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상부 조현준 기자 (역사문화·19)

지난 1년간 카메라를 들고 수없이 많은 현장으로 나갔다. 춘추를 하지 않았다면 평생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일들이 춘추를 함으로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양로에 청소노동자들이 모였을 때가 그러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모였고,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현장에 나가서야 이해하게 됐다. 현장의 분위기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그저 취재를 위해 현장에 갔을 뿐이지만 어느 순간 나 역시 그들과 동화돼 있음을 느낀다. 그들은 부당함에 맞서고 자신의 동료를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다. 싸워서 이기면 다행이지만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걸 알면서도 간절함 하나로 그 자리에 모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 간절함을 전달하기 위해 수없이 그들의 입장이 돼봤고 집회 현장을 찾아다녔다. 남모르게 그들을 응원했고 문제가 해결됐다는 기사를 읽었을 땐 안도하기까지 했다.

좋은 기자란 무엇일까? 흔히 ‘정론직필’이라는 말을 쓴다. 오랜 시간 동안 이 말에 대해 고민했다. 정확히는 ‘내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담아내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이었다. 기자에게 있어 진실이란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 속에 개인의 감정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처음 기자를 꿈꾼 것도 이 모습이 멋있어서였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함이라는 기준으로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 그들이 ‘진짜 기자’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단 한 순간도 진짜 기자가 될 수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외침, 그들이 남긴 흔적들. 이것을 보면서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 간절함을 알기에 몇 번이고 셔터 누르는 것을 주저해야만 했다. 그들의 간절함을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은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애써 진짜 기자처럼 무미건조하게 사실만 나열하고도 이것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인가 고민해야 했다. 차라리 일반 학생으로 그 현장을 지나갔더라면 이런 부담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써 정기자 생활의 반이 지나갔다. 따지고 보면 참 웃긴 일이다. 아직도 내가 하는 일이 부담스럽고 여전히 좋은 기자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래서 이렇게 쉽게 ‘정기자’라는 호칭을 달아도 되는지 의문이다. 누군가 내게 와서 정답을 말해줬으면 한다. 내가 동경하는 진짜 기자들도 가끔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있다고, 그래서 가끔은 자신이 좋은 기자인가 고민도 하고, 그래서 어쩌면 가끔은 인간적인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기도 한다고 말해줬으면 한다.

만약 춘추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처음 춘추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주변에서 사서 고생한다며 말렸다. 그러나 매일같이 과제와 춘추를 병행하고 밤늦게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와 춘추를 병행하며 여행 한번 못 갔을 때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고 춘추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렐 뿐이었다. 그러나 진짜 힘든 것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온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이 정도로 부담스러운 일인지 알았다면 애초에 지원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기자를 꿈꾸고 춘추에 들어온 20살 대학생은 더 이상 기자를 꿈꾸지 않는다. 지난 1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점점 더 좋은 기자는 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분명 춘추는 나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현장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과 교수님, 혹은 이름 모를 누군가까지 모두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다. 처음으로 나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늘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고민마저도 나를 성장시켰다. 그래서 막상 기자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오히려 깔끔하게 놓아줄 수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부담감을 털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간다. 조용히 사진만 찍다 가는 춘추 기자가 남몰래 그들을 응원하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도 함께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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