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4-34의 ‘섹시한’ 자태에 부드러운 미소를 담고 가사일은 물론 사회 활동까
지 잘 해내는 여성, 그리고 근육으로 무장된 외모에 엄격한 표정을 짓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무슨 일이든 척척해내는’ 남성.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은근과 끈기로 순종하며 다소곳하
게 남자의 사랑을 받을 줄 아는 미덕―은 ‘은근히’ 강요된다. 우리대학교 여성학
강사인 추애주씨는 “관계에 의해 주어진 위치인 아내, 어머니, 애인 그리고 성적
대상이라는 역할에 갇히도록 규정된다”며 철저하게 남성에 의해 구분된 여성의
위치를 지적했다. 주체적이 아닌 타자의 관계에 의한 ‘여성성’은 필연적으로
‘불편’하거나 고정된 ‘모순’―애인같은 아내, 모성애가 당연시되는 어머니, 순
결이데올로기를 지켜야하는 성적 대상 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여성의 역할은 여괴가 주로 등장하는 공포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정상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괴물과 ‘이상한 요물’ 등이 여성과 동일시된
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여성문화예술기획 『마녀』의 공포영화제 기획팀인 이순진씨는 “공포영화는 가부
장적 이데올로기의 틈과 균열, 그리고 억압된 계층의 한을 드러낸다”며 공포영화
에 나타난 억압된 여성들의 표상에 대해 언급했다. 현실적으로 남성중심 이데올로
기에 지배되듯이, 공포영화도 증폭된 불안을 사회기본 구조에 맞추기 위해 여자 귀
신은 끊임없이 제거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밟힌다고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익명성을 무기로 PC통신상의
자주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에도 적용된다. ‘너 가슴크냐
?’, ‘컴섹하실래요!’ 등 성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표현에 반발해 온라인 성폭
력 인식을 촉구하는 이화여대 자치위원회 『이화여성위원회』가 바로 그것. 지난 3
월에 이화여대 한 학우의 대화방 성폭력 제보로 시작된 이러한 활동은, 누구나 주
체가 될 수 있다는 장밋빛 공간인 PC통신에 있어서도 성차별이 만연함을 보여주
고 있다.

‘보여지는’ 대상으로 비하되는 ‘여성성’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학내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여성문제를 고민하는 사회대 공동체 『beyond』는 ‘흔히’ 일어
나는 언어 폭력―‘끽해봤자 여자일뿐’, ‘여자는 암만 그래도 소용없어’, ‘너
두 여자맞냐’―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 「성폭력자치규약」을 통한 일상에 대한
꼼꼼한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결국 이러한 표현들은 여성 스스로가 그에 맞춰 자신
의 행동을 규제하도록 만들고, 남성에게는 남성다움을 내면화하도록 강제하기 때문
이다.

우리대학교 총여학생회도 이번 주에 있을 『Let’s break the mirror!』 행사를 통
해 남성의 잣대로 평가되는 미인대회를 부정, 일률적으로 찍어낸듯한 조형물들을
설치해 점차 그 조형물들에 똥배와 굵은 다리 등 ‘신체적 결함’이라 일컬어지는
‘개성있는’ 신체를 만들어간다. 또 ‘나의 몸에 걸쳐진 것들로부터의 자유’라는
주제로 여성의 육체를 재단하는 시선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연이 깃든
물품들을 가져와서 이야기하고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총여학생회장 김신현경
양(사회정외·4)은 “자신이 겪었던 불편함과 그 복잡한 감정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남성의 제도화된 시각이 아닌 여성의 눈으로 여성
의 몸을 바라볼 수 있는 ‘장’을 구상한다. 다양한 가치들이 존중되는 다원사회라
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규격화된 몸매를 강제하고, 철저하게 ‘남의 눈’을 빌려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아야하는 현실을 직시하며 이제는 개인적 가치를 존중해야할
움직임이 요구되는 때이기에.

거식증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감수해서라도 아름다운 여성의 첫째 조건인 날씬함
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다이어트, 실리콘 부작용에도 성황을 이루는 유방확대 수술
등. 정형화된 여성이 되도록, 아니 되어야만 하는 현실이 그것이다. 남성에 있어서
도 마찬가지.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화학물질 ‘바이애그라(Viagra)’의 힘에 기대
서라도 ‘강한 남성’이 되고자 한다. 동등한 인간으로 평가받기 이전에 여성과 남
성이라는 분열된 잣대가 먼저 기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반발의 움직임들이 또다른 성적 대
상화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흥행한 『풀 몬티』에서 스트립쇼하는 남성들
에게 휘파람으로 환호하는 여성의 모습이 보여주듯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상품
화로 인한 또다른 차별을 만드는 것이 주목적은 아니다. 생물학적 차이가 차별이
아닌, 동등한 가치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이 일련의 여성운동 흐름인 것이다.

하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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