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당선작]
 

공포영화

서경민(국문·18)

 

그네 밑에는 사람이 묻혀 있다

피아노 유령은 자기 얼굴을 연주한다

아메리카노에 빠져 죽은 초파리를 건져내면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있다

 

놀이터에 가야겠다

다용도실을 뒤져 흙손을 찾아냈다

 

다녀올게, 확실히 할게

 

403동 102호 피아노 학원이 끝나면

애들은 그네 기둥을 뽑을 태세로 발을 구르지

학원이 끝난 김에 그네도 같이 끝장내려고

 

내가 누르는 건반을 똑같이 따라 누르는 애는 누굴까?

다음 달에는 수업 시간을 바꿔 달라고 할 거야

 

piano forte forte piano

타임 찬스가 사라진 애들이

놀이터에 남지 않을 때까지

해가 진 후에도 정글짐 위에 앉아있는 게

그림자가 사라지는 걸 가만히 보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404동 할머니가 가꾸는 화단 옆 물뿌리개

라인기를 끝에서 끝까지 밀면서

 

식물 운동장을 만들 거야

할머니 평생소원이 마당 있는 집에 살며 정원을 가꾸는 거라고 했거든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 거야

할머니한테 운동장을 선물할 거야

 

밤새 운동장을 하얗게 칠했던 것처럼

물뿌리개 한 통을 다 비울 때까지 놀이터를 지그재그로 걷는다

 

쓰러진 모래성 지워진 발자국 먹다 버린 막대사탕에 들러붙은 개미들

흔적도 남지 않도록

땅을 모조리 고르게 만드는 거야

들썩이는 흙을 조용해질 때까지 두드리는 거야

이렇게 평평한 곳에 사람이 묻혀 있다고는 생각지 못할 거야

안심해, 죽은 척하면 못 본 척할 거야

 

공부방에 다니는 애보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애가 더 멋진 것 같아

decrescendo crescendo crescendo decrescendo

피아노 학원에 다닐 날이 올 때까지 놀이터를 백 바퀴는 돌았다

 

이게 16분 쉼표야

16분을 쉬고 싶으면 곡이 짧아져야 하니까 빨리 곡을 끝내고 콩나물 대가리를 떼야 하니까 남들 사는 거 반의반만이라도 따라가야 하니까 이다음에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사람이 되어라

 

오래 조용하고 싶어서

악보 가득 4분 쉼표를 그렸다

 

피아노 뚜껑 위에 올려 둔 선생님이 마시던 커피를 쏟고

겨울이 오기 전에 학원을 그만둘 거예요

 

놀이터에 쌓인 눈을 다지면서

아무도 눈싸움을 못 하게 할 거예요

 

피아노를 치는 데 누가 밖에서 그네를 타면

모든 음에 스타카티시모가 붙어 건반 아래로 떨어졌다

 

물뿌리개에 물을 채워 넣는 사람을 알아요

누울 자리를 아는 사람으로 크고 싶어요

 

번개가 치고 나면 평균 8초 뒤에 천둥이 울립니다

 

Adagio Allegro Allegro Adagio

마구 악을 써도 벼락을 맞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