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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관한 학우들의 의견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따옴표 저널리즘만 부추길 수 있어
  • 정준식(언홍영·16)
  • 승인 2020.11.23 13:20
  • 호수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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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식
(언홍영·16)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사회적 악영향이 큰 특정 불법행위에 가해자가 실제 손해액을 상회하는 액수를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제도다. 보통 기업이 판매한 제조물의 결함으로 피해자인 고객이 심각한 손해를 입었을 때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제조물책임법」에 해당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음에도 언론 보도에 이를 적용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러한 현상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에서 기인했다. 이를 부정하며 현재 한국 언론을 무조건적으로 변호하기는 어렵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관한 논의는 여당 지지층 일각에서 먼저 제시됐지만, 현재 언론에 보도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학우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제도 도입 논의에 깔린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한 번도 시행된 적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에 가장 먼저 적용한다면 이는 분명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일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골자는 가짜뉴스와 왜곡보도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가짜뉴스’와 ‘왜곡보도’ 개념의 모호성이다. 두 개념 모두 고의성을 내포하는 단어이기에 기자 또는 언론사의 악의적 행동으로 인한 거짓 보도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두 개념은 과실로 인한 ‘오보’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실제 판결에서 과실로 인한 오보와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칼같이 구분하기 쉽지 않다. 또 기사 작성 과정에서 악의적인 왜곡이 고의였음을 확인하더라도, 취재 과정 중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책임을 물을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초고와 최종 송고된 기사를 비교해 데스크와 기자 간 책임 정도를 배분해도, 초고를 작성한 기자와 기사를 수정, 편집하는 데스크 중 어느 쪽에 더 책임을 물을 것인지 답을 내리기 어렵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제도 도입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한 언론사가 해당 기사를 쓴 구성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패소한 언론사가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게 책임을 묻을 경우, 언론사는 기자의 업무 행위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으므로 업무상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할 수 있고, 언론사 내부 징계 및 해고 사유로도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일정 부분 책임 질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직업을 잃고, 나아가 회사의 구상권 청구로 재산까지 빼앗길 수 있다면 어떤 기자가 위축되지 않을 것인가?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될 경우, 기자들의 책임 회피 경향은 심해질 것이다.

기자들이 위축된다면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따옴표 저널리즘’ 문제가 심해지는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따옴표 저널리즘은 언론이 직접 사실이나 의견 서술을 회피하고 특정 인물의 발언을 그대로 전달하는 내용 없는 기사가 남발되는 현상이다.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될 경우 손해배상소송 피소를 피하기 위해 면피성 인용 기사가 남발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언론사가 기자를 방패막이 삼는 일이 계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언론이 취업준비생들이 기피하는 직종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학벌과 ‘스펙’으로 무장한 기자보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있는 기자가 좋은 기자일 것이다. 하지만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업무상 책임으로 인해 막대한 손해액을 배상할 위험을 감수하고 기자가 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책임감 있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장기적으로 언론 서비스의 품질 하락을 불러올지도 모를 일이다.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에는 많은 문제가 있기에, 당장 도입하기 어렵다. 마침 상법 개정을 통해 제조물책임 분야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법안이 입법 예고된 만큼, 다른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거친 이후 도입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해당 제도 도입 논의에 깔린 문제의식에는 깊이 공감한다. 언론 개혁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시작이 기자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이 돌아가서는 안 된다. 출입처 제도와 기자와 취재원이 유착하는 관행, 제대로 된 선행 취재 없이 다른 언론 기사를 베껴 쓰는 행위, 논란되면 기사를 슬그머니 인터넷상에서 삭제하는 행위 등 다른 잘못된 관행부터 고쳐나가는 것이 순서다. 특히 언론에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도입해야 할 제도는 송고한 기사를 임의로 삭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일일 것이다.

비록 문제가 많은 제도지만, 언론이 위기감을 느끼고 무조건 반대 목소리를 드높이기보다 이를 국민들의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여 자정 노력할 필요가 있다. 법적 강제라는 회초리를 들기 전에 언론이 좀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준식(언홍영·16)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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