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남자』로 되돌아보는 ‘사회적 성’

“당신이 여자란 걸 잊은 적이 있나요?”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의 주인공 다미앵이 알렉상드라에게 던진 질문이다. 과연 당신은 자신이 남자 혹은 여자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있는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성평등 사회이고, 남성성 및 여성성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라면 자신의 성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관한 편견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성별에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는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한 성 역할과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포스터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의 주인공 다미앵은 남성우월주의자다.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생각하며,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치근덕거리고 그들을 정복하고자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미앵은 우연한 사건을 통해 성 역할이 뒤바뀐 세계로 가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성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있음을 실감한다.

다미앵의 세계, 즉 우리가 사는 세계는 남성 중심적으로 묘사된다. 직장 내 요직은 모두 남성들이 차지하며, 다미앵의 친구 크리스토퍼는 성공한 작가로 유명세를 떨친다. 반면 여성 사원들은 커피를 타는 등의 보조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더 높다. 크리스토퍼의 여비서였던 알렉상드라가 성공한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크리스토퍼는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자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여자는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시청한다. 또한 카드 게임에서는 퀸이 킹을 이기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새롭게 정의된 남성성과 여성성도 눈에 띈다. 알렉상드라의 세계에서 여성은 강인하고,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이들은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한 채 웃통을 벗고 조깅한다. 반면 남자들은 짧은 바지를 입고 제모를 하며 외모 가꾸기에 치중한다. 다미앵이 원래 살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영화 제목은 알렉상드라의 세계로 가는 다미앵을 ‘거꾸로’ 가는 남자로 지칭한다. 그렇다면 다미앵의 세계는 ‘바로’ 된 세계고, 알렉상드라의 세계는 ‘거꾸로’ 된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반대라고 해야 할까. 기자는 두 세계 모두 ‘거꾸로’ 된 사회라고 말하고 싶다. 한 성별이 다른 성별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성별에 따른 일정한 행동 양식이 요구되는 사회는 결코 바로 된 세계일 수 없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속 불편한 진실

 

다미앵의 어린 시절은 남성과 여성을 향한 고정관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학예회에서 백설공주 역할을 맡기로 했던 여자아이가 아파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백설공주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었던 다미앵은 대신 그 역할을 맡겠다고 한다. 그러나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남자아이는 조롱과 비웃음을 마주해야 했다. 화장과 치마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어린 나이부터 학습된 성 역할과 고정관념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확립되고, ‘사회적 성’이 형성된다. 사회적 성이란 사회적, 문화적으로 길들여진 성으로 남성다움 및 여성다움을 지칭한다. 사회적 남성성은 능동성, 적극성, 강인함으로, 사회적 여성성은 수동성, 소극성, 연약함으로 나타난다.

뒤바뀐 세계 속에서 다미앵이 바뀌어가는 모습은 성 역할이 학습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남성우월주의자였던 다미앵은 남자가 화장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마음에 드는 여성의 눈에 들기 위해 새로운 세계의 규범에 순응한다. 여성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고, 성적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화장하고, 감성적이고 섬세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다미앵의 생물학적 성은 그대로지만, 사회적 성은 변한 것이다. 백설공주 드레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놀림 받았던 남자아이는 변화된 세계에서 제2의 백설공주 드레스를 갈망한다. 본인의 개성이 아닌 사회적으로 규정된 기준에 자신을 맞춰가는 모습이다.

사회적 성은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채 성별에 따른 일관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남자니까 강해야 한다’, ‘여자니까 상냥해야 한다’는 말들은 연관 없는 두 특성 사이의 인위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남자’인 것과 ‘강함’, ‘여자’인 것과 ‘상냥함’ 사이에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혹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행동 양식이 요구된다. 뒤바뀐 세계에서 성 역할에 저항하던 다미앵이 결국엔 그에 항복한 것처럼, 우리 사회 속 수많은 다미앵들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 고정관념에 얽매이며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성별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사회적 성이라는 강력한 틀 속 각자의 개성을 위한 자리는 없다. 우리는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남자, 여자의 삶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루빨리 남자아이가 드레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놀림 받지 않는 사회가 도래하길 기대한다.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자료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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