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계의 권위자, 박정순 교수를 만나다

문(文)과 무(武) 두 길을 걸어온 학자가 있다. 특히 철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이룩한 박정순 교수(퇴임·현대영미윤리학/사회철학)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5년간 교수 생활을 해온 박정순 교수는 수업과 더불어 저서 집필, 무술과 사진찍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A. 우리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에모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현대 영미 윤리학 및 사회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95년 1학기 초부터 미래캠 철학과에서 교편을 잡아 25년간 재직 후 2019년 8월에 정년퇴임했다.
그가 한국윤리학회 회장 및 ‘다산기념철학강좌’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피터 알버트 데이비드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 등 미국과 유럽의 세계 석학들을 초빙해 강연케 했다.

 

Q.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무엇이 문제인가』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존 롤즈의 정의론: 전개와 변천』과 『사회계약론적 윤리학과 합리적 선택: 홉스, 롤즈, 고티에』가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선정 과정과 소감에 대해 듣고 싶다.

A. 우수도서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일정 분량과 학술적 탐구 방식인 각주와 참고문헌, 또 학문적 역량과 논지가 그 저서에 잘 피력돼야 하는 것 같다. 물론 교수가 책을 집필하면서부터 수상을 노리고 집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학문적 성과가 잘 반영된 좋은 책을 쓴다는 일념으로 정진한다면 우수도서의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Q. 『존 롤즈의 정의론: 전개와 변천』은 존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에 대해 종합적이면서도 고차원적인 탐구작이라 평가받고 있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저술했는지 궁금하다.

A. 우선 존 롤즈가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썼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19·20세기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인 자유와 평등의 조화 문제에 주목했고, 정의론이 야기한 여러 논쟁을 평가했다.
롤즈의 의도는 분석적이고 언어철학적인 윤리학을 불식하고, 사회계약론을 통해 규범 윤리학적 체계를 재구성해 정의론의 기반을 세우는 데 있다. 그는 정치적 자유의 우선성을 인정하되 경제적 불평등은 불평등을 경감시킬 때만 인정한다는 역설 같은 주장을 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한 것은 최소수혜자들의 기대치를 최대로 증진한다는 차등의 원칙을 통해서였다. 이는 롤즈의 실질적 정의관이 됐다. 롤즈의 정의론이 야기한 논쟁들로는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공동체주의,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와의 논쟁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이 논쟁들을 철저하게 분석·해명하려고 했다.

 

Q. 한국인 최초 미국 고등학술연구원 사회과학 분야 객원교수로 초빙됐다. 객원교수 재임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지난 2001년 9월부터 2002년 6월까지객원교수로 지냈다. 객원교수로 가기 위해서는 연구 업적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에서 출판한 『사회계약론적 자유주의 윤리학과 합리적 선택』이 큰 역할을 했다. 연구 과제는 고등학술연구원 사회과학부에 있는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종신교수의 복합평등론이었다. 10개월 간 왈저 교수에게 사사하고, 2002년 4월 왈저 교수의 복합평등론에 대한 철학적 기원 등을 발표했다. 발표장에는 사회과학 종신교수들과 객원교수들이 모였다. 이 중에는 2007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에릭 매스킨(Eric Maskin) 교수도 있었고, 역사나 자연과학계열 등의 많은 사람들이 자리해줬다. 발표를 시작하기 앞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복합평등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비틀즈의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Can’t Buy Me Love)」를 틀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고등학술연구원에서 연구원 최초의 종신교수였던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집 앞을 산책하고, 그가 연구했던 연구실을 지나, 그가 연구했던 도서관에 앉아 공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Q.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마이클 샌델 교수와의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A. 한국철학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할 당시 샌델 교수를 한국으로 초빙해 ‘공동체주의와 공공선’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당신의 철학적 대담자이며 엔터테이너이고 보디가드”라고 말했었다. 샌델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샌델의 첫 강연 후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의 강연 내용을 판소리 풍으로 노래하자 엔터테이너라고 말한 것을 이해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한옥마을에서 샌델과 함께 머물 당시, 아침에 기예를 보인 적이 있었다. 그는 보디가드라는 세 번째 말도 인정한다고 말해줬었다.
공항에서의 작별 당시 샌델 교수가 악수를 청했을 때 가만히 있자,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 다가와 허그를 했다. 나는 이것이 바로 공동체주의적 작별 인사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연이 이어져 샌델 교수가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서 우정을 나누고 사진을 찍는다.

 

Q. 오랫동안 무술을 수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무술을 수련하게 된 이유와 무술을 통해 얻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성룡과 이소룡 등이 출연한 중국무술 영화가 크게 유행하면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또 고향이 인천이라 당시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학교에서 열린 중국문화축제 때 노수전 선사가 시연하는 팔괘장을 보고 흠모하게 됐다. 결국 그분의 제자가 돼 팔괘장을 전수받았다. 오늘날까지 팔괘장을 수련하고 있으며 이 덕에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매사에 자신감 있으면서도 겸손한 처신을 할 수 있게 됐다.

 

Q. 지난 15년간 무술 교양과목을 개설해 학생 지도도 했다. 무술을 전수하는 과정 중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고 들었다.

A. 지난 2003년부터 미래캠에서 15년간 무술을 가르쳤다. 글로벌빌리지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한국문화체험 시간을 통해 무술을 가르쳤고 큰 호평을 받았다.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로는, 모든 학생에 장타격을 선보이자 학생들이 당시 혼비백산하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학생들이 팔괘장의 주 무기인 장풍 존재 여부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것이 화제가 돼 「조선일보」에 대서특필되는 계기가 됐다.

 

Q. 최근 정년퇴임을 기념해 한국윤리학회 후학들이 논문 선집 2권을 봉정했다.

A. 후학들이 정년퇴임 교수의 학덕을 기리고자 논문 선집을 봉정하는 것은 학계의 오랜 관행이고 아름다운 전통이다. 이를 받는 정년퇴임 교수는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회장으로 있었던 한국윤리학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40여 명의 필진들이 원고를 보내줬다. 『실천철학의 쟁점들 1: 윤리적 삶과 사회적 규범의 성찰』과 『실천철학의 쟁점들 2: 정의론과 정치철학』에 나를 대표저자로 출판해 매우 영광스러웠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그동안에 집필한 책들은 모두 각주와 참고문헌이 많은 이론 중심 철학책들이었다. 이제는 평이하고 혜안을 주는 책들을 쓰고 싶다.
무술과 관련해서는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최고 경지인 삼화취정(三花聚頂)을 팔괘장을 통해 이룩하고 싶다. 또, 풍광이 수려한 캠퍼스에 출사를 나가 사진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마추어 사진사로서는 이미 매지호 거북섬 4계와 은행나무 길을 찍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Q. 연세 구성원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교수들과 학생들이 상호 호응해 진정한 학문공동체로서 발전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교수들에게는 저서 집필 활동을 장려하고 싶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도 비판서들을 60세가 넘어서 저술한 것처럼, 교수들 또한 저서를 집필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임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는 진정한 공부의 도를 깨치우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며 항상 자기 발전을 도모하길 바란다.

 

 


글 권은주 기자
silverzoo@yonsei.ac.kr
박채연 기자
bodo_cy526@yonsei.ac.kr

사진 홍지영 기자
ji0023yo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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