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오디오클립 ‘RESOUND 단편’ 윤정준 기획자를 만나다

각종 스마트 기기의 사용이 보편화되며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엔 종이로 된 책만이 보편적이었지만 최근엔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책의 시대가 열렸다. 언제 어디서나 다른 일을 하며 즐길 수 있는 오디오북은 최근 그 범주 또한 무궁무진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네이버의 오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오디오클립'은 지난 2018년 12월 유료 서비스를 출시한 지 1년 만에 월 이용자 수 2만 3천 명, 누적 이용자 수 21만 명을 기록하며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다. 그 성장세의 한 가운데에 있는 한국 근대문학 오디오북 ‘RESOUND 단편’(아래 리사운드 단편)의 기획자 윤정준씨를 만났다.

 

 

▶▶리사운드 단편의 기획자 윤정준씨는 음성 콘텐츠로 제작한 오디오북을 통해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동을 전하고 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스튜디오 날다’의 이사이자, 리사운드 단편의 제작 및 총괄을 담당하는 윤정준이다. 리사운드 단편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업로드 되는 한국문학 오디오북이다. 1900년대 초반의 한국 단편소설을 현대 작가가 고쳐 쓰고, 배우가 낭독해 한국문학의 감동을 전하는 콘텐츠다.

 

Q. 리사운드 단편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래된 문학작품에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표현들이 많다. 현대의 독자들에게 옛 문학이 널리 읽히기 위해선 오늘날의 언어에 맞게 고쳐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이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며 문학작품을 잘 계승하고 있다.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국 근대문학을 현대 작가들이 오늘날의 감수성에 맞게 고쳐 쓰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텍스트가 아닌 음성 콘텐츠로 제작하면 젊은 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오디오북으로 제작했다.

 

Q. 한국 근대문학에 주목한 이유가 무엇인가.

A. 1920~30년대는 한국문학의 근간이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문학에 담긴 시대 의식이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대문학에는 저작권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따로 텍스트 저작권을 확보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재창조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엔 한국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럴 기회가 좀처럼 없는 것 같다. 청취자들이 리사운드 단편을 통해 어릴 적 읽던 문학작품을 추억하며 한국문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Q. 어떤 기준으로 리메이크할 작품을 선정하는가.

A. 주로 1인칭 시점 소설을 선정한다. 한 명의 화자가 소리로 이야기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선정한다. 강경애, 김명순, 나혜석, 백신애 등 남성 작가 위주의 문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한 여성 작가의 작품을 발굴하고 있다.

 

Q. 낭독자로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를 섭외한 이유가 무엇인가.

A. 또박또박 정확하게 읽는 성우의 어조는 정보 전달을 위한 비문학 텍스트에 적합하다. 그러나 문학 텍스트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므로 배우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주로 발음과 목소리 톤이 좋은 연극배우를 섭외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연극 상연이 줄어든 그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다.

 

Q. 배우들이 작품을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A. 대부분의 배우가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매력을 알게 돼 기쁘다는 반응이었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낭독한 배우 이철희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씨는 연출도 하고 극본도 쓰는 배우인데, 연극의 모티프를 찾기 위해 주로 외국 단편소설을 찾아봤다고 한다. 그런데 리사운드 단편을 녹음하며 한국 단편소설을 외면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나 이상의 「지팡이 역사」처럼 지금 봐도 세련된 소설들을 알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Q. 음악가에게 작품 분위기를 반영한 연주곡을 의뢰해 오디오북에 삽입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A. 텍스트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음악을 삽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디오 드라마는 기존에 발표돼있는 곡을 사용한다. 이 경우에는 텍스트와 음악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리사운드 단편은 음악가들이 텍스트를 읽고 떠오르는 느낌을 곡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배경음악만 들어도 소설의 장면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배우 김태리씨가 낭독한 이상의 「날개」의 마지막 부분에서 텍스트와 배경음악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주인공이 고뇌하는 부분에선 산만한 피아노 배경음악이 깔리다가 김씨가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는 대사를 낭독하는 순간 바이올린 소리가 크게 등장한다. 점점 높아지는 바이올린 음은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Q. 최근 듣는 방식의 독서 콘텐츠가 급성장하고 있다. 책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음성 콘텐츠가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다른 작업을 하면서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무언가를 눈으로 보는 데 지친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작품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있는 시간에 누군가가 낭독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외로움이 덜해진다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웃음) 언젠가 청취자들을 만난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Q. 듣는 책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A. 한국은 아직 오디오 시장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에 익숙하다 보니 돈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듣는 게 낯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음성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2, 30대 여성들이 주로 소비하지만, 앞으로는 4, 50대가 새로운 소비층이 될 것 같다. 눈이 피로해 활자를 오랫동안 읽기 불편한 이들이 듣는 콘텐츠를 더 많이 활용하게 되지 않을까.

단순히 청취자 수가 증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성 콘텐츠의 활용 방식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듣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하고 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낭독해 플랫폼에 업로드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를 녹음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Q. 독자들이 꼭 들어봤으면 하는 작품이 있는가.

A. 작가 정이현씨가 고쳐 쓰고 배우 정운선씨가 녹음한 백신애의 「꺼래이」를 추천한다. 주인공 순이가 아버지의 유해를 찾으러 만주로 떠나는 이야기다. 1920년대 가난한 민중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순이를 통해 박애주의와 평화주의의 정신을 전하는 따뜻한 소설이다. 작가 황현진씨가 고쳐 쓰고 배우 이정은씨가 녹음한 이태준의 「달밤」도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성북동을 배경으로 이웃 간 사랑을 따뜻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씨가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참여한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다.

 

<정이현 작가가 전하는 「꺼래이」 이야기>

안녕하세요. 리사운드 단편의 「꺼래이」를 고쳐 쓴 작가 정이현입니다. 백여 년 전의 우리 소설과 현대 독자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리사운드 단편에 참여했습니다.

「꺼래이」 원본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는 데 중점을 두며 고쳐 썼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소설이기 때문이죠. 여러 판본을 보면서 비교했고, 헷갈리는 부분은 백신애 작품을 연구하는 분들께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단어들을 지금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디오북이니만큼 ‘귀에 들리는 문장’의 리듬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며 한 문장 한 문장 고쳐나갔습니다.

「꺼래이」는 젊은 여성 순이의 서사입니다. 거듭되는 고난 앞에서 꺾이지 않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 앞에서도 다른 약자를 생각하는 백 년 전의 여성 ‘순이’를 오래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변지후 기자
wlgnhuu@yonsei.ac.kr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사진 김수빈 기자
sbhluv@yonsei.ac.kr

<사진제공 윤정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