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속 대학의 의미를 찾아서

대학은 공공성을 지녀야 할 학문공동체인가, 자율적인 교육 서비스 제공자인가. 정부가 개별 대학에 등록금 반환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학의 공공성’이라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숙제를 끄집어냈다. 대학이 공적 기능을 상실했다고 간주한다면, 국민 세금을 지원하는 정책은 대학생들만을 위한 특혜가 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국가의 지원은 당연한 의무다. 이처럼 등록금 반환 논의의 이면에는 한국 대학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등록금 반환 논의의 ‘진짜’ 질문

 

지난 6월, 3차 추가경정예산안(아래 추경)에 등록금 반환 예산을 포함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일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학 등록금 반환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부분이며, 정부 지원은 적절치 않다”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에 대해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교육은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의 입장도 팽팽히 엇갈렸다. 지난 6월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등록금 반환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62.7%에 달했다. 반면, 지난 6월 25일 청년정치공동체 ‘청년하다’ 대학생 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금 반환에 정부가 책임질 것을 촉구했다. 결국 3차 추경에 등록금 반환 ‘간접지원’ 명목으로 1천억 원이 편성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의 발의안보다 60% 이상 삭감된 예산으로, 찬반 입장 사이에서 절충안을 택한 셈이다. 그러나 추경 편성 이후에도 정부의 지원 금액이 부족하다는 의견과 사립대학 등록금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이 대립하며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등록금 반환 예산에 정부 재정을 투입할 것인지를 두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두 입장이 대학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반대하는 입장은 대학교육을 사적 재화로 인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학교육은 학생 개인이 구매한 교육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대학은 교육 서비스의 공급자로, 학생은 소비자로만 규정돼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더 나아가 대학교육을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보기에 정부의 지원은 더욱 일부에 대한 특혜로 간주된다.

반면, 등록금 반환에 정부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는 입장은 대학교육의 공공재적 특성을 강조한다. 교육의 효과를 사회구성원 모두와 나누므로 공공재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등록금 반환에 대한 정부 지원도 사회구성원 전체를 위한 공공투자로 바라본다. 이에 더해 등록금 반환 논의가 대학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인천청년광장 이정은 대표는 등록금 반환 문제가 불거진 이유를 “대학교육을 사학재단에 맡긴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상황에서 수업의 질 저하와 등록금 부담 모두 학생 개인이 지고 있다”며 “이는 특정 상황에서 교육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립대학의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공공성 잃은 사립대학,
이대로 괜찮은가?

 

현재 대학교육은 공적 부담보다 사적 의존성이 높은 상태다. 전체 대학 중 4년제 사립대학의 비율이 77.8%나 된다. 반면 2016년 기준 대학 교육비에 대한 정부재원 지출은 37.6%인데,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66.1%에 비해 현저히 낮다. 『대학의 기업화』 저자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고부응 교수는 한국 대학의 공공성이 약화된 계기로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5·31 교육개혁’을 꼽았다. 고 교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교육에 도입된 계기가 5·31 교육개혁”이라며 “자율성 보장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대학의 기업화’로 이어졌다. 고 교수는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것이 대학교육의 목표가 되면서 교육의 공적 목표가 사라졌다”며 “학생과 교수, 교육의 연구 결과가 기업식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이 기업을 위한 또 다른 기업으로 변질되면서, 대학교육의 본질적인 의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학의 자율성 강화가 불투명한 대학경영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2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난 11년간 교육부가 적발한 사립대학 비리가 4천500여 건에 달하고, 비리 액수는 4천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지난 2018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42개 사립대 중 30개교(71.4%)에서 내부감사조직이 미비했다. 대학 자체의 내부감사 조직이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존재하더라도 실질적인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대학교육연구소 황희란 연구원은 “지금처럼 사학비리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통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립대학 중심 체제의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대학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기됐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정부 책임형 사립대학’의 도입을 주장한다.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높여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교육 및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다. 황 연구원은 “이를 통해 대학 구성원들이 사학 운영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학문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무상 교육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등록금 제도로 인해 교육이 하나의 상품처럼 여겨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상품 가치가 높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고 교수는 “학문의 본질은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이라며 “무상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공공재로서의 대학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성과 자율성,
균형 잡힌 조화를 위하여

 

반대로, 대학의 공공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자율성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9년에 발표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사립대학 지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이 52.3%로 과반수였다. 다수의 여론은 대학을 독립적·자율적 존재로 보고 있는 셈이다. 대학의 자율성은 재정 운영의 자율성과 학문 탐구의 자율성을 의미한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박기수 교수는 이 두 가치가 서로 맞물려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통제하려 한다”며 “재정·운영에 있어 충분한 권리를 보장받을 때 학문의 자율성도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의 자율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학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박 교수는 “대학별로 목표하는 바가 다르고 학생들의 수요와 욕구도 다양한데, 교육부는 대학교육을 하나의 잣대로 본다”며 “개별 대학들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녀야 한다”고 전했다. 외부 감독과 평가가 지나치면 개별 대학이 자신들이 제공하려는 교육의 정체성을 수립하기 힘들어진다는 지적이다. 현 상황에 대해 박 교수는 “대학들이 외부 평가에 대한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상적인 대학교육은 공공성과 자율성, 양쪽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대학교육에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필요한 영역에 대해 공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 교수는 “선발권, 재정 확보 방안, 교육 방식 등에 대한 규제는 풀어 대학 간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연구원 또한 “공적 자금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되, 이를 기반으로 대학 구성원이 자유롭게 학문과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공적 지원의 기준을 마련하고 연구 성과를 평가하면서도 연구 집행 방식과 내용은 전적으로 대학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어렵지만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공적 지원과 학문 탐구의 자율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등록금 반환 운동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남겼다. 등록금 반환을 둘러싼 논의의 이면에는 대학의 역할과 특성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지,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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