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서적, 『할머니가 떠난 2층 3호실에서』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작별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채 이별했다. 그의 장례식에서 3일 밤낮을 지키는 당신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진다. 우리의 머릿속에 ‘이별’과 ‘장례식’은 ‘슬픔’으로 각인돼 있다.

 

『할머니가 떠난 2층 3호실에서』의 작가가 말하는 이별은 다르다. 이 책은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큰손녀가 2박 3일간 장례식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담은 산문집이다. 그녀가 마주한 이별과 장례식은 슬픔으로만 가득하지 않다. 후회, 아쉬움, 기쁨, 분노, 뿌듯함, 소중함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며 실타래처럼 뒤엉킨다. 뒤엉킨 실타래는 우리에게 많은 물음표를 남긴다.

책 제목만 보면 그녀의 우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3일간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우는 순간보다 웃는 순간이, 한숨 쉬는 순간보다 미소짓는 순간이 많다. 조문객이 없는 둘째 날 아침, 동생과 조의금을 세며 우스꽝스러운 리액션을 흉내 낸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생과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제 본 듯 편안하다. 평소 어색했던 사촌 동생들과 이야기하며 가까워지고, 친척 어른들과 옛 추억을 되새기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한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썰렁한 빈소를 구석구석 메운다. 그녀는 누군가와 이별했지만, 동시에 이별을 함께 헤쳐나갈 누군가를 얻었다. 할머니 영정사진을 보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행복감과 안도감에 젖는다. 흐릿했던 가족의 소중함이 비로소 와닿는 순간이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받는 위로만큼 새삼스러운 것이 있을까.

때론 불편한 관계 속 낯선 편안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첫째 날 저녁, 일손을 돕다 처음 만난 접객실 도우미 선생님들은 완벽한 타인에 불과했다. 서로의 이름과 나이조차 몰랐다. 그러나 잠이 부족한 건 아닌지, 허기진 건 아닌지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은 작가의 지친 마음을 다독이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어느새 접객실 도우미 선생님들께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장 낯선 이들에게 받는 위로만큼 깊숙한 것이 있을까.

그녀는 장례절차 가운데 마주한 현실에 분노하기도 했다. 제사를 지낼 때, 사위들이 먼저 한 명씩 술을 올리고 절을 한 뒤 세 명의 딸은 한꺼번에 절한다. 함께 살아온 세월은 딸이 훨씬 길지만, 사위의 존재는 지나온 세월보다 더 강력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정사진은 손자가 드는 것이 당연하다. 할머니와 가장 오래, 가장 많은 추억을 쌓은 큰손녀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작가는 ‘돌아가신 어른을 기린다는 핵심 가치는 유지하면서도 예를 행하는 방식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한다. 이별이라는 개인적인 일 속에서 사회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이렇듯 이별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스스로 고민하게끔 한다. 뒤엉킨 실타래가 남긴 또 하나의 물음표다.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장례를 치르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남은 길을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다’며 ‘이 모든 것은 할머니가 남겨준 선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이별의 다른 말은 ‘선물’이다. 물론 이별은 슬픈 일이고, 누구에게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당신이 이별에 익숙해지고, 무뎌지길 바라는 게 아니다. 다만 이별이 주는 슬픔에 잠겨 더 큰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슬픔 속의 소중함, 분노 속의 씁쓸함, 그리고 머릿속에 남겨진 수많은 물음표 모두 이별이 건네는 선물이다. 『할머니가 떠난 2층 3호실에서』는 남겨진 자들이 떠나간 자의 선물을 어떻게 풀어봐야 할지 고민하도록 돕는다.

 

마지막으로 이별에 아파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이별이라는 이름의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지난 삶을 돌아보고, 남은 길을 고민할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우리가 주어진 삶을 씩씩하게 살아갈 때, 떠나간 이들이 어디선가 우릴 바라보며 맘 편히 웃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 어제에 머무르지 말고 내일로 나아가자고.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자료사진 스토리지북앤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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