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격 유족 상속 제한하는 ‘구하라법’ 입법 논쟁

“이럴 거면 날 왜 낳았고 왜 버렸을까?” 1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가수 故 구하라 씨가 생전 남긴 메모다. 그의 친모는 20년 전 집을 나간 후 양육의 의무를 저버렸다. 하지만 故 구하라 씨가 세상을 떠나자 홀연히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가져갔다. 해당 사건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고, 이를 계기로 국회에 「민법」 상속편 일부 개정안(아래 구하라법)이 발의됐다.

 

 

양육보다 핏줄이 우선?
‘구하라법’ 입법 필요성 논의돼

 

지난 3월, 故 구하라 씨의 친오빠 구호인 씨와 법률 대리인 노종언 변호사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페이지를 통해 구하라법의 제정을 요구했다. 이 법은 직계존비속*에 대한 부양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경우, 이를 상속 결격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해당 청원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20대 국회에 정식 발의됐으나, ‘모호성’을 이유로 입법은 무산됐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에 의해 21대 국회에서 재발의된 상태다.

현행 상속제도는 양육을 게을리한 부모에게도 상속권을 인정한다. 「민법」 제1004조에 따르면 상속 결격 사유는 ▲상속을 받기 위해 상속인**을 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한 경우로 한정된다. 실제로 지난 4월에는 28년 만에 나타난 생모가 암으로 숨진 딸의 억대 보험금과 전세금을 수령했고, 10월에는 순직 소방관의 생모가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 보상금과 연금을 받아가기도 했다. 이에 노 변호사는 청원을 통해 “생면부지의 부모가 자녀의 사망으로 인한 재산적 이득만을 취하는 것은 보편적 정의와 인륜에 반한다”며 “실질적 양육자에게 제대로 된 몫이 돌아갈 수 있도록 친족 우선의 현행 상속제도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대가 변하면 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서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현행 「민법」은 지난 1958년 제정돼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현행 상속법을 유지하면 수많은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법제 사법위원회 박장호 수석전문위원 또한 검토보고서(아래 보고서)에서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를 인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법 제정 당시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양육의무를 게을리할 가능성이 적었다. 이혼율이 낮고 여성의 재혼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혼율 증가로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면서 부모와 자녀 간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혼인율이 낮아지고 초혼 시기가 늦어짐에 따라 부모가 사망한 자녀의 상속인이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한 상속제도 개편이 요구되는 실정이다.

 

딜레마 극복하고
사회적 합의 이뤄야 할 때

 

그러나 구하라법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양의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했음을 판정할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8년 「민법」 제1004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결정문에서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중대한 범법 행위나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선대 글로벌법학과 정구태 교수는 “구하라법이 통과되면 부양의 의무 이행을 둘러싸고 상속 분쟁이 잦아질 것”이라며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판례를 통해 구하라법의 모호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서 의원은 ‘부양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정계와 법조계의 우려에 대해 “'현저히'라는 표현은 이미 「민법」 내 14개 조항에서 사용되고 있는 법적 용어”라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부양 정도를 판단할 때 법원의 판례를 통해 이를 구체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중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해외에서도 부모의 부양 의무와 관련해 '현저히' 또는 '중대하게'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처럼 구하라법을 둘러싼 법리적 공방이 계속되며 입법은 점점 더뎌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법 제정에 따른 모호성을 최소화하면서도 현행 상속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부양 의무 불이행을 ‘상속 결격 사유’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상속권 박탈’의 사유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자의 경우, 상속인은 법적으로 자연스레 상속 자격을 잃는다. 서 의원이 발의한 구하라법은 전자에 해당한다. 반면 후자는 의무를 저버린 상속인에 대해 피상속인***이 생전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 선고를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두 방식의 효과는 같지만, 입증의 책임 유무에 따른 차이가 있다. 정 교수는 “부양 의무 불이행을 상속 결격의 절대적 사유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가정법원이 예외적으로 상속권을 박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상속액 ‘감액’의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법인 ‘가족’ 엄경천 변호사는 지난 4월 ‘법률신문’을 통해 상황에 따라 상속분을 조정할 수 있도록 「민법」 제1008조의3 규정 신설을 제안했다. 이 규정이 신설되면 유족 등 상속인은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공동상속인에 대해 상속분 심의를 청구할 수 있다. 상속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를 장기간 이행하지 않은 경우, 법원은 상속분의 전부 혹은 일부를 감액할 수 있다.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행사하는 부모들이 있다. 상속제도를 개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허와 실을 따져본다면 적절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가 떠난 자식과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직계존비속: 자신을 낳은 부모와 자신이 출산한 친족을 가리킨다.

**상속인: 망인의 재산이나 기타의 것을 물려받는 사람

***피상속인: 자신의 권리, 의무를 물려주는 사람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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