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중심 청년 담론 속 소외된 비대학 청년

비대학 청년이 난감한 상황 중 하나는 자기소개다. 비대학 청년인 르네(22)씨는 자기소개에서 이름과 나이를 간단히 밝히곤 한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무슨 학과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애써 밝히고 싶지도, 숨기고 싶지도 않지만, 질문에 답하기 위해 대학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화는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하지만 방 안은 곧 어색한 공기로 가득 찬다. 괜찮다는 말과 모순되는 분위기는 청년 담론에서 소외된 비대학 청년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청년으로서 목소리 내지 못하는 비대학 청년은 여전히 괜찮지 않다.

 

‘청년의 분노’ 속 보이지 않는 비대학 청년

 

‘청년=대학생’이라는 인식은 편향된 청년 담론을 통해 드러난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형성된 청년 담론 속 비대학 청년의 목소리는 배제돼 있다. 최근 ‘청년’이 키워드로 떠오른 두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해 ‘청년의 분노’가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조국 사태와 청년을 연관 짓는 언론의 보도와 정치권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권에서 상정한 ‘청년’은 대학생만을 의미했다. 대학로에서 청년이 든 촛불들은 대학생이 든 촛불들이었다. ‘청년의 목소리’를 담은 성명서는 대학의 타이틀과 함께 발표됐다.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난 편향된 청년 담론에 제동을 건 대자보가 있다. 조국 전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지던 가운데,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익명의 작성자 K가 쓴 대자보가 게시됐다. 작성자 K는 “우리의 분노를 두고 ‘청년세대의 정의감’을 얘기하기에는, 우리가 못 본 체했으며, 모른 체해온,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청년들’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논의돼 온 ‘청년의 분노’가 대학 밖 청년을 ‘모른 체’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작성자 K의 대자보는 새로운 논의를 촉발했다. 언론은 대자보와 함께 특성화고 졸업생, 청년 노동자와 같은 비대학 청년의 목소리를 다루기도 했다. 가시화되지 않던 비대학 청년의 목소리는 서울대 학생의 대자보와 함께 비로소 드러났다. 대학생 중심의 청년 담론도,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논의도 그 주도권은 대학생에게 있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 역시 편향된 청년 담론을 보여준다. 인국공 논란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의 대화가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서연고 나와서 뭐하냐’고 말하는 고졸 청년을 보며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은 불공정을 주장했다. 이는 곧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청년의 분노’로 표현됐다. 채팅방의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고졸 청년은 분노의 대상으로 청년 담론에서 타자화됐다. 이후 전국금속노동조합 청년 노동자 261명은 “정규직화가 옳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권은 이를 청년의 목소리로 다루지 않았다.

 

‘청년’ 정책도 대학생 중심

비대학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 반영 못 해

 

대학생 중심 청년 담론은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청년’ 정책이라고 분류된 정책들은 대학생에게 집중돼있다. 국가장학금과 학자금대출은 대표적인 청년 정책이다. 2019년 정부 재원 4조 원이 국가장학금으로 사용됐으며, 학자금 대출액은 약 1조 8천억 원을 웃돌았다. 국가장학금과 학자금대출이라는 막대한 규모의 ‘청년’ 정책이 대학생, 대학원생만을 지원하고 있다. 기숙사의 형태로 지원되는 주거 정책 역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의 기숙사형 청년주택, 지자체의 장학숙들 모두 지원 자격을 대학생으로 한정하고 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의 박고형준 활동가는 “대학생들이 주거와 관련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학생이 아닌 청년의 주거 여건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라며 “대학생과 비대학생을 구분 짓는 정책보다 개인의 소득 특징을 고려하는 정책과 전반적인 청년을 지원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비대학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고졸자 취업 정책에 치중돼있다. 그러나 취업만이 비대학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은 아니다. 르네씨는 대학 밖 청년에게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대학교는 대학생이 관계를 형성하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비대학 청년에게는 그러한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르네씨는 “대학 밖에서도 개인, 단체가 활동 하고자 할 때 이를 지원하는 지원금, 공간 등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또 그 인프라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청년지원사업 조사결과 또한 커뮤니티 지원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졸 이하 학력의 참여자들이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사업에 ‘소규모 커뮤니티 지원’을 꼽았다. 그러나 ‘고졸’을 내세운 정책은 비대학 청년에게 필요한 커뮤니티 지원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고졸청년취업지원 프로그램, 고교 취업연계 장려금 지원, 직업계고 현장실습 참여학생 지원 등 취업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대부분이다.

 

학력이 노력의 지표가 된 사회에서 이에 따른 차별적 대우는 암묵적으로 수용된다. 특히, 청년 담론의 공정은 입시와 채용 문제를 중심으로 ‘누가 명문대, 정규직을 차지하느냐’를 논의한다. 그 속에서 ‘비대학 청년이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공정을 건드렸다간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비대학 청년은 학벌이라는 자기검열 속에 침묵을 선택한다. 대학 밖에도 청년이 있다. 대학이 아닌 삶을 선택했을 뿐, 그들도 청년으로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가시화되지 않은 비대학 청년의 존재에 힘을 더해줄 필요가 있다.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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