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역사 속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김별아 작가를 만나다

숨겨진 인물들의 삶과 사랑을 끌어내는 작가가 있다. 역사 소설의 새 지평을 연 김별아 작가(국문·88)를 만났다.

 

▶▶ 김별아 작가(국문·88)는 승자의 기록인 역사 속에서 소외된 인물의 이야기를 써오고 있다.

 

Q. 소설가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어릴 때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했던 탓에 책만을 유일한 친구로 뒀다.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 글에 소질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결정적으로 고등학생 때 교지에 기고한 소설을 읽은 한 시인이 외국고전밖에 모르던 내게 한국 현대 소설을 소개해 줬다. 새로운 문학의 세계가 열렸다. 문학은 사춘기 시절 ‘나’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안겨줬다.

 

Q. 어렸을 때의 경험이 창작의 바탕이 됐나.

A. 『미실』을 쓰기 전 10년 정도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썼다. 힘들었던 이야기나 갈등의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 기본적으로 문학을 시작할 때는 자기 고백을 한다. 고백이 끝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세계에 대해 써보고 싶어졌다.


Q. 대학 생활을 문학에 담아낸 경험이 있나.

A. 4년 내내 학생운동을 했다. 입학식도 전에 선배들에게 화염병 만드는 법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선 것 같다. 총학생회 교육부장을 했는데 한 학생이 집회 중 사고를 당했으니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을 준비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시신을 탈취당하기도 했기 때문에 학생회 친구들이 모여 시신을 지켰다. 분신자살자가 많아 한 달 동안 귀가하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기억도 있다. 당시 우리는 어른이고 세계를 바꿀 거라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경험이 이후에 『개인적 체험』이라는 책에 담겼다.


Q. 역사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지난 1996년 아들을 출산하며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체험하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육아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그래서 글을 계속 쓸 방법을 고민하다 공부로 방향을 틀게 됐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역사물은 남성 작가들이 주로 써왔기에 여성 작가로서 새롭게 쓸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나름의 블루오션을 찾은 것이다.


Q. 소설을 쓸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

A. 소외된 인물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역사는 주로 남성 중심인 승자의 기록이다 보니 약자, 패자, 여자에 대한 것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부분을 복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은 역사를 직접 써본 적도, 전면에 나서본 적도 없었다. 그때도 분명히 여성들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는 삶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는 차원에서 여성들을 끄집어냈다. 남성 작가가 그리는 여성은 획일화된 느낌이 있었다. 성녀 아니면 음녀, 어머니 아니면 탁녀 이런 이분법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이런 획일화된 것들을 해체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Q. 소재를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다.

A. 사료를 읽다 보면 중간중간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미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신라 때 편찬된 『화랑세기』는 그 내용이 우리 역사라고 보기엔 너무 방탕하고 음탕하다고들 한다. 이에 『화랑세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성 인물인 미실의 이야기를 소설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는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았던 역사의 일부분이다. 『영영이별-영이별』과 조선왕조 여성 3부작 『채홍』, 『어우동』, 『불의 꽃』도 마찬가지다. 거대 역사 속 갈피에 숨어있거나 밀려 있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을 찾기. 이런 부분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과거를 짚는 것이 현재에 어떤 가르침과 의의가 될지 궁금하다.

A.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도록 하는 게 목표다. 예술은 영혼의 물음이다. 과거를 짚는 것은 삶, 죽음 그리고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 나름대로 대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삶들의 이야기인 만큼 잠깐이라도 읽으면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낄 수 있게 쓰려고 노력 중이다.


Q. 작가 김별아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A. 사랑과 죽음, 즉 그것들로 이뤄지는 삶이다. 그리고 삶은 곧 운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상이 자신에게 부여한 규정과 억압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도 운명에 당당히 맞섰던 사람들을 좋아해서 소설로 표현하곤 한다.

 

Q. 앞으로 행보가 궁금하다.

A. 27년 차 작가이다 보니 ‘껍질만 남은 매미’가 된 기분이다. 할 수 있는 얘기를 다 했다. 작가로서 한 번의 생애가 끝난 것 같다. 독자들도 많이 사라져 문학 환경도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내 삶을 꾸릴 수 있을지 고민이다. 다시 대학 졸업 때처럼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Q. 우리대학교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A. 힘들 때 혼자 견디지 말고 상담 신청이나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방법으로 연대했으면 한다. 이미 개인의 자격은 충분한데 시대적 상황이 좋지 않을 뿐이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뎠으면 좋겠다.

그래도 불안할 때는 ‘하루씩만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 매일매일 하루를 열심히 살고 그다음 날로 가자. 지금은 20대의 모든 것이 내 평생을 결정할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를 알기 위한 작업을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남기고 싶다.

 

 


 

글 이지훈 기자
bodo_wonbin@yonsei.ac.kr
정희원 기자
bodo_dambi@yonsei.ac.kr

사진 윤수민 기자
soominyoon122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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