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 번째 이야기

우리대학교 체육교육관 뒤편에 위치했던 치원관(致遠館)은 1918년 설립된 우리대학교 최초의 교사(校舍)다.

 

▶▶우리대학교 최초의 건물 치원관으로 옮겨온 직후 연희전문학교의 학생 전체 사진이다.

 

1915년 호레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가 서울에 본교를 설립함에 그의 형 존 언더우드(John T. Underwood)씨는 건립기념으로 5만 달러를 기부했다. 당시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에 29만 320평을 학교 터로 매입했다. 그 후 해마다 연희 동산tt의 땅을 조금씩 매입해나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대학교의 부지다.

교사 건축이 시급했던 만큼 1917년 가을 목제 가건물인 치원관을 짓기 시작했다. 5천 달러의 치원관 건축비용도 존 언더우드씨가 기부했다. 이 가건물은 건축 계획에 있던 수 개의 석조건물 건설에 방해되지 않을 위치에 지었다.

건축은 1918년 이른 봄에 끝났다. 이전 학기까지 종로 청년회관으로 등교하던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은 치원관으로 옮겨 왔다. 치원관은 3‧1운동 당시 연희전문학교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김원벽 동문 등 연희전문학생들에 의한 독립만세운동의 산실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1831호 3면,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 연세의 독립운동가’> 1920년 9월 석조건물 스팀슨홀이 준공되자 치원관은 초창기 계획대로 기숙사로 개조돼 사용됐다. 그러던 지난 1950년, 6‧25 전쟁 중 소실됐다. 이에 1991년 가을, 치원관 터에 기념비를 세워 우리대학교의 시발점을 기념하고 있다.

 

 

 

글 변지현 기자
bodo_aegiya@yonsei.ac.kr

<사진제공 우리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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