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정 사회부장 (영문·19)

“그때는 무엇을 보든, 무엇을 느끼든, 무엇을 생각하든, 결국 모든 것은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나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中)

모든 생각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 어떻게 해도 나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 무엇보다도 내 입장과 내 생각이 가장 중요했다. 밖으로 던진 모든 시선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나’라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 감옥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아무도 만날 수 없고, 누구를 진심으로 위할 수도 없는 고독한 공간이다.

애초에 어떻게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네가 아니기에 네 생각을 알 수 없고, 네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없고, 그래서 너를 사랑할 수도 없다. 너는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나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나는 어떻게 해도 그 사실을 넘어설 수 없었다.

연대(連帶)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왜 타인의 비극에 맘 아파하고, 함께 분노하는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억울한 이와 함께 거리로 나서고, 때로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몫을 희생한다. ‘그게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멘 헤세, 『데미안』 中)

내게 있어 깨트려야 할 알은 다름 아닌 자아였다.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세계,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연대의 이유를 찾는 것이 춘추에 들어온 목적이었다. 춘추에서 벌인 취재 활동은 모두 이 투쟁의 일환이었다.

1년에 걸쳐 기사를 쓰며 장애인 탈시설 운동에 동참하는 비장애인, 아동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서는 성인, 성매매 여성을 위해 싸우는 비성매매 여성을 만났다. 자기 일이 아님에도 몸과 마음을 바치는 이들이었다. 타인의 비극을 외면하는 일은 간단했을 거다. 당장 내가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에 대해서는 언제나 먹고 사는 문제가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그런데 이들은 왜 눈을 돌리지 않았을까? 타인의 비극에 동참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을 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임현 작가의 『그들의 이해관계』는 주인공의 아내 해주의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그렸다. 임 작가는 연대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나에게 두 가지 답변을 했다. “상대가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덜 천박하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사람이 있고, 절실한 사람이 있는데 나와 상관없다는 이유로 이를 외면하는 일은 자신을 스스로 더욱 천박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아무도 돕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스스로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살아가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다. 아무도 위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를 사랑할 수 있으며,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삶에 무슨 목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신과 내가 서로를 위하는 이유는 내가 당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다른 사람이어서, 우리의 이해관계가 서로 어긋나있을 때라도 그렇다. 당신이 나를 간절히 원하고, 내가 당신의 간절함에 답할 때 나는 ‘나’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비로소 삶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연대하는 것은 가장 ‘우리다워’지기 위함이다.

나는 ‘나’의 알껍데기를 깨고 나옴으로써 더 나다워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제 나는 당신이 되고자 하는 노력도, 당신을 나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도 그만두겠다. 그러니 다음번에는, 나는 당신이 아닌 나로서, 당신은 내가 아닌 당신으로서, 다시 만나자. 더 좋은 세상에서 함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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