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부터 위기까지, 연세 농구부가 걸어온 길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창단 이래 수많은 전설을 써내려 왔다. 특히 지난 1990년대에는 뛰어난 농구 스타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농구 종목의 쇠퇴와 더불어 대학 스포츠에 대한 관심 부족, 올해는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농구부의 화려했던 과거와 위기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있는 현재를 살펴보자.

 

우리대학교와 대학 농구의 전성기 90년대

 

#경기 시간 다 됐습니다. 연세대학교가 챔피언의 자리에 오릅니다. 농구대잔치 11년 만에 대학팀으로서는 처음으로 챔피언의, 왕좌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3승 1패로 상무를 따돌리고 대학팀으로서는 첫 패권을 차지합니다!

 

우리대학교 농구부의 전성기는 90년대에 찾아왔다. 당시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슬램덩크』가 유행하면서 농구 열풍이 일어났다, 이와 맞물려 우지원 동문(법학·92), 서장훈 동문(사회체육·93) 등 스타성 있는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이들을 보러 오는 팬들이 너무 많아 훈련을 나눠서 해야 할 정도였다.

농구부의 인기는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많은 대회 중에서도 당시 실업팀과 대학팀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농구대잔치에서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량을 뽐냈다.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 최초로 농구 대잔치 우승을 거머쥔 것이 대표적 예시다.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는 ‘농구대통령’ 허재 선수가 속한 실업팀 기아자동차였다. 정규리그에서 기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우리대학교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서 동문은 “당시 기아는 우승의 대명사였다”며 “우리대학교는 뛰어난 전술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선수들의 기량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이길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경기에서 서 동문은 대회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또, 서 동문과 함께 이상민 동문(경영·91), 문경은 동문(체교·90)이 대회 베스트 5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4-95 농구대잔치에서도 정규리그 13승 무패로 이 기세를 이어가고자 했으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뜻밖의 이 동문의 무릎 부상, 8강에서 서 동문의 목 부상으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절치부심해 1996-97 농구대잔치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대학교 농구부 은희석 감독은 “내면적 강인함과 원팀 정신은 연세대 농구부의 정통성”이라며 “당시 최희암 감독님도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정신으로 당시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적에 힘입어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최희암 감독의 속옷 광고를 필두로, 각종 화보, 광고에 우리대학교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최 감독은 “같은 숙소에서 자려고 팬들이 찾아올 정도로 당시 팬들의 사랑이 대단했다”며 “서장훈 선수가 신발을 잃어버렸는데, 팬이 가져간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농구 암흑기에도
찬란히 빛날 연세대 농구부

 

# 프로농구뿐만 대학농구도 무척 어려운 상황이다. 스타가 생기고 부각이 될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 대학농구를 접할 수 있는 경로도 너무 적다. -서장훈 선수

 

90년대 농구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농구대잔치의 인기에 편승한 채 2000년도에 들어선 한국프로농구는 스타 선수 은퇴, 높은 용병 의존도, 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플레이 등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 대중들은 프로농구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프로농구가 고전함에 따라 농구 자체의 인기가 사그라들었고, 자연히 대학 농구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대학 농구 관중석은 점점 비기 시작했다. 90년대처럼 대학 농구를 TV 중계를 통해 집에서 접하는 것은 이제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농구인들은 대학 농구 쇠퇴의 원인 중 하나로 입을 모아 학생이자 선수라는 신분의 한계를 꼽았다. 은 감독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와중 연습 시간 확보가 어렵다”며 “이로 인해 대학생 선수들의 기량이 전체적으로 하락했고 결과적으로 관객을 경기장으로 유입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스포츠계는 ‘공부하는 학생’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7년에는 직전 2학기 C학점 이상인 선수만 경기에 출전 가능한 ‘C제로 룰’이 생겼다. 하지만 학생선수들에게 무작정 공부와 운동 병행을 요구하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손대범 농구 전문 기자는 “미국 대학처럼 학생선수들을 위한 멘토링, 스케줄관리 등 학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지금은 코로나19라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은 감독은 “뉴리그와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가 취소되면서 선수들이 상당한 지루함과 무기력함을 느낀다”며 “갈고닦은 기량을 펼칠 무대가 없다”고 전했다.

 

# 최근 5년간 연세대학교 농구부는 이기는 법을 아는 팀이었다. 팀에 문화가 생기고 익사이팅한 농구 스타일을 선보이며 ‘하나의 팀’으로 거듭났다. -손대범 기자

 

한편, 한국 농구가 고전하는 중에도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지난 2016년 한국대학농구리그(아래 대학리그)에서 첫 우승을 한 후 2019년까지 4연패를 달성했다. 특히 2017년 대학리그에서는 플레이오프 6강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4연승을 거뒀다. 2013년부터 대학리그 3연패를 달성한 고려대를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26점 차로 압도하고 최고의 자리를 탈환했다. 그해에 치러진 정기 연고전에서도 83:73으로 우리대학교 농구부가 우승을 차지했다. 은 감독은 “2019년 대학농구리그 우승 당시 주전이었던 김경원 선수와 한승희 선수가 안면 골절과 피로 골절로 시합 명단에서 제외됐다”며 “주전 선수들의 공백으로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었지만, 십시일반으로 빈자리를 메워 결국 우승을 쟁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세 농구의 과거와 현재
서장훈과 최희암이 말하다

 

▶▶우리대학교 동문이자, 대한민국 농구의 전설 서장훈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에서 걸출한 선수와 감독들이 활약해 우리대학교에 승리의 영광을 안겨줬다. 과거 농구 열풍의 주역이었던 서장훈 동문(아래 서), 최희암 감독(아래 최)와 우리대학교 농구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1990년대 우리대학교 농구부가 강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서: 사실 젊은 패기로 경기를 했던 것 같다. 실업팀 선배들보다 대학생 선수들이 더 체력이 좋았다. 전술적으로도 잘 만들어진 팀이었다. 각 포지션 선수들이 모두 기량이 뛰어났다. 이런 선수들이 한 번에 모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최: 문경은, 우지원, 서장훈 선수 등 당시 선수의 구성이 상당히 좋았다. 사실 ‘아무거나 해도 되는’ 조합이었기에 선수들의 개성을 살리는 것에 집중해 전술을 짰다. 개성이 강하고 능력이 좋은 선수들을 한 팀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강도 높은 훈련 덕이 컸다. 강한 훈련을 통해 선수 간 동지애를 길러 시합 때 자연스럽게 분업이 이뤄지도록 했다.

 

Q. 당시 선수들 이야기가 궁금하다.

서: 주전 선수들이 파격적으로 인물이 좋아 더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어딜 가나 인기를 누렸다. 그 당시 팬들로부터 편지를 매일 1천 통씩 받았다.

최: 당시 선수들 각각이 개성이 강했다. 서장훈 선수는 사람이 굉장히 논리적이라,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면 잘 따랐다. 감정적인 선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승부욕이 강해서 그렇게 비친 것이다. 이에 반해 이상민 선수는 감독이 하는 말에 토 달지 않고 잘 따르며 스스로 알아서 하는 선수였다. 문경은 선수는 노는 걸 좋아해서 훈련으로 통제를 좀 시켰다. 이같은 개성은 농구팬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갔다. 지방 경기를 가도 경기장이 가득 차곤 했다.

 

Q. 농구 열풍 당시와 비교하면 농구의 인기가 저조한 상황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서: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기에 프로농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스포츠 리그가 관심을 못 받는 상황이다.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스포츠 문화가 개발돼야 한다.

최: 대학 농구와 프로농구에서 라이벌전을 통해 사람들을 농구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 한국 농구는 소위 ‘우리들만의 리그’ 안에 갇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재는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이끌 인프라가 부족하다. 각종 행사나 가족끼리의 여가로 농구장을 찾을 수 있도록 관중 친화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Q. 우리대학교 농구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서: 한국농구가 매우 어렵다. 연세대 학우 여러분들이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들에게 많은 애정을 가져주고 보러 와주신다면 선수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 현재 선수들이 과거보다 오히려 신체적 능력이 더 좋다. 선수들은 충분히 발전된 경기력을 보여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점점 농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데, 농구에 관심을 가져주면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할 것이다.

 

한국 농구가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난 와중에도 우리대학교 농구부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자리를 지켜왔다. 과거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우리대학교 농구부 선수들에게 많은 응원과 박수가 필요하다.

 
 
글 권은주 기자
silverzoo@yonsei.ac.kr
이지훈 기자
bodo_wonbin@yonsei.ac.kr
 
사진 김수빈 기자
sbhluv@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