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옛날이야기, 그 세 번째 이야기

노천극장은 매년 합동응원전, 아카라카를 포함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국내 대학 최대의 야외 공연 시설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노천극장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가 있다. 바로 노천극장 건설에 학생과 교직원들이 손수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1934년 10월 12일 노천극장에서 진행된 원한경 교장의 취임식이다.

 

교수들과 학생을 합해 260명밖에 안 되던 당시의 연희의 단란한 식구들은 노는 시간을 이용해 방과후에도 쉬지 않고 모두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와 산등성이를 파헤치고 들것으로 흙을 날라 오늘의 훌륭한 노천극장을 만들었던 것이니

「연세춘추」 1962년 4월 9일, 283호 3면 ‘연세숲과 살아온 40년’ 中

 

그렇게 연세 구성원 모두의 손으로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노천극장의 첫 터를 닦았다. 에비슨 교장 역시 흰 머리를 날리며 학생들 틈에서 괭이를 휘둘렀다. 이 장면은 당시 모습을 담은 필름에도 생생히 남아있다. 1932년 11월 25일부터 시작된 노천극장 공사는 1933년 5월 31일 끝났다. 당시 조선 땅에서는 최초의 야외 공연장이었다.

이후 노천극장은 우리대학교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용됐다. 대표적으로 지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노천극장에 모여 민주화를 외쳤다. 지금의 노천극장은 당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시설의 노후화로 인해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이에 동문들의 성금과 동문회관 수익금 등을 재원으로 1997년 공사가 시작됐다. 1999년 5월 완공된 새로운 노천극장은 철근콘크리트와 화강암을 이용해 건축됐으며, 다양한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현대적인 공연 시설로 거듭났다. 노천극장 돌계단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은 이 당시 재건축 기금을 기부한 동문들의 이름이다.
 

한 해에도 몇 번이나 갔어야 했을 노천극장. 우리대학교 학생들의 함성을 오롯이 쏟아내던 노천극장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아쉽게 올해 그 화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루빨리 사태가 잦아들고 다시금 노천극장에서 다 함께 ‘연세’를 외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김수영 기자
bodo_inssa@yonsei.ac.kr
정희원 기자
bodo_dambi@yonsei.ac.kr

<사진제공 우리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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