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호 재즈평론가에게 듣는 재즈 이야기

‘겨울에 들어야 할 재즈 추천’, ‘크리스마스 재즈’. 겨울이 되면 음원 서비스 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사람들은 왜 겨울에 재즈를 찾는 것일까.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재즈평론가 황덕호씨를 만났다. 각종 CD, LP, 책으로 둘러싸인 작업실에 재즈가 울려 퍼지자, 그가 이야기하는 재즈의 매력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포근했던 재즈의 시간에 당신을 초대한다. 황씨가 소개하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겨울을 맞이해보면 어떨까.

 

 

 

Q. 크리스마스철이 되면 거리에 재즈가 울려 퍼진다. 재즈와 크리스마스는 어떤 관계인가.

A. 재즈는 신나지도, 처지지도 않는다. 그 덕에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린다. 크리스마스에는 두 가지 분위기가 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설레고 즐거운 일이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크리스마스가 종교적인 날이다 보니 차분한 분위기도 있다. 두 상반된 분위기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 장르가 재즈인 것 같다.

 

Q. 재즈의 특징은 무엇인가.

A. ‘즉흥 연주’가 재즈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1930년대까지 재즈는 대중음악으로 기능했다. 점잖은 음악이 보편적이었던 당대에 재즈는 격렬한 즐거움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듬 앤 블루스가 등장하자 재즈는 대중과 유리돼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됐다.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연주자들 사이에서 재즈가 발전하다 보니, 변형을 강조하는 즉흥 연주가 두드러졌다

 

Q. 즉흥 연주를 느낄 수 있는 곡을 꼽는다면.

A. 재즈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곡이 있다.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Chet Baker)의 「That Old Feeling」이다. 이 곡에서 작곡된 부분은 가사가 나오는 1분가량이 전부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피아노와 트럼펫 연주자의 즉흥 연주가 이뤄진다. 이처럼 오늘날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즉흥 연주다.

 

Q. 재즈 곡명 뒤에 ‘Live at 특정 장소’가 많이 붙는다. 현장성이 재즈의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A. 그렇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Diminuendo In Blue」, 「Crescendo In Blue」와 관련된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두 곡은 원래 하나의 곡이지만, 당시 음반 기술의 한계로 3분씩 나눈 채 발매됐다. 즉, 두 곡을 합쳐도 6분 정도의 길이다. 해당 곡은 발매 이후 ‘뉴포트(Newport)’라는 재즈 페스티벌에서 라이브로 연주됐다. 이때 흥이 오른 한 관객이 무대 앞으로 나와 격렬하게 춤을 췄다. 이를 본 엘링턴이 솔로 연주를 하던 색소폰 연주자에게 계속 연주를 이어 가라고 지휘했다. 그렇게 즉흥 연주는 10여 분간 진행됐다. 1956년 뉴포트의 「Diminuendo In Blue and Crescendo In Blue(Live)」는 길이가 14분이나 된다. 우연성이 음악을 풍부하게 만든 일화다.

 

Q. 한 곡이 여러 뮤지션에 의해 새롭게 발매된다는 점 역시 특이하다.

A. 이와 관련해 대표적인 재즈 헤드*인 「Autumn Leaves」를 추천하고 싶다. 「Autumn Leaves」는 재즈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리메이크하는 곡이다. 쳇 베이커가 트럼펫으로 연주한 「Autumn Leaves」와 아마드 자말 트리오(Ahmad Jamal Trio)의 「Autumn Leaves」를 비교하며 들어보길 추천한다. 특히 아마드 자말 트리오의 곡은 기존 「Autumn Leaves」의 분위기를 전복시켜서 많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다.

 

Q. 재즈에는 즉흥 합주를 뜻하는 ‘잼(jam)’이라는 단어가 있다. 뮤지션들이 즉석에서 상호 작용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재밌다.

A. ‘호스트’라 불리는 밴드 주인을 중심으로 즉흥적으로 밴드가 구성돼 ‘잼’을 한다. 유명한 뮤지션이 호스트를 한다는 소문이 나면, 그날 재즈 클럽은 뮤지션들로 가득 찬다. 유명한 뮤지션과 즉흥 합주를 하려고 뮤지션들이 모이는 것이다. 굉장히 낭만적인 것 같지만, 현실은 차갑다. 호스트 외의 연주자들은 악보에 선착순으로 이름을 적고 그 순서에 맞춰 무대로 올라가 연주한다. 호스트가 키와 템포를 임의로 정하면 연주가 시작되는데, 즉흥 연주 실력이 부족한 뮤지션은 무대에서 내려오게 된다. 한 번도 연주하지 못한 채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보통 유명 음반 회사나 밴드 구성원을 구하는 유명 뮤지션이 객석을 차지하는데, 이들의 눈에 띄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것이다.

 

Q. 전통 재즈, 스윙(Swing), 비밥(Bebop) 등 재즈의 스타일이 다양하다. 각각의 스타일을 설명한다면.

A. 전통 재즈는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연주된 초기 재즈를 의미한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전통 재즈 스타일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1930년대의 재즈는 소위 ‘스윙’이라고 불리는 춤을 추기 좋은 형태로 발전했다. 당시 재즈는 대중음악으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재즈가 인기를 잃던 1940년대에 탄생한 ‘비밥’이 모던 재즈의 형태다. 이때부터 재즈 내부의 스타일 분화가 심화됐다. 1950년대 이후에는 화성 진행, 템포 등을 고려하지 않는 ‘프리 재즈’ 스타일이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오넷 콜맨(Ornette Coleman)의 「Free Jazz」가 있다. 정해진 화성도, 템포도 없는 이 곡이 재즈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이처럼 어떤 음악 장르도 재즈처럼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지는 않는다.

 

Q. 유독 재즈에서 다양한 변형이 일어나는 이유가 궁금하다.

A. 대중의 인기에서 벗어난 점이 역설적으로 다양한 변형을 가능케 했다. 팝의 경우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해 뮤지션이 아닌 전문가의 개입이 심하다. 그러나 재즈의 경우, 시장이 작은 만큼 수요층이 보장돼있다. 이들은 재즈의 자유로움을 원하기에 뮤지션의 자율성이 더욱 보장될 수 있다.

 

Q. 재즈가 낯선 이들에게 재즈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팁을 준다면.

A. 즉흥 연주와 작곡된 부분을 구분해 듣는 것이다. 재즈의 묘미는 즉흥 연주에서 만들어진다. 작곡된 부분의 코드를 즉흥 연주로 어떻게 변형하느냐에 따라 연주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 구분하며 듣는다면 뮤지션에 따라 달라지는 재즈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재즈평론가 황덕호가 추천하는 ‘겨울과 어울리는 재즈 앨범’>

 

 

#듀크 조단(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

 

듀크 조단은 모던 재즈의 초창기에 활동했던 재즈 피아니스트다. 출중한 연주 실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없어 뉴욕의 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덴마크의 유명 프로듀서의 제의를 받고 이 앨범을 냈다. 수록곡들을 듣다 보면 앨범 표지에 담긴 덴마크의 하얀 설원이 떠오른다. 꿈에 그리던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피아니스트는 설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유롭고 가벼운 피아노 선율이 그의 생각을 대신 말해준다.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Ella Wishes You A Swinging Christmas』

 

재즈 보컬계의 디바로 불리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재즈 캐럴 앨범이다. 익숙한 캐럴 멜로디에 재즈의 매력을 더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울면 안 돼’나 ‘루돌프 사슴코’를 재즈 스타일로 편곡했다. 「Frosty the Snowman」과 같은 경쾌한 캐럴부터, 「What Are You Doing New Year’s Eve?」와 같은 차분한 캐럴까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면 어김없이 듣고 싶어질 음악들이 수록돼있다. 보컬 재즈 앨범인 만큼 현란한 스캣**도 감상 포인트다.

 

*헤드: 연주곡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주요 멜로디 부분을 의미한다. 이를 변형해 즉흥 연주가 이뤄진다.

**스캣: 가사 대신 뜻이 없는 말로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는 것으로 재즈 보컬의 즉흥 연주라 볼 수 있다.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사진 변지후 기자
wlgnhuu@yonsei.ac.kr

<자료사진 지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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