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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를 틀어줘] 나는 오늘 ‘옥자’로서 말한다동물들의 절멸 선언과 함께 보는 『옥자』
  • 이연수 기자
  • 승인 2020.09.27 21:08
  • 호수 60
  • 댓글 0

2020년이 어느덧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에 대한 한 줄 평을 ‘이렇게 될 줄 몰랐어!’라고 쓰고 싶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 삶의 터전이 흔들린 사람들, 그리고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었다.

동물들에게 2020년은 어땠을까.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그들은 우리의 2020년을 꽤 오래전부터 경험하고 있었다. 세계동물보건기구에 따르면, 유행한 지 100년이 돼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올해만 약 540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다. 돼지들에게 올해는 예측 가능한 비극이었다.

컨베이어 벨트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코로나19는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선 코로나19로 돼지들이 살처분되거나, 살처분될 위험에 놓였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 돼지들은 농장에서 일정 기간 머물고 정육 공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도시봉쇄로 인해 정육 공장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끊임없이 돌아가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버린 것이다. 이렇게 농장에 남겨진 돼지들을 키우는 것은 비용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그들을 산 채로 묻게 했다. 영국의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동물과 환경에 대한 완전한 결례가 문제를 자초했다”며 코로나19를 진단했다. 그러나 인간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또 다른 결례를 범하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지 않는다면, 전염병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난 7월 발표된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 창궐하는 전염병의 75%, 알려진 전염병의 60%가 동물로부터 생겨났다. 돼지, 박쥐 또는 조류와 같은 동물이 인간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환경에서 전염병이 종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여기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기폭제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는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더욱 강해지고, 동물들의 면역력은 저하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이을 ‘질병X’*가 언제, 어디서 도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시한폭탄과 같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동물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중간 숙주이며, 감염 즉시 살처분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그러나 컨베이어 벨트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필름 『옥자』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현실을 소상히 보여준다. 영화 속 옥자는 유전자 재조합으로 만들어진 ‘슈퍼 돼지’다. 온전히 기업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슈퍼 돼지 옥자는 인간이 설계한 방식으로 일평생을 살아간다. 옥자는 돼지들의 울음소리와 공장의 차디찬 기계음 속에서 죽음의 문턱에 놓이지만, 미자의 기지로 공장을 탈출한다. 미자의 목숨을 건 옥자 구출기는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자연을 만끽하는 미자와 옥자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의 공존이 아름답게 시각화된 결말은 인류와 동물의 희망찬 미래를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옥자』에는 놓쳐선 안 될 지점들이 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동물해방연대’, 옥자와 맞바꾼 ‘돼지 모양 금덩어리’ 그리고 여전히 돌아가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와 남은 돼지들이다.

옥자를 구한 것은 ‘금돼지’다

멈추기 힘든 컨베이어 벨트는 영화 속 동물해방연대를 통해 드러난다. 동물해방연대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에 오고, 다시 반 바퀴를 돌아 뉴욕과 뉴저지의 공장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작전에 골머리를 앓으며 위험도 무릅쓰지만, 공장을 멈추긴커녕 돼지 한 마리도 구하지 못했다. 그들이 자찬한 ‘세계에서 가장 쿨한 작전’은 옥자의 큰 귀 안에 블랙박스를 설치해, 기업 ‘미란도’의 만행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는 오히려 옥자를 잔인한 공장으로 몰아넣었다. 동물해방연대는 공장식 축산과 유전자 조작으로 이익을 얻는 미란도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아기 돼지 옥자가 슈퍼 돼지로 크는 10년 동안 미란도는 건재했고, 동물해방연대의 외침은 공허했다.

옥자를 구한 것은 미자였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옥자를 구매한 것에 가깝다. 공장에서 도축될 위기에 놓인 옥자 앞에 미자와 미란도의 대표 낸시가 마주 선다. 미자는 가방에서 금돼지를 꺼내며 ‘거래’를 제안한다. 금돼지와 옥자를 교환하자는 것이다. 금돼지를 확인한 낸시는 미자의 거래를 받아들인다. 낸시는 금돼지를 깨물며 “이거 꽤 비싼거야”라며 흡족해한다. 옥자를 구한 것은 동물해방연대의 치밀한 작전도, 옥자와 미자를 향한 동정심도 아니었다. 철저히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거래였다. ‘금돼지’로 옥자를 구한 미자는 옥자와 함께 공장을 빠져나온다. 여전히 주위엔 도축을 기다리는 돼지들이 울고 있다. 미자와 옥자는 산속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지만, 공장에 남은 돼지들은 깨끗이 포장돼 어딘가에 진열돼있을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윤리적 호소만으로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제동을 걸기엔 자본의 힘은 너무나 강력하다. 동물권 문제가 제기되고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비윤리성이 폭로돼도, 공장은 여전히 움직인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는 미자처럼 ‘금돼지’로 거래하는 방법이다. 공장식 축산이 주는 이익에 대항할만한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영화는 자본주의식 해결방안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동물들의 절멸 선언,

인간에 대한 절멸 예측

지난 8월, 동물 탈을 쓴 사람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등장했다. ‘동물들의 시국 선언’을 위해서다.** “나는 동물로서 말한다”로 시작한 그들의 발언은 절멸을 선언하며 끝이 났다. 그들은 박쥐, 돼지, 소, 천산갑 등 동물의 입장에서 유언을 남겼다. 코로나의 원인으로 지목된 박쥐와 천산갑은 전염병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생태계 파괴라고 말했다. 소와 돼지는 오로지 판매되기 위해 태어나는 자신의 삶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들은 ‘탈육식, 탈성장, 탈개발’을 외쳤다.

돼지탈을 쓴 이슬아 작가는 “모두가 아프게 될 것”이라며 “고통이 돌고 돈다. 나에게서 당신에게로”라고 말했다. 너구리의 입장을 대변한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의 선언 역시 뇌리에 박힌다. 이 대표는 “인간들의 미련함과 탐욕이 ‘인수공통감염병’의 원인”이라며 “결국 인간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성다영 활동가는 달팽이의 입장에서 “이제 네가 사라질 차례야”라며 인간들에게 경고를 남겼다.

‘동물들의 시국 선언’은 동물들의 절멸 선언이다. 이는 곧 인간에 대한 절멸 예측이다. 동물과 인간은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 속에 함께한다. 동물의 고통은 인간의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동물들이 절멸하는 상황에서 인간만 생존할 수는 없다. 위험이 일상화된 현실이 증명하듯이, 동물권 보장은 윤리적 문제를 넘어섰다. 다가오는 ‘질병X’의 시대에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라고 말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 모두를 포기하는 길이다.

나는 오늘 옥자로서 말한다. 강원도 산골의 아름다운 풍경과 같은 결말을 원한다면, 공장을 멈출만한 ‘금돼지’를 제시하라. 당신은 자본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소비자이기에 소비를 줄임으로써 거래할 수 있다. ‘금돼지’로 현실 속 옥자들을 구하라. 동물과 함께 절멸을 택할 것인가. 혹은, 공존을 택할 것인가. 선택의 가능성은 그리 오래 열려있지 못할 것이다.

* 질병X: 세계보건기구가 ‘추후 세계 대유행을 일으킬 바이러스 8가지’ 중 마지막 미지의 바이러스를 명명한 것

** 작가들의 동물 선언문 전문 및 일러스트는 이동시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instagram.com/edongshi/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자료사진 다음영화>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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