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보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트랜스젠더’. 당신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남장을 했거나 성전환 수술을 한 성인 여성, 혹은 여장을 했거나 성전환 수술을 한 성인 남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또한 혐오감을 먼저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트랜스젠더가 열 살 아이라면? 당신은 그 아이를 혐오할 수 있는가? 영화 『톰보이』는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성 정체성 문제를 다루며 성소수자를 향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폭력을 되돌아보게 한다.

 

Yes, I am 『톰보이』

 

“넌 이름이 뭐니?”

“……미카엘. 난 미카엘이야.”

 

개학을 앞둔 여름방학, 짧은 머리,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본인을 ‘미카엘’이라고 소개하는 아이가 이사를 오게 된다. 미카엘은 낯을 가리긴 했지만 옆집 아이 리사의 도움으로 원래 제자리였던 것처럼 금방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낸다. 집에서도 임신 중인 엄마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여동생 잔과도 잘 놀아주며, 아빠와도 가깝게 지낸다. 미카엘은 새로운 동네에 잘 적응해 나가는 듯하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를 지켜보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집 밖에서는 언제나 ‘평범한 남자아이 미카엘’이었던 그가 집에서는 ‘로레’, ‘딸’, ‘언니’로 불리기 때문이다.

짧은 머리,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 뛰어난 축구실력과 싸움실력. ‘평범한 남자아이 미카엘’이 아닌 ‘특별한 여자아이 로레’의 이야기다. 로레는 남자아이가 아닌 남자 같은 여자아이, ‘톰보이’였던 것이다. 톰보이는 영미권에서 흔한 남성 이름인 ‘Tom’에 소년을 뜻하는 ‘boy’가 붙어 만들어진 합성어로, 활달하고 남성스러운 ‘여자아이’를 의미한다. 톰보이는 그 자체에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어 편견을 내재한 단어지만,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남성스러움을 고려해 봤을 때 로레는 톰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레는 여성의 신체를 갖고 태어났지만, 남자가 되길 바란다.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가 좋고, 치마보다는 바지가 좋다. 화장한 자신의 모습은 싫지만 턱수염을 단 모습은 좋고, 여동생 잔에게 언니보다는 오빠가 되고 싶다. 자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동네로의 이사는 남자가 되고 싶은 로레의 내면적 욕망을 실현해 볼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로레는 자신을 ‘미카엘’이라고 소개함으로써 남자아이로 생활하게 되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기게 된다.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고정관념과 편견, 혐오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열 살 아이에게 가혹한 단어처럼 들린다. 그러나 로레는 트랜스젠더다. 보통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만을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하지만, 트랜스젠더의 정의는 ‘자신의 육체적인 성과 사회적 성의 불일치를 느끼는 사람’이다. 따라서 성전환 수술 여부와는 관계가 없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 정체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또한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성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나이와 크게 상관없다. 성 정체성이 발달하는 시기는 약 3~5세로, 아동 중에서도 트랜스젠더가 있을 수 있다.

 

‘파란 원피스’의 폭력성

 

로레는 ‘내가 원하는 나’, 완벽한 남자아이가 되기 위해 점점 더 과감해진다. 동네 아이들과 수영을 하러 갈 때는 여아용 수영복을 잘라 남아용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고무찰흙으로 남성의 성기 모양을 흉내 내 수영복 안에 집어넣는다. 로레에게 “넌 좀 다른 것 같아”라고 말해주는 옆집 여자아이 리사와는 입맞춤까지 하는 사이가 된다. 이런 로레가 비정상처럼 보이는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육체적인 성과 성 정체성이 다른 상태는 정신질환도, 장애도 아니다.

지난 2018년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국제질병분류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정신질환 진단명을 삭제했다. 미국정신의학협회도 이전에는 ‘성정체성 장애’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2013년 개정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서 ‘성별 불쾌감’으로 수정했다. 다만 성별 불쾌감이 DSM-5에서 삭제되지 않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성별의 불일치’ 때문이 아니라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 때문이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성별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중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비롯된다.

특히 아동·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더욱더 가혹하게 느껴진다. ‘성장기엔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라는 말로 그들의 성 정체성 자체가 부정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전환치료’라는 이름의 잔인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환치료에는 종종 혐오치료 요법이 사용되는데, 트랜스젠더 및 동성애 관련 사진을 보여주며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이 그 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Kidnapped for Christ』에서는 성소수자인 자녀를 전환치료하기 위해 아동 학대법이 없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끌고 가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치료라는 미명의 아동학대일 뿐이다. 정체성은 치료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치료의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톰보이』에서는 전환치료처럼 극적으로 로레의 성 정체성을 개조하려는 시도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의 분위기는 잔잔하고도 고요하고, 로레의 부모님은 온화하고도 상냥하다. 그러나 로레에게는 잔잔하고 상냥한 ‘폭력’으로 다가온다. 로레의 비밀을 알게 된 엄마는 로레에게 강제로 파란 원피스를 입히고 친구들의 집에 가 진실을 고백하게 한다. 그리고 로레가 리사네 집에 가는 것을 거부하자 이렇게 말한다.

 

“널 상처주려는 게 아냐.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지?

남자애인 척 한 건 엄마는 정말 괜찮아. 하지만 더는 안 돼. 좋은 방법 있으면 말해줄래? 난 정말 모르겠거든.”

 

그러고 나서는 로레를 안아준다. 로레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엄마가 로레에게 준 최선의 선택지는 파란 원피스를 입음으로써 자신의 육체적 성을 모두에게 드러내고,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방법이었다. 물리적 폭력만 없었을 뿐, 전환치료와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성 정체성을 넘어 자기정체성으로

 

성 정체성은 로레의 일상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로레가 또래 남자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장면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찰과 모방은 ‘컬러 배스 효과(color bath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컬러 배스란 색을 입힌다는 의미로, 한 가지 색상을 의식하면 해당 색을 가진 사물들이 유독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평범한 것이 특별해 보이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로레에게 적용됐던 색은 ‘남성성’이었다. 로레가 항상 남성성을 의식하고 갈망한 결과, 남성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프레임이 된 것이다. 실제로 로레는 남자아이들이 축구 경기 중 바닥에 침을 뱉는 장면, 윗옷을 벗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체를 살펴보고 침을 뱉는 연습을 해보기도 한다. 다른 이의 시선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평범한 광경이었지만, 로레에게는 남성성의 상징으로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컬러 배스 효과는 로레가 얼마나 자신의 남성성을 의식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며, 로레의 자기정체성 중 상당 부분이 성 정체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러나 컬러 배스 효과는 자의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면 크게 의식되지 않았을 로레의 성 정체성이 사회 속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됐기 때문에 의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답고, 남자아이는 남자아이다워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시선 속에서 ‘정상적인 남자아이’로 살아남기 위해 로레는 남성성 획득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로레에게 남성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컬러 배스 효과의 촉발제는 사회였다.

그러나 비(非)성소수자들에게 성 정체성이 전부가 아니듯, 성소수자에게도 성 정체성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분명 로레에게 성 정체성은 아주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성 정체성 하나만으로 정의하기에 로레는 너무나도 다채로운 존재다. 『톰보이』의 감독 셀린 시아마(Celine Sciamma) 역시 어린 시절 짧은 머리카락과 말괄량이 같은 모습으로 종종 남자아이로 오해를 받곤 했었다고 한다. 그는 가끔 소년으로 오해받는 것이 좋을 때도 있었다며, 오해가 ‘자유로움’을 주기도 했다고 말한다. 여성이라는 성별로 특정 지어지지 않았을 때 ‘진짜 나’로서의 자유를 느낀 것이다. 이는 영화 속 로레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거짓말과 오해는 로레를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게 했다.

 

리사는 로레가 사실 여자였음을 알게 된 후 한동안 로레를 만나지 않다가, 개학 전날 로레의 집 앞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로레에게 다시 묻는다.

 

“넌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로레야.”

 

첫 만남 때와 질문은 같지만, 답은 다르다. 로레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하고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로레 자신의 정체성에 있어 ‘남성 미카엘’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로레가 남성성 프레임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자기 자신으로서 한층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톰보이』는 더 이상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글 윤수민 기자
suminyoon1222@yonsei.ac.kr
 
<자료사진 다음영화>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