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게 정치하는 요즘 청년들 이야기

 

오늘날의 청년은 정말로 정치에 무관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일까?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선 현재 청년들이 정치에 어떻게 참여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변화’한 시대 속
‘진화’한 청년 정치

 

20대 탈정치화론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20대 탈정치화를 주장하기 위해선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부터 이뤄야 한다.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이재묵 교수는 “20대 탈정치화론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정치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달라서 생긴 오해”라고 이야기한다. 각 세대는 자신이 처해있던 시대적 배경에 영향받으며 정치를 개념화하므로 사회가 변함에 따라 정치에 대한 정의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청년 정치는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최근의 청년 정치는 과거에 비해 폭넓은 의제를 다룬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청년들은 민주화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정치적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며 정치·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대가 등장했다. 이재묵 교수는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의 가치 변동이 발생했다”며 “과거에는 정치적 과제가 하나의 거시적인 문제로 수렴했다면, 현재는 다양한 미시적인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에 서울시 NPO 지원센터에서 발표한 ‘서울시 시민사회단체 현황 및 정책 수요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서울시 시민사회단체들은 아동·청소년(30.5%), 다문화·이주민(19.6%), 생태·환경(16.6%), 평화·통일(16.4%), 여성(15.9%), 청년(12.5%) 등 총 25가지 분야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정치크루 이동수 대표는 “세대별로 의제의 우선순위가 다르다”며 “현재 청년층은 이념보다 생활 문제에 중점을 둔다”고 분석했다.

의제의 다양화는 정치적 공론장의 변화로 이어졌다. 386세대*의 주된 정치적 공론장은 대학사회였다. 이들은 정치적 사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운동권 학생회를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의제가 다양해짐에 따라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총체적으로 대변하기가 어려워졌고, 대학의 정치적 공론장 역할은 점차 약화했다. 이재묵 교수는 “대학사회가 파편화·원자화 됐다”며 “대학 내 인적 네트워크의 약화로 총학생회가 이전보다 대표성을 상실했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20대의 정치적 공론장은 대학사회에서 대학 밖으로 옮겨갔다. 오늘날 청년들은 정부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적 방식뿐만 아니라 캠페인, 시위, 토론회 등 비제도적 방식으로도 정치적 의사를 드러낸다. 문화사회연구소 강남규 연구원은 “정치나 운동을 너무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시위 및 집회가 청년들의 주된 정치참여 방법이었던 과거와 다르게 온라인 공간을 활용한 정치 참여도 활발하다. SNS에 자신의 의견을 게시하거나, 해시태그 운동 등에 참여하는 식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2019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블로그 등을 통한 온라인 의견 개진에 참여한 20대의 비율은 17.7%로 전 연령층 중 가장 높다. 실제로 올해 SNS를 통해 진행됐던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 운동’**은 청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세계적 사안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강 연구원은 “온라인 정치 운동을 통해 형성된 여론이 언론에 보도되고, 그 영향으로 정책이 만들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n번방 처벌 해시태그 운동’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재묵 교수는 “온라인 공간은 시공간적 제약에서 자유롭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온라인은 제도 정치로부터 소외된 청년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새롭게 ‘정치’하는 청년들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오늘날 청년들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한다. 가장 대표적인 청년 정치 활동은 청년당사자 운동이다. 이는 청년세대의 문제를 청년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아래 청정넷)는 청년 시민이 지자체의 청년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서울시 청년수당, 희망두배 청년통장, 청년주택 등의 정책은 모두 청정넷 활동가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청정넷 공동운영위원장 김지선(29)씨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나 정치인이 정책을 수립하고, 정책 당사자는 인터뷰나 현장방문, 공청회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청정넷 활동은 청년들의 능동적인 정치참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전했다. 이는 청년당사자 운동을 통해 청년들이 정책 대상을 넘어 정책 수립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민달팽이유니온

 

주거, 노동 등 의제별로 활동하는 청년단체도 많다. 이러한 단체들은 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 속에서 소외된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조명한다. 그중 민달팽이유니온은 주목받지 못했던 청년 주거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 주거권 보장을 목표로 주거 상담 및 청년세입자 교육 등을 실시해왔다. 집보샘***과 민달팽이유니온에서 활동 중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류상윤씨는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때 어떻게 집을 구하고 계약을 맺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며 “스스로 경험한 불편함을 사회에 반영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싶어 주거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민달팽이유니온 사무국장 정용찬씨는 “청년들이 주거 관련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을 형성하고자 했다”며 “관심 밖의 청년 문제를 호명하고, 실질적 개선까지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청년당사자 운동을 넘어서서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도 있다. 이들은 장애, 퀴어, 생태, 동물 등 폭넓은 의제를 다룬다. 특히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는 본업이 따로 있는 청년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빅웨이브 활동가들은 본인의 관심사에 맞춰 자신만의 기후 행동을 만들어나간다. 미디어에 관심 있는 활동가는 「환경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교육에 관심 있는 활동가는 환경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해 중고등학생을 교육하는 식이다. 빅웨이브 운영위원 오동재(28)씨는 “기후 위기는 나와 우리 가족, 나아가 우리 세대의 문제”라며 “빅웨이브 활동을 통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청년의 능동적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 차원의 정치 참여도 활발하다. 청년들은 사회적 의미가 담긴 액세서리를 착용하거나, SNS 프로필에 무지개·노란리본 등 정치적 심볼을 올려두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낸다. 말이나 글로 하는 정치가 아닌 일상에 스며든 정치는 청년세대에게 자연스럽다. 소비를 통한 정치 참여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2019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불매운동 참여 경험이 있는 20대의 비율은 48%로, 전 연령층 중 가장 높다. 인권 보호에 앞장서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리몬드’에서 팔찌를 구매한 전수연(20)씨는 “마리몬드 제품을 구매하면 수익금 일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돌아간다”며 “팔찌 구매 및 착용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전했다. 이동수 대표는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보다는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춰 청년의 정치참여를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다.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새로운 정치참여 방식을 과소평가하지만, 청년들은 자기만의 정치를 꿋꿋이 일궈나갈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이들의 움직임에 주목해보자.

 

 

*386세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말.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 운동: 지난 2013년 SNS에서 시작된 인종차별 반대 운동. 2020년 5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이후 재확산됐다.

***집보샘: 연세대 내 주거 상담 센터. 재학생을 대상으로 집 구하기 및 계약서 작성 동행 서비스, 임대차 분쟁 관련 상담 등을 제공한다.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사진제공 민달팽이유니온, 빅웨이브,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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