으로 고민 상담한다고 애썼는데 저걸 저딴 식으로 풀어버리네. 진짜 은혜도 모르고 춤도 못추는 쓰레기였네. 개빡친다.

[안유비 – 매추라기 : 그나저나 무슨 적자생존의 논리야;;; 혼자만의 세상에서 만든 도식에 쌓여가지고. 동아리 활동 적응 못해서 나간 걸 거창하게도 포장해 놓았네.

[우수연 – 매추라기 : 그러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공연 끝내고 어디 자랑도 못하겠다. 개오바야 진짜 막막하다.

[강영제 – 매추라기 : 그러니까 실력도 없는 사람이 의욕이 앞서면 저렇게 되는 거야.

[현호상 – 매추라기 : 일단 대충 사태 진압을 해야돼. 저게 어떻게 퍼질지 몰라. 연성아. 일단 네가 입장문 발표하는 걸로 하자.

저기 있는 모두는, 황연성 일당과 셀카를 찍으며 행복하게 놀았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내부고발을 해 주었던, 연희대 산업보안학과 김우현 학우님께 감사의 인사를 표합니다.

처음에는 짜릿했다. 내 글에 매추라기 일당과 학교가 움직인다는 사실이 말이다. 총동아리연합회에서는, 내가 쓴 글이 올라오자마자 전 동아리 회장을 소집해 피해 사실을 접수했다. 매추라기와 관련된 욕들, 그리고 부원들의 신상이 익명 게시판에 퍼져 나갔다. 다른 학교까지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신상도 자연스럽게 퍼질 수 밖에 없었다.

???: 아 뭐야? 남자야? 존나 찌질하네 ㅋㅋㅋㅋㅋ 좀 넘어가지 그걸 못 참고 에휴.

슬슬 이런 말들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추라기 애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전열을 재정비하고, 나를 공격하는 댓글을 달고 서로가 좋아요를 신나게 누르기 시작했다.

또 익명 게시판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곤 했다.

(익명) 그런데 글 올린 애, 지금 정신병 환자 코스프레 하고 다닌다는데. 너무 한쪽 편만 들지 말기를 바란다.

ㄴ???: 님혹매? 님 혹시 매추라기?

ㄴ???: 2222222

ㄴ???: 3333333

ㄴ???: 응 매추라기~

익명으로 내 신상과, 나와 관련된 사건들이 나돌아다닌다는 것은 굉장히 큰 공포였다. 그리고 사실, 부끄러웠다. 인싸가 되고 싶었는데, 차라리 아싸가 되는 게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최대한 괜찮은 척을 했다. “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즐겁다니까.” 그리고 시간만 나면 익명 게시판에 들어가 나와 관련된 글들이 올라오는 지 확인하였다. 매추라기를 욕하는 글이면 쾌감을, 나를 욕하는 글이면 증오를 느꼈다.

그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 쌓아 왔던 인간 관계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내가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은 곧 매추라기 부원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나는 혼자였고, 걔네는 수십명이었다. 제 3자들은 제 3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사건이 터지고 상담을 하니, 다들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네 입장도 알겠어. 그런데 걔네 입장도 들어 봐야지. 한쪽 편만 드는 건 옳은 자세는 아니잖아? 나는 잘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른 말이었으니. 매추라기에 대한 소문은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 다들 비둘기처럼 사는 건지.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애초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는지.

처음에 나를 지지했던 친구들도, 상황이 점점 복잡해지고 꼬여 가니 입을 다물었다. 평소엔 사회 이슈에 대해 나불대던 입들이, 정작 자기 친구들에 관한 얘기가 나오니 꾹 다물었다. 예전에는 동네 자갈만도 못하게 대하였던 침묵을, 이제 와서 금보다 더 값지게 취급하였다.

대중들은 피라니아와 같다. 피라니아는 대식가가 아니다. 그저 먹잇감을 ‘한 입’만 먹고 자기 갈 길 유유히 간다. 물소가 피라니아 호수에 빠졌을 때, 수천 마리의 한 입들이 모여 뼈만 앙상하게 남긴다.

대중들은 매추라기와 이호건이라는 먹잇감을 ‘한 번’만 보고 댓글을 단다. 그리고 그 댓글들이 쌓여서 수백개가 된다. 그 안에는 내 욕, 매추라기 욕, 재밌어 하는 인간들 등. 대중은 선의도 악의도 없다. 다만, 재미를 위해서는 타인의 파멸도 즐겁게 관람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게 나이든, 매추라기든.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한 반에 한명씩은 매추라기 부원이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학교를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큰길 보다는 샛길로 다녔고, 학식을 먹기 보다는 화장실에서 끼니를 떼웠다. 다행히 배는 적절히 고파 왔다. 오히려 정신의 허기짐을 신체의 포만감으로 채우려고 와구와구 먹어댔다. 깍두기 씹는 소리가 화장실에서 너무 크게 울렸다.

그렇게 도시락 잔반을 변기통에 버리면서, 이 짓거리는 도저히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도 휴학을 했다. 350만원 중 100만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부모님과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역시 기댈 곳은 부모님밖에 없다. 황연성 일당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글을 올려서 학교 분위기가 어떤지. 내 신상과 쟤네 신상이 지금 익명 게시판에 나돌아다니고 있다. 너무 힘들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는

“미친새끼. 그것도 못 버티는 거야? 대학교 좋은 곳 보내 놨더니, 춤추고 난리치고 있다가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한심한 새끼.”

어?

“그러니까. 사내 새끼면 그냥 아갈창 한 대 갈기던지. 뒤에서 뭐야. 찌질하게.”

“여보.... 그만해요. 호건이 힘들잖아.”

“힘들긴 뭘. 앞으로 힘들 날이 얼마나 많은데. 군대 갔다오면 아무렇지 않을 상황 가지고 징징대다니. 그러게 군대 미룰 때부터 알아봤다. 한심한 놈.”

현실감이 없었다. 위로의 말을 기대했기에.

“아빠. 나 지금 힘들다니까. 진짜 미칠 것 같다고.”

“내가 아직도 네 응석 받아줄 나이로 보여? 스무살 넘게 잘 키워 놨으면 빨리 군대 갔다가 취직할 생각을 해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철 없이 살래?”

가슴이 답답했다.

“뭐 보아 하니 애들이 심하게 한 것도 아니고. 장난으로 뭣 좀 한 것 가지고 우리 때는 말이야. 그런 것보다 훨씬 심한 일들도 많았어”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씨이발.

차마 입밖에 낼 용기는 없어서 속으로만 외쳤다.

“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부라려? 야. 내가 니 눈치를 보면서 집에 있어야겠냐? 빨리 정신 차리고 과제나 마저 해.”

더 이상 있다가는 미쳐 버릴 것 같아서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갔다.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벽에 머리를 박았다.

“으아아아!”

두 번 더 박았다.

”으아아아!“

한 번 더 박으려다가, 이마가 너무 아파서 그만 두었다.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마침 책장이 보였다. 여러 종류의 책들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다. 고등학교와 재수 때 열심히 공부했던 참고서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사주셨던 웬수나라 친구나라 세트들. 대학교 전공 서적들. 삼국지. 등등.

땅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발기발기 찢기 시작했다.

”씨발 씨발 씨발.“

아빠가 없으니 입으로 잘만 나왔다.

”야 이호건. 야 이 새끼야. 문 안 열어?“

문을 열라고 할수록 더욱 열지 않았다. 침대로 문을 막았다. 책장의 책들은 모두 땅바닥에 찢겨져 있다. 더 찢을 책이 없어서 찢어졌던 페이지를 더 잘게 찢었다.

꽈직.

아빠가 골프채로 문을 부쉈다. 당시의 나는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으며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종이를 찢으며 울부 짖고 있었다. 아들의 처음 보는 광기를 보셨을 것이다.

굉장히 당황스러우셨으리라. 그리고 아마 무서우셨으리라.

엄마는 너무 당황해서 주저 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종이를 계속해서 북북 찢을 뿐이었다.

딩동.

벨이 울렸다.

”저기요 죄송한데, 밑층 사는 주민으로서 너무 시끄럽거든요? 조금만 조용히 해 주시면 안될까요.“

”아...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좀 소란스럽게 했나 보네요.“

”아니 아이가 몇 살인데요?“

”아.... 스물 둘입니다.“

”네? 아.. 네 조금만 조용히 시켜 주세요.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소음도 아니면서 첫 대화를 나눈 이웃에게 죄송하다고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성질이 뻗친 아빠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더 찢을 것이 없던 나는, 수북이 쌓인 종이 위에 누웠다.

그리고 힘이 빠져 이내 잠이 들었다.

잘게 찢긴 종이들이 옷 속으로 파고 들었다.

/

일주일이 지났다. 쉴 새 없이 울리던 핸드폰도 진동이 끊겼다. 대중들은 매추라기 사태에 대해 흥미가 떨어졌는지,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매추라기로 추정되는 어느 누군가는 익명 게시판에 계속 글을 리젠시켰다.

(익명) 그나저나 매추라기 진짜 불쌍하지 않냐?

조금 진정되다가도, 저딴 글이 하나라도 올라오면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쉽지 않았다. 뭐 당연히 ㄴ님혹매? 라며 초기 진압이 완료 되었긴 했지만.

그러던 중 같이 사회 운동을 했던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작년에 글을 기고했던 학내 계간지의 편집장이었다. 당시는 사회과학대학교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다.

“호건아. 지금 상황 봤는데. 이거 아무래도 대책위 꾸려야 될 것 같아.”

“대책위가 뭔데.”

“피해자 대책 위원회. 그러니까 피해 사실이 발생했을 때, 학과나 단과대 차원에서 피해자를 위해서 일정 정도 지원을 해 주는 거지. 진상도 조사하고 그에 대한 처벌도 한번 논의해 보고. 학교 차원에다가 요청을 하는 거지.”

“아... 일 커지게 만들기는 싫은데.:

”호건아. 충고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야. 다른 학교에도 퍼지고 가해는 계속되고 있고. 이건 학과 단위에서 대책위를 꾸려서 대응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면 고맙지 나야.“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일단 같이 싸워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 체가 굉장히 큰 힘이 될 거니까.”

그렇게 ‘매추라기 동아리 폭력 피해자 대책위’가 설립이 되었다. 사실 운동권 측에서도 매추라기는 벼르고 있었다. 워낙 인권 감수성 개차반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동아리 공연 로고에 키스 마크 박아 넣고 ‘쌔끈한 언니들 상남자 오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같은 문구 써놓으니,

눈에 불을 켜고 갈굴 대상을 찾은 다음, 공론화 하는 것이 운동권 주특기 아니겠나. 성 상품화를 정면으로 배격하는 운동권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일 수 밖에.

어쨌든 도와주러 왔다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크게 없었다. 일단 대자보를 게시하는 것이었다. A2사이즈의 용지에 자필로 폭로하려는 내용을 작성했다. 그리고 중앙 도서관 앞에 붙여서 매추라기가 했던 만행들을 말하였다. 손이 아팠지만, 그간 쌓아놨던 울분은 이런 식으로라도 풀어야 했다.

그 다음은 진상 조사였다. 매추라기 주요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 했다. 이 와중에도 수를 쓰는 놈들이 있었다. 민혁우 같은 경우, 중국에서 13년을 살았지만 국적은 한국이고 당연히 모국어도 한국어다. 하지만 갑자기 중국어가 더 편하다고 하면서, 중국어로 면담할 것을 요청했다. 당연히 통역해 줄 학생 구하느라 애먹었다.

또한 황연성은 공익으로 빠질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지만, 2주 뒤 해병대로 입대하게 되었다. 건장한 젊은이를 공익 근무 요원이 아닌 해병대로 보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전력 증강에 보탬이 되었다는 것을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진상 조사는 이렇게 질질 끌었다. 또한 대책위마저 처음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지기만 했다. 상황 공유를 부탁해 톡을 보내면, 답장이 오기까지 최소 열두시간이 걸렸다. 왜 이렇게 늦냐고 물어 보면

[???: 죄송합니다 ㅠㅠ. 과제하느라 바빠서.

따위의 대답이 돌아 왔으니. 그렇다고 화낼 수는 없었다.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니까. 내가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을까.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무보수로 생면 부지의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니세프 구호 키트를 받은 아프리카 난민들이, 반찬 투정을 할 수는 없잖아.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청했다. 그렇다고 교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었다. 자기 소관 아니라고 수건 돌리듯 업무 떠넘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답은 하나였다. 교수님께 털어 놓는 것이다. 도움은 받지 못하여도, 위로는 받을 수 있겠지.

학과장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면담을 희망한다고 했다.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하셔, 바로 다음 날 보기로 했다.

문을 열고, 교수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쭉 들으시더니 위로의 말을 건네셨다.

“어이구... 힘들었겠네. 안타깝다 참.”

그리고

“근데. 그냥 친구끼리 친하게 좀 지내. 뭘 그런 걸 가지고 다투고 그러냐.”

“네? 네? 아..... 네.”

“그나저나 공부는 잘 하고 있어? 중도휴학 했다며. 어이구 한학기가 참 클텐데 참.”

그 다음 말은 기억이 잘 안난다. 들었긴 들었는데, 머릿 속에 넣지 않았다. 아빠가 했던 말을, 어감만 부드럽게 바꿔서 들었을 뿐이니까.

국제 정치 수업 시간에 ‘현실주의’에 대해서 배웠다. 아무리 인권이니 하면서 빛 좋은 개살구를 마음껏 만들어 낸다고 한들, 이해 관계가 얽히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방을 유대인한테 뚝 떼어 주어도, 캄보디아에서 수백만명이 학살되고 있어도,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수십만명이 탱크에 깔리어도. 나한테 피해만 안 끼치면 장땡인 것이다.

수업에 집중을 안한 결과였던지. 국제관계론 수업에서 배운 아주 기본적인 내용도 깨닫지 못해 이딴 헛짓거리를 했다.

당연한 결과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이제 알았다. 정의를 가르치는 사람이 꼭 정의로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고 지금도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정의로운 글을 쓴다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 관계가 얽히지 않은 이들에게 뭘 더 바라겠나?

애초에 나를 지지한다고 그걸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인가? 결국 나도 크게 보면 남에게 민폐를 끼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열심히 자필로 쓴 대자보가 찢겨서 바람에 나뒹구는 것을 보고, 한참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아이히만에게 유죄 선고를 때리라고 난리를 쳤던 한나 아렌트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야부리를 하도 잘 털어서 결국 성실한 철밥통 아이히만은 유죄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지만, 한나 아렌트라고 뭐가 다를까. 내 생각엔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기 위해 아이히만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결국 다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셈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로 바꿔 책장사를 신나게 해댔다.

폭로(暴露)를 한자 사전에 쳐 보면 ‘사나운暴 이슬露’이라는 뜻이다. 뜬금없지 않나. 사나운 건 이해가 되는 데, 왜 이슬이 들어가는 거지?

막상 해보니 그 뜻이 짐작이 되었다. 이슬은 주로 어느 때 보는가. 덥지고 춥지도 않은 날씨의 새벽에 본다. 상쾌한 아침, 우연찮게 새벽에 일어나 꽃들을 감상할 때 기분 좋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이슬’을 떠올리면, 청량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유명 소주 브랜드이기도 하잖아. 이슬만 먹고 산다는 관용적 표현은 그 사람이 매우 청순하고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폭로를 하면, 가장 산뜻해야 할 이슬마저 사납게 느껴진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날이 서고 두려워진다. 그런 사나움 속에 하루 하루 오들오들 떨면서 버티고 있다.

이제 갈 곳은 군대밖에 없었다. 일단 망할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니까. 그러면 2년 동안 부모님 얼굴도 안 볼 수 있겠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곳이 어딘지 보고, 해군병 638기로 입대를 했다. 그렇게 군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실행했다.

아빠와의 냉전은, 편지 한 통으로 인해 데탕트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유격을 하고 취침 전에 아버지가 쓴 손편지를 받았다.

아빠다.

생각해 보니 너에게 너무도 심하게 대한 것 같구나. 입소하는 날, 내 고집에 휩싸여 너를 바래다 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 미안하다. 내가 글재주가 없어서 길게는 못 쓴다.

교회에 갔다. 목사가 된 친구놈을 오랜만에 찾아 갔다. 몇 십년 만에 예배란 것을 보았다. 이름도 못 들어본 찬송가가 흘러 나왔다. 지루했지만, 나름 괜찮더라.

그리고 이런 구절이 있더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과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친구놈은 이렇게 말하더라. 용서를 받고 싶으면, 일단 먼저 용서를 해야 한다고. 아버지가 염치 없이 부탁한다. 이 아버지를 용서를 해 줄 수 있겠냐고. 네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멀다. 그 길목에서, 아비에 대한 원망이 가득찬다면 아주 서글프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 기간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아버지가 너에게 진싱므로 사과한다. 얼굴을 보지 못하고 비겁하게 편지로나마 전하는 것 또한 미안하게 생각한다.

힘 내거라. 아버지는 네가 한 번도 자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다. 착한 아들로 있어 줘서 늘 고맙다.

훈련소 감성과 당시의 복잡한 감정이 만나, 야전교육대 침낭에서 끅끅대기만 했다.

그러면 결론은 어떻게 되었느냐.

크게 바뀐 것은 없다. 황연성 일당은 동아리에서 제명 당하지도 않았다. 학교 측에서 내린 교육이수 명령 2시간인가 3시간 들었던 것이 전부다. 그 이후로도 동아리 활동 활발하게 하고 인스타에도 즈그들끼리 행복한 사진들이 올라왔다. 동아리 측 입장은

가해자들은 충분한 반성을 하였다. 따라서 더 나은 활동으로 이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다.

로 요약되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구절이다.

경과 보고까지는 1년이 걸렸다. 대나무숲에 800개의 좋아요를 기록했던 대사건이, 막상 대책위 입장문이 올라 오니 20개 남짓한 좋아요로 축소되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혼자만의 쌩쇼로 남게 되었다.

원래 대중은 폭로하는 순간만 관심이 있고 폭로 이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까.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졌다.

학과 선배, 동기, 후배 모두 연락이 끊겼다. 군대 가기 전에 편지 해주겠다는 녀석들 중 아무도 편지가 오지 않았다. 여자 관계 만들어 보려다 인간 관계가 작살났다.

그때를 회상하면, 가끔 친구들이 묻는다. 후회하진 않냐고.

복싱 선수들은 때리는 순간보다 맞는 순간이 더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복싱을 하는 이유는, 한 대 때릴 때 그 쾌감을 잊을 수 없어서라고들 말한다.

후회 하냐고? 절대 후회 안한다. 걔네들이 내 마지막 주먹에 어질어질하여 우왕좌왕하는 그 모습이 너무 시원했다. 비록 대학생활의 이미지는 개차반이 되었지만.

한 방 날렸으니까. 딱 그걸로 만족한다. 여자 하나 꼬셔보겠다고 들어갔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결국 자업자득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적당한 인싸가 되기 위한 나의 투쟁은, 최고의 아싸가 되는 것으로 끝맺음을 지었다.

5. 대오각성

교부문고 베스트 셀러

‘세계의 현자’ 코너

「현자 사마천」

천자에 의해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무참히 잘렸지만 인류의 역작 사기를 완성했던 사마천. 과연 그의 집념과 고고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흔들리지 않는 신념. 사마천의 열정과 끈기를 배운다! 모든 것을 잃었기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었던 역사가. 아니, 역사가라는 단어로 부족한 시대의 사상가. 욕구를 뺏겼다는 것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그의 태도는, 현대인들의 도전정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충신 십상시」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십상시는 한 황실 부패의 핵심을 이루고 있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굉장히 단편적이다. 베이징대학교 역사학과 꺼어 츄우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그들은 무너져가는 한 황실의 전통을 끝까지 붙잡았던 충신이었다. 실제로 십상시 제거 이후 황제의 권력이 대폭 축소된 모습을 보면, 이들을 마냥 간신으로 몰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180도 다른 시각에서 십상시와 그들을 둘러싼 역사를 파헤친다!

(세계의 현자 코너는 맨즈스트롱 비뇨기과와 함께 합니다.)

/

책 한권 사러 왔더니 이상한 책들이 서점을 점령하고 있다. 비뇨기과에서 돈을 대폭 먹였는지, 각종 사회과학, 인문학 교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꼬떼기를 찬양하는 책을 쓰고 있다. 항상 그랬다. 인류의 역사니, 성공한 자들의 리더십이니 하며 추켜세우는 인간들. 박사라고 꼬리표 달고 나와서 하는 건 결국 돈 있는 사람들 똥 닦아 주는 게 고작이다. 맹자가 삐에로 탈을 쓰고 부자들 앞에서 아양을 떨고 있다.

말년 휴가는 드럽게 길었다. 토익이나 공부해볼까 서점에 왔다. 이 놈의 사교육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상 끝까지 따라다니나 보다. 군대에서나 좀 할 걸 그랬나 급 후회가 든다. 뭐 애초에 불가능했겠지만.

도피하듯 지원한 해군, 여차저차 하다 보니 동해의 고양함에 타서 개고생을 했다.

2급함이라 인원이 100명 정도 되었다. 보급병으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창고를 자유롭게 들락날락 거릴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역겨운 인문학 서적들은 다 내팽개 치고,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만 주로 읽었다.

하지만 결국 쥐고 있던 것은 성인 잡지 MAXAM이었다. 선임들의 갈굼과 후임들의 무능 사이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읽는 맥삼이 최고로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헐벗은 여자들을 보며 욕구를 해소했다.

하지만 해소할 장소를 정하는 것도 일이었다. 공용 화장실에서 거사를 치루었다가는 밤꽃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망신살이 뻗치기 일수였다.

선임 중 한명은 별명이 ‘딸잡이 사냥꾼’ 였다. 가련한 이등병과 일병들이 맥삼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만 포착하면, 소대장이 훈련병 집합시키듯 화장실로 모이게 했다.

호기심과 파괴 본능에 가득 찬 이십대 초반의 청춘들은 후임의 거사를 숨죽여 지켜보았다. 물론, 벽이 있었기에 눈으로 볼 순 없었다. 허나 잠깐의 파열음과 읍 읍 거리는 나지막한 신음소리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왼손에 맥삼, 오른손에는 권총이 된 장총을 쥐었던 후임은 손을 씻으러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그러면 딸잡이 헌터는 사냥의 성공을 박수와 함성으로 마무리한다.

”수병님, 사격은 잘 끝나셨습니까!“

저런 미친놈이 내 직별 맞선임이었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기본권이 제약된 군대에서 혼자 즐길 자유마저 또라이 선임 때문에 박탈당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장소는 창고밖에 없었다. 보급장님이 창고 열쇠를 주시고 아예 일임을 하셨기 때문이다. 어차피 딸잡이 킬러랑은 2교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혼자 있을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군 생활의 낙은 결국 막심과 함께하는 3분의 즐거움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모델들이 반쯤 헐벗은 상태의 사진을 본다. 상상을 한다. 점점 달아 오른다. 그러다 보면 쾌락의 원천은 점점 커진다. 두 핏줄은 마치 싱싱한 횟감처럼 탱탱하게 부푼다. 자 이제 잡는다. 한다. 먼지가 가득 쌓은 창고 사이에서,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유일한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쾌락을 즐기며,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간다 간다 간다 할 때.

”미친놈아, 뭐하냐?“

라는 또라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옆에 선임 두세명이 더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창고 열쇠는 두 개 였다는 것을, 선임은 자기 동기들과 창고에서 몰래 화투를 치려고 왔다. 그러던 중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던 나를 발견한 것이다. 딸잡이 헌터는 그날 뜻밖의 횡재를 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은 딸건이가 되었다. 이병 이딸건. 호건이라는 본명을 말하는 순간 온갖 쌍욕을 들으며 내 과거 이력을 읊어댔다. 그래서 선임들도 물론이고, 간부 몇 명도 그냥 딸건이라고 불렀다. 이병 이딸건과 일병 이딸건은 진짜 쉬지 않고 복창했다.

창고에서 딸친 놈이라는 낙인은 병장 때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선임 중 한명은

”내가 딸건이 생활을 이병 때 시작했다.“

라며 곽찰용 성대모사를 해대며 후임들에게 내 지난 이력을 설파하기 바빴다. 또 1999년 랩퍼 일썬이 낸 노래 중 꼬마 달건이를 꼬마 딸건이로 개사하여

”나는 꼬마 딸건이, 막삼밖에 모르는 좀만이.“

라고 지나갈 때마다 읊조렸다. 배는 작은 사회이고, 그만큼 소문도 빠르다. 전역하기 직전까지 동기들한테 딸건이라는 놀림을 들으며 지냈다. 원래 인간은 항상 놀림 거리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이다.

지금 와서는 한마디 하고 싶다. 너희 중 함정 내 변기에 정액 한번 떨어뜨려 본 적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면 말년 병장도, 주임 원사도, 함장도 고개를 떨굴 텐데.

아무튼 그런 지옥같은 군 생활을 하고 나니, 여자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25살까지 여자를 만나본 적 없다. 신경숙 아줌마가 표절했다는 ‘기쁨을 아는 몸’이라는 구절이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사귀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알다시피, 이미지고 뭐고 개차반이 났으니. 여자애들은 그래도 가해자 놈들보단 니가 낫지 하며 나를 동정했다. 그렇다고 남자친구 감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느 여자가 성희롱 당한 것 가지고 징징대서 폭로까지 한 남자를 좋아할까. 아, 참고로 황연성 일당은 다들 여자친구 잘만 사귀고 있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었다. 소개팅은 들어오지 않으며 헌팅할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광고를 봤다. 소개팅 어플 광고였다.

호기심이 들어서 한번 가입을 해 보았다. 하지만 가입 요건도 굉장히 까다로웠다. 사진을 올려서 평점 3.0인가가 넘어야 했다. 다행히 군대 내 살이 10kg 이상 빠졌기에 외모에는 자신이 있었다. 막상 올라가 있는 놈들을 보니 그닥 잘생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놈들이 3점 중반대를 받으니 나 정도면 4점대는 넘기지 않을까.

3.1

이게 다 뽀샵을 안해서 그렇다. 망할 현대 문명. 아무튼 턱걸이라도 통과했으니 소개팅을 시도했다. 서울 시내 거주 여섯 명한테 연락을 했다. 답이 없다. 그때는 소개팅 어플이 가계정이 판치는 곳인 줄 몰랐다.

그래 무슨 어플로 사람을 만나냐. 결국 다운 받은 지 한시간도 안 되어서 핸드폰을 내팽개 쳤다.

도대체 뭘 해야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밖으로만 나가도 다들 여자를 사귀고 있다. 못생긴 놈도 잘생긴 놈도 여자를 사귄다. 키 작은 놈도 키 큰 놈도 여자를 사귄다. 그런데 왜 나만 여자를 못 사귀는 것일까.

망할 음원 차트는 사랑 노래로 가득하다.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사랑을 그렇게 많이 해대는 것인가. 이해하지 못한다. 설렘, 이별 등등. 성기능에는 문제가 없는데, 연애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성질이 뻗쳐서 헬스장이나 갔다. 군인 할인이라서 반값에 해 주었다. 펌핑 오지는 몸을 만들면 여자를 사귈 수 있을 것이야. 막연한 희망은 막연하긴 하지만 가치가 있긴 하다.

그렇게 헬스장 등록을 하고 옷을 갈아 입으러 갔다. 그래도 군대에서 운동을 해서 그런지, 뱃살이 쏙 들어갔다. 혼자서 거울을 보고 팔뚝에 힘을 주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저기요 잠시만요.“

거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의도치 않게 입구를 막았다. 민망해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죄송합니다.“

”어? 이호건 아냐?“

누구지.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 연상우?“

연상우.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인 친구였다. 그때는 매일같이 붙어 다녔는데, 2학년이 되고 다른 반이 되었다. 이후에는 서로 바빠서 연락을 자주 안했다. 어쩌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하는, 순간의 반가움이 전부였던 그런 관계였다.

”야 호건! 오랜만이야. 뭐하고 지냈냐. 완전 반갑네.“

”나야 뭐 이제 말년 휴가지. 너는?“

”나는 최근에 모델 에이전시 계약했지. 나중에 술 한잔 하자. 나 요즘 돈벌어!“

맞다. 고등학교 졸업한다고 모델 일 한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몸이 장난이 아니다. 부러운 놈. 제발 꼬추는 삼센치이길.

”오 부럽다... 그래, 맥주나 한잔하자.“

”번호 좀 알려줘. 그나저나 대학 간 뒤로 연락 한번을 안하냐. 나쁜새키.“

”뭔 개소리야. 너도 마찬가지잖아 ㅋㅋ 아무튼 담에 봅세.“

며칠 뒤, 연상우와 홍대의 맥줏집에서 만났다. 늦가을의 홍대는 즐기기에 딱 적당했다. 사람이 북적대지만 날씨의 서늘함으로 중화가 되었다.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열기가 젊음의 거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타내 주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하다 보니 몇 시간인지가 훌쩍 흘렀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왜 이제야 연락했지 후회가 되는 친구. 좋은 놈이다. 잘생기고 키크고 성격도 좋고 돈도 버는 놈. 아까 언급했지만 제발 꼬추는 삼센치이길. 그러나 만나는 여자가 한둘이 아닌 걸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야. 클럽갈래?“

”클럽? 흠.... 한번도 안 가봤는데.“

”그럼 오늘 가자. 딱 보니 물 괜찮을 것 같은데.“

”야 그런 곳은 너같은 존잘남만 가는 거야. 나는 병풍 역할밖에 못할걸.“

”개소리하지마. 살도 많이 빠지고, 키도 적당하고. 내가 봤을 때 오늘 하나 걸린다. 가자. 가자. 자신감을 가져.“

”아 오바야. 가서 자괴감 느끼면 니가 책임질거?“

”아 장담한다. 형이 보장할게. 백퍼 홈런 각이라니까.“

”홈런이 뭔데?“

검지 손가락을 구멍 안에 넣는 시늉

”하지마 븅신아 쪽팔려. 알았어. 알았어. 가자.“

클럽 줄은 엄청나게 길었다. 그런데 상우는 프리미엄 티켓이라도 끊은 듯, 줄을 다 무시하고 들어갔다.

”뭐야. 괜찮아?“

”괜찮어. 친한 형이 여기 MD야.“

MD? Missile Defense 시스템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생소한 단어가 너무 많았다.

아무튼 프리 패스로 클럽에 들어갔다. 베이스 소리가 두개골을 울렸다. 둥둥거리는 느낌이 처음에는 불쾌했는데, 나중에는 점차 흥분되게끔 만들었다. 상우가 타이거 맥주병을 하나 갖고 왔다.

”일단 여기서 놀고 있어. 난 잠깐 형들한테 인사 좀 드리고 올게.“

상우가 사라지고 혼자만 남았다. 2층까지 있는 클럽. 남녀 성비는 반반이었다. 그래도 홍대에서 나름 물관리가 되는 곳이라고 했다.

2층에서 1층의 스테이지를 보니, 향락적이라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 것도 같았다. 늦가을인데 다들 헐벗고 춤을 추고 있다. 형형색색의 조명들은 얼굴보다는 몸매에 눈이 가게끔 했다. 덜렁거리는 여자들의 가슴과 그걸 보고 덜렁거리는 남자들의 사타구니. 창과 방패의 대결이다.

그래도 일단 클럽에 왔으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스테이지로 내려 갔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물색.

하기에는 굉장히 쪽팔렸다. 아니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을 걸 수가 있는거지? 어떻게 하면 ‘섹스하자’는 말을 완곡하게 말할 수 있는 거지?

여자랑 키스도 안해본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 영역이었다.

춤이라고 추긴 췄는데, 그걸 춤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그런 몸동작을 하며 스테이지의 중간으로 들어갔다. 디제이는 볼륨을 높였고, 사람들은 리듬에 맞추어 방방 뛰었다. 가끔 무슨 율동을 다같이 하기도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어색하게 따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고 적당히 땀을 흘리고 세상 즐거운 표정을 하며 춤을 추고 있다. 저 사람들은 즐거워서 춤을 추는 것인가, 춤을 춰서 즐거운 것인가. 즐겁기 위해서 클럽에 오는 것인가, 클럽에 왔기 때문에 즐거운 것인가. 아니면 즐거움을 형상화하기 위해 클럽이라는 공간에 억지로 오는 것인가.

이게 젊음인가. 사실 이게 젊음이지 않을까. 만끽 이라는 표현은 이때 쓰는 것 같다. 어차피 덧없이 사라져 갈 젊음. 소비할 수 있을 만큼 소비하고 가는 것이 옳다. 그동안 난 뭐했나. 순수한 사랑을 찾는답시고 무형의 것을 쫓다가 결국 엎어지지 않았나. 그래 오늘 나는 동정을 뗀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는 다짐과는 달리, 여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긴 하였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춤을 추고 있는데, 시선을 확 끄는 여자가 있었다. 빨간색 원피스와 빨간색 구두. 어두운 조명 속에서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금발 머리. 그리고 그 금발보다 더 뚜렷하게 각인되는 이목구비.

미쳤다. 살면서 이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보았다.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인지, 클럽의 조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살면서 본 여자 중 가장 충격적일 정도로 어여쁜 사람이었다. 대학교 축제에 왔던 연예인보다도 훨씬 화려했다.

말을 걸려고 다가갔다. 눈을 마주쳤다. 여자는 아무 렇지 않은 듯 리듬에 맞추어 몸을 굴렀다. 주변에 하이에나들이 빨간 원피스의 여자한테 슬금슬금 다가왔다. 쪽팔린 것이 나은가, 뺏기는 것이 나은가. 일단 질러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안녕하세요.“

”예?“

”혼자 오셨어요?“

”~@#@$ 왔어요.“

음악 소리가 시끄러워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었습니다?“

아, 군인 티 내면 안된다고 들었는데. 큰일났다. 2년의 습성을 숨기기는 너무 힘들었다.

여자는 빵 터져서 다시 귓속말로 말했다.

”남자친구랑 같이 왔어요!“

”앗, 죄송합니다.“

민망함에 얼른 빠져 나왔다. 뭔 남친이랑 이런 곳을 같이 오냐.

몇 분 뒤에 보니 팔뚝이 내 얼굴 만한 헐크와 물고 빨고 하고 있다. 몇 분 늦게 집적댔다면 헐크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그 뒤로 몇 번 더 집적댔는데, 다들 지하철 잡상인 보듯이 눈을 흘겼다. 인터넷이나 주변 친구들. 특히 훈련소에서 원나잇 썰을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참 쉽지 않은 일이구나.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경로를 가야 하는가.

군대 선임 중 한명은 그냥 돈 주고 사먹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싫었다. 진짜 가오가 살지 않잖아. 그러다가 에이즈 걸리면 어찌하라고. 한 번의 쾌락을 위해 평생의 위험을 담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불법이잖아. 정치학도로서, 법은 지켜야지.

초기의 흥분은 금새 가라앉고, 현실이 점차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어색한 모나미 룩에 아빠 구두를 신고 와서 여자를 꼬시려고 하지만 세네 번이나 빠꾸를 먹고 최대한 쿨한 척 하기 위해 난간에 기대서 스테이지를 바라 보는 차가운 도시 남자 같지만 실상은 군인 티를 벗어나지 않은 머리 스타일과 말투를 가지고 있는 돈 없는 대학생일 뿐이었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초라해지니, 진짜 초라하게 느껴졌다. 원했던 사냥감을 놓쳐 버리고 그 누구도 나를 사냥하러 오지 않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이다. 첫차 까지는 두시간 반이 남았다. 밖으로 나가 핸드폰 게임이나 할까. 한번도 깔아본 적은 없지만.

그나저나 연상우 이자식은 잠깐 갔다온다더니 아직도 소식이 없다. 무책임한 놈이다. 적어도 걸음마는 떼게 해 주어야지. 젖을 물린 뒤 바로 밀림 속에 던져버리는 쓰레기 같은 놈이다.

그래도 먹었던 술이 아까워 스테이지에 올랐다. 몇 번 더 찔러 보다, 무슨 방사능 물질을 본 것 같은 여자들의 표정을 보았다.

아, 클럽은 나랑 안 맞는 곳이구나. 흥분과 기대로 부풀어 올라 혼자만의 하렘을 꿈꾸던 내가 한심해 졌다. 그래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홈 스위트 홈.

해서 내려가는데, 누가 내 옷깃을 잡았다.

”어머. 혼자 왔어?“

대충 서른살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검은색 원피스와 웨이브 머리를 하고. 얼굴에는 손을 안 댄 곳이 없어 보였다.

”아뇨. 친구랑 같이 왔는데, 어디 가고 없네요.“

”그래? 그럼 나랑 놀자. 친구들이랑 같이 왔는데, 나만 놀 남자가 없어~“

그렇게 손을 붙들리고 구석진 테이블로 갔다. 누나는 총 세명이랑 같이 왔다. 다들 생김새가 비슷비슷해서, 옷차림이 똑같았다면 구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노란색, 파란색,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노란색 누나와 파란색 누나는 적당한 남자들을 하나씩 물어서 서로 껴안고 물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둘 다 눈이 풀려 있는 걸로 보아, 엄청나게 마시고 나처럼 픽업된 모양이다.

”몇 살이야?“

”스물넷입니다.“

”뭐야~ 말투가 왜 그래. 군인이야?“

”아.. 아니에요. 민간인입니..에요.“

”아이 귀여워. 술 먹을래?“

누나는 미리 채워져 있던 잔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딸랑딸랑 얼음이 움직였다. 클럽에서는 술도 더럽게 비싼데, 꽁술을 주다니. 감사합니다 하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아. 도수가 너무 높았다. 켈룩켈룩. 누나는 나에게 귀엽다고 했다.

”너 클럽 처음이지. 딱 보니까 처음이네.“

”아니거든요. 몇 번 왔습니다.“

”거짓말한다. 너 거짓말하면 혼나!“

그렇게 말을 주고 받다 보니, 어느 새 누나는 나의 팔에 엉겨 붙었다. 가슴이 팔뚝에 닿았다. 자연히 사타구니는 부풀어 올랐다. 온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흥분해서 그런 줄 알았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아까 먹은 술이 너무 도수가 쎄서 그런 건지. 누나는 열려 있던 술병에서 술을 몇 차례 더 따라 주었다. 넙죽 넙죽 받아 마시니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쉬러 갈래? 여기 너무 정신 없지.“

”네...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누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응 그래. 빨리 와~. 누나 피곤해.“

누나는 이마에 뽀뽀를 했다. 그게 엄마를 제외하고 받아본 첫 뽀뽀 였으리.

화장실은 2층에 있어서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정신없이 춤추고 있는 사람들과 수없이 많은 어깨빵을 하고 난 다음에 간신히 빠져 나왔다.

누나는 나에게 쉬러 가자고 했다. 그럼 아마 하러 가는 거겠지? 그런데 뭔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다. 막상 멍석을 깔아 주니 하기 싫다 이건가. 그나저나 계단은 너무나도 높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털썩 주저 앉았다.

”아 이 새끼 뭐야. 박실장. 여기 꼴은 골뱅이 새끼 갖다 치워!“

경비원이 나를 보고 쌍욕을 박았다.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집에 갈 수 있을까. 나는 여기 왜 있을까. 왜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갈까. 아까 본 람보보다 딱 두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가 내 팔을 붙잡았다. 아저씨. 일어나쇼.

”으으음..으으..“

”야 븅신새끼야! 여기서 뭐해!“

연상우였다. 이제 오냐. 개같은 놈.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떠 보니, 연상우가 나를 부축하고 집 앞에 와 있었다.

”어.... 뭐야. 왜 내가 여깄어.“

”이제 일어났냐. 아까 혼자 내버려 둬서 미안하다. 아는 형들이 잠깐 놀고 가라는게 너무 오래 있었다.“

”야... 나 기억이 안나. 머리가 엄청 아프고. 당장 토할 것...“

우웩. 아파트 입구에서 저질렀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하아.... 야 너 괜찮아?“

”나 얼마나 마신 거냐. 진짜.“

”야. 너 누구랑 있던 거야.“

”몰라 어떤 누나가 술 주길래 몇 잔 마셨더니 이렇게 됐어. 양주여서 그런가. 양주는 처음 먹어봐서. 속이 좀 메스껍...“

우웩. 아파트 입구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화단으로 가서 끝냈다.

”호건아. 잘 들어. 너 오늘 좆될 뻔했어.“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너한테 물뽕 먹였어. 물뽕.“

”물뽕?“

”너 설마, 뚜껑 따 있거나 잔에 이미 들어있는 술 마셨냐?“

”어 어떤 누나가... 주던데...“

”아, 그년이 아마 술에다 탔을 거야. 가끔 그런 놈들 있어. 개새끼들. 어리숙해 보이는 애들한테 물뽕 멕이고 뭔 짓을 할지 몰라. 너 큰일 날 뻔했어. 하.... 미안하다. 내가 챙겼어야 되는데.“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딱 보면 느낌 와. 눈 풀리고 몸 못 가누고. 술 취한 거랑 느낌이 달라.“

그러고 보니 입에서 역한 기운이 몰려 왔다. 머리도 숙취로 아픈 느낌이 아니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역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새끼들. 어떤 새끼들인지. 만만한 남자들 물뽕 멕여서 이상한 짓 많이 한다. 너 좆될 뻔 한거야. 후.... 미안하다. 내가 면목이 없다.“

”따라갔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그거야 모르지.... 너 지갑 잘 있냐? 확인해봐.“

15만원이 사라져 있다. 군인 월급 열심히 모은 건데. 벼룩의 간을 별미로 아는 인간들인가.

”일단 들어가고. 씻고 푹 자. 물뽕 처음 먹었으면 후유증 장난 아닐거야. 연락하고. 미안하다. 다음에는 내가 신경 쓸게. 진짜 미안하다. 호건아.“

”아냐. 네가 뭔 잘못은... 있지. 개새끼야... 혼자 내버려 두고 가냐.“

”미안하다.... 일단 들어가서 푹 쉬어.“

”그랴. 들어간다.“

물뽕의 후유증은 며칠을 갔다. 게워내도 게워내도 뱃속에 남아 있는 이물감은 가시질 않았다. 부모님은 무슨 일이냐고,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약쟁이로 의심 받을까 두려워 아무 것도 못했다. 눈이 계속 가려워 미친 듯이 비벼댔다. 빨간색 쉐도우를 한 것처럼 눈두덩이가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하..... 도대체 내가 뭘 잘못 했는가. 그냥 섹스 한번 해보겠다고 간 건데, 이게 이렇게까지 안풀릴 일이었던가.

남은 말년 휴가는 방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보냈다. 아무것도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용의가 나지 않는다.

헤벌레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위험 천만한 곳으로 갔던 내가 너무도 추하게 느껴진다.

여자를 만나려고 할수록, 인생은 파국으로 빠진다. 여자를 만나려고 할수록 마음 속에 상처만 남는다. 왜 나는 여자를 만나려고 발악을 하는가. 그렇게 여자가 소중한 것이었나.

나를 맘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 내가 성에 차지 않고, 정작 맘에 드는 여자들은 나를 기피한다. 그래서 아무나 만나 보려고 했더니, 이 사단이 났다.

이런 말이 있다. 연애를 행복의 척도로 삼으면 안된다고. 연애는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행위라고. 막상 연애를 하면 또 그에 맞는 불행한 일들이 가득하다고.

기만에 불과하다. 뭐, 인생이란 게 다 그렇지. 온갖 노력을 해서도 절대 성취할 수 없는 게 있는 반면, 누구는 쬐끔의 노력을 들이고도 잘만 성공한다. 그리고 성공한 자들은 지들도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징징거린다.

아마 나에게는 운이라는 것이 없나 보다. 남들이 취직 준비하고 군대가고 할 때, 연애라는 아주 하찮고 허접한 것들을 추구한 죄인 것인지. 하지만 그 죄에 따른 벌의 강도가 너무 쎈 것 아닌지.

휴가 복귀일이 다가 오는 동안,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점점 야위어 가는 나를 보며, 무슨 일이 있나 여쭤 보셨다. 다행히 일주일 정도 지나니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파랗던 입술도 점차 불그스름하게 변했고, 시뻘겋게 충혈되었던 눈동자도 금새 하얗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 깊이 박혔던 공포는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잠깐 산책하러 나갔을 때, 내 나이 또래의 여자를 마주치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마음을 짓눌렀다. 황연성 일당을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복귀를 하고 다음 날 전역을 했다. 전역하는 군인만큼 자신감에 쩌들어 있는 사람들도 없다. 다들 세상 모든 여자를 꼬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한달이 지나면 다들 좌절하겠지만. 전역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나만 웃지 않았다. 잘 살라는 함장님의 다독임에 그냥 건성으로 감사하다고만 대답했다.

허무했다. 세상은 결국 내 맘대로 되지 않는구나. 시도하면 고꾸러진다. 인생의 유일한 업적은 대학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게 다이다. 망할 대로 망한 학점은 그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 지난 날은 열심히 놀았던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모든 뿌리에는 성욕이 있었다. 왜 나는 그렇게 여자를 만나고자 했는가. 여자를 만나기 위해 사회 운동을 했고, 춤 동아리를 들어 갔고, 클럽에 갔다. 그래서 뭐가 남았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결론만 도출됐다.

왜 여자를 사귀려고 했던가. 여자가 뭐길래. 만나 보지도 않은 여자라는 존재를 왜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놓았던가. 왜 그렇게 추구했던가.

현자 타임이 왔다.

그 어떤 자위행위로도 맞이하지 않을 긴 현자 타임이 왔다.

더 이상 야동을 봐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못생긴 아저씨들이 예쁜 아가씨들을 신나게 박아대는 꼴이, 역겨우면서 부럽게 느껴졌다. 이는 점차 열등감으로 변해갔다.

답답하고 분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욕할 대상을 찾았다. 하나하나 욕해 보았다. 열등한 외모를 물려준 부모님, 애먼 여자아이 인생 나락으로 빠뜨린 사이비 교주. 대학 생활을 망친 황연성 일당, 클럽에 끌고 가놓고 책임지지 않은 연상우, 물뽕을 쳐멕인 이름 보를 검은색 원피스.

그렇게 욕할 대상을 찾고 찾았지만, 그 어떤 것도 개운하게 풀리질 않았다. 아무리 걔네들에게 욕해 보아도 응답이 오지 않았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그래서 나를 욕했다. 씨발병신호구새끼. 씨발병신호구새끼. 씨발병신호구새끼.

나를 욕하는 날로 일주일을 지새웠다.

집에 있는 날이 길어 지니, 오줌을 싸는 날도 잦아졌다. 오줌을 싸려고 지퍼를 열었다. 축 늘어진 꼬츄를 보았다.

생각해 보니, 이새끼가 원흉이다.

이새끼만 없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떼버리자. 확 떼버리자.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는 가라.

뚜루루루

”안녕하세요. 맨즈 스트롱 비뇨기과입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핸드폰의 통화 기능을 사용하였다.

6. 포스트휴먼

비뇨기과는 두 번째였다. 두 살 때인가 포경 수술 하러 갔는데 꼬츄가 작아서 거절 당했다고 한다. 참고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접수처로 가서 간호사한테 말했다.

”저.... 어제 전화했던 이호건이라고 하는데요.“

”아! 네. 이호건 님. 혹시 일시적 성기능 감퇴 시술 받으시는거 맞으신가요?“

고자되러 오셨나요를 저렇게 돌려 말하니 느낌이 사뭇 다르긴 했다.

”네네 맞아요.“

”그러면 저기 앉아 주세요. 한 이십분? 정도 기다리시면 될 거에요.“

꼬추를 떼버리자고 했던 한 순간의 열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그라들었다. 충동적으로 전화기를 들고 예약을 잡았긴 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갑자기 후회가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보면 수술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텔레비전에서는 의사가 메스를 들고 푸식푸식 쑤시는 장면만 나오지만, 수술대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은 길고 길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생각한다. 이게 맞을까?

그리고 옷을 고르면서 또 생각한다. 이게 맞을까?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또 생각한다. 이게 맞을까?

현관문을 나서며 가족 사진을 보고 또 생각한다. 이게 맞을까?

버스를 기다리면서 또 생각한다. 이게 맞을까?

카드를 찍고 자리를 고르면서 또 생각한다. 이게 맞을까?

로드뷰로 병원을 찾으며 또 생각한다. 이게 맞을까?

사람들은 수술의 결과만 본다. 일례로 성형 수술을 한 사람을 보면, 성형 이후의 얼굴만을 생각한다. 마치 게임 장비 갈아 끼우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굉장히 지루하고 복잡하며 자신의 선택을 한참이나 돌이켜 보는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게 비뇨기과에 오니, 내 또래 남자들이 몇 명 있었다. 포경은 아닐테지. 요즘 꼬떼기가 핫하긴 하나 보다. 그래도 같이 온 사람들에게서 뭔지 모를 동료애를 느꼈다.

”이호건님. 들어가실게요.“

앞 순서의 남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왔다.

”네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비뇨기과 원장님은 붕어를 닮았다. 책상에 가족 사진이 있었다. 어여쁜 아내분과 떡두꺼비같은 아들 딸 네명. 자기 환자한테는 성기능을 상실하게 하고, 정작 자기는 왕성하고. 안과 의사가 라식 안하는 것과 비슷한가.

”혹시 일시적 성기능감퇴수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셨나요? 이게 아무래도 환자 동의가 가장 중요해서.“

”뭐.... 일단 TV에 나오는 정도로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흠.... 그렇군요.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리죠.“

원장님은 일시적 성기능 감퇴 수술, 일명 꼬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 주었다. 일단 화학적 거세 방식을 한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고환을 떼어 낸다면 출혈도 상당하거니와 몸에서 받는 쇼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학적 거세를 위한 약물인 뭐시기뭐시기파라노닌은 주로 성범죄자들에게 투여되었다고 한다. 원장쌤은 이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는데, 오히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성범죄자들에게 투약을 많이 하다 보니 임상 실험이 더 활발히 이루어 졌다고 했다.

”현대판 합법 생체 실험이라고 해야겠죠? 성범죄자들이 유일하게 인류에게 쓸모가 있는 상황이죠.“

아무튼 그렇게 약물을 주입한다. 기간은 크게 6개월, 1년, 2년이 있다. 그 기간이 지난다면 성기능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기간을 가지고 의심을 많이 품어요. 이것도 저 성범죄자들 덕분에 확신할 수 있지요. 약물로 인한 성욕 감퇴 기간이 지나면, 저 변태들은 다시 성범죄를 저질렀으니까요. 지속 기간이 확실히 입증이 되었지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봤어요? 다카푸리오 주연한 영화. 거기서 보면, 주인공이 큰 결정을 앞두고 항상 화장실에 가서 한발 뺍니다. 그러면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그런 얘기지요. 일시적 성욕 감퇴 수술을 하면 이런 상태가 작게는 6개월 많게는 2년까지 가능하다 뭐 이런 얘기지요.“

”부작용은 없는 건가요?“

”아까 언급했듯, 부작용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성욕은 생각보다 강력해서요. 아무리 누르고 눌러도 다시 되살아나거든요. 그리고 지구 상에 실험할 성범죄자는 차고 넘칩니다. 솔직히, 다른 그 어떤 약물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도 있지요.“

굳세게 다짐했건만, 막상 병원에 오니 주저하게 되었다. 어쨌든 몸에다 인위적으로 뭔 짓을 하긴 한다는 거니까. 머리털 나고 다리 한번 부러져 본 적이 없이 건강했던 내가,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습니다.

머뭇거리다 보니, 원장은 뭔가를 포착한 듯 말을 건넸다.

”호건님. 요즘 잘 안풀리는 게 있나요?“

”네? 뭐... 그렇죠. 공부를 해야 되는데, 집중도 안되고. 더군다나 여자 문제가 좀 힘들게 다가오긴 합니다.“

”그래요. 그럴 시기이죠. 요즘 남자들은 참 살기 힘들어요. 군대도 2년 갔다 와야 하고. 왕성한 성욕 때문에 여자도 만나야 하고. 근데 그러다 보면 결국 뒤처지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블라인드 테스트다 뭐다 말이 많죠? 이게 참 웃기는 거야. 여자와 남자를 똑같이 대한다 그 얘기겠죠?“

”그런데 이게 말이 안된다니까. 2년을 남자가 더 썩었는데, 같은 나이면 당연히 뒤쳐지지 않겠어요? 그리고 군대가 일반적인 곳이야? 세기의 천재들도 머리가 비워져서 나오는 곳인데. 안 그래요?“

”그러고 막상 전역하면 여자 만날 시간에 머리가 가득해져가지고 또 1~2년 헛으로 보내고 말이지. 그러면 계속해서 뒤쳐져요. 남녀평등 남녀평등 하는데. 애초에 남자가 여자를 상대로 제대로 상대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에요, 대한민국은, 제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이런 말이지.“

”호건님. 저는 이 수술 추천드립니다. 제가 호건님 나이였어도 무조건 했을 거에요. 진짜 하고 나면 달라집니다. 집중력이 명확하게 차이가 난다니까요.“

원장은 잡지 속의 한 남성을 가리켰다. 최근 5급 행정고시 공채 수석 합격자였다.

”이 친구 있죠? 우리 병원 손님이었어. 그때 꼬떼기 시술 처음이어서 다들 머뭇거릴 때, 바로 와서 했다니까. 그러고 딱 1년 반만에 행시 패스했어. 대단하죠?“

그리고 이후에 스크랩된 신문의 통계 자료를 보여 주었다.

”2년 전에 시행했던 고시 합격률을 보세요. 여자가 60이고 남자가 40이죠? 그런데 최근 2년 이게 뒤집혔어요. 남자 70 여자 30으로. 이런 시험들은 대체로 블라인드로 치러지죠? 그러면 명백하게 실력으로 갈린다는건데. 이거 왜 그런 것 같아요?“

”꼬떼기 때문이야. 여기 합격자들 다들 말은 안하는데 꼬떼기 엄청나게 많이 받습니다. 집중력이 아예 달라져요. 단순하게 성욕이 없어진다 그런 게 아니야. 잡념이 사라지고 집중할 것에만 딱 집중할 수 있게 되어요. 솔직히 말하면.... 이건 보디 빌딩 대회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맞는 것과 동급입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좋지. 이건 애초에 부작용이 아무것도 없으니. 나라에서 막지도 않고 말이야. 꼬떼기 한 거 걸리면, 사무관 임명장 반환해야 하거나 그러지 않잖아요?“

”지금 여자들 보면, 꼬떼기 시술 금지하라고 하죠? 그거 왜 그런지 알아? 지들은 못하거든. 여자들 상대로 하는 일시적 성욕 감퇴 수술은 아직 발전이 덜 되었거든. 임상 대상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니까.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남자는 실험 대상이 넘칩니다. 부작용이 전혀 없어요. 믿어도 돼.“

”결국 꼬떼기는 2년을 날린 대부분의 남자들이, 판세를 뒤집을 최후의 수단이라는 겁니다. 하.....아직도 못 믿겠어요? 그럼 이 자료 보세요. 이게 우리 대한비뇨기과협회에서 준비하는 논문이에요. ‘일시적 거세 수술과 고시 합격 간의 상관관계’라는 자료에요. 아직 발표는 안 되긴 했는데 특별히 보여주는 겁니다. 내 조카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고시, CPA 등과 같은 큰 시험을 앞둔 남자 1000명을 대상으로 비교한 겁니다. 각각 500명으로 나눴죠. 한 쪽은 꼬떼기 수술을 한 집단, 다른 쪽은 꼬떼기 수술을 하지 않은 쪽.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꼬떼기 수술을 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 보다 정확히 합격률이 5배 높았습니다. 5배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실 국가 입장에서도 딱히 거부할 입장이 들지 않을거에요. 2년 빡세게 공부해서 들어온 엘리트가 그만큼 많아지는 거니까요.“

”하여간, 시민 단체들은 난리 치죠. 그런데 그거 왜 그런지 알아요? 자기들, 특히 여자들한테 피해 가잖아. 이건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불리해지는 싸움이니까. 오히려 쟤네가 난리를 치고 있는 모습이 꼬떼기의 효과를 증명하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인간들한테 휘둘리지 말아요. 2년 딱 효과 보고 그 다음에 돈도 벌고, 지금 사귈 여자보다 훨씬 예쁜 사람 만나면 됩니다. 호건 학생. 이제 배팅할 시기 아니에요? 그러면 적어도 가장 수익성 높은 방법을 택해야지.“

2년을 참고 명예와 돈을 얻는다라. 그리고 그걸 자동으로 해준다라.

”가격은 대충 얼마 정도 하나요?“

”6개월에 300, 1년에 500 2년에 900. 참고로 반감기를 꼭 지켜 줘야 해요. 6개월 짜리 맞았으면 3개월 쉬고, 1년 짜리는 6개월 쉬고 이런 식으로. 그 사이에 맞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요. 다이어트 해서 요요 오는 거랑 비슷하다고 해야 겠죠. 원래 사람이 섭취해야 할 칼로리보다 극도로 적은 양을 먹으면, 우리 몸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몸에 뭐라도 들어오는 족족 지방으로 저장해 버리잖아. 이처럼, 성욕이 정상치보다 과다하게 없으면, 우리 몸은 성욕을 다시 느끼게끔 평소보다 더 과하게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되면 뭐, 성욕에 사로잡힌 괴물이 되는 거지. 그래서 반감기를 꼭 지켜주어야 합니다.“

”가격이 좀 비싸긴 한데요.....“

”엥? 2년 해도 900이 비싸요? 한달이면 사십만원도 안되는데? 보통 시험 준비하면 2년은 하잖아. 그런데 비싸다고 생각하면 안되죠. 900이면 대기업 두달치 월급밖에 안되는데.“

”지금 당장 돈이 없거든요. 힘들 것 같습니다.“

원장은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제가 의사로서 하는 게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조언해 주는 건데. 진짜 하시는 게 낫습니다. 아... 그나저나 연희대 다닌다고 했나? 나도 연희대 출신인데.”

“아 네 맞아요.”

“혹시 정외과면..... 김필연 선배 알아요? 1X학번인데.”

“아뇨 몰라요. 누구신데요?”

“아 모를 만 하겠다. 이번에 변호사 시험 차석한 친구인데, 우리 병원 다니거든. 1년짜리 딱 맞고 멋지게 합격했지. 소개해 줄까요? 진짜 정 불안하면?”

연락처를 건네주며 말했다.

“통화 한 번 해보고, 밥 한끼 하면서 얘기 해봐요. 후회하진 않을거야.”

전화번호부에 선배라는 사람을 저장하고 밖으로 나왔다. 2년의 성욕을 날려 버린다라. 과연 내 삶에 성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생산적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소개팅 한다고 시간 날리는 일들도 없었을 것이고. 매추라기 가서 마음고생 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클럽에 가서 물뽕을 쳐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며칠을 밤새워 고민했다. 샀던 토익 책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더 큰 것을 고민한다고 생각하며 토익 공부는 언제나 그랬듯 뒤로 밀었다.

김필연 선배와는 학교 내에 있는 문벅스에서 보기로 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신입 사원 모습이었다. 셔츠를 입어도 드러나는 울퉁불퉁 솟은 잔근육이 눈에 띄었다.

“하하. 원장님 소개 받고 왔다고. 일단 저는 후배님 만나서 너무 좋네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스물넷입니다. 좀 있으면 스물 다섯이고요.”

“어우 재수했구나. 나도 재수했어요 하하.”

선배는 호탕하게 웃으며 제일 비싼 커피와 케이크를 시켰다.

“사실 좀 민망하긴 해요. 뭔가 이런 일로 선배님 뵙자고 하는게.”

“아니에요. 나야 뭐 후배님 만나고 좋은데. 꼭 이런 일 아니어도 자주 연락해요. 밥사주고 좋지.”

“꼬떼기...하고 어떠셨어요?”

“하.....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 느낌은 진짜 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됩니다. 비단 여자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 모두다. 화가 안나요. 감정이란 게 사라진 느낌? 근데 그게 불쾌한 게 아니라 상쾌한 감정으로.”

“예를 들면요?”

“아침에 일어나면 어때요.”

“몸이 무겁죠. 공부하러 가기 귀찮고.”

“그게 없어요. 귀찮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네?”

“귀찮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니까. 몸이 무겁긴 한데 그냥 공부하러 가게 돼요. 막상 가고 나면 열심히 하는거. 그 순간의 판단이 사라지게 된다니까. 알잖아. 뭐든지 하기 직전까지 가는 게 힘들다는거. 운동이든 공부든 그 직전까지 가면 되는거야.”

“아...”

“최근에 노벨 경제학상 받은 사람이 쓴 책 중에 넛지라고 있어요. 들어 봤죠? 잠깐의 무의식적 판단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냐 뭐 그런 얘기잖아요. 입구에 놓인 작은 안내판, 광고에 숨겨져 있는 사소한 텍스트. 이처럼, 공부나 업무에 방해되는 잠깐의 감정을 사라지게 해 준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되면 마치 사고의 아우토반을 경험하는 느낌입니다. 제한이 걸리지 않아요.”

“그러면.... 머리가 터져 버리지 않나요.”

“근데 뭐, 성욕만 주로 사라졌지 배고프고 졸린 건 똑같아요. 생각해 보면 성욕은 우리 몸에 그렇게 필수적인 욕구가 아니에요. 생각해 봐요, 스님이나 신부들은 그럼 어떻게 살아?”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아까 말했죠. 넛지.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개입 말이야. 내가 봤을땐 호건 후배한테 지금이 적기야. 이게 사소한 것 같아도 나중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걸.”

그건 그렇다. 예전에 군대에서 조타 당직을 섰을 때가 생각 났다. 조타사가 키를 몇 도로 돌리라고 하면 그것에 맞추면 된다. 그런데 1도만 못 맞춰도 함장이 난리를 쳤다.

“야 이 새끼야. 지금 네가 잘못 맞추는 1도가 나중에 수백 km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그렇다. 젊을 때 어떤 방향을 잡느냐가 수십년이 지나고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 나는 지금 최적의 방향을 잡아서 가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여야만 한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확신이 섰어요.”

당장 학자금 대출을 땡겼다. 군대 적금 300만원, 학자금 대출 600만원. 원장님을 만나고 일시불로 결제를 했다.

“그래, 할부보다는 일시불이 좋아. 젊을 때잖아. 시원하게.”

꼬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틀 동안 병원 환자실에 있으며 세 차례의 주사를 맞는다고 했다. 부모님께는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여행은 여행이겠지. 이 여행이 끝나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체 게바라가 남미를 횡단하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나도 더 이상 잡념에 휘둘리지 않는 굳센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야.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수술대에 누웠다. 사타구니를 벌렸다. 주사가 들어 왔다.

하나.

일곱시간 뒤.

둘.

열시간 뒤.

셋.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2년 치의 성욕을 말소시키는 잠이었다. 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지현이, 셀 수 없이 많은 소개팅 상대들. 목발을 짚었던 여자애, 식은이가 되었을 하은이, 매추라기 활동 당시 몸매 좋고 예쁜 여자애들. 검은색 원피스 누나. 한 명씩 사라지다 결국 아무도 남지 않았다.

저 멀리서 하얀색 빛이 보였다. 하얀색 빛은 때로는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이 되었다. 마지막엔 검은색으로 변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깨어났다.

원장님께 인사를 했다. 집에 왔다. 밥을 먹었다. 잠을 잤다. 친구를 만났다. 토익을 풀었다. 토익 시험을 쳤다.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도 쳤다. 휴학 신청을 했다. 고시 학원에 갔다. 등록금을 지불했다. 430만원. 수업을 들었다. 숙제를 했다. 용돈을 받았다. 친구를 만났다. 친구를 더는 안 만났다. 공부를 했다. 옷을 샀다. 지갑을 열었다. 마스크를 썼다. 감기에 걸렸다. 병원에 갔다. 생일 축하를 받았다. 버스를 탔다. 택시도 탔다. 노래를 들었다. 운동을 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유튜브를 보았다. 비가 왔다. 눈도 왔다. 아빠가 다쳤다. 엄마가 울었다. 아빠가 수술했다. 집을 팔았다. 공부를 했다. 잠을 잤다. 바퀴벌레를 잡았다.

그렇게 행정고시 1차 시험을 쳤다.

7. 이카로스

일시적, 자발적 거세, 일명 꼬떼기의 열풍이 끝난 지 어엿 반년이 지났다. 꼬떼기 열풍과 그 허울이 드러난 현재를 NBS 스팟라이타 팀이 정리해 보았다.

3년 전 1월, 한 남성의 자해를 기점으로 일시적 자발적 거세 열풍(일하 꼬떼기)이 대한민국 의료계를 휩쓸었다. 일부 비뇨기과 의사들과 악질 브로커들의 협업으로 자신의 성욕을 포기하는 남성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비뇨기과 의사들은 협회를 매수하여, 꼬떼기의 장점을 홍보하게끔 하였다. 이들이 주로 내세웠던 것은,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성 고시 합격자거 꼬떼기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잡념이 사라지고, 집중력이 상승한다며 이전과는 다른 공부 효율을 보장한다고 하였다.

특히 이들은 ‘일시적 거세와 고시 합격 간의 상관관계’라는 학회지를 발표하고, 많은 이들에게 꼬떼기의 장점을 설파하였다. 그러나 근거로 사용한 자료는 대다수가 날조된 것이었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몇몇 고시 합격자들에게 꼬떼기 수술을 받지 않았음에도, 받았다고 거짓으로 홍보하게끔 하였다. 이들은 수술을 망설이는 환자들에게 꼬떼기의 장점을 말했고 수술을 받게 유도하였다. 그 대가로 20%의 수수료를 챙겼다.

이러한 만행은 몇몇 용기 있는 비뇨기과 의사들의 양심 선언으로 인해 밝혀졌다. 여태까지 벌어졌던 꼬떼기 수술들은 대부분 아무 의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의사 면허도 없는 상태에서 포도당 주사를 놓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의사들은 약물을 과도하게 주입하여, 몇몇 환자들은 성욕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그토록 홍보하던 성욕의 감퇴와 학습력 간에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욕이 감퇴되니 대다수의 꼬떼기 수술을 받은 청년들은 의욕 자체가 사라졌다. 이들은 사라진 성욕을 늘어난 식욕과 수면욕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꼬떼기 수술을 받았던 한 청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순 사기꾼들이에요. 저는 다행히 성욕이 돌아오긴 했는데, 제 친구는 아직도 아랫도리에 감각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 피같은 내 돈 900만원. 꼬떼기 수술을 받은 선배라고 했던 놈들은 아예 학적에도 없더군요. 속았어요. 완전히 망했다고요...”

현재 검찰은 대한비뇨기과 협회와 더불어자유민주한국당 간의 유착 관계를 조사하고 있다. 일시적 자발적 거세에 관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고자연 의원과 성기흠 의원은 협회 측에서 수 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꼬떼기 열풍은 한국 사회의 병폐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전문가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불러 오는 부작용. 극명한 젠더 갈등. 능력주의에 매몰되어 신체를 개조하기까지 하는 트랜스 휴머니즘적 사고 방식까지. 성욕이 상실된 청년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기형적인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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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같은 새끼들. 피같은 내 돈 900만원을 증발시킨 놈들. 검찰 수사가 진행된다 해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동안 벌었던 돈들로 여생을 편하게 살겠지. 이미 건물 두세채 정도는 사 두었으려나. 나쁜새끼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으로 신문지면을 다 메꾸어도 모자란, 그런 놈들이다.

아니야. 이따가 있을 거사에 집중하여야지. 핸드폰을 탁자에 놓고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후우. 후우. 그래 감정에 지배당하면 안된다.

“오빠 뭐해?”

정윤이가 불렀다.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웃으면서 말했다.

“얼른 씻어!”

오늘이다. 드디어. 27년 인생 중에 처음으로, 모니터로만 보았던 그 행위를 하는 날이다.

정윤이를 만난 곳은 토익 스터디였다. 행정고시를 대차게 말아먹고 이 길은 아니다 싶어 바로 노선 변경을 하였다.

사실, 원장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꼬떼기를 하니 정말 잡념이 들지 않았다. 변호사 시험 차석했다는 사기꾼의 말도 틀린 게 없었다. 사고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그 집중력과 사고력이 애먼 곳을 향해 달려가서 문제인 것이었다.

잡념이 사라지니 생각의 방향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집중을 하는데,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기계적으로, 의무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긴 하는데 머릿속에 들어온다는 감각이 아예 없었다. 감정이 사라지니 텍스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뻔한 결말이었다. 인간의 이성과 감정은 명확하게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감정이라 생각한 많은 것들도 이성일 수 있고, 이성적이라 생각한 것들도 상당수가 감정의 영역인 것이다.

성욕을 말소시킨다고 했지만, 성욕과 관계된 여러 감정들도 전부 마비가 되었다. 특히 열정이 아예 사라졌다. 무엇인가 꾸준히 하긴 했으나,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해야 돼서 했던 것이지, 하고 싶어서 했던 것이 아니다.

고시 공부를 군생활처럼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효율은 개판이 되었다. 1시간 집중해서 끝낼 것들을 한달이 되어서도 이해가 안 되었다. 비단 고시 공부 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에서 흥미를 잃어 버렸다.

인간의 무수히 많은 욕구 중 성욕만을 똑 떼서 말소할 수가 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 버린 말이 참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성욕만을 잡으려다 인간의 모든 욕구를 싸잡아 없애 버렸다. 그러다 보니 의욕도 사라지고 열정도 사라졌다. 무기력한 나날이 늘어났다.

그리고 욕구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지. 폭식을 일삼았고 잠을 미친 듯이 잤다. 평소에는 하루에 여섯시간만 자도 거뜬했는데, 꼬떼기 이후 최소 열시간은 넘게 자야 했다. 살은 쪘지만 뺄 노력 자체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하루 하루 초점이 풀린 눈으로 살았을 뿐이다.

후회와 자책의 감정 조차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욕망을 ‘억눌러서’ 이루어 냈던 것일 뿐, 욕망을 없애 버려서 했던 사람은 없다. 욕망은 원자력 발전과 같다. 핵분열이 과도하게 진행될 경우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태가 벌어지지만, 적당히 통제할 경우 안정된 전력 공급을 보장하는 것처럼.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감정의 하인이라 그랬다. 꼬떼기는 감정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아예 사라지게끔 했다. 이성은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때나 존재의 가치가 있다. 감정이라는 주인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꼬떼기 혁명을 일으켜 사라지게 하니, 사고의 아노미 상태가 찾아왔다. 이성은 감정으로부터 결코 해방될 수 없다. 오히려 감정이 사라지게 되니, 생각의 생각에 대한 투쟁 상태가 벌어졌다.

그렇게 2년을 허망하게 쓴 채, 못다한 토익 공부나 하려고 학원에 왔다. 다행히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성욕은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거니는 여자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이따끔씩 아랫도리가 뭉텅해지는 느낌도 왔다.

토익 학원에 돈을 내었다. 한달에 30만원. 꼬떼기를 하지 않았으면 30개월을 다닐 수 있었다. 애먼 곳에 돈을 쓴 댓가가 이런 것인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정으로 늦은 것이라는 어느 코미디언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만족한다. 늦었지만, 망한 것은 아니니까. 지금부터라도 새로 시작하면 되겠지.

토익 스터디는 매주 주말 아침마다 진행되었다. 오전 열시부터 열두시까지. 토일 두 번. 하지만 모든 스터디가 그렇듯, 부원 8명 중 두명만 고정적으로 나왔다. 나 그리고 최정윤 이렇게 두명이다.

정윤이는 긴 생머리에 쌍꺼풀 없는 큰 눈을 가진 누가 봐도 예쁜 아이였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 어렸다. 이제 슬슬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당차고 밝은 친구였다. 두달 동안 꾸준히 보다 보니 서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열두시에 스터디가 끝나면 단둘이 밥을 먹는 기회도 늘어났다.

“오빠는 참 똑똑한 사람인 것 같아요. 독서 많이 하죠?”

“아니에요.... 딱히 게임도 안하니까. 남들 게임할 시간에 책 보는 거랑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와, 게임 안해요? 난 게임 안하는 남자가 좋더라.”

“왜요? 게임 안하면 남자들하고 어울리기 힘든데...”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들이랑 게임 때문에 많이 싸웠거든요. 게임 하느라 답장 안하고, 게임 하느라 전화 안 받고.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나랑 사귀지 말고 게임이랑 살아라 그랬죠. 그래서 많이 헤어졌어요.”

보통 여자가 전에 했던 연애 얘기를 늘어놓으면 관심 없는 뉘앙스겠지. 이런 생각에 가득차, 집적거리기를 포기하려 했다.

“아 븅신새끼야. 연락 하라니까. 연락.”

연상우가 치킨을 먹다 말고 한소리를 했다.

“아 븅신아. 기회를 떠먹여줘도 날려 버리네.”

“야, 여자가 자기 전 남자친구 얘기 하면 끝난거잖아.”

“뭔 개소리야. 그런 게 어딨어.”

“아니야 그냥 그런 게 있어.”

“닥치고 팩트를 봐봐. 주말마다 밥 먹었지. 연락 꾸준히 하지.”

“그건 스터디 관련해서 하는 거지.”

“아니 스터디 부원끼리 어제 무슨 영화 봤는지 얘기하고, 자기 이상형 어쩌니 저쩌니 얘기하는거냐? 그게 가능함?”

“그거야 이제 스터디 끝나면 안 볼 사이니까.”

“야 니 스터디 주말마다 꾸준히 두달동안 한거면 16번을 본거야. 그게 얼마나 많은 횟수인지 알기나 하냐? 여자들은 진짜 관심 없으면 그냥 연락을 안해. 익숙하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다. 옛날에 집적댔던 여자들이 다 답장을 15시간 뒤에 해댔으니까.

“그냥 나 믿고, 이번에 연락 해라. 부탁이다. 아오 답답한 새끼야. 제발.”

스터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조금 신경써서 꾸미고 갔다. 평소엔 안 입는 셔츠랑 슬랙스, 그리고 로퍼까지. 정윤이도 마찬가지였다. 나풀나풀한 원피스, 새로운 색상의 쉐도우.

정윤이가 말했다.

“저기 오빠. 그리고 이제 말 놔요. 우리 너무 존댓말 했어.”

“아.... 그래 너도 말 놔. 아참, 스터디 하느라 수고했어.”

책이랑 필통을 주섬주섬 챙겼다.

“오빠.”

“어.”

“이따가 뭐 하는 거 있어?”

“아니 없는데. 왜.”

“영화... 보자! 나 심심했어.”

이를 기점으로 나의 모태 솔로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 보면 참 이해가 안 간다. 허무하기도 하다. 과거의 나는 뭐 때문에 그렇게 매달렸는가. 내가 정윤이한테 뭔가 한 적도 없다. 가끔 비타민 음료 사다준 거? 그런데 이건 걔 뿐만 아니라 다른 부원들한테도 똑같이 돌렸다. 매번 나와주는 거 고맙기도 하고. 토익 쌤이 갑자기 나한테 스터디 팀장 맡겨 버리니 나름 책임감도 생기긴 했고. 이렇게 쉽게 될 것을 뭐하러 뺑글뺑글 돌아갔었나.

연애는 생각보다 그렇게 달콤하지 않았다. 좋긴 한데,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 어차피 인간 관계였다. 인간 관계는 어떤 관계든 희노애락이 존재하니까.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예뻐서 확 깨물어 주고 싶을 때도 있는 반면, 멘탈이 잘근잘근 씹힐 때도 있었다.

정윤이는 스킨십을 좋아했다.

“오... 오빠 팔근육 장난 아닌데.”

하면서 팔을 만지작 거리거나

“요즘 스쿼트 많이 해?”

하면서 허벅지를 툭툭 두들겼다.

사귄 지 200일이 넘어갔을 무렵, 단둘이 술을 먹고 집에 갈 때였다. 정윤이는 울면서 말했다.

“오빠. 오빤 내가 여자로 안 보여? 왜 그러는 거야?”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나한테 아무 짓도 안해? 나는 오빠한테 나름 티도 내는데.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거 알아? 내가 무슨 전시물이야? 매력이 없는 거야?”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나는 그.. 막 이것저것.. 그러니까 말하기 민망한 그런 것들도 하고 싶은데. 오빠는 아무 것도 안하잖아. 물론 진중하고 그런 것도 좋아. 아니 그런 게 좋아서 만났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왜 그러는데. 제대로 말해봐.”

“우리 사귄지 지금 200일이 되었는데, 손 잡은 게 다야. 솔직히 말해봐. 내가 여자로 보이긴 한거야?”

사실 이해가 안 되었다. 손 잡은 것 이상으로 더 뭘 할 수 있겠는가. 정윤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풀어 주어야 한다. 풀어야 한다.

“정윤아.”

“응?”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옛날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계속 못 물어봐서.”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 뭔데.”

심호흡 한번.

“너는 왜 소속사가 없냐.”

“응?”

“네가 얘보다 이쁜데, 데뷔 안하는게 국가적 손실인 것 같아. 뭐 덕분에 나랑 이렇게 놀고 있지만. 욕심이 없어서 고맙다.”

손가락으로 소주 광고 판넬을 가리켰다. 대한민국 대표 냉미녀 어이린이 소주를 들고 서 있다.

“참내.”

“아, 맞다 너 노래 못하지. 다행이다.”

“뭐야?”

퍽. 퍽. 아, 얘 손이 매운 건 처음 알았다.

아까까지 화내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들었다.

휴. 진압 완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조금 더 기다려달라 이거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연애가 처음이야.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많고. 솔직히 말해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줘. 나중에 내가 마음의 준비를 마치면 그때 말할게.”

정윤이는 그래도 불만이 남았는지 썩 맘에 들어 하지는 않았다.

“알았어. 그럼 대신에.”

입술이 닫았다. 향기와 함께.

“이걸로 퉁쳐. 나중에 제대로 받을 테니 각오해.”

다음날 아홉시에 수업이 있었다. 처음으로 지각을 했다. 잠이 들기 위해서 비염약을 삼켰는데도 각성 상태는 가실 줄 몰랐다.

사실 시간을 가져보자,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말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이라도 속성 진도를 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하지 않기에 하는 말이었다.

원장이 말한 성욕에 대한 반감기는 1년이었다. 다행히 원장은 끝까지 사기꾼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반감기 조차도 구라를 친 것이다. 1년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성욕은 금새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왕성해지지는 않았다. 야동을 봐도 잠깐 섰다가 바로 가라 앉았다. 이 상태로 관계를 가지면 조루로 기억되기 딱이었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정윤이한테는 거듭 말했다.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캠핑장이 된 사타구니를 보았을 때 뛸 듯이 기뻤다. 혹시 몰라 한 발 빼봤는데도, 텐트 지지대는 거뜬하였다. 좋아. 이때야.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정윤이에게 전화로 주말 호텔을 잡자고 했다. 여태까지 기다려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내가 진짜 제대로 보답하겠다고.

준비물을 챙겼다. 일단 호텔에 몰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몰카 탐지기도 챙기고, 콘돔은 당연히 가져 갔다. 청결제도 챙겨서 깨끗하게 씻어야 했고, 혹시 관계 도중 아플 수도 있으니 윤활제도 챙겼다.

호텔에 들어갔다. 단 둘만 있다는 흥분감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일단 가지고 온 준비물을 풀었다. 정윤이가 깔깔깔 웃었다.

“아이구. 이렇게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었다니. 오빠 고마워. 사랑해!”

그러면서 얼굴에 뽀뽀를 엄청나게 했다.

“오빠 청결제 잘 쓸게. 그럼 나 씻을 테니까. 잠깐 기다려줘.”

이 상황에서 꼬떼기 사기꾼들에 대한 기사를 본 것이다. 비록 화가 무지막지하게 났지만,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마음을 추스렸다. 내가 씻을 차례가 되었다. 여자랑 같은 공간에서 씻은 적이 없어서 굉장히 낯설었다. 몇분 전까지 여자가 씻었던 공간에서 나도 씻는다니. 그리고 조금 있다가 하나가 된다니.

물기를 닦고, 수건으로 가릴 부분만 가려서 나왔다. 정윤이가 TV를 끄고 나를 보며 웃었다. 이불을 덮고 있었다.

“이리 와!”

푹 안겼다. 샴푸 냄새가 났다.

그 다음부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알아서 상상하시길 바란다. 쓸데없이 자세히 설명하면 심의에 걸리기 때문이다. 아, 여태까지 풀었던 썰들이 이미 심의에서 충분히 벗어났으려나.

“이제... 하면 될 것 같아.”

정윤이가 땀에 절은 상태로 말했다.

“으... 으응.”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마음을 먹었다. 심호흡을 하고 간닷!

어?

어.

어.

어.

어..

“왜 그래.”

이럴 리가 없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이래서는 안된다.

“아..아...”

“뭐야. 왜?”

정윤이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보았다.

“안 서.”

에필로그

로켓런쳐 공연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진 뒤로, 세상에서 공연이라는 건 역사 속의 유물로 취급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본의 욕망은 그보다 강했다. 마스크 착용과 손 세정제 사용 및 QR코드를 통한 신상 정보 기입 등. 거추장스러운 절차가 꽤 있었지만 관람할 수 있다는 걸로 만족해야겠지.

걸그룹 공연을 학교 강당에서 한다는 것이 꽤 신선했다. 규모는 5000명 정도이다. 순식간에 티켓팅이 마감되었다. 두장을 구해야 했는데, 하나는 간신히 샀지만 나머지 하나는 암표로 구했어야 했다. 하여간 별 그지같은 것들이 가격을 미친 듯이 올려놨다. R석 구만구천원짜리가 몇 분만에 십오만원으로 폭등했다. 시간 지나면 더 오를 게 뻔해서 일단 빨리 사두었다.

어차피 학교 강당에서 공연하는 거니까, 도서관에서 책이나 좀 읽었다. 베스트 셀러 도서에 꼬떼기 관련 서적은 다 내려가 있는 상태이다. 3년동안 나라가 좀 미쳐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에 편승한 나 또한 미친놈이었지.

행복이란 건 뭘까,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행복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행복은 쫓으면 쫓을수록, 오히려 쫓아내게 된다. 오히려 행복을 생각하지 않을 때, 어느 순간 잠깐만 옆에 와 있다.

예전에는 지난 날들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때를 좋은 경험이라고 치부하고 싶진 않다. 어느 누가 범죄 피해 사실을 의미있다고 생각 할까. 다만, 살다 보니 그렇게 살게 되었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정도는 가지고 있다.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공연 시작 1시간 전이 되자, 한산해야 했던 금요일 오후의 학교는 점차 로켓 런쳐 팬들, 일명 ‘켓쳐’로 붐볐다. 각자의 손에 응원봉을 든 채, 자본이 만들어 낸 우상을 숭배하기 위하여 하나 둘 씩 모여 든다. 나는 아직 오기로 한 인간이 오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 빨리 와야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데 말이지.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샀다. 달달한 것을 좀 섭취하니, 더운 날씨에도 기운이 생겼다. 그런데 왜 바나나 우유는 바나나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바나나 맛이 날까. 석학들이 모여 몇 년 머리를 맞대고 나온 결과물인가. 현대 문명의 승리인가. 그러면 바나나가 함유되지 않은 바나나 우유는 바나나의 속성을 띤다고 볼 수 있는가. 바나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뭐 어때, 맛만 좋으면 됐지.

공연 시작 삼십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오고 있다. 약속 시간 보다 한참 뒤에 와서, 머쓱하게 웃으며 걸어 온다.

“30분이나 늦냐! 이따가 밤에 각오해라.”

허세 좀 섞어서 으름장을 놓았다. 얼른 들어갔다.

무대에 들어섰다. 입장 시간이 지나고, 강당이 깜깜해졌다. 모든 것이 검은색이었다. 그 다음 노란색, 빨간색, 주황색 조명이 켜졌다. 마지막에는 하얀색 빛이 무대를 덮었다.

“”안녕하세요. 로켓 런쳐입니다!“”

와아아아 하는 함성. 여섯 명의 우상들은 관중을 향해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태양이 너무 밝았다면, 너를 위해 달을 띄워줄게.

참 좋은 가사와 아름다운 춤사위다. 자본으로 맺은 쌍무적 계약 관계 안에서, 소비자들은 그들의 우상과 정신적, 물질적 교제를 나누었다. 거기에 정신 팔려서 같이 온 사람을 별로 못 챙겼다. 표정을 보아 하니 삐져 있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오늘만 봐줘. 좋은 날이잖아.

그렇게 현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탕아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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