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청년주택, 빛 좋은 개살구 되지 않으려면

‘지·옥·고’는 열악한 청년들의 주거 실태를 자조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도시 거주 청년들이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을 전전하는 데서 유래됐다. 서울시는 청년 주거난 해결을 위해 지난 2016년부터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기세 좋게 출발한 청년주택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청년들은 왜 등을 돌렸나

 

서울시의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사업은 지난 2016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계속되는 대규모 주거사업이다. 19~39세 주거 빈곤 청년층을 위해 역세권에 임대주택 8만 가구를 확보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급 방식은 ‘민간 자본’을 활용한다. 서울시가 민간업자들에게 역세권 대규모 주거 시설 건립을 유도하고, 해당 시설을 조건부 임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원칙상 이 중 20%는 주변 시세가 60~80%의 ‘공공임대’로, 나머지 물량은 주변 시세가 95% 이하의 ‘민간임대’ 방식으로 제공된다.

기존 청년주택은 ▲매물 부족 ▲떨어지는 입지성 등의 문제점을 가졌다. 서울시는 이를 보완할 대책으로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사업을 야심 차게 내놓았다. 해당 사업은 서울시와 민간업자, 그리고 청년층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정책인 듯 보인다. 사업자는 완화된 규제를 통해 용적률* 상향에 따른 이익을 갖고, 청년들은 역세권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세권 청년주택은 정작 청년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지난 9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역세권 청년주택의 입주율은 평균 60%로 조사됐다. 역세권이라는 입지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10세대 중 4세대가 빈집이다. 협소한 면적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주택의 필수요건은 ‘가성비’다. 빈곤으로 인해 주거권을 침해받는 청년이 적정 주거를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세권 청년주택의 경우, 주거 면적이 ▲대학생 16㎡ ▲청년 17㎡ ▲신혼부부 35㎡로 상당히 협소한 데다 월세와 보증금 또한 일반 임대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입주를 시작한 광진구 신혼부부 청년주택의 경우, 보증금 1억 509만 원에 월세 42만 원을 주거료로 책정했다. 서대문구 충정로에 공급되는 청년 주택 또한 임대보증금이 1억 원대, 월세는 60만 원대 수준이다. 현재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서울 주요 대학가의 전용면적 33㎡ 이하 원룸은 보증금 1천만 원에 평균 월세가 54만 원이다. 사실상 가성비 측면에서 청년주택 입주 시의 강점이 없다. 역세권이라는 장점이 정작 중요한 가격 면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한 셈이다. 서울에 자취방을 구하고 있다는 김상훈(27)씨는 “굳이 비슷한 금액을 내고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은 청년주택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주거 빈곤 청년 배제하고
‘금수저’, ‘비청년’ 들어가는 청년주택

 

▶▶지난 2월 입주를 시작한 충정로 인근의 한 역세권 청년주택이다. 주변 오피스텔보다 비싼 임대료로 청년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공실률을 낮추기 위해 임대료를 내리기보다 입주 자격의 문턱을 낮추는 조치를 취했다. 지난 9월 23일, 서울시는 역세권 청년주택의 특별공급 1순위를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50% 이하에서 100% 이하로, 2순위를 100% 이하에서 110% 이하로 완화했다. 또한, 장기간 공실이 발생할 경우에 한해 유주택자도 청년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고소득자 및 유주택자의 청년주택 입주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는 ‘실수요자의 입주 기회 확대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정작 청년주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값비싼 월세 때문에 입주를 포기하는데, 가격 규제 없이 수요층을 늘리겠다는 소리다. 상지대 부동산학과 김주영 교수는 “청년주택 사업은 재정적 지불능력이 취약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라며 “입주자격 완화를 통해 공실 발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주객전도와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역세권 청년주택의 허술한 입주조건도 문제가 된다. ‘세대분리’에 대한 별도의 규제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3인 이하 가구의 경우 부모 및 신청자의 합산 소득이 월 562만 원 이하일 경우 1순위 입주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세대분리를 마친 1인 가구의 경우, 월 소득 265만 원 이하일 경우 1순위로 인정된다. 다시 말해 부모의 경제적 수준과 관계없이 입주가 가능한 것이다. 서울시는 입주자 모집 시 세대분리 기간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모집 직전 의도적으로 세대를 분리한 경우에도 1순위 입주가 가능하다. 소위 ‘금수저’도 청년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청년들을 위해 저렴하게 제공되는 공공 임대주택의 물량이 매우 적어 사업의 실효성도 떨어진다. 김씨는 “역세권 아파트에 ‘청년’이라는 이름만 붙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충정로역 인근의 한 청년주택은 총 499가구 중 10%인 49가구만이 공공임대의 형식으로 청년 및 신혼부부에게 제공됐다. 다른 주택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장한평역, 동묘앞역 인근 청년주택은 청년 및 신혼부부에게 각각 13%의 물량을 할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변역 인근 청년주택의 경우, 84가구 중 18가구인 21%를 제공해 비교적 높은 편에 해당한다. 나머지 민간임대 물량의 경우, 사실상 일반 임대주택에 비해 큰 혜택이 없다. ‘청년 없는 청년주택’, ‘보여주기식 복지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역세권 청년주택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서울시는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데만 급급하다. 현재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사업은 ▲준주거·상업지역 역세권 ▲중심지 역세권 ▲폭 20m 이상 간선도로변 인접 중 한 가지 이상의 요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 서울시는 최근 2·3종 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상향시킬 수 있도록 기준을 변경했다. 이는 사업자가 수월하게 청년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다. 명지대 부동산학과 황종규 교수는 “청년들의 수요에 비해 부족한 주택 공급을 늘리려는 취지는 좋다”면서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이들이 소비할 수 없는 공급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난항 중인 청년주택,
청년주거난 해결 장기책 되려면

 

호기롭게 시작한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8년에 한정된 단기성이 가장 큰 문제다. 8년간은 명목상으로나마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임대하지만, 8년 후에는 분양 매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시가 민간업자 유치를 위해 내세운 인센티브의 일환이다. 서울시는 임대 기간 종료 후 물량 다수를 매입하겠다고 밝혔지만, 비용적 측면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김 교수는 “청년주택은 장기적 공공 임대주택으로 남아야 의미가 있는데, 서울시가 물량을 매수할 충분한 재정을 갖췄는지 의문”이라며 “민간 사업자 유치를 위해 과도한 혜택을 제공하다 보니 이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 또한 “민간의 자본을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장기 활용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재정적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는 민간 사업자만 배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 보금자리 마련은커녕, 현재로서는 단기적 수요·공급마저 불안정한 현실이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정부의 ‘엇박자 정책’은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최근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서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오는 2022년까지 예정된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위기에 놓였다. 오는 12월 31일 안에 주택 등록을 마쳐야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오는 2021년부터는 민간 사업자가 청년주택 사업에 참여할 유인이 대폭 줄어든다. 이처럼 서울시와 정부의 합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청년들이 믿고 살 집을 제공할 수 없다. 황 교수는 “공공 기관 간의 협의가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주거비 부담에 허덕이는 청년들”이라고 지적했다.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이 애초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난항 중인 현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년을 위한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우선 사업 진행과 관련해 충분한 합의를 거쳐 행정적 혼란을 줄여야 한다. 김 교수는 “공공 기관 간의 정책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책의 긍정적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뢰가 깨지는 순간 수요와 공급은 모두 휘청이기 마련이다. 또한 정책의 대상인 수요자의 요구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김 교수는 “역세권이라는 입지적 장점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주거 빈곤 청년들의 재정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공유지나 유수지 등을 활용해 장기적 임대주택을 마련하는 등 정책적으로 다양한 공급 방식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진정으로 청년들을 위한다면 낮출 것은 규제가 아닌 임대료이고, 높일 것은 건물이 아닌 입주율이다.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이 청년 주거난 해결의 열쇠가 되길 기대한다.

 

*용적률: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연면적의 비율

**2·3종 주거지역: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주거지역에 해당하며, 주택의 높이에 따라 1종, 2종, 3종으로 구분한다.

***준주거지역: 주거기능 중심 지역에 상업기능을 보완한 지역이다.

****「조세특례제한법」: 조세의 감면 또는 중과 등 조세특례와 이의 제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이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자료사진 어바니엘>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