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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②] 능력 없는 청년, 노력이 부족한 청년?한국식 능력주의가 초래한 불공정
  • 변지후 기자
  • 승인 2020.11.29 21:58
  • 호수 62
  • 댓글 0

‘공정’은 오늘날 뜨거운 감자다. 공정은 올바른 잣대로 공평하게 세상을 나아가게 하는 가치다. 그렇다면 공정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흔히들 공정함의 토대는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능력주의는 학력이나 학벌, 연고와 관계없이 본인의 능력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능력주의는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을까.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싶어요”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노력에 비례한 차등 분배’다. 지난 2018년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한국사회 공정성 인식조사(아래 공정성 인식조사)’에 따르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수의 차이가 클수록 좋다’고 답한 비율이 66%로 가장 높았다. 차등 분배를 선호하는 현상은 전 계층 및 사회집단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차등이란 경쟁을 전제로 한다. 차등 분배의 논리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면 납득해야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때 우리 사회에서는 결과물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변수로 능력과 함께 ‘노력’이 꼽힌다. 즉 우리 사회에서 차등 배분의 논리는 ‘노력한 만큼 보상 받을 수 있다’는 비례의 원칙을 내포한다.

이에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 학업성적, 어학 점수, 자격증 취득 등의 스펙 쌓기에는 질보단 양적으로 수치화된 능력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는 인식이 담겨있다. 직업정보제공기관 사람인의 지난 2019년 1인당 연평균 취업 준비 비용 설문조사에 따르면 11년 새 취업 준비 비용은 176만 원에서 348만 원으로 약 두 배 가량 늘어났다. 이처럼 청년들은 각종 스펙 쌓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노력하면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은 경쟁 사회가 돌아가게 하는 연료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국의 능력주의,
공정함으로 포장된 사회적 폭력

그러나 능력주의에 대한 과한 믿음은 노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낳을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능력주의가 성립하려면 외적인 요소의 개입 없이 오로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의해서만 평가돼야 하지만,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지난 2018년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 사원의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친인척 특혜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이외에도 2019년 KT 부정채용 청탁 등 채용 관련 비리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경찰청이 지난 2018년 한 해 동안 적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건수는 432건으로, 관련인은 무려 1천224명에 달한다. 이는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채용 비리만을 적발한 수치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정 채용이나 사기업에서 일어나는 부정채용은 합산돼 있지 않다.

부정 채용 의혹 당사자들은 재벌, 기업 고위 간부, 정치인의 자녀 혹은 지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의 지위나 부가 채용 비리를 통해 자녀에게 세습되는 셈이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는 이들을 칭하는 단어가 됐다. 극소수의 ‘금수저’에 해당되지 못하는 보통의 청년들은 뉴스에서 채용 비리 사건을 접하며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낀다. 청년의 대부분은 취업준비생, 혹은 예비 취업준비생이다. 자신을 ‘은수저’도 아니라고 말하는 대다수의 청년은 취업의 장벽 앞에 스펙 쌓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이처럼 일명 ‘금수저’, ‘은수저’ 등의 세습론 앞에서는 개인의 노력이 무력화되기도 한다.

이에 능력주의는 공정함으로 포장된 사회적 폭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능력주의는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1958년에 발표한 풍자소설 『능력주의(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소개한 용어로, 능력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능력에 따른 차별과 엘리트 계급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가 사회를 어떻게 개조시켰는지에 대한 사회학적 풍자가 담긴 내용의 책이다. 소설의 내용처럼 능력에 따른 차별을 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는 위험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그의 칼럼 ‘능력주의의 파탄’에서 “능력주의의 파탄을 인정해야 한다”며 “그간 능력으로 간주해온 것에 따른 승자 독식 체제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공정과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법적 질서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정한 차등 분배는 공정한 법과 공정한 기회의 균등 아래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한국사회의 불공정 실태’에 따르면 ‘법 집행이 불공정하다’는 응답이 74%, ‘소득분배나 취업기회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71%로 가장 많았다. 즉, 노력에 비례하는 차등 분배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제도적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 셈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 ‘능력’을 갖추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이젠 옛말이 된 것이 아닐까. 공정함과 능력주의 사이, 한국 사회 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불공정과 불평등은 지속될 것이다. 불공정과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의 부족함으로 일축하지 않는 새로운 공정성을 찾아야 할 때다. 우리 사회가 과연 공정한 사회를 지향해 나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질 차례다.

글 변지후 기자
wlgnhuu@yonsei.ac.kr

변지후 기자  wlgnhu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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