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장 조태섭 교수 (문과대·고고학)

노란빛으로 치장한 길과 이를 양옆으로 호위하는 울긋불긋한 나무들이 아름다운 백양로를 걷다 보면 어느새 오랫동안 닫혀있는 학교 정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언제 이 문이 활짝 열릴까 걱정하지만, 사실 닫혀있는 곳은 여기만이 아니다. 학교를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백주년기념관의 출입문도 굳게 닫혀있고 덩달아 이 기념관에 자리한 박물관도 문을 닫아건 지 오래다.

우리대학교 박물관은 어떤 곳인가. 한마디로 우리나라 구석기문화 연구의 산실이자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공주 석장리 유적, 점말 용굴 유적 등을 비롯한 여러 유적에서 나온 보물 같은 유물들이 보존되고 전시된 곳이다. 그동안 몇천 년 밖에 안됐다고 여겨지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몇만 년, 몇십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해준 곳이 바로 공주 석장리 유적이며, 이 유적을 처음으로 발굴한 곳이 우리대학교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 언제나 우리대학교 구성원들을 환영해온 5개의 상설전시실은 물론, 해마다 새로운 기획으로 여러분께 선보이던 특별전시도 못 할 뿐만 아니라 매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학부생, 대학원생들과 함께 땀 흘려 일하던 발굴 활동까지 중지된 것이다. 훗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에 묻힌 2020년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스스로 묻는다. 맹위를 떨치는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류사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슬기롭게 이 난관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시절로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인가?

장기화되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에 온라인 화상회의가 일상이 돼버린 요즘이다. 사람들은 서로 만나고 접촉하는 것을 꺼리게 됐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면 제일 먼저 문을 닫는 곳이 국내의 많은 박물관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제일 늦게 문을 여는 곳도 역시 이러한 문화공간인 것이다.

사실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서 처음에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박물관들도 점점 활로를 모색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온라인 전시로 박물관을 소개하고 홍보하고 있다. 오지 않는 관람객들을 박물관에서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최근에 올라오는 동영상이나 유튜브를 보면 박물관이나 전시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를 설명하는 박물관 큐레이터들의 활약이 마치 오랜 경력의 전문 아나운서 못지않게 세련돼 있음을 본다. 박물관마다 이뤄지던 자체 교육프로그램이나 문화강좌도 모두 실시간 참여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록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느낄 수는 없지만, 같이 생각하며 공감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최근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직접 방문해 미리 준비한 교육 재료로 체험학습을 실시하는, 이른바 찾아가는 박물관 활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대학교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훌륭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과 유튜브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학교 박물관을 홍보하고, 소장유물을 소개하며, 실시간 교육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몹쓸 전염병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우리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실로 엄청난 변화가 박물관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이러한 활로 모색에는 코로나19 아래에서 잠만 자고 있을 수는 없다는 박물관 구성원들의 각오와 노력이 중요한 동기가 됐다. 이렇게 살아있는 박물관의 역할을 다할 때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21세기의 사람들에게, 특히 창궐하는 전염병 아래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문화의 향기와 오래된 전통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을 것이다.

곧 백양로는 황량해지고 겨울이 올 것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엄중한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돼 우리 박물관도 마음 놓고 문을 활짝 열어 연세의 구성원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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