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총, 우리대학교 대학원생 실태조사 보고서 발간

교수 갑질, 격무와 저임금 등 대학원생(아래 원생)이 겪는 수많은 문제는 알음알음 알려져 있어도 쉬이 공론화되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원 사회 문제의 심각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속으로만 곪아가고 있었다.

 

▶▶지난 2일 발표된 ‘2020년 연세대학교 대학원생 실태조사 보고서’는 추후 대학원생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예정이다.

 

우리대학교 첫 ‘대학원생 실태조사’

 

공공연히 알려진 원생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원생들이 불이익을 두려워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학내에서 원생들이 마주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본 조사가 없던 것도 원인이었다. 문제를 모르기에 해결 역시 미지수였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우리대학교 대학원의 문제해결의 실마리로 타 대학 및 외부단체가 진행한 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58대 대학원 총학생회 <너울>(아래 원총)은 지난 5월 11일부터 22일까지 우리대학교 전체 원생 및 연구생 등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에는 총 787명이 응답했으며 문항은 ▲인권 ▲교육 및 연구환경 ▲경제적 환경 ▲생활환경 등으로 구성됐다. 설문조사 결과는 11월 2일 ‘2020년 연세대학교 원생 실태조사 보고서’(아래 실태조사 보고서)로 발표됐다. 대학원 총학생회장 이누리(철학·석사4학기)씨는 “인권에 한정하려던 조사를 생활 영역 전반으로 확장했다”며 “사례 수집이 우선돼야 원생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번 조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실태조사, 무슨 내용이 담겼나?

 

통계로 드러난 원생 실태는 다소 충격적이다. 우선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원생은 55.7%로 과반수를 넘겼다. 경험자 중 업무량이 과도하게 많거나 정해진 업무 외의 근무를 시키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위계형 성폭력 및 폭력 문제도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 중 교수와의 관계에서 성폭력을 경험하거나 피해 사례를 아는 경우는 16.6%였으며 폭력으로 범위를 넓힐 경우 37.2%에 달했다. 특이한 점은 동료 및 선후배와의 관계에서도 성폭력(13.4%)과 폭력(26.1%)을 경험하는 빈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전체 연구자 사회가 넓지 않기에 일어나는 일”이라며 “선배가 교수가 되면 친한 후배에게 특강 자리를 마련해주는 등 원생의 진로 문제에 있어 선후배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수가 가진 권한뿐 아니라 대학원 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계질서에서 원생들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교육 및 연구 환경에 대한 문제점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의 영향이 크게 나타났다. 오프라인 강의 대비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강의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7.5%로 만족한다는 응답자(25.9%)에 비해 높았다. 교수자가 온라인강의 진행에 능숙하지 못하거나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한 점이 주요 불만으로 꼽혔다. 이씨는 “인문·사회 계열 원생들의 불만족도가 특히 높다”며 “온라인 강의가 기존의 소규모 토론식 수업을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꾸준히 제기되던 공간 부족 문제 역시 드러났다. 연구공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25.6%였으며 아예 연구공간이 없다는 응답도 3.1% 있었다. 원생들을 위한 교육 공간 및 시설이 부족하다는 응답도 35.5%로 높게 나타났다.

금전 문제도 크게 나타났다. 많은 원생이 연구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63.5%가 그 액수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에 많은 학생은 조교 업무 등으로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중 20.4%는 조교 업무를 통해 받는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15.1%는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동의 대가로 급여 대신 장학금을 지급받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급여가 아닌 장학금을 받는 탓에 원생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주휴수당은 물론 4대 보험 가입에도 차질이 생긴다. 이씨는 “금액의 규모를 떠나 급여가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되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등록금 반환 당시 원생들은 장학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등록금 반환 대상에서 제외될 뻔하기도 했다. 

 

갈 길이 먼 대학원생 문제들
원총, 행동 나서

 

원총은 이번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문제해결과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대학원에 실태조사 보고서를 전달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씨는 그간 고착화된 대학원 내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반성폭력 회칙 제정 ▲전국 대학원 네트워크(아래 전원넷) 출범 준비 ▲대학원 본부와 지속적인 소통 등 다방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먼저 반성폭력 회칙 제정에 대해 이씨는 “지난 2017년 선포된 ‘원생 권리장전’은 홍보가 잘 안 돼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특히 성폭력 문제에 대한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해 지난달 반성폭력 회칙을 제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태조사보고서에서 다양한 성폭력 관련 문제가 드러난 만큼 이씨는 회칙과 해설이 잘 정착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연구자 사회 전체의 위계 문제처럼 우리대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학계 내 교수의 영향력, ‘추천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끌어주기 관행으로부터 일어나는 문제들이 그 예다. 이에 원총은 전체 원생의 단결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현재 원총은 동국대, 서울대, 이화여대와 함께 전원넷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이씨는 “대학원에서 선배와 교수 등의 인맥 관리가 중요한 측면이 위계로 작용해 문제를 일으킨다”며 “전국적인 대학원 사회의 문제인 만큼 타 학교와 연대해 해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원넷은 오는 2021년 출범을 목표하고 있다.

이씨는 대학원 본부와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대학원 본부와 소통을 통해 비대면 강의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문제점을 비롯해 다양한 불편사항을 학교에 전달해 일부 개선을 약속받았다”며 “지금까지 부족했던 교학팀과의 소통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원 측은 앞으로도 문제해결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학원 교육지원센터 교학팀 박정원 차장은 “원생들의 교과·비교과적인 어려움과 위계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원생들의 문제는 모두가 쉬쉬하기만 했다. 위계에 눌려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원생들의 문제는 조금씩 커져갔다.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누군가는 조금씩 입 밖으로 꺼내고 있다. 이번 원생 실태조사 보고서가 원생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가 될 예정이다. 이씨는 “실태조사를 정례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 인수인계를 원활히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글 김수영 기자
bodo_inssa@yonsei.ac.kr
이지훈 기자
bodo_wonbin@yonsei.ac.kr

사진 홍지영 기자
ji0023yo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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