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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진퇴양난(進退兩難)
  • 변지현 보도부장
  • 승인 2020.09.06 11:57
  • 호수 1856
  • 댓글 3
변지현 보도부장
(CTM/ECON·18)

춘추는 한순간도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제 부장 임기도 반 정도뿐이 남았구나, 하고 잠시 방심했던 찰나에 또 한 번의 폭풍우가 분다. 그간 동고동락했던 동기가 보도부를, 춘추를 떠난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충격을 잘 추스르지 못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는 대상 없는 원망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더 물러날 곳은 없다. 더욱 불살라 달리겠다고 다짐한다.

춘추 입사지원서에도 일종의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대학의 문턱을 넘으면 세상을 다 가질 줄 알았던 나는, 명문사학의 타이틀로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젊음은 가감없이 지나가는데, 방황하며 오랜 시간을 낭비할까 두려웠던 마음에 도망치듯 춘추에 입사했다.

춘추 생활이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던 것도 맞으나, 그 이면에서 내가 이뤘던 인간으로서의 엄청난 성장은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종종 ‘춘추가 사람 만들어 놓은 사례’라는 말을 들으면 썩 기분이 좋다.

이곳에 오기 전의 나는 ‘나’ 밖에 알지 못했다. 굳이 내가 아닌 타인에 관심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일반 학생이었다면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만났다. 학교의 먼발치 10년을 그리는 사람들도, 하루하루만 보고 사는 사람들의 삶도 들여다봤다. 언제나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던 학교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도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다. 다양한 사람과 함께 사는 세상은 그래서 그 갈등마저 의미가 있었고, 구성원 모두의 아등바등 덕에 이곳은 생동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교는 언제나 그 위엄있는 자태를 잃지 않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이면에는 벼랑 끝을 달리는 제작 일정이 있었다. 알려야 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 모든 것을 신문이라는 작은 종이에 쏟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과 용기가 필요했다. 일로 부딪혀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은 취재원에게 다시 취재하러 찾아가야 하는 두려움, 내 기사가 얼굴 모를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더 나아가 내 기사가 이해관계자들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기자 생활이 길어질수록 내 펜의 무게는 점점 선명해졌다. 이 무게를 두려움 때문에 모두 내동댕이치고 도망칠 수 없었다. 당장 금요일에 신문을 찍어내야 했고, 또 한편 누군가는 당장 보도를 필요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들이 있었고 펜을 잡은 이상 이곳에서 더 도망칠 곳은 없었다. 아마 ‘나’만 알았던 예전의 나였으면 다 던지고 또 도망쳤겠다. 그러나 어느 시점의 나는, 많은 이들이 짊어지고 사는 무게를 고작 펜 하나로 대변하겠다 했으면서 이마저도 저버리는 것은 참으로 비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달려온 기자 생활이 끝이 났다. 어디 주저앉을 틈이 없었던 치열한 시간 끝에, 두려움에 맞서는 참으로 귀한 용기를 얻었다. 그것으로 한 학기 더 남아 부장을 해보기로 했었다.

이제 보도부의 부장은 나 하나다. 하지만 홀로는 아닐 것이다. 그간 나의 사람 되는 과정을 이끌어줬던 부장들이 있었고, 함께 성장했던 동기들이 있었으며, 여태까지 나를 믿어준 어여쁜 기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수천의 독자들도 함께했다. 그간 참 많이 감사했고, 또 앞으로도 감사할 것임을 밝힌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그의 건강도 빌어본다.

다시 한번 두려움이 서리지만, 이 또한 춘추가 던지는 시험이다. 또 한 번 진퇴양난이다. 도망가고 싶다기보단 더 열심히 살아 이겨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젠 먼저 든다. 어쩌면 몇 주 후의 나는 또 한 번 성장한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훗날 오늘날을 돌아보며 추억하리라.

변지현 보도부장  bodo_aegiy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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