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의 3S(Safety, Sympathy, Suggestion) 필요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계속되며 서울시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10인 이상이 모이는 집회를 전면금지하고 있다. 집회 금지령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가운데, 전면 규제만이 방역을 위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규모 시위로 악화한 여론
‘집회 금지법’ 논의되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안전할 권리’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전국적으로 2만여 명이 집결했던 광화문 시위가 기폭제로 작용하면서, 이러한 논쟁은 더욱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작성된 ‘8·15 광화문 시위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을 청원한다’는 내용의 글이 38만 명의 동의를 얻는 등, 집회와 시위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집회·시위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22일 발의된 ‘박형순 금지법(집회·시위법 및 행정소송법 개정안)’은 그 일환이다. ‘박형순 금지법’은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광화문 시위를 허가한 판사의 이름을 붙여 발의한 법안으로, 감염병 우려 지역에서의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행정법 개정을 통해 대규모 집회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SNS에서 방역 기간 중 대규모 집회 참여 단체를 ‘시민단체’가 아닌 ‘반사회단체’로 규정했다. 이어 그는 법원의 집행정지결정*에 행정청이 즉시 항고한 경우 판결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해 집회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소송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집회 금지법’의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집회·시위 규제 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집회와 시위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한편 사회적 약자들이 온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법안들은 장기적으로 방역 수칙을 준수한 집회에도 적용돼 시위 자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인권운동공간 ‘활’의 공권력 감시대응팀 랑희 활동가는 “비판받아야 할 행동이 집회라는 방식으로 표출됐다고 해서 집회 전면 금지를 추진하는 것은 섣부른 처사”라며 “공공보건을 위해 집회를 일부 제한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권리를 호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론장은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집회 세력의 반사회적 행위가 집회·시위 전체에 대한 규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우리는 어디서 말해야 하나요?”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권리 호소가 절실한 사람들이 있다. 집에 머무르고 싶어도 머무를 수 없는 철거민, 고용 위기를 겪는 청년과 비정규직 부당 해고자는 광장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이들은 사실상 ‘권리를 이야기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활동가는 “현 방역 조치 및 집합 금지명령은 굉장히 인권 침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묵살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범죄인 것처럼 사회 분위기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거리두기가 비교적 완화됐던 시점에도 시위에는 유독 엄격한 규제가 적용됐다. 지난 4월, 코로나19로 인한 생계 위협 및 해고에 대응하는 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들이 ▲마스크·장갑 착용 ▲방진복 착용 ▲거리 유지 하에 시위 진행을 요구했을 때도 서울시와 경찰은 이를 금지했다. 이에 정 활동가는 “여가와 경제 활동보다 집회·시위에 대한 보여주기식 규제가 심하다”며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비정규직·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처사”라는 우려를 표했다.

지난 6월,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평화 집회와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코로나19 위협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집회 결사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공중보건의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권존중 ▲시민사회와의 소통 ▲정보 접근 및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긴급한 팬데믹 상황일수록 더욱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랑희 활동가 또한 “무조건 집회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방역과 집회가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열어둬야 한다”며 “국가 및 지자체는 집회 참여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우호적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집회 금지가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견해다. 그는 또 “집회의 자유는 언론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는 의견·정보에 대한 사회적 소통 및 공유를 가능케 한다”며 “코로나19 사태에도 사회적 공론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집회와 방역,
양자택일의 문제 아니다

 

정부의 적절한 대처와 시민사회의 협조가 뒷받침된다면, 집회와 방역의 공존은 가능하다. 먼저 집회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집회의 규모, 방식, 장소 등에 대한 고려는 필수다. 집회 규모가 작고 공간이 넓을수록 감염의 위험성은 낮아진다. 따라서 규제 여부 또한 상이하게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랑희 활동가는 “넓고 개방된 장소인 광장에 대한 금지조치는 최후의 보루”라며 “실내 모임과 실외 집회의 인원 제한에 차이를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집회 주최 측은 집회와 방역이 상호 공존할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방역 지원을 통해 허가된 집회의 참여자들이 안전하게 집회를 할 수 있도록 조력할 의무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될 때까지 집회·시위를 최대한 안전한 방식으로 진행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집회 방식의 뉴노멀로 떠오르는 ‘거리두기 집회’가 그 일환이다. 이미 ▲차량시위 ▲디지털 비대면 시위 등이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다. 깃발을 꽂은 채 낮은 속도로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시위’는 코로나19로 재조명된 이색적 풍경이다. 지난 1일,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 등 세진중공업 분진 피해자 100여 명은 문제해결을 요구하며 차량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차량시위는 교통 지연 및 소음 등에 따른 비판을 받고 있지만, 사전 통보와 차량 대수 제한을 통해 기존의 보행 집회처럼 보편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주관하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SNS에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해시태그를 검색하자 행진하는 아바타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일각에서는 온라인을 활용한 비대면 집회 또한 이어지고 있다. 매년 6월 열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참여자들이 모바일 웹사이트에서 아바타를 꾸민 후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온라인퀴퍼’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SNS에 해당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서로 다른 참여자들이 공유한 그래픽이 합쳐져 실제 행진 행렬처럼 보인다. 3만여 명의 참여 속에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러한 온라인 집회에 대해 랑희 활동가는 “국가 차원에서 ▲충분한 채널 마련 ▲개인정보 보호 등을 보장한다면, 모바일의 특성을 이용한 디지털 시위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상황에 따라 언택트 시위가 고려될 수 있지만, 같은 목소리를 내고 들음으로써 얻는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의 입과 귀가 막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광장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맞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시위의 3S’다. 시위자는 안전을 우선하고(Safety), 시민들은 공감하며(Sympathy), 정부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Suggestion) 모두가 안전한 민주 광장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집행정지결정: 행정청의 집회 금지 처분에 대한 법원의 집행정지결정을 뜻한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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