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he Y
[Y,人] '성차별'과 '낙인', 두 장벽을 넘어서서학내외 페미니즘 단체를 만나다
  • 송정인 김서하 기자
  • 승인 2020.11.29 21:54
  • 호수 62
  • 댓글 0

지난 2019년 1월 4일,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아래 총여)의 폐지가 결정되며 서울권 대학의 총여가 전멸했다. 이로써 여성 학우의 권리 신장을 위해 결성됐던 총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이번 『The Y』 Y, 人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대학 판을 바꾸려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평등을 외치는 사람들

성차별은 한국 사회의 오랜 숙제다.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성차별의 폐해가 남아있다. 대학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도 대학 내 성폭력과 성차별적 인식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페미니즘 단체들은 학내외를 가리지 않고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여러 캠퍼스의 대학생들로 이뤄진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학내외 사안에 공동으로 대응한다. 한편, 중앙대 인문대학 페미니즘 동아리 ‘바리’와 연세대 미래캠 페미니즘 소모임 ‘페미고’는 페미니즘 연구와 활동을 진행하며 교내 페미니즘 확산에 힘쓴다.

이들의 활동은 대학이라는 생활공간이 성평등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아직까지 대학 내 성폭력, 단톡방 성희롱 등이 심각하며, 커뮤니티 내 혐오표현도 만연하기 때문이다. 유니브페미 대표 노서영씨는 “학내 미투 운동이 일어났음에도 총학생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보고 답답했다”며 “기존 학생회 체계에서는 학내 성폭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페미고 활동가 안김지현씨는 “복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교내에서 겪은 성폭력이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비슷한 일을 겪은 분들께 힘이 되고 싶어 활동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유니브페미는 가부장제와의 결별과 젠더 이분법 해체를 위해 출발한 단체다. 이들은 총여 활동의 2막을 이어나가려 한다. 노서영씨는 “총여 폐지 이후 여성 학우들의 권리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학 페미니즘 운동의 구심점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바리는 학내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에 맞서고 교내 페미니즘의 울타리를 넓히고자 결성됐다. 바리 창립회원 노창석씨는 “남성주류적인 과에서 페미니즘이 터부시되는 경우가 잦다”며 “인문대 단위의 동아리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페미고 또한 학내에서 다양한 페미니즘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여성과 자연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는 에코페미니즘, 기독교 신자의 페미니즘 실천을 연구하는 기독교 페미니즘 등이 있다. 페미고 활동가 김유다씨는 “페미고에서 정의하는 페미니즘을 딱 잘라 말하긴 힘들다”며 “회원들 각자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에 따라 관련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운동이 불러온 변화의 물결

다양한 학내외 단체들이 성평등한 대학 사회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 페미고는 교내에서 페미니즘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들은 소모임 내부에서 페미니즘 탐구나 토론을 하고, 학기 말 공개 발제회를 통해 한 학기 동안 연구한 것을 일반 학우들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안김씨는 “우리가 활동하지 않았으면 학내 페미니즘의 입지가 좁아졌을 것”이라며 “우리의 활동으로 인해 학내에서 페미니즘이 화두로 거론되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전했다. 바리 활동가들 또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교내 페미니즘 강연회 개최를 꼽았다. 이들의 강연회는 작가 및 학자 중심의 강연회에서 벗어나 네이키드 아트 모델 김경진씨를 섭외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김경진씨는 나체 미술을 통해 육체와 페미니즘이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노창석씨는 “일상에서 본인만의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강연회에 관심을 가져줘서 뿌듯했다”고 전했다.

한편, 대학 연합체인 유니브페미는 대학 공통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데 주력한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연대 성명을 진행하거나 기자회견을 여는 식이다. 최근에는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내 혐오표현 대응을 위한 ‘F5(새로고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유니브페미는 에브리타임 내 혐오표현 게시물을 수집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통위)에 전달했으며, ‘우리를 삭제하는 대학 내 500가지 혐오표현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에 지난 10월 8일 방통위는 에브리타임에 ‘자율규제 강화 권고’를 내렸다. 혐오표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유니브페미 활동가 장정씨는 “그간 진행한 활동들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져 뿌듯했다”고 전했다.

연합체의 특성을 살려 대학별 현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비교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유니브페미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성평등 관련 제도 현황을 조사하는 ‘대학 성평등 지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대학별 여성학 수업의 개수, 월경 휴가 존재 여부 등을 파악하고 이를 기준으로 학교별 순위를 매긴 것이다. 노서영씨는 “주기적으로 성평등 지수를 조사할 계획”이라며 “조사 대상을 전국 대학으로 확산하겠다”고 전했다.

학내 단체와 학외 연합체가 연대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일례로 페미고는 유니브페미의 ‘혐오를 넘어서는 페미들’ 연속 간담회에 참가했으며, ‘160만 인의 선언: 낙태죄폐지전국공동행동’ 소속 단체로 기자회견과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김유다씨는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는 사안이 발생하거나 외부 연대의 단체 행동이 있을 때는 동참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장씨는 “연합체 활동을 통해 타 대학의 페미니즘 소모임이나 단체들과 연대할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어려움도 존재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은 필요하다

이들은 성차별이라는 장애물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이들을 가로막고 있는 더 큰 장애물이 있다. 바로 신입회원 모집이 어렵다는 점이다. 학내 구성원이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 신입회원을 구하기 힘들다. 김유다씨는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분들의 신고로 인해 에브리타임에 회원 모집이나 활동 홍보를 올리기 어렵다”며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신입회원이 들어와 회원들의 신상을 유포할까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외 단체인 유니브페미는 학내에 성평등 제도 현황 질의서를 보냈을 때 거부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노서영씨는 “단체 이름이나 활동을 보고 거부당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이유는 대학 내 성차별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유다씨는 “대학 내 성폭력 사건, 교수의 성차별적 발언 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성차별 문제 역시 심각하다. 노서영씨는 “커뮤니티 내 혐오표현으로 인해 여성을 비롯한 학내 소수자 구성원들이 실질적 위협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창석씨는 “페미니즘은 이러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고, 피해자에 연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며 “페미니즘은 우리가 생활에서 마주하는 성차별과 혐오로부터 우리를 지킬 힘을 준다”고 전했다.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의 페미니즘 낙인 해소가 필요하다. 김유다씨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학내 활동 홍보가 어렵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서영씨 역시 “페미니즘에 대한 낙인이 심해 성폭력 사건 등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내 일상 공간을 같이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 속에서 서로를 대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이들은 모두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이 지속되려면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유다씨는 “학교 당국의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다”며 “전체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과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고 성차별이나 성범죄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만들어 가해자를 제재해야 한다”고 전했다. 노창석씨도 “페미니즘, 퀴어 등을 다루는 필수교양이 개설돼야 한다”며 인권 의제를 다룬 강좌 개설을 요구했다. 대학 인권센터의 강화 역시 필요하다. 노창석씨는 “대부분 대학 인권센터는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된다”며 “인권센터는 대학 내 사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에 인력 보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학과나 동아리 등에도 성평등 기구가 개설돼야 한다”며 성평등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씨는 “최근 서울대에서 차별과 혐오를 용인하지 않고 평등을 추구하는 인권 헌장을 만들려 한다”며 “꼭 만들어져 좋은 선례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성평등한 대학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이들을 만나봤다. 성평등한 대학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 모두와 학교 측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의 움직임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어떨까.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 다들 어떻게 생각해?>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을 대학 내 구성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대학교_2학년_재학생_정모양

대학 내 여자 화장실 몰카 등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에 나가면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회에 나가기 전, 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근절시킬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교_3학년_휴학생_안모양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인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에게 살만한 세상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성차별을 계속 경험해왔고 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소리 높여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음 세대에겐 내가 받아온 혐오와 차별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대학으로부터 시작한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사례를 보지 않았는가. 학내에서 움직임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대학교_3학년_재학생_김모양

사실 ‘대학’뿐 만 아니라 한국 내에 어떤 공동체에서든 페미니즘 운동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는 대학은 사회를 이끌어 갈 청년들이 살아가야 할 옳은 방향을 가르쳐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학교_4학년_막학기_김모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을 사물로 취급하는 인식이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것이라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자유로운 비판 단체인 대학은 권력 외부로 밀려난 인류의 절반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해야 한다. 문제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비판하는 게 대학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글 송정인 기자
haha2388@yonsei.ac.kr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사진제공 유니브페미, 페미고>

송정인 김서하 기자  haha2388@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