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5일,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국의 건강보험전문가와 정책담당자 50여 명 앞에서 모든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의료보장을 하는 우리나라의 경험을 발표했다.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486개 조합을 설립해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한 지 32년, 1989년에 전 국민 대상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한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의료보험제도를 처음 도입한 후 12년 만에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한 것은 이전 기록인 일본의 36년을 크게 단축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에 국민건강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지난 약 30여 년 동안에는 수입이 더 많았으므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수년간 수입보다 지출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미 국민건강보험은 2018년에 적자로 돌아섰고, 이대로 가면 10년 이내에 재정 고갈이 예상된다. 재정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서도 보험료를 내지 않고 무료로 혜택을 받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시세를 잡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부동산 문제로 몇몇 고위공직자들이 자리를 떠나는 일이 발생한 가운데 국민을 더 불편하게 한 것은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은 다주택자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된 약 2천만 명 중에서 다주택자는 120만 명이 넘고, 21채 이상을 보유한 이도 2천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은 많지만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건 사회보험의 정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건강보험가입자의 가족으로 보험 혜택을 받는 피부양자의 자격은 연간 합산소득 3천400만 원 이하면서 재산세 과세표준 5억4천만 원 이하, 또는 재산세 과표 5억4천만~9억 원이면서 연간 합산소득 1천만 원 이하인 경우다. 문제는 재산세 과표가 공시가격의 약 2/3 수준이므로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보장성을 강화하고, 국민은 이를 반기며, 수명이 계속 늘어난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될 수밖에 없고, 머지 않아 세대 간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전 세계에 자랑하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이 미래에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으려면 재정이 건전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부과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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