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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하나님, 이웃 그리고 자연과 관계 맺기
  • 정미현 교수(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조직신학)
  • 승인 2020.09.13 20:21
  • 호수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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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현 교수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조직신학)

우리가 인류 역사상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어려움을 처음 당하고 사는 듯하지만, 사실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중세기에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고 종교개혁 이후 근세에 들어서자 흑사병의 공포가 다시 유럽에 엄습했었다. 아이작 뉴턴이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다. 당시 영국 전역에 흑사병이 다시 유행해 그가 재학했던 케임브리지(Cambridge)대학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가 2년 동안 휴교했다. 큰 실망감을 안고 뉴턴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에 자연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던 그는 깊은 사색을 통해 중력에 관한 연구를 하고, 미적분의 계산법, 빛의 색 등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다. 자연을 스승 삼아 배운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청지기라고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보전하고 가꾸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 없어도 잘 살지만, 인간은 자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자연에서 보이는 원리를 배우고 응용해 기술과 공학, 의학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방법인 생태모방 기술은 우리가 오늘날 더욱 주목할 분야이다.

시편 기자는 일찍이 자연 안에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오묘함을 노래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시편 19:1)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셔서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자연을 우리가 망가트리고 그 속에서 모두가 고통당한다. 진솔한 죄책 고백을 포함한 진정한 예배, 교회 공동체와 관계성의 의미를 되짚어 봐야 할 때다.

전통적으로 정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케리그마), 성례전을 나누는 신앙 공동체 사이의 친교가 가능하며(코이노니아), 사회로 향한 봉사(디아코니아)와 교육(디다케)이 이뤄지는 곳이 교회 공동체다. 이 네 가지 요소가 서로 균형 있고 조화롭게 작용할 때 교회는 건강하게 그 존재 이유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현장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신앙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합주의가 아닌 공동체성의 강조가 더 필요하다.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보건당국의 기본적 원칙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외면하고 종교적 예전에만 집착해 있던 사람들에게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예언자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언했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아모스 5: 21, 24)

1차 세계대전 전사자보다 5배 이상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낸 스페인 독감이 유럽 전역에 번져나갔을 때, 스페인 서부의 작은 도시 차모라에서는 당시 스페인 전체 사망률보다 3배 이상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곳의 가톨릭 주교가 행정 당국의 집회금지 명령을 어기고 대성당에서 미사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주교는 감염병이 하나님 앞에 참회와 감사가 부족해서 생겨난 형벌이므로, 미사에 더 열심히 참여하는 것만이 그 질병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신자들은 그것을 단순히 믿고, 모여서 예배했다. 질병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순화 한 주교의 가르침은 과학적 사고가 들어갈 여지를 주지 않았다. 종교적 예식을 통해 질병을 종식하고자 하는 집회들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져 왔으며 오늘날에는 이로 인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69%는 장로교다. 장로교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훌드리히 츠빙글리의 개혁정신과 그 뒤를 이어간 존 칼뱅의 신학적 토대 위에 세워졌다. 그 개혁 정신은 신앙과 과학을 대립 구도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과 기술혁명의 토대를 마련하고 공동체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활용했다.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 받을 것이라는 말은 중세기적 발상이지 종교개혁을 통하여 생겨난 개신교의 가르침일 수 없다. 개혁 정신은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회복하신 이 땅의 거룩성에 기초해 인간이 서 있는 삶의 자리 그 어디에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의 시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새삼 눈여겨 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이 부정의 시간을 긍정의 시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혜가 연세 공동체 안에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회복할 수 있다면 자연과의 교감의 기회를 더 늘리면 좋겠다. 뉴턴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피조물을 통해서 배우고 그것을 우리 학문에 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미현 교수(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조직신학)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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