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를 위한 의무’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물음표를 던지다

‘대한민국 모든 남성은 군대에 간다’라는 말은 얼핏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틀린 문장이다. 사회복무요원을 비롯한 다양한 대체복무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어 이들에 대한 인식이 미미할 뿐이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 또한 현역 장병에 비하면 사소한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최근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가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강제노동’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알려지면서다.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쏟아지는
국제노동계의 따가운 시선

 

현재 우리나라는 병역의 종류를 ▲현역 ▲보충역 ▲예비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대체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남성들은 만 19세가 되면 병역판정검사를 통해 이 중 어떤 형태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게 될지 판정받는다. 병역판정검사는 개인의 신체·정신적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사회복무요원은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남성들이 수행하는 보충역의 한 형태다. 병무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2분기 기준 전국 총 6만 1천71명의 사회복무요원이 복무하고 있다. 이들은 기초군사훈련 기간 4주를 포함해 총 21개월간 ▲공공기관 ▲사회복지시설 ▲공기업 등 다양한 기관에서 병역을 이행한다.

대한민국 남성에게 부과되는 병역의무를 다른 형태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은 따갑다. ILO 핵심협약 중 강제노동금지 협약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ILO 핵심협약은 총 190여 개의 전체 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 ▲아동노동금지 ▲차별금지의 4개 분야, 8개 협약을 말한다. ILO 회원국이면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의무적으로 비준해야 하는 조약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핵심협약 8개 중 4개만을 비준하고 있다. EU는 우리나라가 나머지 4개 협약을 비준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을 문제 삼아 분쟁해결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정부는 비준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7월 34차 국무회의를 통해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제29호,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와 제98호 비준안을 심의·의결했고 현재 국회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강제노동금지를 규정한 핵심협약 제29호가 사회복무요원 제도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 조항은 ‘제재의 위협에 의하여 강요되는 자발적으로 요청하지 않은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를 강제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순수한 군사적 성격의 노동 등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군사적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노동으로 판단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2017년 11월호 「노동리뷰」에 따르면 ILO는 “우리나라의 공익근무가 ‘전적으로 군사적 성격의 노동’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협약 적용제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대체복무제도를 폐지하거나 양심적 병역거부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국방에도, 공익에도 기여 못 하는 사회복무
‘의무를 위한 의무’에 가까워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다른 병역에 비해 비교적 편하다는 인식에 가려져 제대로 된 공론화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 협약 비준을 위해서만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여러 목소리를 들으며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나가야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 시도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방과는 상관없는 업무를 한다는 점,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애초의 취지에도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사회복무는 병역을 수행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보충역 판정을 받은 청년들에게 국방과는 상관없는 업무를 맡기고 있다. 이를 거부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어 신체·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군인권센터 방혜린 상담지원팀장은 “우리나라는 역종을 다양하게 만들어 현역으로 복무하지 못할 상태인 사람을 억지로 징집하고 있다”며 “저렴한 가격에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사회적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무리하게 만든 ‘의무를 위한 의무’라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문제는 ‘역린(逆鱗)’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현역 복무는 어려운 이들을 모두 면제시키면 현역 복무자들을 중심으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꾸준히 사회복무요원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강제노동청산위원회 이다훈 위원장은 “사회복무요원제도는 외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신체·정신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 군대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로 생겨났다”며 “여기서 비롯된 불만이 정부로 향하자 병역과 무관한 강제노동제도를 만들어 해소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사회복무요원이 실제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적어 오히려 업무 능률을 떨어뜨린다는 불만이다. 사회복무요원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한도 주어지지 않아 개인정보 접근이 요청되거나 책임을 져야 하는 업무를 맡을 수 없다. 사회복무 중인 김태연(24) 씨는 “따로 정해진 업무가 있기보다는 직원들의 필요에 따른 업무를 수행한다”며 “주로 스캔, 복사, 제본과 같은 간단한 사무 보조나 기타 잡무를 맡는다”고 밝혔다. 사회복무요원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인천광역시 서구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현실적으로 사회복무요원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아 공무원 대부분은 함께 근무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개인정보와 관련한 문제 때문에 단순 업무 외에는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논란…
사회복무요원제도에 대한 근본적 논의 필요해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가 제출한 「병역법」 개정안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병역법」 개정안에는 4급 보충역 판정자가 직접 현역 복무와 사회복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가 4급 보충역에게 복무 형태를 선택하게 한 이유는 ILO가 강제노동을 판단하는 기준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ILO는 ▲순수한 군사적 성격의 작업 ▲소수에게 주어진 특혜에 근거한 선택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체복무로서 선택이라는 성격을 가지면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정부는 현역과 사회복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ILO가 사회복무제도를 예외로 인정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ILO 협약과 관련된 사안들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국제협력담당관 김윤지 사무관은 “정부는 다른 나라 사례들로 미뤄봤을 때, 이번 「병역법」 개정을 통해 사회복무요원의 강제노동 소지가 해소됐다고 본다”라며 “ILO는 독일의 양심적 병역제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정부의 대처에 이 위원장은 “마치 보충역 판정자들이 스스로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며 “이는 국제사회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현실적으로 신체·정신적 어려움을 지닌 4급 보충역 판정자들이 자진해 현역 복무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4급 보충역 판정자들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한 것 자체도 문제다. 현재 사회복무요원 적체 현상이 수년째 이어져 복무 대기자들은 복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간에 쫓겨 ‘울며 겨자 먹기’로 현역 복무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4급 보충역이 현역으로 복무한다면 신체적·정신적 어려움 때문에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군 전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 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신체·정신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사회복무요원 제도 폐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과 공익 그 어느 측면에서도 이점이 없는 제도에 많은 청년의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인 정의당 김종대 한반도 평화본부장은 지난 1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복무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며 “군 복무에 적합한 사람은 복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복무하지 않도록 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현역 복무자와의 형평성 문제는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공군으로 만기 전역한 김광옥(24)씨는 “사회복무요원제도가 폐지된다면 현역 및 예비역의 반발과 박탈감이 심해져 분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사회복무요원제도가 폐지될 만한 상황인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현역 복무자뿐만 아니라 사회복무요원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사회복무를 마친 박준상(24)씨는 “건강상의 문제가 있어 현역 복무를 못 하는 사람들이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받고 사회의 공익을 위해 복무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방 상담지원팀장은 “사회복무요원 제도의 근간은 모든 20대 남성이 징집돼 같은 사회 단절을 경험해야 공정하다는 인식”이라며 “이 인식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사회복무요원 제도 폐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징집 인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복무요원 제도가 폐지되면 현역 판정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방 상담지원팀장은 “우리나라 병력 자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사회복무요원 제도가 폐지되면 국민적 인식에 따라 현역 복무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결국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징집을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군사 모델에 대한 재검토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무청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사회복무요원 제도 폐지에 대해 병무청 부대변인은 “현실적인 안보 사항, 병역의무의 평등한 부담에 대한 국민적 요구, 국민개병주의 원칙에 따른 예외 없는 병역의무의 적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제도의 폐지를 논하긴 어렵다”며 “폐지보다는 어떻게 개선할지를 논하는 것이 맞다”고 답했다.

 

사회복무의 강제 노동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병역제도 전반에 대한 전방위적 공론화와 적극적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요원한 현실이다. 민감한 문제라는 이유로 분명한 문제가 있는 제도에 대한 논의를 피하는 것은 ‘지록위마’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는 청년 남성들의 인생, 더 나아가 천부적 인권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접근해야 한다.

 

 

글 고병찬 기자 
kbc1986@yonsei.ac.kr

사진 홍지영 기자
ji0023yo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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