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종편 잔혹사’, 방통위는 어디에?

 

여기 6개월 동안 ‘방송 중단을 알리는 정지 영상’만을 송출하게 생긴 방송사가 있습니다. 바로 『나는 자연인이다』, 『알토란』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 MBN입니다.

 

지난 10월 30일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는 MBN에 6개월간 업무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국내 방송계에 내려진 바 없는 사상 초유의 ‘중징계’입니다.

징계의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선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MBN은 방통위로부터 종편 사업자 승인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지상파방송사처럼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있는 종편 사업자로 승인을 받기 위해선 많은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MBN은 다른 요건들은 맞췄지만, 결정적으로 돈이 부족했습니다. 승인을 받기 위해선 최소 3천950억 원의 자본금이 필요했는데 이 중 600여억 원이 모자랐던 것입니다. 당시 방통위는 종편의 지속성을 위해 ‘납입 자본금’의 규모를 중요한 승인 평가 기준으로 내세웠습니다. MBN이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애가 탄 MBN은 편법을 동원합니다. 임직원 명의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회사 주식을 사도록 한 것입니다. 사실상 회사 이름으로 돈을 빌려 다시 회사의 자본금으로 충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기상천외한 일을 벌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MBN은 종편 사업자로 승인받았고, 이후 재승인 심사에서도 회계 조작을 통해 이 사실을 숨겨왔습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방통위는 MBN이 「방송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방송법」 제18조는 방송사업 승인 과정에서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을 동원할 경우 방송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사실상 승인 취소까지 가능한 사안이지만, 방통위가 6개월 업무 정지로 결론 내린 이유는 승인 취소 처분이 불러일으킬 파장 때문입니다. 방통위로선 MBN에서 일하는 제작인력, 취재인력, 외주제작업체 인력 등 수많은 방송노동자의 생존권은 물론 ‘언론 탄압’이라는 정치적 논란까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시민단체는 업무 정지 처분이 ‘솜방망이’ 처분이라며 방통위의 안일한 결정을 비판합니다. 물론 언론시민단체 역시 종편 승인 취소가 불러올 파급효과를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이유는 방통위가 이미 여러 차례 종편이 공적 책임을 외면했음에도 ‘면죄부’를 준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0월 성명에서, 방통위가 종편에 “어떤 불법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만 받는 탈법적 지위까지 더해줬다”며 “방송법이 휴짓조각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방통위는 지난 2017년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TV조선이 재승인 기준 점수를 넘지 못했음에도 ‘조건부 재승인’을 내 준 바 있습니다. 심지어 당시 TV조선은 ‘오보·막말·편파 보도’로 지난 2014~2016년 383건의 심의조치를 받아 재승인 중점 심사사항인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TV조선뿐만이 아닙니다. JTBC를 제외한 나머지 종편 채널A, MBN 역시 설립 이후 꾸준히 ▲콘텐츠 부족 ▲불법 협찬 ▲막말·오보·편파 방송 등으로 문제제기를 받아왔음에도 방통위로부터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습니다.

조건부 재승인의 남발과 솜방망이 처벌은 방통위의 권위를 추락시켰고, 종편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14년과 2017년에 이어 올해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도 채널A, TV조선이 또다시 조건부 재승인을 받고, MBN은 기준 점수에 미달했습니다. 방통위의 비호 아래 종편은 사회적 책임도 내실도 없이 매출과 규모만 키워 온 것입니다.

방통위의 책임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종편이 현재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 중 일부는 방통위가 종편을 탄생시킬 당시 둔 무리수에 기인합니다. 전문가들은 종편 승인이 이뤄지던 지난 2011년 우리나라 광고 시장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종편은 1~2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방통위는 평가 기준을 넘기만 하면 승인할 수 있다면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4개의 종편을 승인했습니다. 콘텐츠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고, 신문업계의 퇴로를 만들어준다는 것이 명분이었습니다. 디지털 광고 시장의 성장으로 방송 광고 시장이 쇠퇴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몰아주며 종편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지금의 ‘종편 잔혹사’를 온전히 방통위의 작품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종편이 방통위와의 약속을 굳건히 지켜왔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통위의 역할은 단순히 조건을 내거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방통위가 종편을 방치하는 사이 방송노동자와 국민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JTBC를 제외한 종편 3사가 도입 10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안갯속을 헤매며 방황하고 있는 이때, 방통위는 이제라도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방송의 공적 책임을 다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종편으로 거듭날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글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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