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의 여왕』 속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
‘애도(哀悼)’.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죽음을 갈망하던 이의 빈소 앞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이유 작가의 『소각의 여왕』(문학동네, 2015)은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자는 무엇이 그들의 삶을 죽음보다 못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소설의 배경이 된 강남으로 향했다.
삶 속에서
버려진 것들에 대하여
소설 속 주인공 해미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아버지 지창씨와 함께 고물상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20대인 해미는 또래들이 즐겨 입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무게가 많이 나가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해미가 살아온 삶을 좇아, 가장 먼저 그가 거주하는 강남의 변두리로 걸음을 옮겼다. 강남 한복판의 고층 빌딩을 뒤로 한 채 걷다 보면 도심 속 전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물상 컨테이너가 한 채 나온다. 기자가 직접 방문한 고물상은 생각보다 더 작고 허름했다. 한 평 남짓한 컨테이너에는 고물뿐만 아니라 각종 살림살이도 널브러져 있었다. 악취가 풍기는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 된다.
“근처 고물상들은 다 폐업했던데.”
“우리도 폐업한 거나 마찬가지야. 고철값이 널을 뛰니까.”
“만물자원은 오피스텔 옆에 딸린 주차장이 됐던데?”
“리서비스는 한복집이 됐지. 고물나라와 논현고물고철은 상호하고 포터만 남았고. 지창씨가 애지중지하던 고철들은 쓰레기장밖엔 갈 데가 없게 됐어.”
강남구의 면적은 약 40제곱킬로미터다. 그런데 해미는 그곳에 고물상 컨테이너 한 칸 들어설 자리조차 없다고 말한다. 기자 역시 강남에 있는 고물상을 찾기 위해 네 번이나 헛걸음해야 했다. 상호가 등록된 고물상을 찾아갔으나 이미 문을 닫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기 때문이다. 고물상으로 먹고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컨테이너와 함께 도시에서 내몰린다. ‘버려진’ 사람들은 매일 살아남는 문제만으로도 골머리를 썩인다.
1kg에 600원 하던 고철값이 100원으로 떨어질 무렵, 해미는 지창씨가 자신 몰래 유품 정리 출장을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지창씨는 이를 해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했지만, 해미는 ‘돈이 되는’ 유품 정리가 마음에 들었다. 해미는 망설임 없이 그를 따라 사후 현장을 처리하는 일에 뛰어든다.
죽은 사람을 마주하고 혈흔과 시취를 지우면서도 해미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미는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유품 정리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한다. 삶이 죽음보다 특별히 나을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해미에게 유품 정리는 그저 고물 수거와 비슷한 것이다. ‘버려진 것들을 치우고 소각하면 돈이 나오는’, ‘하루를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일이다. 돈이 된다면 그게 무엇이든 못할 것도 없었다.
사회적 죽음:
누군가의 의지와 동의와 묵인
그날도 해미는 어김없이 한 청년의 전화를 받고 출장지로 향했다. 기자도 해미를 따라 학동로 인근의 오래된 빌라촌으로 향했다. 해미가 청년을 만나러 간 경로를 그대로 따라 걸었다. 명품수입가구가 즐비한 대로변을 지나 고층 건물 사이로 한참을 들어가면 허름한 빌라식 주택이 나온다. 빌라촌에 비하면 가구거리의 조명은 지나칠 정도로 밝았다. 해미가 옥탑을 개조한 낡은 방의 벨을 누르자 앳된 청년이 문을 열었다. 그는 해미에게 사흘 후에 다시 와달라고 부탁한다. 사흘 후 찾은 집에는 여전히 청년이 있었다.
“죄송해요.”
“더 싼 업체를 찾으셨어요?”
“그런 게 아니라... 실패했어요.”
해미는 남자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고서야 ‘실패’의 의미를 깨달았다.
청년은 자살을 결심하고 해미에게 자신의 유품 정리를 부탁한 것이다. 해미에게 전화를 걸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품 정리 비용 30만 원이 부족해 어쩔 줄 몰라 하던 때에는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릴 때 이혼한 청년의 부모는 누구도 그를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의 아픔에 무뎌진 탓일까. 청년은 덤덤하게 말한다.
“저기, 저, 제가 드린 처, 처리 비용 말인데요. … 보내실 필요 없어요. 생각해보니까 그러실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
그녀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주 잠깐 동안의 침묵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은 두 번이나 같은 선택을 했고, 결국 ‘성공’했다. 해미는 청년의 죽음을 침묵으로 묵인한다. 해미는 분명 청년을 살릴 수도 있었는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세상에는 삶 속에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청년을 보고 해미는 그의 죽음을 말릴 수 없었다.
“지창씨가 그랬잖아. 여기가 지옥이라고. 그러니까 마땅히 지옥에서 하루빨리 구해주는 게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해미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묵인하는 것에 익숙했다. 어린 시절의 해미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어머니가 원하는 곳에 갔으니 좋은 일이었다. 장례식 마지막 날, 해미는 지창씨가 하는 말을 들었다. 지창씨는 어머니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지창씨가 즉시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갔다면 하루라도 더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해미는 지창씨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사회적 죽음’이 ‘물리적 고통’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부터다. 죽을 만큼 병들거나 피를 흘리는 것만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죽음은 다른 곳에서 오기도 한다. 해미는 고물 파지에 적힌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발견한다.
‘죽음은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묵인.’
해미는 밑줄을 치며 가만히 읊조린다. 지창씨의 동의가 없었다면 어머니는 결코 삶이라는 지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학동로의 청년도 해미의 묵인을 통해 그가 갈망하는 죽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비루한 일상을 살아온 이들 앞에서 우리가 애도해야 할 것은 그들의 죽음이 아닌, 삶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삶,
서로 다른 죽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기에는 오늘날 고층 빌딩과 고물상 컨테이너, 가구거리와 낡은 빌라촌 사이의 간격이 너무도 커졌다.
가난이라는 꼬리표는 사후에도 따라붙는다. 해미는 지창씨가 죽었을 때 그의 기계를 판 돈으로 장례를 치러야 했다. 밀린 은행 이자도 갚았다. 무상 임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해미에게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슬퍼하지 않는 해미를 바라보며 조문객들은 수군거렸다.
기자는 강남에 위치한 한 장례식장을 찾았다. 제일 작은 평수의 하루 대여 비용이 78만 원이었다. 기자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서 나왔다. 지창씨는 이곳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가 다시금 찾은 곳은 저소득층이나 무연고자의 장례를 치러준다는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이었다. 이전의 장례식장과는 달리 찾는 이가 아무도 없어 고요했다. 적막을 깨고 문을 두드린 것은 기자뿐이었다.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 정덕용 과장은 “무연고 장례자 중 가족이 있는 경우가 30% 가까이 된다”며 “가족이 있어도 경제 형편 때문에 장례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자는 왠지 지창씨가 이곳 어딘가에 안치돼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 더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부모 중 누구도 유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던 학동로의 청년이다. 그 청년의 이름을 안다면 한 번쯤 불러주고 싶었다. 기자는 문득 해미도 생을 마감할 때 이곳을 지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과 죽음의 연결고리는 질기고도 무섭다. 해미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했을까. 해미도 아마 자신이 지창씨의 곁에 놓이리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을 알고 있는 삶이란 불행에 가깝다.
지창씨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의 오후였다. 해미는 작업을 끝내고 다음 출장지로 이동 중이었다. 오디오에서는 여자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슬픔, 아픔이 태풍처럼 한때 지나가는 거라고 여기는 거죠. 당장은 어렵겠지만 소망하는 기적이 모두에게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해미는 가만히 웃었다. 그는 일전에 지창씨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허리케인 파티라는 게 있대. … 태풍이 가장 세게 몰아칠 때를 기다렸다 파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 많이 죽는대. 인생을 완전 쫑내는 파티지. 그래도 멋지잖아. 사람들이 지하대피소에서 숨죽이고 있을 동안 촛불을 켜고 수영복 입고 미친 듯이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거야.”
죽음이 곧 대피소가 된 사람들이 있다. 삶 속에서는 슬픔과 고통이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이 태풍처럼 지나가기를 바라며 죽음을 파티라고 불렀다. 죽음에 대한 갈망은 삶에 대한 갈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행복해지고 싶고 편안해지고 싶은 것, 그게 전부다. 그리고 삶 속에서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택하게 된다. ‘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하길 바란다. 태어나 한 번쯤 누군가에게 소중히 불렸을 이름들, 이제는 아무도 모르게 잊혀갈 그 이름들을 기린다.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한 줌의 갈망을 놓지 않고 남겨진 사람들의 서사에도 이내 빛이 들기를 바란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사진 정여현 기자
jadeyjung@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